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할 말이 있어

각자의 몫

 

양복을 즐겨 입지 않는 아빠가 양복을 열댓 벌이나 가지고 있었던 건 그가 남대문의 대형 양복점에서 일했기 때문일 것이다. 딱 한 번 아빠의 일터에 가본 적이 있다. 교실 다섯 개를 붙인 것보다 더 큰 공간에 행거가 가득 세워져 있고, 각 잡힌 양복이 일정한 간격으로 걸려 있었다. 매장이 어찌나 넓은지, 동생과 숨바꼭질을 하는데 결국 술래가 나를 찾아내지 못할까 봐 자발적으로 들켜야 할 정도였다. 그날 동생과 땀이 나도록 양복점을 뛰어다녔다. 양복점은 감히 측량할 수 없이 크다는 점에서 아빠와 닮아 있었다.

그랬던 아빠가 작아보인 것은 가족들과 떨어져 홀로 살던 무렵부터였다. 엄마와 아빠 중에 누가 더 좋은지와 둘 중 누구와 살 것인지는 전혀 다른 차원의 질문이었다. 흔히들 딸은 엄마와 함께 사는 것이 낫다고 하니, 자연스럽게 집을 떠나는 사람은 아빠가 되었다. 그때 나는 내심 엄마와 살게 되어 안도했던 것 같기도 하다.

아빠는 안동의 두메산골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었다. 경상도 사람은 으레 그렇게 태어나는 건지, 아니면 삶의 풍파가 그렇게 만든 건지 모르겠으나 아빠는 내가 만난 그 어떤 어른보다 말수가 적었다. 아빠는 아내에게는 물론 자식에게조차 고맙다, 미안하다, 사랑한다 같은 일상 표현을 일절 하지 않았다. 그런 그에게서 제일 많이 들은 말은 “아끼며 살아야 한다”였다. 물론 돈을 아끼라는 말이었지만, 아빠는 웃음도, 분노도, 사랑도 아끼면서 살지 않았나 싶다. 아빠에게서는 넘지 못할 산의 완강한 기운 같은게 느껴졌다. 종종 그에게 내가 어떤 딸인지 묻고 싶었으나 표현을 아끼는 아빠에게 되돌아올 답이 무서워서, 그보다 아무 대답도 듣지 못할까봐 겁이 나 묻기를 포기했다.

스무 살이 되던 해. 하루아침에 집에서 아빠의 흔적이 사라졌다. 신발장 위의 등산화와 주방의 황동색 수저가 사라지고 칫솔은 세 개가 되었다. 안방 옷장 절반이 덩그러니 비워졌다. 새것처럼 가지런했던 양복들은 어디로 갔을까. 애초에 잘 입지 않았으니 버려졌을까. 아니면 아끼며 사는 마음으로 입지 않을 그 옷들을 가지고 갔을까.

가끔 아빠를 만나 밥을 먹는다. 아끼며 사느라 외식도 자제했던 아빠와 이제 만날 때마다 외식을 하니 아이러니하다. 태산 같던 아빠는 만날 때마다 키가 조금씩 줄어들었고 언제부턴가 나와 눈높이가 같아졌다. 키가 줄어든 만큼 머리는 하얗게 뒤덮였다. 혼자 사는 남자에게 고독의 그림자가 드리워지는 것이 당연한 걸 알면서도 작아진 아빠를 마주하는 일은 익숙해지지 않는다. 혼자가 된 부모를 볼 때마다 삶이 혹독하다는 생각이 든다.

아빠는 이제 옷장을 꾸리며 살지 않는다. 한 사람만이 누울 수 있는 전기장판, 내 허리춤에도 오지 않을 만큼 낮은 냉장고가 축소된 삶을 대변한다. 나를 낳고 나서 한 번도 일을 쉰 적이 없는 아빠는 부지런했던 인생에 비해 단출해도 너무 단출한 살림살이로 되돌아갔다. 그게 오십여 년 동안 아끼며 산 결과라니. 더 이상 운동장만큼 넓은 양복점에서 일하지 않는 아빠. 그때만큼 크고 강하지 않은 아빠. 그런 그에게 결혼하겠다는 얘기를 하는 게 사치처럼 느껴졌다.

 

“아빠, 나 결혼해.”

 

입에서 나온 말이 ‘이번 휴가 때 여행 다녀올게’ 정도의 소식을 알리는 것처럼 대수롭지 않게 들려서 놀랐다. 어떤 논의도 없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결정을 통보 했다는 것도 말을 꺼내고 나서야 알아챘다. 그러나 내가 내 말에 놀라고 미안해하는 와중에도 아빠는 작은 미동도 보이질 않았다. 잠시의 침묵만이 지나갔을 뿐, 덤덤하게 그 애의 이름과 직업 그리고 가족관계를 물어왔다. 역시 아빠다운, 사실 기반의 대화였다.

결혼을 선언하는 게 결혼 생활을 종결한 부모에게 상처가 될까 눈치를 살피는 것은 이혼가정의 자녀가 감당해야 할 몫이다. 잠깐의 침묵 속에서도 수백 가지 생각이 오갔다. 아빠는 딸이 한 남자를 받아들이는 날이 올 거라고 예상했을까? 딸과 결혼할 사람이 평생 가정을 책임질 수 있을지, 성격이 잘 맞는지는 안 궁금하고 그저 인적사항만 중요한가? 끝내 결혼을 지키지 못한 아빠는 내게 무슨 말을 해줄 수 있을까? 생각이 꼬리의 꼬리를 물다가 문득 말수가 없는 아빠가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허둥지둥하거나 훈계와 충고를 늘어놓았다면 내 마음이 요동쳤을지 모른다. 오히려 아빠다워서 금방 상황이 잠잠해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아빠가 일어나자고 했다. 시간도 늦었고 날이 추우니 얼른 들어가라는 말과 함께. 떠밀리듯이 카페에서 나왔는데, 평소 같았으면 집까지 바래다주었을 아빠가 그날은 갑자기 마트에 가야 한다고 했다. 살 게 있다면서 인사도 대강 하고는 길가의 마트로 들어가 버렸다. 그곳이 자주 가는 마트인지, 아빠까 평소에 장을 보기는 하는지 나는 알 수 없다. 딸이 결혼하겠다는 마당에도 속을 보여주지 않는 아빠의 잔상만 계속해서 떠오를 뿐이다. 갑작스레 들은 소식에 당황했을 텐데, 분명 묻고 싶은 것도 많을 텐데 아빠는 오늘도 질문을 삼키고 표현을 아낀다. 많은 것을 감추며 산 나와 너무도 똑같아서, 서둘러 사라진 그의 뒷모습이 애달프다.

건널목을 건너 마트가 보이지 않게 된 후에야 삼킨 눈물을 토하며 엉엉 울었다. 함께 맛있는 음식을 먹고 근사한 카페에 가도 결국 등을 돌려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는 가족. 조심히 들어가라는 말 대신 ‘얼른 집에 들어가자’라는 말을 듣는다면 어땠을까. 그 모든 것이 내게는 당연하지 않다.

아빠의 집을 그려본다. 냉장고 맞은편 작은 행거에는 옛날 양복들이 걸려 있다. 엄마와 아빠가 출근하고 나면 슬며시 열어봤던 옷장 속 그 옷들. 여전히 아빠는 양복을 입지 않지만, 그때의 옷을 버리지도 않는다. 변해버린 환경에도 바위처럼 한결같은 아빠와 점점 달라지는 나. 내일은 새 힘을 내야 한대도 오늘만큼은 맘껏 한탄하고 원망하고 싶은 밤이다.

We Around Project

결혼, 문을 열다

 

브런치에 글을 연재해 7,000명의 구독자를 모은 에세이스트입니다. 어떤 문은 큰 노력 없이 쉽게 열리지만, 어떤 문은 문고리를 잡는 것조차 버거운데요. 재산이라곤 200만 원의 잔고뿐인 이혼가정 자녀에겐 ‘결혼’이라는 문이 딱 그랬습니다. 무거운 문을 열고자 하는 이들의 마음속 안개를 걷어주는 글이 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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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그림 윤지영 크리에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