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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를 즐겨 마시진 않는다. 커피 정도면 충분하기 때문이다.
차Tea든 차Car든 차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한다. 지금 떠오르는 추억이라고는 일본 교토의 어느 오래된 카페에서 마셨던 녹차와 장롱 속에 처박힌 운전면허에 대한 기억뿐이다. 대체 차가 무엇인지 사전을 한번 찾아봤다. “차나무의 어린잎을 달이거나 우린 물”이라고 되어 있다. 자연스럽게 의미가 확장되어 다른 풀잎이나 식물성 재료를 사용한 물도 차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어린 시절부터 시력이 좋지 않았다. 내 눈 상태가 평균 이하라는 걸 국민학교 2학년 때 깨달았다. 당시는 국민학교였기 때문에 국민학교라고 쓴다. 그래서 결명자차를 엄청나게 마셨다. 자발적 선택은 아니었다. 엄마의 단호한 의지였다. 실제로 결명자차는 눈을 밝게 하는 데 효험이 있다고 적혀 있다. 나는 아니었다. “우리 아들이 안경 쓰면서 얼굴 버렸어.” 2년 전 안경점에서 다초점 렌즈를 맞췄다. 렌즈 값만 80만 원 나왔다. 나는 더 이상 결명자차를 마시지 않는다.
대신 콜라를 마신다. 독자 여러분께 미안하다. 내가 주기적으로 섭취하는 음료는 딱 두 가지뿐이라 어쩔 수가 없다. 커피와 콜라다. 그렇다. 카페인 중독이다. 다음 같은 이야기를 어디선가 들어봤을 것이다. 블라인드 테스트하면 콜라든 사이다(스프라이트)든 탄산음료의 종류를 맞출 수가 없다는 주장이 도시 전설처럼 퍼져 있다. 거짓이다. 내가 살아 있는 증거다. 10년도 더 전에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내가 직접 블라인드 테스트를 했다. 콜라와 사이다를 종류별로 다섯 개 놓고 맞혀야 했다. 하나도 틀리지 않고 다 맞혔다. 보이지도 않는 라디오에서 대체 이걸 왜 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어쨌든 탄산음료에 관한 한 나는 만점 소비자다.
그럼에도 가끔씩 이런 상상을 한다. 나는 지금 고요하기 이를 데 없는 방에 홀로 앉아 있다. 어릴 때 축구 하다가 무릎을 다쳐서 양반다리를 못 하긴 하지만 가부좌를 근사하게 틀고 있는 나 자신을 그려본다. 눈앞에는 바라만 봐도 마음이 평온해질 듯한 조경이 펼쳐져 있다. 그렇다면 아무래도 콜라는 아니다. 아무리 취향에 맞지 않는다고 해도 차를 앞에 두고 있어야 할 것만 같은 기분이 강하게 든다. 과연, 다도茶道라는 표현은 있어도 콜(라)도, 커(피)도, 사(이다)도, 스(프라이트)도는 없는 이유가 다 있다. 참고로 다도는 일본에서 쓰는 용어다. 한국에서는 다례茶禮라고 칭한다.
결론이다. 내가 가끔 찾아서 마시는 차는 기껏해야 녹차 정도다. 한데 녹차도 커피와 마찬가지로 시원한 쪽을 압도적으로 선호한다. 물론 나도 안다. 커피든 녹차든 따뜻하거나 뜨거운 쪽을 ‘찐’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는 걸 모르지 않는다. 나 역시 따뜻한 차를 찾지 않는 것은 아니다. 비가 올 때나 날이 좀 추울 때 따뜻한 차 한잔이 주는 평화를 여러분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때로는 작은 것만으로도 내 삶이 잠깐이나마 충만해지는 순간이 오곤 한다. 차를 마시는 순간이 그럴 것이다. 내가 콜라를 하루에 작은 캔으로 두 개씩 마시지만 콜라를 갖고서는 결단코 그럴 수 없다.
차 하면 일착으로 떠오르는 곡이다. 원곡은 1924년에 작곡된 재즈 고전으로 수많은 뮤지션이 커버하면서 걸작의 반열에 올랐다. 노래 제목은 그대로 해석하면 된다. “차 두 잔 주세요.” 다른 설도 있다. 18세기 영국에서 차 한 주전자 가격이 3펜스였는데 더 많이 팔기 위해 2펜스로 낮춘 데서 비롯되었다는 것이다. 솔직히 정설이 무엇이든 상관없다. 오스카 피터슨 트리오의 이 커버가 위대하다는 점에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일주일에 두 번씩 영어 회화를 한다. 선생님은 영국 대학생이다. 매주 주제를 정해서 20분씩 이야기하는데 어느 날 일부러 주제를 차로 골랐다. 더 많은 대화를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예상대로였다. 영국인답게 차를 좋아한다는 선생님은 갑자기 흥분해서 이야기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질 수 없었다. 나는 음악 카드를 스윽 꺼냈다. 바로 이 곡이다. 가사는 이렇다. “커피는 안 마셔, 차를 마시지. 난 뉴욕에 사는 ‘영국인’이니까.” 선생님 역시 이 곡을 정말 좋아한다고 말했다. 이 맛에 영어 회화 공부 계속하는 거지 싶은 날이었다.
제목은 몰라도 어디선가 이 곡을 들어봤을 거라고 장담할 수 있다. 그만큼 유명한 음악이다. 원곡은 잉크 스팟츠The Ink Spots. 1940년에 이 노래를 발표했지만 맨해튼 트랜스퍼의 커버 버전이 널리 알려졌다. 곡 제목인 자바 자이브는 ‘커피와 차를 마실 때 느낄 수 있는 분위기’라고 해석하면 딱 맞는다. 가사에서도 그들은 “커피도 좋고 차도 좋아(I Love Coffee I Love Tea.)”라고 노래한다. 맨해튼 트랜스퍼는 이 곡을 몇몇 다른 버전으로 발표했다. 그중 1997년에 발표한 앨범 [Swing]에 실린 버전이 나에게는 최고다.
글 배순탁―음악평론가 · 〈배철수의 음악캠프〉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