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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하고 싶어요
팀원 두 명과 답사를 위해 길을 나섰다. 행선지가 어디쯤 있는지, 어느 길로 가는지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공모전 요강에 나와 있는 주소를 찍고 출발하기 때문에 오직 얼마나 걸리는지만 알면 됐다. 두 시간 반 정도 걸린다는 말을 듣고 “그럼 가볼 만한데? 그냥 바로 출발해 버리자!”라고 이야기했다. 후다닥 서둘러 짐을 싸고 내비게이션에 주소를 찍고 주유소에 들러 기름을 가득 넣었다.
가끔 건축 공모전에 참여한다. 건축가들이 모여 아이디어를 내고 심사를 받는 것이다. 일등에 당선되면 자신이 디자인한 건물을 지을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 우리는 가끔 할 일이 떨어지면 공모전 사이트를 뒤적여 보는 편이다. ‘재밌어 보이는’ 공모전을 발견하면 설계 기간을 확인하고, 심사위원들은 정상인인지 비정상인인지 파악하고, 참가 여부를 결정한다. 그날은 너무나 순식간에 결정해 버렸다. 대전 인근에 있는 추모공원에 봉안당을 설계하는 프로젝트 공고가 떠 있었다. 심사위원은 나쁘지 않았지만 기간이 촉박했다. 에라 모르겠다, 바로 출발하자. 그런 기분이 들 때가 있지 않은가. 급하게 진행하면 갑자기 막 신나면서 힘이 솟는 거. 불과 몇 분 전까지 봉안당에 아무 관심도 없던 사람들이 갑자기 열성적으로 변했다. 건축과 학생들에게 봉안당은 한때 인기 있는 설계 주제였다. 어쩌면 아직도 인기 있는 주제일지도 모른다. 이미 떠난 누군가를 추모하는 일은 얼마나 낭만적인가. 낭만적인 것은 또 얼마나 설명하기가 쉬운가. 이런저런 문제점과 해결 방안을 찾을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대학교 4학년 때 나는 봉안당을 설계하면서 ‘일 년에 한 번 빛나는 별자리’라는 감성적인 문구를 사용했다. 매년 기일이 되면 봉안함을 묻은 바닥에서 불빛이 켜지도록 설계한 것이었다. 다들 별자리의 감성에 엄지 척을 했다. 아이디어가 좋다고 했다. 역시 난 설계를 잘한다고 생각했다. 차에 탄 팀원들이라고 달랐을까? 대학교를 갓 졸업한 팀원이 자신이 설계했던 봉안당 이야기를 했다. 바닥에 불이 켜지는 건 이제 올드해서 잘 안 한다고 했다. 어느 시간이 되면 물이 찼다가 또 어느 시간이 되면 물이 빠지는… 그런 납골당을 이야기했던 것 같다. 어쩌면 내가 헷갈린 걸 수도 있다. 그러나 중요하지 않다. 그래 봐야 아이디어 뽐내기에 불과한 이야기였을 테니까…. 첫째가 수수깡으로 집을 짓고, 둘째는 나무로 집을 짓고, 셋째는 벽돌로 집을 지었다. 늑대가 나타나 바람을 ‘후~’ 하고 불자 첫째와 둘째 집은 모두 날아가 버렸다. 그리고 모두 셋째 집으로 대피해 무사할 수 있었다. 재능 뽐내기라는 건 그런 것이다. ‘후~’ 하고 불면 날아가 버리는 얄팍한 재료.
두 시간여를 달려 도착한 곳은 산과 산 사이에 있는 추모공원이었다. 피 끓는 건축가 세 명이 그곳에서 마주하게 된 건 힘 빠지는 풍경이었다.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봉안당에 가본 적이 있다. 그런데 그때는 당사자의 일이라 자세히 들여다보지 못했나 보다. 봉안함의 칸마다 빼곡히 붙은 편지와 사진. 그것을 보는 것만으로도 나는 힘이 쫙 빠져 버렸다. 서울에서부터 튕기듯 출발한 아기 돼지 삼 형제는, 이곳까지 달려온 기운이 무색하게 천천히 걸었다. 벽 한쪽에 이런 문구가 크게 붙어 있었다.
“봉안함의 자리는 순서대로 배정됩니다. 임의로 정할 수 없습니다.”
마치 사물함처럼 칸칸이 나누어진 봉안함이 높은 공간을 가득 메우고 있었는데, 어떤 칸은 높이 있어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야 봉안함을 마주할 수 있었다. 어떤 칸은 아주 낮게 있어 무릎을 꿇어야만 마주할 수 있다. 그런 이유로 많은 사람들이 자리를 옮겨줄 수 있는지 문의하는 것 같았다.
안타깝고 불편한 현실이 곳곳에서 보였다. 예전 같으면 칼날 같은 아이디어를 꺼내 문제를 도려내 보려고 했겠지만, 아이디어를 낸다는 것에 마음이 무거워져 버렸다. 돈이 많아서 혹은 공간이 넉넉해서 봉안함의 맨 위 칸과 맨 아래 칸을 비워 놓으면 해결될 간단한 문제다. 그렇게나 간단한 방법이 있는데, 어떤 더 좋은 아이디어를 낼 수 있을까? 삶과 죽음과 돈 앞에 아이디어라니… 무력감이 느껴졌다. 산으로 둘러싸인 곳이라 금세 날이 저물기 시작했다. 약간 쌀쌀하던 날씨는 아주 추운 날씨로 바뀌었다. 우리는 차를 타고 아까의 출발지를 목적지로 지정했다. 돌아갈 때는 세 시간 반 정도 걸린다고 했다. 대전으로 올 때와는 다르게 서울로 가는 차 안은 차분했다. “뭐 좀 그러네요….”, “좀 마음이 무겁네요….” 같은 말만 반복했다. 마음이 좀 무거워지긴 했지만 슬퍼할 일은 아니라서 중얼중얼 이야기를 계속 주고받았다. “이왕 늦는 거 뭐 먹고 갈래요?”
누군가의 생동감 있는 한마디가 반가웠다. 그리고 나는 태어날 때부터 맛있는 식당을 고르는 운을 타고났다. 사실 어떻게 해서 그곳까지 갔는지, 간판은 어떤 색인지, 어느 지역에 있는지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다. 기억이 되살아나는 순간은 빨간색 김치가 가득 담긴 항아리 그릇이었다. 붉은색 겉절이가 가득 담긴 항아리가 테이블에 놓여 있었고, 아기 돼지 삼 형제는 음식이 나오기도 전에 항아리를 싹 다 비워 버렸다. “사장님 너무 맛있어서 그러는데 김치 좀 더 주시면 안 돼요?” 먹성 좋게 생긴 둘째 돼지가 사장님에게 조르듯 말했다.
메뉴는 태어나서 한 번도 본 적 없는 칼국수였다. 뜨거운 칼국수 위에 짙은 초록색 쑥갓이 듬뿍 올라와 있었다. 아삭한 쑥갓하고 물컹물컹한 면발이 우적우적하고 씹혔다. 그리고 사장님은 방금 전보다 더 푸짐하게 김치를 담아 가져다주셨다. 눈이 따가울 정도로 빨간 김치와 시원해 보이는 초록색 쑥갓이 시각을 자극했다. 창밖은 완전한 어둠이었다.
그제야 활기가 돌기 시작했다. “와, 맛있다!”, “와, 맛있다! 아까는 좀 추웠나?”, “난 너무 배가 고팠었나 봐.”, “그래, 우리 오전에 출발해서 아무것도 안 먹었잖아.” 사람은 단순한데 생각이 너무 많은 하루였다. 배부르고 따뜻하고 맛있고… 이것보다 더 좋은 위로가 어디 있을까?
글·그림 한승재―푸하하하프렌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