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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의 해석》
“지크문트 프로이트Sigmund Freud는 1856년 5월 6일에 태어났다.”로 시작하는 글은 아무래도 읽고 싶지 않을 것 같다. 167년 전에 태어난 사람의 이야기를 어떻게 매력적으로 풀 수 있을까.
“나 어제 이상한 꿈 꿨어.”라는 말에 귀가 쫑긋 선다. 주변 사람 꿈 이야기도 이토록 궁금한데 인류를 기록하기 시작한 이후로 꿈은 얼마나 큰 관심사였을까. 타인의 꿈 이야기는 마치 할머니가 해주는 옛날이야기처럼 흥미롭고 신선하다. 어디에선가 들어본 적 있는 것 같은 빤한 이야기여도 귀를 기울이게 된다. 꿈에 관심을 가진 사람은 많았고, 여전히 많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지크문트 프로이트Sigmund Freud다.
프로이트는 심리학자이자 의사이고, ‘정신분석’이라는 분야를 만들어 낸 정신분석학자이기도 하다. 그가 자기 자신에 대한 정신분석을 했다는 이야기는 많이 알려져 있는데, 곰곰 생각해 보면 조금 무섭다. 성격 유형 검사도 사실은 내가 되고 싶은 나에 가깝고, 남이 보는 나는 다를 수 있다고들 하지 않는가. 그런데 내 정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분석한다니 아무래도 보통 사람은 아닌 것 같다. 프로이트가 무의식의 세계를 탐구하면서 특히 중요하게 여긴 것 중 하나가 꿈이다. 많은 사람이 한 번쯤 들어본 적 있을 테다. 《꿈의 해석》이라는 그의 저서. 대학생 무렵이었나, 전공 서적이라는 걸 독파해 보겠다는 마음으로 서점에 가서 프로이트와 관련된 책을 몇 권 샀다. 그중 하나가 《꿈의 해석》이었다. 그때 그었던 몇 개의 밑줄을 다시 들여다보며 하고 싶은 말을 길어 올렸다. 아주 느슨하고 헐겁게. 어쩌면 제멋대로일지도 모를 나만의 해석으로.
프로이트는 꿈에 관한 여러 용어를 만들었고, 개중 기본이 되는 건 ‘꿈 내용’과 ‘꿈 생각’인 듯하다. 꿈 내용은 꿈꾼 사람이 깨어나서 이야기하는 꿈의 줄거리를 말한다. 흔히들 “오늘 꿈에서 말야!” 하고 운을 떼는 그런 이야기. 꿈 생각은 꿈 내용을 구성하는 꿈의 기본 요소를 뜻한다. 꿈의 재료라고도 할 수 있을 테다. 보통은 꿈 내용이 현실에 기반한다고 하는데, 지금껏 꾼 꿈들을 생각해 보자. 꿈 내용을 항상 현실에서 찾을 수 있었나? 나의 경우는 너무도 아니다. 그래서 나는 꿈 내용을 말할 때면 항상 ‘개연성이 없다.’는 말을 덧붙여 왔다. 나 같은 사람을 위해 프로이트는 이렇게 말한다.
맞아, 맞아. 확실히 그렇다. 나는 꿈에서의 나는 내가 아니며, 그 경험 또한 또 다른 세계, 꿈나라라 일컬어지는 그곳에서 만들어지는 거라 믿는다. 내가 이렇게 논리 없고, 개연성 없는 생각을 할 리가 없잖아!
생각해 보니 그런 적이 있던 것도 같다. 꿈에서 신발을 잃어버렸다. 나는 신발을 찾기 위해 동굴도 들어가고, 너른 벌판도 뛰었다. 있을 리 없는 작은 틈새까지 헤집었지만 찾을 수 없어 하릴없이 주저앉아 울었다. 속이 잔뜩 상한 채 집으로 돌아가려는데 길을 알 수 없었다. 나는 뒷걸음질치며 안개 속을 헤맸는데, 그러다 내 등이 누군가에게 부딪쳤다는 걸 알았다. 무의식적으로 아빠라고 생각했다. 나는 고개는 돌리지 않은 채, 뒤로 손만 뻗어 뒤에 선 남자의 양팔로 내 어깨를 휘감았다. 이 커다란 손은 아빠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했는데, 내 눈앞에 잃어버린 신발을 들고 서 있는 부모님이 보였다. 그렇다면 내 등 뒤의 남자는 누구지? 흠칫 놀라 그 사람에게서 떨어져 뒤를 돌아보았다. 모르는 아저씨가 웃고 있다. 악몽이라며 엄마에게 설명했더니, 엄마가 그런다. “너, 어릴 때 아빠 앞에 두고는 모르는 아저씨 손 잡곤 “아빠!” 그랬잖아. 기억 안 나?”
꿈이란 기묘하다. 기억이란 신묘하다. 프로이트도 비슷한 사례를 풀어놓는다. 꿈의 주인공 이름은 델뵈프R. L. Delboeuf. 꿈 이야기가 길고 상세하게 설명돼 있지만, 납작하게 이야기하자면 대략 이렇다. 1862년에 그가 꾼 꿈속에서, 그는 어떤 식물의 이름을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아스플레니움 루타 무랄리스Asplenium ruta muralis’. 현실에서는 알지 못한 단어였으므로 그는 꿈에서 깬 뒤에 그것이 그저 꿈에서 만들어 낸 단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웬걸? 그 단어는 실제로 존재하는 식물의 명칭이었다. (정확한 명칭은 아스플레니움 루타 무라리아Asplenium ruta muraria다.) 수수께끼라고도, 우연이라고도 할 수 없는 일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델뵈프는 이 꿈을 늘 수수께끼처럼 마음에 품고 있었는데, 결국 그 해답을 찾게 된다. 무려 꿈을 꾼 지 16년 뒤의 일이다. 그는 친구 집에서 한 식물 표본집을 보게 된다. 거기서 꿈에 나온 ‘아스플레니움’을 발견했고, 그 표본집에서 자신의 필체로 적힌 라틴어 단어를 발견한다. 그 친구의 누이동생이 언젠가 오빠에게 선물하고 싶다며 그에게 라틴어 명칭을 적어달라고 부탁했던 먼 옛날의 경험이 거기 고스란히 남아 있던 것이다. 이 일은 델뵈프가 꿈을 꾸기 2년 전인 1860년에 일어났다. 그러니까 꿈에 등장한 그 식물의 이름은, 델뵈프는 기억하지 못하지만 분명히 자신이 한 자, 한 자 적어 넣은 식물의 이름이었던 것이다.
프로이트는 꿈의 원천은 네 종류라고 말한다. 첫째는 외적(객관적) 감각 자극, 둘째는 내적(주관적) 감각 자극, 셋째는 내적(기관의) 신체 자극, 넷째는 순수한 심리적 자극 원천이다. 외적인 감각 자극으로서의 꿈의 원천은 이런 것이다. 자는 동안 묵직한 베개가 어쩌다 배 위에 놓였다면, 우리는 바위에 깔리는 꿈 비슷한 것을 꾸게 된다.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은 이러하다. “침대에 비스듬히 누워서 발이 침대 모서리 밖으로 나오면, 우리는 등이 오싹한 낭떠러지 끝부분에 서 있거나 가파르고 높은 곳으로부터 떨어지는 꿈을 꾼다.” 얼마 전 친구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너무 추워 감기에 걸리는 꿈을 꿨는데, 눈을 떴을 때 에어컨 온도가 지나치게 낮아서 방 안이 서늘했다는 이야기였다. 이 꿈의 원천 역시 외적 감각 자극이 아닐까. 이러한 신체적인 요인이 아니더라도 내부에서의 이야기, 즉 심리적인 요인도 꿈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 나는 해야 할 것이 있으면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빨리 해치워야 하는 성격인데, 자의로 빠르게 해결할 수 없을 경우(중대한 회의, 면접, 친구와의 화해 등) 스트레스를 굉장히 크게 받는다. 그런 스트레스가 꿈에 반영되는 날이면 꿈에서 그 일을 해치우는 데 매진한다. 이를테면 크고 묵직한 회의가 내일 예정돼 있을 때 간밤 꿈에서 계속 회의 준비를 하는 식이다. 잔뜩 긴장한 채 시뮬레이션하면서 주절주절 말로 꺼내보기도 하고, 어떤 옷을 입고 가야 좋은 인상을 줄까 고민도 한다. 그렇게 수 시간을 준비했는데 깨고 나면 준비되지 않은 내가 침대에 있고, 그 회의라는 것은 아직 해결되지 않은 채 남아 있다. 꿈에서 이미 한바탕 해치운 일을 또 해내야만 한다니, 고통스러운 일이다. 현실에서의 스트레스가, 심리적인 어떤 것이 꿈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확실하다.
우리는 아침에 눈뜨고 곧잘 꿈을 잊는다. 완전히 잊혀 ‘꾸지 않았다.’고 생각할 때도 있고, ‘기억날락 말락 하네.’ 하고 갸웃거릴 때도 있다. 프로이트는 이를 “아침에 꿈이 녹아 없어진다Zerrinnen.”고 말한다. ‘다 까먹었어!’라든지 ‘기억이 안 나!’라는 말보다 꿈과 훨씬 잘 어울린다. 반대로 너무 선명하게 기억나서 이상한 꿈도 있다. 바로 오늘, 누군가에게 “꿈이 너무 생생해서 현실 같았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프로이트 역시 비슷한 이야기를 한다. “지금부터 최소한 37년 전 나 자신이 꾼 꿈을 기억할 수 있다. 그렇지만 그 꿈에 대한 기억의 생생함은 전혀 손상되지 않고 있다.” 이것이 정말 가능한 일일까? 한 번도 경험한 적 없기에 별세계 이야기처럼 생소하다. 이처럼 꿈이란 모호하고, 이상하고, 아름답고, 기묘하다.
프로이트는 꿈이 ‘소원 성취Wunscherfüllung’라 말한다. 그 소원 성취란 물 떠 놓고 비는 그런 간절한 소원일 수도 있지만 아주 소소한 욕구의 충족이기도 하다. 프로이트는 소원 성취로서의 꿈을 ‘갈증’에 빗대 이야기한다.
자다 깨는 일이 잘 없지만 간혹 깨면 꼭 냉장고로 간다. 차가운 보리차를 딱 열두 모금(왜인지 모르지만 강박적으로 열두 모금을 마신다.) 마시고 다시 잠에 드는 것이 간밤의 패턴이다. 나는 기억하지 못하지만, 어쩌면 나는 물을 마시기 전에 보리차를 꿀꺽꿀꺽 마시는 꿈을 꾸었던 걸까?
내가 꼭 이런 사람이다. 나는 잘 땐 잠보다 더 귀한 게 없다. 그래서 가위가 눌려도, 갑자기 쥐가 나도, 악몽에 시달려도 잘 깨지 않는다.
그러니까, 나는 기억하지 못하지만 꿈속의 내가 나를 대신해서 차가운 보리차 열두 모금을 마셔줬을지도 모르는 일이란 건가? 그 꿈으로 나는 욕구를 해결하고(해결했다고 믿고) 깨지 않아도 될 만큼 만족감을 느꼈다는 걸까? 그렇다면 꿈속의 나는 진짜 나인가? 내가 인지하지 못하는데도?
프로이트는 자신의 환자들뿐 아니라 아이들의 꿈 역시 해석의 소재로 삼았다. 그는 아이들의 꿈은 대체로 단순한 소원 성취라고 말한다. 풀어야 할 복잡한 수수께끼는 없고, 마음으로 원하는 것들을 꿈으로 성취하는 사례가 수집되었으니 말이다. 그는 이러한 이야기를 옮기며 꿈 이야기를 하나씩 읊는데, 그 이야기들이 참으로 좋았다. 아이들의 꿈은 복잡하지 않고 무구하다. 그들이 원하는 건 소소하고, 직관적이고, 자연스러운 욕망이다. 어른의 꿈은 때때로 해석되고 나면 탐욕스러운 모습이나 베일에 가려진 지저분한 욕망이 보기 좋지 않을 때가 있는데, 아이의 것은 대체로 순하고 선해서… 어쩐지 웃음이 난다.
이 대목을 읽으면서 혼자 처음으로 간 해외여행을, 그곳에서 꾼 꿈을 떠올렸다. 목적지는 오키나와. 여름이 네 번째로 좋다던 내가 그곳 해변에서 볕을 쬐면서 처음으로 “여름 사랑해!”라는 말을 해보았다. 피부가 까매지는 게 싫어 항상 꽁꽁 가리고 다니던 건 거짓인 양 기꺼이 짧은 소매의 옷을 입은 채 햇빛에 순수하게 몸을 맡긴 순간을 선명하게 기억한다. 그날 밤 나는 이 여행이 끝나지 않았으면, 여름밤이 계속되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낯선 이국땅에서 울고 말았다. 그날 꿈에서 나는 아무도 없는 해변에 나 홀로 서 있었다. 모래사장에 발을 묻기도 하고, 자전거를 타고 바닷가를 달리기도 했다. 그것은 영화 <안경>(2007)에 나오는 사쿠라 씨의 자전거(뒤에 커다란 짐이나 사람을 태울 수 있는 세발자전거)랑 닮아 있었고, 나는 모래사장에서 주스를 파는 한 할머니를 만나게 된다. 그 할머니는 나였다. 나중에 나이가 들면 오키나와에서 생과일주스를 팔면서 살고 싶다는 내 꿈이, 간밤의 꿈에서 성취된 것이다.
에디터 이주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