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부, 유쾌하고 말랑한!

조아란 — 마케터

그의 또 다른 이름은 아란 부장을 줄인, ‘아부’다. 별명을 지어준 이는 출판사 ‘민음사’ 유튜브 채널의 29만 구독자. 그중 한 사람으로서, 나는 그를 조금은 안다고 생각했다. 회사 생활, 특유의 호탕한 웃음소리를 영상으로 자주 보고 들어왔으니까. 그러나 실제로 마주한 사람은 그보다 유쾌하고 말랑하다. 나와 다른 장점과 일의 태도를 지닌 동료를 탐구하며, 유연하고 즐겁게 나아가는 사람이었다. 그러니까 이건 2년 차 에디터가 15년 차 마케터에게 반해버린, 그런 이야기다.

여기가 민음사 유튜브 콘텐츠를 촬영하는 공간이죠? 제작 현장에 실제로 와보니 신기해요. 

반갑습니다. 민음사 마케터 조아란입니다. (옆을 가리키며) 이쪽은 아마 처음 보실 텐데요. 얼마 전에 신규 콘텐츠를 기획해서 새롭게 꾸민 공간이에요. 유튜브 채널 민음사TV는 코너마다 스튜디오 특정 공간을 배경으로 활용하고 있거든요. 제가 맡던 ‘문화생활비 언박싱’ 콘텐츠를 잠깐 쉬고, 외부 게스트 인터뷰 코너를 시작해 보려고 해요. 책을 좋아하는 연예인이나 크리에이터와 함께할 거예요. 

 

애청자로서 벌써 기대가 돼요. 매일의 업무만으로도 바쁠 텐데, 유튜브 출연까지 해서 늘 대단하게 생각했어요. 

부장 직급이라 루틴한 업무에서 많이 벗어나서 출연이 부담스럽지는 않아요. 그리고 사실… 회사 일이라는 게 다음 날로 미뤄도 큰일이 나지는 않거든요. 

 

15년 차 사원다운 답변인데요(웃음)? 

시각을 다투는 일도 물론 있지만, 생각보다 많은 일들은 내일 해도 괜찮아요. 모든 걸 완벽하게 해내려고 하면 지치고, 이런 여유를 가져야 오래 일할 수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포기를 잘해요. 좀더 신경 썼으면 더 나은 결과물이 나왔을 거라 후회할 때도 많지만, 잘 포기하고 이 정도면 괜찮다고 생각해 버려요. 가끔 후배들이 이것도 하고 싶고 저것도 했으면 좋겠는데 시간이 없다고 걱정할 때가 있어요. 시키지도 않은 일을 그렇게까지 걱정하다니 기특하죠. 그럴 때는 무엇을 하지 않아도 되고, 늦게 해도 되는지 알려주는 편이에요. 

 

선배가 그렇게 이야기해 주면 마음이 얼마나 놓여요. 그런데 아란 씨는 어떻게 여기서 일하게 됐어요? 첫 지원에 합격한 회사였다고요. 

모범생은 아니었는데, 친구들이 의아하게 생각할 만큼 도서관 가는 걸 좋아했어요. 그렇다고 독서를 많이 하지는 않았지만요. 막연히 출판사에 입사하고 싶다고 생각하고는 가장 친숙했던 회사에 지원해 본 거예요. 영문학을 전공해서 민음사 해외 문학 시리즈가 익숙했거든요. 그런데 입사해 보니 ‘책 덕후’들이 너무 많았죠. 어떤 동료들은 한국 문학처럼 특정 분야를 깊게 좋아한다거나 작가의 전 작품을 읽는데, 저는 그렇게까지 독서를 좋아한 사람은 아니었어요. 내가 정말 책을 좋아하는지 의심하다가 결국 책이라는 상품을 좋아한다고 정의 내렸죠. 장르도 이야기도 모두 다르잖아요. 도서관에 자주 갔던 이유도 다양한 책을 구경할 수 있어서였다고 생각해요. 

 

한 인터뷰에서는 “내가 파는 물건이 책이라는 점에 자부심을 느낀다.”고 했죠. 

맞아요. 아무리 별로인 작품이라도 나라는 사람보다 낫다고 생각하거든요. 지식이든 표현 방식이든 사소한 부분이라도 배울 점이 있어요. 저는 물건 사기도 좋아하는데 그중에서 책이 제일 죄책감이 덜 들고요. 어떤 것에 관심이 생기면 일단 관련 서적을 사서 봐요. 그 순간 어떤 분야를 이해할 수 있는 가능성을 얻었다는 느낌을 받거든요. 그 가능성을 곁에 꽂아둘 수 있다는 점도 좋죠. 이런 감각을 주는 상품이 많지는 않아요. 책은 장기적으로 사람들에게 안 좋은 영향을 미치는 물건도 아니고, 확실한 도움을 줄 거라는 믿음이 있어요. 사실 출판 마케터로서 직업병이 있다면 책의 단점을 잘 못 보는 거예요. 혹독하게 비평하는 순간 팔기 어려워지거든요. 장점만 발굴하는 식으로 독서하는 게 병이라면 병이죠.

마케터로서 이런 독서 문화의 즐거움을 알리고 싶은 마음도 클 것 같아요. 

저는 독서 모임을 헬스장에 비유하곤 해요. 부모님 세대는 삶의 여유가 생기고 나서야 건강 관리를 하셨는데 이제는 20대 초부터 헬스장에서 PT를 받잖아요. 독서는 하기 싫어도 일찍부터 해야 하는 활동 중 하나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책이라는 게, 골방에서 빙글빙글 도는 안경 쓰고 읽어야 할 것 같은 선입견이 있죠. 취미가 뭐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독서라고 답하면 잘난 척한다는 인상을 줄 것만 같고요(웃음). 독서는 진지하고 학술적인 사람이 아니어도 누구나 가볍고 재밌게 즐길 수 있는 문화 활동이라는 걸 알리고 싶어요. 

 

아란 씨는 독서 문화를 어떻게 즐기세요? 

7-8년 전부터 한 개 이상의 독서 모임에 참석하고 있어요. 여행 가서 서점을 구경하거나, 그 지역이 고향인 작가의 책 혹은 배경인 소설을 읽죠. 이런 활동을 주변에 추천도 하고요. 독서 모임은 일정한 독서량을 유지하고 싶어서 참여하는 편이에요. 아무리 출판사에서 일해도 노력하지 않으면 영상 콘텐츠에 잡아먹히기 쉽거든요(웃음). 헬스장 등록한 것처럼 독서 모임을 다니고 있어요. 

 

책의 즐거움을 알리는 데 민음사TV가 앞장섰다는 평가가 많아요. 유튜브 활동이 출판계에서는 흔치 않은 발걸음인데요. 

‘세계문학전집’ 같은 시리즈가 많은 민음사는 베스트셀러보다 스테디셀러를 출판하는 브랜드예요. 꾸준히 안정적으로 수익이 나는 상품 덕분에 순간의 관심이 중요한 단행본 마케팅에만 집중하기보다, 오랜 시간이 필요한 브랜딩을 할 여력이 생기죠. 그래서 시간과 인력, 비용을 유튜브 같은 활동에 투자하고 있고, 어느 출판사보다 브랜딩 활동이 활발해요. 그런데 유튜브가 도서 매출에 직접 도움이 된다고 답하기는 어려워요. 갑자기 많이 팔린 상품이 영상에 출연한 경우도 있고 아니기도 하거든요. 책이란 게 흥망 요인을 예측하기가 매우 어렵기도 하고요. 하지만 유료 멤버십인 ‘민음북클럽’ 가입자는 많이 늘었어요. 확실히 유튜브가 일조했다고 생각한 건, 가입 선물로 약 600권의 민음사 도서 중에서 원하는 책 세 권을 고를 수 있는데요. 유튜브가 커지기 전에는 인기 도서가 매년 비슷했는데, 이제는 좀처럼 선택된 적 없던 작품이 꼽히는 경우가 생겼어요. 보면 채널 출연자가 추천한 작품이더라고요. 

 

유튜브는 대중에게 민음사를 젊고 유쾌한 브랜드로 각인한 계기가 되었다고도 생각해요. 단순한 책 소개보다는 ‘세계문학전집 월드컵’처럼 재밌는 기획을 더하거나, ‘부장 실수 배틀’, ‘신입 사원의 하루’처럼 직장인의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콘텐츠가 많죠. 

처음엔 유튜브가 강박적으로 민음사의 무게감 있는 이미지를 벗어나길 바랐어요. 무조건 젊고 새로운 느낌을 주길 원했죠. 하지만 고루한 느낌을 꼭 없애야 좋은 게 아니라 잘 활용하면 좋다는 걸 깨달았어요. 보는 사람들이 우리 회사가 ‘생각보다’ 재밌고 어리다고 느끼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알고 보니 반전이 있었네, 딱 그 정도로요.

 

직원들이 직접 출연해서 큰 인기를 얻은 것도 기업 유튜브로서는 이례적이에요. ‘우리만 재밌는 이야기’가 되어버릴 수 있잖아요. 

외부의 시선을 견지하는 게 큰 도움이 됐어요. 저희는 외부 제작팀과 협업하는데요. 내부에서 재밌다고 생각한 직원 이야기를 PD님들도 좋다며 확신을 가지고 밀어붙여 주셨죠. 채널 캐치프레이즈 “책보다 재미있는 책 이야기”는 PD님들이 제안해 주신 건데요. 당시에 PD님들과 달리 민음사 직원들은 유튜브 영상이 책보다 더 재밌다고 해도 될까 고민했어요. 하지만 이제 와서 돌아보면 책보다는 재미없는 영상으로 책을 소개하겠다니, 말도 안 되죠. 유튜브를 꾸려가면서 그 순간을 늘 잊지 않으려고 해요. 내부 직원이기 때문에 보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는 걸 인정하고 외부의 시선과 균형을 맞춰가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회사 임원분들도 콘텐츠 방향성은 일절 개입하지 않으셔서 자유롭기도 하고요. 

근속 이야기를 해볼게요. 한 직장에서 15년이라니, 어떻게 가능했어요? 

깊이 고민하지 않고 그러려니, 하는 자세가 도움이 돼요. 사실 출판사 일이란 게, 90퍼센트의 ‘잡일’과 10퍼센트의 ‘있어 보이는 일’로 이루어지는데요(웃음). 저는 작은 업무도 잘 받아들이는 편이에요. 어떤 사람은 일의 의미를 파헤친 다음, 내적 동기와 딱 맞아떨어져야지만 일을 시작해요. 저는 일단 움직이면서 생각하는 편이고, 해보면서 좋은 점을 찾으려고 하는 성향이에요. 왜 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어도 의미가 있겠다 여기고, 주어진 것만 해서는 의미가 없을 것 같다면 내친김에 다른 것도 해보자며 일을 만들어가죠. 만약 어딘가에 갇힌다면 누군가는 어떻게든 탈출해야겠다고 생각하겠지만, 저는 여기서 어떻게 잘 지내볼까 생각하는 사람인 거예요. 이런 성향을 알고 난 뒤엔 협업할 때 조심하려고 해요. 행동하면서 생각하는 저와 달리 동기부여가 되지 않아서 힘들어하는 경우도 있더라고요. 그런 동료들을 대하면서 일의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되죠. 아까 갇혔다는 비유를 들었는데요. 의문을 제기하는 동료를 보면서 내가 처한 상황이 정상이 아니었다는 걸 깨닫기도 해요. 다양한 사람들과 일하는 건 무던한 저에게 어려움이자 다행이에요. 

 

일을 대하는 태도에 관해 더 듣고 싶어요. 

회사에서 보면 한 가지 기술을 꾸준히 갈고 닦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 있고, 좀더 어렵거나 새로운 일에 도전해 보고 싶은 사람이 있어요. 저는 확실히 후자였죠. 또 마케터는 업무 영역이 애매한 직무라 어떤 일을 누가 해야 할지 모를 때 마케터가 맡는 경우가 굉장히 많잖아요. 저는 일을 저한테 줄까 봐 걱정했던 적보다 안 줄까 봐 걱정했을 때가 더 많아요(웃음). 

 

헉, 정말요? 

네. 회사에서 새로운 ‘TFTask Force’ 팀을 만든다거나 재밌어 보이는 일이 있으면 어떻게 끼어볼까 고민했어요. 내가 잘할 수 있다고 먼저 이야기하고요. 이런 성향이 꼭 좋다는 건 아니에요. 한 가지 일을 지속하고 유지하는 게 더 힘들죠. 한 번의 센세이션을 만들 수 있는 사람은 많아요. 

 

권태를 느낀 시기는 없었어요? 

신입 때는 업무를 배우는 것만으로도 벅차다가, 나중엔 똑같은 일을 짧은 시간 안에 끝낼 수 있게 돼요. 저는 그 남은 시간에 어떻게 해야 일을 더 잘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서 막막하던 시기가 있었어요. 운동도 처음에 배울 때는 실력이 늘다가, 어떤 수준에 이르렀을 때 새로운 레슨을 받지 않으면 답답하잖아요. 그때 회사 밖에서 독서 모임 ‘트레바리’를 시작했어요. 책을 좋아하는 다양한 직군의 사람들을 만나면서 활력을 다시 충전하게 되었죠. 외부 활동을 하다 보니 회사 안에서 저는 책 관련 트렌드에 빠른 사람으로 알려지게 됐어요.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 상사들이 저한테 먼저 트렌드를 물어보시거나 제가 나서서 무언가를 알아보게 되는 일들이 생겨났죠. 그즈음 민음사 마케팅부에서 콘텐츠기획팀이 만들어졌고, 제게 새로운 일을 벌여보라고 하시더라고요. 바깥에서 여러 활동을 하면서, 그리고 새로운 팀에 합류하면서 권태로운 시기를 넘어갈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아란 씨처럼 나만의 동력을 찾으면서 한 회사에 오래 머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개인적인 성향만으로는 어려워요. 복합적인 요인이 작용하는 문제잖아요. 마침 저는 이 회사의 피드백 방식이나 업무 진행 절차, 동료들과 일을 주고받는 방식이 잘 맞았거든요. 새로운 일 벌이기를 좋아하는데, 대표님도 일의 결과보다는 시도 자체를 좋게 생각해 주시는 편이고요. 어떤 회사든 단점도 있을 텐데요. 내가 견딜 수 있는 것과 도저히 견딜 수 없는 단점이 있을 거예요. 저는 지금까지 장점도 아쉬운 점도 크게 불편하지 않아서 오래 일하고 있는 것 같아요.

 

민음사TV를 보면 사내 직원들하고도 잘 맞고 두루 친한 것 같아요. 

사람에 대한 벽이 없어요. 누군가 내 공간 안에 들어오거나 나가는 걸 무서워하지 않아요. 친했다가 멀어져도 전전긍긍하지 않고 시절이 지났나, 생각해 버리는 편이죠. 특유의 성향도 있지만 출판사 다니는 사람들의 성향상 상식을 크게 벗어나거나 무례한 사람도 별로 없고요. 분위기가 ‘모여라 동물의 숲’ 게임 같달까요(웃음). 회의할 때는 사담을 많이 나누는데요. 좋았던 책이나 영화, 드라마 이야기를 하는데 관심사의 결이 크게 벗어난 사람이 없어요. 취향은 다르지만 존중하고 이해할 수 있는 범위 안에 있다는 것도 장점이지 않을까요? 

 

3년 전에는 마케팅부 부장, 콘텐츠기획팀 팀장이 되었죠. 팀원들과는 어떻게 관계를 맺어가는지 궁금해요. 

늘 어렵죠. 차장, 과장, 부장을 거치면서 직급마다 사람을 대하는 방법이 다르다는 걸 배워가고 있어요. 신입 직원 중에는 저처럼 선배들을 어려워하지 않는 친구도 있고, 그렇지 않은 친구도 있어요. 저마다 다른 사람들을 보면서 각자의 속도가 있다는 걸 깨달았죠. 이제는 팀원들이 팀에 잘 적응할 때까지 기다려주고, 궁극적으로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찾아서 잘할 수 있도록 도와주려고 노력해요. 

 

반드시 해야 하는 업무가 있을 텐데, 어떻게 각자가 원하는 일을 할 수 있나요? 

아, 꼭 해야 하는 일은 늘 있죠. 그래서 후배들에게 이걸 알려주려고 해요. 지금은 하고 싶지 않아도 해야 하는 일을 빨리 하는 법을 익히는 과정이다. 남은 시간에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도록 성장해야 한다. 이걸 어떻게 좋게 말할지 고민하죠(웃음) . 그리고 각자가 잘하는 일을 보려고 해요. 그래서 채용할 때도 저 사람이 얼마나 훌륭한지보다 지금 우리 팀의 부족한 부분을 메워줄 수 있을지를 봐요. 아이디어도 많고 에너지 있는 사람보다, 차분하게 기본을 다져주는 신입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그 사람을 뽑죠. 이제는 임원분들도 실무진이 좋다고 생각한 지원자들 중에서 선택을 해주세요. 지금 팀에 어떤 인물이 필요한지는 실무자가 더 잘 알고 있잖아요. 

 

아란 씨에게 필요한 동료는 어떤 사람이에요? 

저는 기획은 괴롭지 않고 재밌지만 이후 과정을 촘촘히 실행하는 걸 어려워해요. 그런데 유튜브에도 자주 출연하는 연주 과장은 프로젝트를 효율적으로, 꾸준히 수행하는 일을 좋아해서 저랑 잘 맞죠. 두 막내 팀원들 중 다은 씨는 아이디어 내기를 좋아하는데, 새로 들어온 민주씨는 계획을 잘 세우고 업무를 잊거나 늦는 일이 없어요. 그래서 다은 씨가 자주 감동을 받아요(웃음). 혼자 할 때는 일이 마음처럼 운영되지 않았는데, 나보다 꼼꼼하게 잘 챙기는 동료가 생기니까 아주 날개를 달았더라고요. 

 

저는 많이 덤벙대는 사람인데…. 나의 부족한 점에 과하게 좌절할 필요는 없겠군요. 

애초에 회사에서는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요. 완벽한 사람이라도 동료의 손을 빌려야 하죠. 혼자서 처음부터 끝까지 달려가려면 스케일도 키울 수가 없고 한정적인 일밖에 못 하거든요. 모든 단계에서 욕심을 내기보다 내가 못하는 점을 파악해 포기할 줄도 알아야 스트레스가 덜해요. 저도 꼼꼼하지 못한 편인데 어느 날 정성을 들인다 해도 꼼꼼한 친구가 대충 본 것보다는 못할걸요(웃음). 각자 잘하는 게 있는 거죠. 동료는 서로를 부러워하면서 나아가는 사이예요. “이걸 어떻게 그렇게 잘하세요?” 같은 칭찬을 먹고 자라죠. 그래서 팀원들에게 자주 이야기하려는 바는 지금으로 충분하다는 거예요.

상사로서 후배들의 실수를 대하는 태도도 궁금해요. 

같은 실수를 자주 반복하면 일에 관심이 없는 거라고 의심하겠죠. 하지만 딱 보면 알잖아요. 신경을 썼지만 놓친 건지, 잘 몰라서 그런 건지, 저는 실수는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데 의기소침한 모습 보기를 더 힘들어해요. 별거 아닌 일에도 멘탈 관리가 안 되는 게 더 실수라고 생각하죠. 사실 저도 빈틈이 많은 편이라 지적하고 싶은 순간에도 내가 자격이 되는지 많이 고민해요. 그래서 적당히 눈치만 줘도 후배가 잘 배우고 수습할 거라고 믿고 기다려줘요. 

 

마케터는 다른 부서와 협업이 잦죠. 팀 밖에서 일할 때는 어떤 마음으로 임해요? 

각자 잘하는 걸 잘하게 해서 결과물을 나눠 가지면 좋겠다는 태도를 가져요. 마케터로서 아이디어를 낼 수는 있지만 어떤 상품을 만들려면 디자이너와 편집자의 손을 빌려야 해요. 협업자 각자의 생각이 있으니 내가 계획한 것처럼 상품이 나오지 않을 때도 있죠. 그런데 대부분은 처음 상상하던 것보다 결과물이 훨씬 좋아요. 더 멋있고, 내가 기획한 게 아닌 것 같죠. 그래서 각자의 영역에서만큼은 온전히 자신의 작업을 할 수 있도록 도와요. 협업자들을 최대한 풀어놓아야 그들이 더 많이 상상할 수 있죠. 내 의견을 세부적으로 전달하면 오히려 상대방은, 해야 하는 일이긴 하지만 내가 창의적으로 무언가를 만들어낼 수 없다고 생각할 것 같아요. 

 

반면 주된 업무인 마케팅에서는 나름의 정답이 있을 텐데요. 팀원들이 새로운 방향을 제시해도 역시 의견을 존중해 주세요? 

얼마든지 해보라고 해요. 저도 그런 방식으로 성장해 왔거든요. 무언가를 시도하겠다고 하면 선배들이 거의 ‘할 수 있으면 해봐.’ 식으로 저를 양육했어요(웃음). 

 

그럼 아무리 봐도 아닌 의견이지만 팀원에게 좋은 경험이 되겠다 싶으면 허용하는 편이에요? 

자원이나 비용을 너무 많이 쓰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해보라고 하는 편이죠. 잔소리를 잘 못해서 이렇게 대처하는 것도 같은데요. 누군가 열의를 가지고 의견을 제시했는데 위험해 보일 때도 있죠. 그럴 땐 전과 상황이 같지 않고, 마케팅할 책도 다르고, 이 친구는 내가 아니니까 다른 방식으로 할 수 있겠다고 생각해요. 나중에 긁적이면서 하다 보니까 잘 안된다고 찾아오면, 그때 나도 전에 비슷한 문제가 있었다고 조언하죠. 나중에서야 ‘나 사실은 그럴 것 같았어.’라고 이야기하는게 불편할 수도 있겠죠? 그래서 지금은 잔소리를 못한다는 걸 기억하고 미리 조언하기를 연습해요. 하지 말라기보다는 이런 생각이 들긴 해, 그 정도로요. 

아란 씨가 생각하는 좋은 동료는 어떤 사람인지 듣고 싶어요. 

네가 할 일인데 왜 나한테 맡기냐는 태도보다, 다른 사람의 영역에 아이디어도 주고 생소한 일이라도 같이 검토할 수 있는 여유를 가진 동료가 좋아요. “이렇게 해보면 어때요?”라고 물었을 때 (팔짱을 끼고) ‘그러시든가. 왜 나한테 물어봐.’라는 태도를 가진 사람도 있거든요. 자기 확신이 없는 편이라 이런 반응이 오면 별로인가 싶어서 힘 빠져요. 내가 제일 힘들다고 생각하는 사람들과 일하는 게 어렵더라고요. 때로는 희생할 때도 있고, 잘 모르는 영역이라도 기꺼이 시간을 써주면 좋겠어요. 저도 그런 사람이 되려고 노력해요. 가끔 동료들이 부탁할 일이 있을 때, 이렇게 물어요. (고개를 내밀며) “바쁘시죠?” (웃음) 저는 바쁜 사람으로 보이고 싶진 않아요. 바쁜 사람한텐 선뜻 부탁하기가 힘들잖아요. 요즘의 바람은 여유 있어 보이는 거예요. 

 

그럼 요즘 일에서의 고민은 뭐예요? 

얼마 전 조수용 디자이너 인터뷰를 보면서 공감한 내용인데요. 그분은 전 회사에서 누가 시키지 않아도 필요해 보이면 일을 만드는 방식으로 근무했대요. 퇴사를 결심한 순간은, 안 해도 되는 일을 나 좋자고 벌이는 것처럼 보이는 느낌을 받았을 때였다는 거예요. 저도 이제는 어떤 일을 추진할 때 과연 팀원들에게도 재밌을지 더 고심하게 됐어요. 공감이 되지 않으면 서로 괴롭잖아요. 반드시 해야 할 일이라면 상대를 어떻게 설득할지 생각하죠. 서로의 마음을 어떻게 더 잘 맞춰갈지가 요즘의 고민이에요. 

 

아란 씨다운 고민이네요. 꼭 묻고 싶던 질문으로 대화를 맺어 볼게요. 성인 독서율이 꾸준히 하락 추세죠. 출판 마케터로서 이 시대를 어떻게 나아가려고 해요? 

시장 흐름에 전전긍긍하고 좌절하면 이 일을 할 수 없어요. 독서율이 줄어든다고 해도, 저희 채널을 보면 민음사TV 보고 책 많이 읽었다는 댓글도 있어요. 우리 활동으로 누군가는 독서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더 크게 보려고 해요. 불안감이 너무 크다면 업계를 떠나는 게 맞겠죠.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만 보고 나아가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 진부한 표현이지만, ‘내일 지구가 멸망해도 한 그루의 나무를 심겠다.’ 같은 말도 있잖아요. 

 

늘 응원할게요. 이제 촬영하러 사옥 앞으로 나가볼까요? 

좋아요. 요즘은 해가 길어서 바깥이 밝을 거예요.

15년은 한 사람의 기준이 딱딱해지고, 시선은 좁아지기 충분한 시간이다. 그러나 조아란은 그 시간 동안 자신의 성향과 태도를 명확히 정의하고 또 인정하면서, 나와 다른 사람을 받아들이기 위한 여유를 만들었다. 그와 이야기를 나누는 내내, 나는 좀더 좋은 사람이고 싶어졌다. 너와 나의 경계를 지우며 기꺼이 함께 일하고, 새로운 시도에 열려 있는 사람. 조아란과 같은 마음이라면 어디든, 무슨 일을 하든 좀더 가뿐히 나아갈 수 있을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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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차의진

포토그래퍼 박은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