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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kon
본 콘텐츠의 모든 사진은 니콘 Z f로 촬영 되었습니다.
비가 온 뒤엔 모든 장면이 선명하다. 특히 숲의 풍경이 그렇다. 고요히 걷고 싶은 마음에 아무도 없는 산책길을 찾았다. 비가 그치고 해가 뜬 자리를 쫓아, 내게 보인 것들을 기록했다. 여름의 낭랑한 색이 빠진 가을 길은 어쩐지 흑과 백이 어울린다. 필름 카메라처럼 생긴 미러리스 카메라를 들고 가을만의 차분한 빛을 담아본다.
강릉의 산골짜기로 들어가면 옥계라는 동네가 있다. 이름도 생경한 마을의 구불구불한 도로를 달리다 보면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굴참나무 군락의 입구가 보인다. 조용한 동네의 더 조용한 숲길. 스마트폰 대신 카메라를 챙겨 산책을 시작했다. 사람의 발길이 거의 없어 길이 조금 험하다. 토끼풀이 자란 곳을 골라 밟으며 걷다가 오래된 폐가와 마주했다. 집 앞에 커다란 감나무가 있는데, 나무가 아직 감을 떨구지 않았다. 때가 되면 열매를 따 먹는 사람이 없어서인지 나무는 버거워 보인다. 바닥에 떨어진 감 하나를 주워 탈탈 털고 주머니에 넣어본다. 아직 단단하다. 굴참나무 군락에는 두 채의 폐가가 있다. 문짝이 뜯어지고 지붕엔 구멍이 숭숭 나 있는 오래된 집들. 벽에 걸린 때 묻은 시계, 주인이 놓고 간 서랍장과 낡은 물건 따위들. 그 앞에 다듬어지지 않은 나무들. 을씨년스러워 보이지만 이곳에 살았을 사람들의 시간을 가늠해 보면 다르게 보인다. 나무를 벗 삼아 살았을 사람들의 하루하루. 이 집과 저 집은 이웃이었겠지. 한참을 걷다 마침내 이 군락에서 가장 큰 굴참나무를 찾았다. 전체를 눈에 담을 수 없을 정도로 커다란 나무의 시간은 가늠해 볼 수 없이 아득하다. 옛날 사람들은 굴참나무군 앞에서 당제를 지내기도 했다는데, 신을 믿지 않는 나라도 이 나무 앞에선 무엇이라도 빌어보고 싶어졌다. 나무 결에 가만히 손을 갖다 대고 기도해 본다.
아무도 없는 산책길을 찾아 다시 움직였다. 여름엔 해바라기 축제가 열리는 강원도 태백의 외진 마을. 하늘에서 보면 아홉 마리 소가 누워 있는 형상을 닮아 마을 이름은 ʻ구와우’다. 여름엔 많은 사람들의 발길이 닿지만, 가을과 겨울엔 사람 올 일이 없어 잔잔한 동네가 된다. 이곳에 가면 그 누구의 방해 없이 산책다운 산책을 즐길 수 있다. 작은 냇가에 오른 윤슬,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를 카메라에 담았다. 꽃이 전부 진 이 시기에 남아 있는 이름 모를 꽃을 발견하기도 했다. 기특하기도 하지. 세찬 바람에도 꽃은 꺾이지 않고 제자리를 버틴다. 언덕까지 올라가 마을을 둘러싼 산 풍경을 보고 내려오니 작은 울타리에 갇힌 산양 세 마리가 있다. 세 산양은 가만히 멈춰서 울타리 밖의 사람과 눈을 맞춘다. 한 사람의 시선은 그 사람을 대신 말하기도 한다. 산책 중 카메라를 드는 일은 그 시선을 오롯이 수집하는 일과 같다. 산책이라는 목적지 없는 걸음을 걷다 보면 반복해서 보이는 풍경이 있는데 그 풍경이 자연일 때 평화로워진다. 자연을 보는 사람의 마음엔 미움이 없고, 눈앞의 무해한 풍경만으로 나는 충만한 오늘을 지날 수 있다.
Z f | 70mm | Deep Tone Monochrome | 1/100 | f/4 | ISO100
글・사진 김지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