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답고 이상한 그림

작가 노석미

NOH SEOKMEE

아름답고
이상한 그림

노석미

시골에서 네 마리의 고양이와 함께 사는 예술가. 직접 지은 집에서 텃밭을 가꾸는 여자. 어쩌면 그렇게 노석미를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내게 아름답고 이상한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다. 그녀의 그림은 쉽게 해석되지 않지만 이해하고 싶고, 분명히 알 것 같다가도 여전히 모르겠다. 그런 그림에는 오래 눈길을 두게 된다.

달빛이 싱싱한 호수 27.3*22cm acrylic on canvas 2014

나도 한때는 순진하고 상냥했는데 25*19cm acrylic on paper 2012 · 겪지 않은 일 25*19cm acrylic on paper 2010
나는 왜 당신과 만난 것일까요? 25*19cm acrylic on paper 2006 · 억울한 마음에 한번 가보기는 했죠 25*19cm acrylic on paper 2005

여자와 고양이 116.8*91cm acrylic on canvas 2013
남자와 고양이 116.8*91cm acrylic on canvas 2013

내방에 눈표범 65.1*53cm acrylic on canvas 2014

INTERVIEW 작가 노석미

그린다는 것,
그림을

하루 작업량 정해두고 있나요?
네, 지금은 아침형 인간이 돼서 거의 오전에 일해요. 그 시기에 해야 하는, 주요한 일을 하죠. 그림 작업을 해야 하면 그림을 그리고, 글을 써야 하면 그때 쓰고요. 오후부터는 느슨한 일들을 해요. 요새는 저녁 먹고 나서 운동 삼아 읍내로 배드민턴 하러 가요. 그렇게 단순한 일과를 지내죠. 매일 똑같이 작업을 많이 한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될 수 있으면 비슷한 양의 일을 하려고 해요. 여기가 일터이자 집이자, 전부 다잖아요. 그래서 이런 패턴에 익숙해졌죠. 

《그린다는 것》에서 개인적이고 특별한 것이 그림을 그리는 계기가 되었다고 쓴 글을 읽었어요. 지금도 그런 마음으로 작업하고 있는지 궁금해요.
그렇다고 할 수 있죠. 그런데 시기마다 그림의 구체적인 주제나 소재들이 있으니까 그에 맞춰 그때 제게 개인적이고 특별한 것들을 그림으로 그려요.

그림을 보면 사실적인 것 같으면서 또 아닌 것 같기도 해요.
기존에 있는 걸 그리고 있지만, 기존에 없는 걸 그리려고 하는 게 저의 그림 그리기 방식이에요. 기존에 있는 걸로 없는 걸 그리는 것. 있는 그대로를 담는 거면 그릴 필요가 없잖아요.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어떤 그림은 상상이기도 하고, 평소에 관찰에 의한 것들이 쌓여있다가 나오기도 해요. 제가 완전 추상화를 그리는 사람은 아니잖아요. 제 딴에는 굉장히 사실적인 그림을 그리고 있는 거예요. 어떤 순간 사실적으로 표현하지만 그때그때 필요에 따라 이미지를 변형하거나 가감하면서요.

그림과 글이 같이 드러나는 ‘텍스트 페인팅’은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요?
어린아이의 포스터를 보고 저도 이렇게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시작하게 됐어요. 그런데 제가 말 그대로 ‘포스터’를 그리는 건 아니죠. 포스터의 형식을 빌렸고 개인적으로 조금은 문학을 하는 거로 생각해요. 워낙에 문학을 좋아하기도 하고요. 평소에도 어떤 이미지나 텍스트를 길 가다 줍듯이 수집을 해놔요. 글을 쓸 때도 그렇고, 남의 글을 읽을 때도 그렇고요. 그렇게 내게 선택된, 수집해 놓은 것들을 편집하듯 작업해요. 사람들은 이 텍스트가 이미지랑 상관이 있는 건지 없는 건지 헷갈려 하는 때가 많은데, 헷갈리라고 하는 거예요. 계획 하에, 의도를 가지고 작업을 하는 거라 그사이에 메타포가 있기를 바라거든요. 완성된 후 그림에서 일어나는 어떤 것들을 재미있게 보는 것에 의미가 있는 작업인 것 같아요. 이미지와 텍스트, 둘 다 중요한 작업이에요. 

먼저 텍스트를 구축해놓고 이미지를 생각하는 편인가요?
아뇨, 그렇지는 않아요. 두 가지가 같이 떠올릴 때가 대부분이죠. 어떤 건 이미지를 먼저 그리기도 하고 어떤 건 텍스트를 먼저 생각하기도 해요. 저는 항상 노트에 메모를 많이 하는 편이에요. 글도 쓰고, 에스키스(완성해야 할 그림과 설계도 등을 위해 작성하는 초벌그림)도 그리고, 아이디어도 끼적거리고요. 

저는 텍스트가 들어가면 그게 바로 작품 자체에 대한 해석으로 이어질까 봐, 고민이 많을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고민이 많죠. 사람들은 주로 글자에 의존하는 경향이 많고 그림은 낯설어해요. 특히나 제 그림은 단순화되어 있어서 이해하려고 하지 않는 경우가 많고요. 사실 우리는 학교에서 이미지 위주의 교육이 아니라 텍스트 위주의 교육을 받아왔으니까요. 그래서 제가 이 작업에 의미를 두는 부분이 바로 ‘낯섦’을 주는 거예요. 글이 너무 낯설다. 그림이 너무 낯설다. 그런데 대부분 사람들은 텍스트는 잘 안다고 생각해요. 사실 어떻게 보면 그림이 더 쉽거든요. 설명해주는 거잖아요. 원래 우리가 쓰는 문자도 그림에서 점점 변화해 문자가 된 거고요. 과연 내가 안다고 하는 것이 정확하게 아는 것인지, 그런 부분에 대한 고민이 들어가 있는 작업이라고도 할 수 있어요.

블로그에 개인적으로 올리는 글도 좋아해요. 《용기가 대단하시네요》에는 짧은 글이 실려있죠.
제가 단문을 종종 써서 모아놨어요. 그걸 작업에 활용하기도 하고, 글을 쓰다 어떤 문장을 발췌하는 경우가 많아요. 나중에 시집 같은 것도 내고 싶어요. 시집이라기보다는 이미지가 많이 있고 단문이 껴있는 책이요. 그런 작업을 좋아하거든요.

독서량도 굉장히 많은 것 같아요.
많이 하고 싶은데, 시간이 모자라요. 요새는 인스타그램이나 페이스북에 시간을 많이 할애하게 되더라고요. 작가니까 어느 정도는 홍보해야 하고, 저도 사람들과 소통하는 거 좋아하거든요. 블로그도 제 데이터를 저장하는 용도로 쓰기도 하지만, 소통의 의미도 있어요. 할 일은 많은데, 현대인으로 살려고 하니까 가랑이가 찢어지려고 하네요(웃음). 

작가님 작업의 특징 하나를 꼽자면 ‘색’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저는 처음 작업할 때부터 색을 머릿속으로 떠올리면서 해요. 색 자체가 감성적으로 표현하는 부분이 많잖아요. 또 제 그림은 형태가 단순하니까 색으로 표현되는 경우가 많아서 먼저 결정하는 편이죠. 그런데 어떤 건 그리면서 결정되기도 하고, 그렸을 때 마음에 안 들면 바꾸기도 하고요.

스스로 색에 영향을 많이 받고 민감하다고 쓴 걸 읽었어요. 서울에 살 때와 양평에 사는 지금, 색을 인지하거나 사용하는 방식에서 달라진 점이 있나요?
색이 훨씬 밝아졌죠. 나이가 들어서 그런 것도 있고 여러 요인이 있는 것 같은데, 아무래도 자연광이 많이 들어오는 곳에 사니까요. 자연을 많이 보고 사니까 자연의 색에 대해 훨씬 더 많이 생각하게 되는 것 같아요. 원래도 어두운색이나 중간톤을 잘 안 쓰는 편이지만 전체적으로 그림이 환해지는 경향이 있어요.

작품 속의 색은 어떻게 결정하는 편인가요?
색이 담고 있는 개개의 의미도 있지만, 어떤 색이 만나느냐에 따라서 의미가 달라지기도 하고, 움직이기도 해요. 그래서 색을 선택하는 방식도 제 그림에서는 굉장히 중요한 구성요소에요. 머릿속으로 결정하긴 하지만, 경험으로 쌓은 것만 백 퍼센트 신뢰하면서 그림을 그리면 생명력이 없는 고답적인 그림이 나오기도 해요. 그릴 때는 계속 움직이면서 그림을 그려야 하죠. 사실 그리는 과정에서 정답은 없는 것 같아요. 계속 넘어야 하는 산 같은 거예요. 어떤 산에 무엇이 있는지 정보를 통해서 알고는 있지만 가보면 또 다르잖아요. 색의 힘을 빌릴 때 그래서 두렵기도 하고, 또 그래서 새롭게 그릴 수 있는 것 같아요.

얘기를 듣다 보니 작가님은 참 ‘반짝반짝’한 것 같아요. 길지 않은 시간 일을 했어도 굉장히 지쳐있는 사람이 있잖아요. 그런 ‘반짝반짝함’을 유지하는 원동력이 있다고 생각하나요?
음, 지금 현대미술이 너무 어려워졌기 때문에 도대체 작가 자신도 그린다는 게 무엇이지 잘 모르는 경우가 많아요. 그런데 그런 생각이 드는 거죠. 우리는 유한한 삶을 사는데, 본질을 너무 떠나있는 게 아닐까? 그렇게 떠나있을 필요는 없지 않을까? 저는 그림을 학문처럼 닦아야 한다고 늘 생각해요. 지겨워도 해야 하는 거죠. 그런데 지겨워도 한다는 건 내가 그러다가도 새로운 것을 발견할 수 있을 거라는 가정에 따라 하는 거예요. 

나는 더 이상 새로운 발견도 할 수 없고 이 길이 나에겐 너무 힘들고, 내가 새로운 걸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 생각이 들면 종결해야 하는 일이라는 거죠. 이 일은 누가 봉급을 주지도 않아요. 누가 시키지도 않았어요. 그린다고 당장 돈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요. 그러니까 직업이 일정 노동을 해서 일정 재화를 받는 것이라는 측면에서 바라본다면 직업이 아닐 수도 있어요. 저는 이 일이 나에게 권태를 주는 일이라면 계속할 이유는 없다고 항상 생각해요. 누군가 제게 똑같은 작품 백 개 그려와, 하면 정말 싫겠죠. 그리고 그런 종류의 일은 하지 않죠. 돈을 버는 것도 중요한데 돈을 어떤 방식으로 버느냐도 중요한 것 같아요.

산다는 것,
나의 집에서

여기가 작업실이자 집이죠?
네, 벌써 9년 됐네요. 처음에 작업실로 아무 구조 없이 지었는데 중간중간 필요한 것들을 계속 보강했어요. 현관 옆의 방도 그림창고가 없어서 나중에 만들었죠. 그림창고를 밖에 따로 지으면 관리하기 힘드니까 안에 짓고 대신 위에 다락방을 만들었고요. 원래 집에 손님들을 위한 방이 없었거든요. 기본적으로는 작업실이기 때문에 산만한 건 어쩔 수 없어요. 짐도 너무 많아서 집을 하나 더 지어야 할 판이에요. 작업실로는 너무 좁고 집으로는 너무 크고. 

집은 어떤 재료로 지은 건가요?
벽에 보이는 하얗고 큰 게 경량 블록이라고 하는 재료예요. 단열재가 따로 필요 없어서 집을 빨리 지을 수 있죠. 친환경 소재 뭐 어쩌고(웃음). 제가 이사 올 때 빨리 들어와야 해서 집을 빨리 지을 수 있는 재료가 필요했어요. 

오기 전에 작가님 이름을 검색해봤는데 꽤 여러 기사가 나오더라고요. 특히 집에 관한 기사가 많았어요.
전에는 인테리어 잡지 인터뷰를 많이 했어요. 여기 이사 오기 전에 살던 집에서도요. 사진을 찍으면 특이하게 나오고, 볼거리가 많고, 저는 예술가잖아요. 색이 많아서 보기와 달리 사진이 잘 나와요. 실제로 보면 쓰레기인데, 사진으로 보면 뭔가 빈티지하게, 예쁘게 나오니까(웃음).

저는 이런 분위기가 좋아요. 너무 깨끗한 집에 가면 마음이 불편해지거든요.
저처럼 작업하는 사람들은 “너 엄청나게 정리하고 사는구나?”라고 얘기하고, 잘 모르는 분들은 집에 오면 정신병자 아니냐고 이야기하기도 해요(웃음).

시골에서는 익명성이 없어지기 쉽잖아요. 동네 분들이랑 어떻게 지내나요?
물론 익명성은 없지요. 소규모 사회니까 제가 말하지 않아도 저기 누가 사는지, 뭐 하는 여자인지 알고요. 게다가 저는 시골에서 특이한, 왜 여기서 사는지 알 수 없는 이상한 인물이죠. 싱글이지, 여자지, 그들에 비해 젊지, 농사를 제대로 짓는 것도 아니지…. 너무 가까워져도 힘들고 또 너무 잘하면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매일 찾아와서 “아, 있수~?” 하는 경우도 있거든요(웃음). 적당히 잘하고 거리 두면서 살아야 하더라고요. 그게 지혜롭게 사는 것 같고요. 여긴 경기도라 서울 사람들이 반 이상이지만, 전라도나 강원도로 내려가면 거기는 정말 지역 사회니까 아예 다른 삶을 살아야 할 수도 있죠. 거기서 혼자 굴러온 돌멩이처럼 살면 삶이 빡빡해지겠죠. 제가 사는 길에 있는 집에도 다 서울 사람들이 살아요. 서로 비슷한 처지죠.

처음 이사 왔을 때는 그런 부분에 대한 고민이 있었을 것 같아요.
반드시 이곳에 사는 사람들과 어울려야 하고 그런 건 아니니까 자기 하기 나름인 것 같아요. 또 제가 여기를 고향으로 느끼면서 사는 것도 아니거든요. 현재 거주지가 여기에 있는 것뿐이죠. 그래서 약간 특이한 마음이에요. 뭐랄까, 좋게 표현하면 가끔 나를 모르는 외국에서 혼자 살고 싶다 생각이 들기도 하잖아요. 그렇게 사는 기분하고도 비슷해요. 한국이지만 주변 사람들이랑 잘 어울리지 않고, 어울릴 수도 없는 거죠. 이를테면 영어를 못해서 교류할 수 없고 인사만 하는 정도인 거예요. 딱 좋아요. 그런 의미에서 멀리 외국 갈 필요 없이 한국에서 외진데 잠깐 살아보는 것도 나쁜 것 같지 않아요. 

텃밭도 직접 가꾸죠? 식물들이 정말 잘 자라는 것 같더라고요.
잘 자라긴요. 못해요. 여기 농부들이 보면 다 웃어요(웃음).

그래도 먹을 게 나오는 게 어딘가요.
먹을 건 나오죠. 저도 나름 오래됐잖아요. 처음에는 욕심에서 오만 거 다 심고, 외국에만 나가면 특이한 씨앗 사오고 그랬는데, 지역의 특수성이 있으니 다 잘 크진 않더라고요. 그리고 사실 아무리 작은 정원이라도 가꾸는 일은 되게 힘들어요. 이것도 하랴, 저것도 하랴, 너무 바빠서 시간을 많이 못들이니까 밭 규모를 많이 줄였죠. 그리고 많이 해봐야, 먹을 사람도 없어. 남 좋은 일 시키다가 땡치고(웃음). 저희 엄마가 서울에 사시는 데, 따뜻할 땐 한 달에 한 번 정도 내려와서 농사를 지어요. 심고 싶은 거 심으시고 자기가 거둬가고요. 그래서 제가 주말농장 비용을 내놔라, 그러고 있죠(웃음).

여기는 뭐가 잘 자라나요?
진짜 잘 되는 건 배추랑 무래요. 강원도 고랭지 배추가 맛있다고 하는데 여기가 강원도랑 가깝잖아요. 그래서 맛있대요! 저는 주로 허브류를 심는데 그런 건 어디서나 잘 되는 거니까요.

어느 정도 자급자족을 하는 거네요. 집을 지어 살고, 밭에서 작물을 기르고, 옷도 가끔 만드신다고요.
네, 자급자족하고 싶죠. 그런데 지속하기가 쉽지는 않아요. 누구나 자기 정원을 갖게 되면 처음 3년 동안은 미친 듯이 정원 일을 해요. 잔디 깔고, 꽃 심고, 나무 심고 하다가 3년 뒤에 포기해요. 관리하는 데 많은 에너지가 소모되는데 자기 일이 있으면 지속하기 힘들거든요. 저도 살아보니 그렇더라고요. 그래서 최소의 노동이라도 들여서 이걸 유지할 수 있게 해야겠다고 생각했죠. 어쨌든 저도 자연을 통해 얻어먹고 있으니까요.

여기서 지내며 심심할 때도 있나요?
있죠! 한가해서 심심한 게 아니고요. 심심하다는 건 지금 하는 일을 하고 싶지 않고, 뭐가 다 마음에 안 들 때 심심하지 않아요? 그럴 땐 저도 심심하죠. 뭔가 놀고 싶고 재미있는 거 하고 싶은데, 당장 할 수는 없고 그럴 때요. 

그럴 때는?
술을 막 마신다거나, 친구를 만난다거나, 잠을 잔다든가(웃음).

여기서는 혼자 살아도 왠지 바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일상은 바빠요. 저는 잠자는 걸로 많은 시간을 보내는 편이기 때문에 깨어있는 시간 동안 모든 일을 해야 해서 항상 하루가 짧죠. 평균 여덟 시간은 꼭꼭 자요. 그리고 힘들거나 스트레스를 받을 땐 잠을 자야 많이 해결돼요. 예전에는 오늘 할 일을 반드시 끝내야 하루를 마감했는데 이제는 그렇지 않아요. 그냥 잡니다. 다음날 합니다, 그냥. 그래서 일이 이렇게 밀렸네요(웃음).

한 시절을 보낸다는 것,
동물과

작가님을 만나러 간다고 하니 고양이 그림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사실은 제가 고양이랑 오래 살아서 그런지, 《스프링 고양이》라는 책을 내서 그런지 고양이를 엄청나게 많이 그리는 줄 알더라고요. 실제로는 안 그래요. 생각보다 많이 안 그렸어요. 사람도 그리고, 동물도 그리고, 먹는 것도 그리고 이것저것 다 그려요. 동물 중에서는 그래도 친숙하니 고양이를 많이 그리겠지만요. 물론 그 인식이 싫진 않지만 많이 그린다는 건 정확한 이야기는 아니죠.

찾아보니 고양이 말고도 동물 그림이 많아서 놀랐어요. 또 텍스트에만 동물이 언급되는 그림도 있잖아요. 저는 작품 중에 ‘새를 모르던 시절’을 좋아하거든요. 새는 나오지 않는, 폭포 그림이요.
그거 유명하지 않은 건데, 어떻게 아시네요(웃음). 저도 고양이와 함께하는 촬영을 안 한 지 오래됐어요. 최근 몇 년간 고양이가 추세잖아요. 여기저기서 인터뷰 요청이 많이 들어왔었는데 고양이는 원래 사진작가가 찍기도 어렵고, 애들도 많이 늙었거든요. 그래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요. 외부인을 경계하기도 해서 될 수 있으면 안 하려고 하죠.

다들 어디서 한 마리씩 슬금슬금 나오네요. 네 마리 고양이 중에 막내가 몇 살인가요?
시로가 열여덟 살, 후추와 봉봉이 열여섯 살, 씽이라고 하얀 애가 막내인데 열 살이에요. 우리 집 실버타운이라고 말씀드렸잖아요. 원래 여섯 마리였는데 두 마리는 죽었고요. 남은 애들도 여기서 여생을 보내는 분위기라서(웃음).

이곳에 이사와 고양이들과 지내면서 달라진 생각이 있나요?
사실 자연에 와서 살게 되면서 동물이랑 조금 더 친해졌다고 해야 할 것 같아요. 저도 아파트 키드이기 때문에, 오로지 집에서 기르던 개 말고는 다른 동물을 보지 못하고 컸죠. 되려 성인이 되어 시골에 와 살면서 동물을 알게 됐어요. 그런데 알게 된다는 게 정말 중요한 것 같아요. 모르는 건 그냥 모르는 거예요. 

어떤 걸 알게 됐나요?
저는 벌레들을 정말 싫어했어요. 그런데 지금 저는 벌레를 별로 싫어하지 않아요. 물론 아직도 바퀴벌레나 파리는 싫어요. 시골이라 바퀴벌레는 없는데 파리는 있거든요. 저는 파리만 잡아요. 왜 잡느냐? 나를 귀찮게 해. 그런데 나머지 벌레들은 저를 귀찮게 하지 않아요. 자기네 삶을 살아요. 걔가 있어서 내 삶에 방해가 되지 않는데, 내가 걔들을 잡아서 죽일 이유가 없더라고요. 지금은 벌레를 싫어하지 않아요. 어떤 벌레는 심지어 좋아하기까지 해요. 귀여워요. 옛날엔 징그러워서 못 만졌지만, 지금은 만질 수 있어요.그런 게 많은 변화죠. 

환경이 주는 변화. 또 밖에서 야생동물들도 많이 보게 되고, 관조하게 되죠. 얼마나 척박하게 사는지, 얼마나 힘들게 생존을 유지하려고 하는지, 야생의 세계에서 살아남은 생명체는 얼마나 대단한 건지. 알게 되는 건 무서운 것 같아요. 몰랐던 게 차라리 나았을 걸, 하는 생각도 해요. 알면 외면하기가 어렵고, 안다는 것만으로도 슬퍼지거든요. 그런데 알아버린 이상 그들과 어떻게 공존해야 하는가, 생각하게 되죠.

안다는 건 참 무서운 일이네요. 고기도 잘 먹지 않는다고 들었는데 그런 이유에선가요?
섭생도 비슷한 얘기인 것 같아요. 우리는 소나 돼지를 집 냉장고에서, 마트에서 만나잖아요. 그런데 짐승을 먼저 알고, 우리의 먹이가 되는 과정을 알고 나면 함부로 먹을 수 없어지더라고요. 그런데 저는 다른 사람에게 먹지 말라고 얘기하고 싶진 않거든요. 왜냐하면 이미 인간이라는 존재 자체가 다른 생명체를 죽이면서 내 생명을 연장하고 있으니까요. 사실 고기뿐만 아니라 식물도 마찬가지예요. 토마토가 자라는 과정을 지켜보면, ‘아, 얘네가 완벽하게 살아있다.’라는 걸 알게 돼요. 그런데 내 입으로 들어갈 때 죽는 거거든요. 그래서 가끔 끔찍하게 느껴질 때가 있어요. 하지만 저희가 동물과 유전적으로 더 가까우니 동물의 죽음에 대해 더 큰 끔찍함을 느끼는 거죠. 식물 기르면서도 그런 생각을 많이 하게 됐어요. 귤 하나가 테이블 위에서 말라가더라도, 내 입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살아있는 거더라고요. 되게 무서운 거죠. 그래서 얼마큼 먹어야 하는가, 먹을 때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하는가, 그런 생각도 많이 하게 돼요.

저도 고양이랑 살게 된 후에야 길거리의 고양이들이 보이기 시작하더라고요. 처음엔 안쓰러운 마음에 가방에 간식을 챙겨다니면서 주기도 했는데 경계하는 동물에게 다가가는 게 맞는 건지,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하더라고요.
우리가 무언가 결정 내리긴 어렵죠. 적어도 뭘 알려고 하는 것, 그런 자세만으로도 좋은 거 아닌가 싶어요. 

이 귀여운 고양이들과 살면서 그래도 힘든 점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여행이죠. 저는 여행을 정말 좋아하고 정기적으로 가는 편인데, 아마 얘네랑 안 살았으면 심하게 떠돌고 살았을 것 같아요. 그런데 다르게 생각하면 기질적으로 떠돌기를 좋아하는 제가 얘네 덕에 정착하게 된 걸 수도 있고요. 가끔 여행을 가려고 하면 준비를 굉장히 많이 해야 하고, 고민도 해야 하니 쉽게 훅 떠나지지 않죠. 그게 제 인생에 가장 발목을 잡는, 그런 것입니다(웃음).

지금 자다가 눈 번쩍 뜨는 것 같은데요. (고양이들에게) 얘들아, 듣고 있니?
아니 제가 지금 40대인데, 진짜 얘네랑 살다가 제 청춘이 다 갔다니까요!그리고 나이가 들면 들수록 고양이들도 허약해지고 아프니까 돈도 많이 들어가요. 그런 것도 힘든 부분인데, 또 얘네 덕분에 어느 정도 사는 것 같기도 하고요. 삶에서는 단점이 바로 장점이 되기도 하니까요.

작가님은 사람과 동물이 함께 있을 때 가장 자연스러운 풍경을 생각해본 적 있나요?
예전에 혼자서 몽골여행을 간 적이 있어요. 몽골은 울란바토르란 도시를 빼고 나머지는 ‘Nothing’이에요. 시골이라고 표현할 수도 없고 그냥 아무것도 없는 곳이에요. 그리고 아무것도 없는 곳에 가끔 유목민들이 살죠. 여행할 때 제가 묵었던 게르(몽골 유목민의 전통가옥인 이동식 집)에 주인 부부와 초등학교 정도의 아이들이 몇 명 있었어요. 여행 코스 중에 저를 말에 태워서 한 바퀴 돌아보는 게 있었어요. 저는 그때 말을 처음 타봤거든요. 너무 무서웠죠. 딱 탔는데 말도 살아있는 생명체니까 자기가 싫은 사람이 타면 안 움직이는 거예요. 결국 주인아저씨가 말에게 뭐라고 말하니 그제야 말이 달리는 데 저는 막 소리를 지르다 한 바퀴 타고 탈진 상태로 왔죠. 그러다 아이들이 왔는데 마구간에서 말을 데리고 나와서 타는 거예요. 다 자기 말이 있는 거죠. 그런데 안장 없이 갈기를 잡고 말을 타고 가더라고요. 

그때 저는 넋이 나간 상태로 제 게르 앞에 앉아 있었고 아무것도 없는 풍경이 제 앞에 있었어요. 그러다 말이 소년하고 끌어안고 달리는 모습을 봤어요. 자전거를 타는 아이들처럼 익숙하게 초원을 누비는 거죠. 저는 사람이 아름답다고 느낀 적이 별로 없거든요. 그런데 그때 사람이 이렇게 아름답구나, 사람도 원래 아름답구나, 그런 걸 처음 느꼈어요. 아이들이 말을 정말 예뻐하면서 타요. 그러니까 말도 행복해하는 거고요. 이건 일방적으로 제가 고양이를 예뻐하고, 개를 예뻐하고 이런 거랑은 차원이 다른 거예요. 말 마차를 끄는 말들의 얼굴은 그렇지 않거든요. 그걸 보면서 인간이 얼마나 많은 걸 잃었는가,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동물의 얼굴에서 불행함을 본다는 건 너무 끔찍한 것 같아요.

“저는 ‘개 눈’을 가진 사람을 좋아해요. 나이가 들고, 또 나이가 들지 않아도 불행한 눈들이 있거든요. 동공이 흔들리고, 탁하고, 뭔가 음험한 느낌을 주는 눈이요. ‘개 눈’은 동물의 눈처럼 안광이 있으면서 탁함이 없는, 약간 신비롭고 알 수 없는 눈인 것 같아요. 사실 그런 눈을 가진 사람은 거의 없고 아주 가끔 만날 수 있죠. 그런 사람을 만나는 건 특별한 기억으로 남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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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이현아

포토그래퍼 박소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