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는 사람을 아는 공간에서

박기민 — MMK

우리에게 주방은 어떤 공간일까. 끼니를 채우는 동안에만 머무르는 곳, 어느 집에나 있지만 그다지 눈여겨보지 않던 곳, 모두가 같은 모양에 같은 쓰임만을 가진다고 생각하는 곳. 오랫동안 공간 디자이너로 활약한 박기민 대표의 키친 퍼니처 브랜드 ‘MMKMuseum of Modern Kitchen’는 다른 답을 말한다. 주방은 쓰는 사람의 취향과 목적을 분명히 드러낼 수 있는 가능성을 품은 곳이고, 그 공간이 변한다면 그 안에서의 매일도 달라진다고. 그가 제안하는 주방의 면면이 우리에게 매력적인 이유는 아름다운 미감과 높은 실용성뿐 아니라, 그 너머로 쓰는 사람을 형형히 바라보기 때문이다.

점심을 살짝 지난 시간이네요. 초대해 주셔서 감사해요. 

어서 오세요. MMK 대표 박기민입니다. 차를 드릴까요? 친한 친구가 흑차를 선물로 줬는데 오늘 아침에 마셔보니 맛있더라고요. 여기 설명을 보면 은은한 향이 황제의 풍미를 선사한다고… 좋은 차인 것 같아요. 

 

(웃음) 감사히 마실게요. 여기 또 다른 손님이 있네요. 

다섯 살 된 반려묘 베베예요. 원래 안방에 이불을 덮어둔 의자 밑에 있는 걸 좋아하는데, 오늘은 치워놨더니 지금 살짝 삐진 것 같아요. 제가 인테리어 스튜디오를 운영할 때 높은 업무 강도에 시달리다가 슬럼프가 온 적 있어요. 늦은 시간에 퇴근하고 나면 따듯한 존재와 온기가 나를 반겨주면 좋겠다 싶었을 때 베베를 만나게 됐죠. 동물마다 성격이 다른 거 아세요? 베베는 저하고 생활 패턴이나 성격이 잘 맞아서, 서로 필요할 때를 잘 알아요. 아마 조금 있으면 우리가 있는 곳으로 올 거예요. 

 

공간이 무척 아름다워요. 바깥에서는 안에 이런 곳이 있으리라 예상하지 못했거든요. 집에서 인터뷰를 하는 건 처음이라고 하셨죠? 

맞아요. 먼저 집 소개를 해드려야겠네요. 두 가지 콘셉트가 있는데 첫째는 ‘원 스페이스’예요. 방이 모두 세 개고 화장실이 하나인데 어디에도 문이 없어서 어찌 보면 하나의 공간으로 볼 수 있어요. 거실에는 일본 조각가 ‘이사무 노구치Isamu Noguchi’의 ‘아카리Akari’ 조명을 달았어요. 해의 밝은 빛과 달의 부드러운 빛을 한데 담아낸 작품인데, 해와 달이라는 조명을 중심에 두고 각각의 방이 자리한 거죠. 하나의 우주처럼요. 

 

또 다른 콘셉트는 뭔가요? 

다른 건 ‘아카이브’라는 스타일링에 관한 콘셉트예요. 원래는 천장에 보가 달려 있었는데, 철거 전까지는 모르다가 뒤늦게 알게 됐어요. 그런데 보를 비롯해서 원래 이 공간이 가진 흔적들이 예쁘게 보이더라고요. 없애지 말고 적극적으로 살려보자 싶어서, 한편에 있는 보는 그대로 두고 이미 떼어낸 반대쪽 보를 거실 바닥 한편에 화강석으로 만들어 뒀어요. 나름의 오브제가 된 거죠. 그리고 보가 지나가는 길은 길게 뻗어 있는데 그 수평적인 느낌을 살리기 위해 공간 안쪽에 있는 벽에는 길게 거울을 배치했어요. 

 

집 안에 거울 벽이 있는 게 독특했는데 이런 이유 때문이었군요. 그 안쪽은 어떤 공간이에요? 

저기는 화장실이에요. 1980-90년대 때 지어진 빌라나 아파트는 대부분 화장실이 집 중앙에 있는데, 그 전형적인 형태라든지 위치를 탈피하고 싶은 것도 거울 벽을 둔 이유 중 하나예요. 일종의 착시처럼 거울을 통해 시선이 반사되어 바깥으로 향하면 안쪽은 어떤 공간인지 잘 모르게 되니까요. 여기 산 지 1년 정도 됐는데, 사실 여기는 MMK를 전개하는 새로운 전략으로 스테이를 구상하면서 만든 곳이에요. 우리가 제안하는 가구나 공간 구성, 제품을 쇼룸뿐만이 아니라 직접 경험할 수 있는 스테이로 꾸리고 싶었거든요. 이 동네는 창밖으로 보이는 남산에서 사계절을 알아챌 수 있고, 흙 내음이나 풀 내음도 느낄 수 있어서 마음에 들었어요. 적절한 시기에 후일을 도모할 텐데 그 전엔 제가 살아 보려고요. 

 

‘여기가 우리 집이면 좋겠다!’ 생각했는데 머지않아 그 경험을 할 수 있겠네요. 차를 테이블 위에 준비해 주셨는데, 여기 앉으면 될까요? 

네, 차가 충분히 우러나왔을 거라 잔에 한 잔씩 따라 놓을게요. 이 테이블과 의자는 기성품이나 디자이너 작품이 아니라 제가 구상하고 만든 거예요. 공간 디자인을 10년 정도 하다 보니 가구나 건축에 관심이 많은데 아무리 찾아봐도 이곳과 딱 떨어지는 건 없더라고요. 공간에서 가구만 주인공이 되거나 혹은 공간의 힘이 너무 커서 가구와 어우러지지 않으면 하나로 연결된 정서를 느낄 수 없잖아요. 제가 머물 공간이니까 제 취향 조각을 떼어넣어 조형적인 의미를 가진 가구들을 두자 생각했죠. 테이블은 ‘카운터포인트Counterpoint’라고 불러요. 바로크 음악에서 바흐가 창시한 ‘대위법’을 이르는 말인데, 각 선율이 독립적으로 움직이면서도 서로 조화를 이루는 구조를 뜻해요. 테이블에는 두 군데로 나뉘어 기둥이 있는데 한쪽에는 기둥 세 개가 바깥으로 나와 있고 두 개가 숨어 있다면, 다른 쪽에는 그와 반대로 배치되어 있죠. 그 모습으로 대조와 조화를 표현한 거예요. 평평한 보통의 테이블과 달리 기둥이 튀어나와서 형태감이 두드러지기도 하고요. 그리고 의자는 동료 작가와 협업했는데, 제가 ‘양반다리’로 앉는 걸 좋아하다 보니까 자연스레 넓은 좌대가 떠올랐어요. 형태의 아름다움도 물론이지만 착석감도 중요하니까요.

요소마다 새겨둔 의미를 알고 보니 공간이 더 새롭게 느껴져요. 문득 첫인사를 나눌 때 브랜드 대표로 본인을 소개한 게 떠오르네요. 앞선 이야기가 대표님이 지금까지 해온 일과 맞닿아 있어서요. 

나의 어릴 적 모습이나 살아온 과거,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 이런 것도 자기소개가 될 텐데 그중에서도 내가 어떻게 업을 이루어 왔는지를 말하는 게 저한테는 중요하고 기억에 많이 남는 부분 같아요. 좀더 소개하자면 공간 디자인을 전공한 뒤 그걸 바탕으로 ‘라보토리Labotory’라는 인테리어 스튜디오를 열어서 12년간 운영했어요. ‘디뮤지엄’이나 ‘무신사 스탠다드’, ‘더현대 서울’의 VIP 라운지처럼 상업 공간을 기획하고 구성했죠. 키친 퍼니처 브랜드인 MMK를 운영한 지는 4년 차고요. 

 

일상생활로도 소개할 수 있지 않을까요? 즐겨 먹는 음식이나 집에서 보내는 시간, 나만의 루틴 같은 것들로요. 

음, 제가 이제 만으로 마흔 살인데 몰두하는 게 계속 변했어요. 한 사람의 주체성은 경제력에서 독립을 이룰 때부터 형성된다고 생각해요. 그러면 저는 스무 살일 텐데, 그 후로 20년간은 관심사가 계속 바뀌어 온 거예요. 지금 제 관심은 나의 우주를 만드는 것 그리고 그 우주의 궤도를 따르는 거예요. 거창하게 말했지만 결국 나다운 삶의 루틴을 찾아간다는 말이죠. 지구가 태양을 중심으로 공전과 자전을 하는데 실은 굉장히 불안정하대요. 그 증거가 윤달이고요. 한 사람의 인생도 우주를 떠다니는 행성의 궤도로 바라본다면 항상 불안정하지 않을까 싶더라고요. 흔들리는 걸 흔들리지 않도록 안정을 찾으려면 루틴이 필요한 것 같아요. 

 

예를 들면 일상 속 어떤 습관인가요? 

저는 아침에 일어나서 30분 정도 차를 마시고 반신욕을 해요. 차를 마신 지는 6년 정도 되었고요. 그 후에 등산을 다녀와서 출근 준비를 하는데 이 루틴을 1년에 300일 이상 지켰어요. 그리고 일주일 중 6일은 수영과 필라테스, 사이클이나 러닝 같은 운동을 꾸준히 해요. 

 

차에 조예가 깊은가 봐요. 아까 보니 처음 우린 차를 다른 그릇에 붓고 새로 우리시더라고요.

그걸 ‘세차’라고 해요. 찻잎이 숙성되는 과정에서 얻은 부산물을 한 번 걸러내기도 하고 잔을 데우는 효과도 있어요. 우리나라와 중국, 일본이 모두 차를 마시지만 대하는 마음가짐은 조금 다르대요. 우리나라는 ‘차례’라고 부르며 일종의 예절로 대한다면, 일본은 다도 문화가 시작된 곳으로 격식에 가깝죠. 그리고 중국은 우리나라와 일본보다 훨씬 일상적으로 차를 마시고요. 차를 마시는 습관을 일상 가까이에 두려니, 이 행위가 너무 많은 단계를 거친다면 안 되겠더라고요. 예전에는 다관이나 숙우, 찻잔도 이것저것 모으고 바꿨다면 이제는 간단한 선택지 안에서 꾸준히 쓸 만한 도구들로 조합을 꾸려뒀어요. 

 

주신 차가 깔끔하고 수수한 맛이라 좋아요. 흑차라는 이름 때문에 무척 진할 줄 알았거든요. 

빛깔도 맑고 좋죠? 차는 같은 잎에서 시작되어도 조건에 따라 부르는 이름과 특성이 달라져요. 잎이 어느 정도 자랐을 때 채취했는지, 어느 정도 고도에서 자랐는지, 어떤 방식으로 덖은 건지에 따라서요. 쓰는 도구는 한정적이더라도 차는 계절마다 바꿔서 마시려고 해요. 겨울에는 숙성 기간이 긴 흑차나 보이차를, 여름에는 열을 내려주는 백차를, 봄과 가을에는 흑차와 백차 사이의 균형감으로 생기가 느껴지는 청차를 마셔요. 청차 중엔 잎이 말아져 있는 것도 있는데 따듯한 물을 부어서 세차를 하면 그 부분이 파릇하게 펴지는 게 예쁘죠. 가만 생각해 보니 차를 마시는 건… 1년에 330일 정도는 되네요. 

 

(웃음) 일수로 표현해 주시니 루틴을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와닿아요. 그런데 아침은 안 드세요? 

잘 안 먹어요. 소화는 음식물이 몸속으로 들어갔을 때 그걸 내 에너지로 바꾸는 거잖아요. 아무래도 나이를 먹는 탓인지 그 능력이 떨어지는 것 같아요. 아침을 먹는 날, 예를 들어 여행길의 조식이나 부모님 댁에서 아침밥을 먹고 나면 머리에 써야 하는 에너지를 내장 기관이 소비하는 탓인지 움직이는 감각이 좀 다르게 느껴지는 거죠. 오전 시간은 집중도도 높고 제 머리가 가장 맑은 시간이거든요. 만족스러운 사고를 하려면 생각과 생각의 연결 고리가 끊어지지 않게 몰입하며 끌어 나가야 하는데, 속이 불편하면 가장 중요한 시간의 집중력을 잃어버리더라고요. 

 

맞아요. 자연스레 몸의 불편한 쪽으로 우리 생각이 흘러가 버리잖아요. 

그래서 최근 2년간 식습관이 크게 바뀌었어요. 식재료가 가진 특징을 최대한 느낄 수 있는 방향으로 챙겨 먹게 된 거죠. 연초를 지나다 보니 주말에는 친구들 만나면 술도 마시고 자극적인 음식을 먹거나 과식 해버리고 말잖아요. 그래서 어제는 점심으로 요즘 한창 맛있는 표고버섯이랑 방울토마토, 두부를 솥에 쪘어요. 쪄서 먹으면 원물이 가진 본연의 특징에 수분이 더해져서 부담스럽지 않게 먹을 수 있거든요. 거기다가 달걀프라이 세 개랑 낫또를 더해서 먹고 그날 저녁과 오늘 아침은 콩물만 마셨죠. 그랬더니 흐트러진 몸 상태가 바로 서는 것 같았어요. 잠깐 끊긴 생각의 흐름이 다시 연결된 기분이랄까요.

다시금 궤도에 올라서는 하루인 거네요. 이번 호는 ‘요리의 시간’에 대해 말하는데요. MMK는 나다운 키친을 제안하는 브랜드니까 대표님의 주방은 어떨까 궁금했어요. 

앞서 언급한 대로 이곳의 본래 목적은 브랜드를 경험할 스테이를 만드는 것이었기 때문에, 요리를 위한 부엌은 최소한의 준비만 마치고 공간 특징을 살리는 게 중요했어요. 보통 주방에 두는 하부장에는 앞에 패널을 달아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를 가리거든요. MMK의 키친 디자인 라인 중 여기 설치된 ‘누드’는 패널과 패널 사이 간격을 살짝 띄워서 안에 있는 목대가 오히려 노출되게끔 하되 칸 끝마다 세로선을 둬서 생동감 있는 게 특징이에요. 주어진 공간이 넓지 않다 보니 상부장은 달지 않았고 조리 도구도 많지 않죠. 지금은 브랜드가 성장해야 하는 시기니까 요리나 나만의 주방을 만드는 데 시간을 내는 게 어렵지만 3-4년 정도 후에는 요리만을 위한, 요리하는 데 최적인 주방을 설계하고 싶어요. ‘오픈 주방’처럼 요리하는 사람과 초대된 사람 사이의 경계가 없고 대화도 계속 이루어지는 공간을요. 

 

전통적인 집 형태를 떠올려 보면 거실과 주방의 경계가 짙어서, 주방은 휴식보단 일을 위한 공간처럼 느껴졌던 것 같아요. 그 안에 머무는 사람들의 역할도요. 

말씀하신 게 정확한데 우리나라 사람들의 거주 형태 중 아파트가 전체 50퍼센트를 훌쩍 넘어요. 1980년도부터 아파트가 대거 지어졌고 2000년도 넘어오면서 수도권으로 이주하는 사람들이 늘었는데 그때는 4인 가구를 기준으로 두는 게 ‘기본’이라 여겨졌어요. 그러다 보니까 주방은 거실하고 조금 떨어져 있거나 혹은 완전히 분리된 레이아웃으로 고정되어 있었거든요. 재밌는 건 최근에 또다시 그 형태가 변해가고 있다는 거예요. 혼자나 둘이서 사는 분들이 많아지니까 거실과 식사 공간, 주방이 하나로 이어지는 ‘LDK’ 개념을 선택하는 거죠. 사람의 역할 역시 변하고 있어요. 부모님 세대만 해도 여성이 주로 머문다고 생각했다면 지금은 남성도 일상을 지속하기 위해 요리를 해야 하고 또 좋아하는 분도 많아요. 시간이 흐를수록 과거와는 다른 형태의 주방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고 생각해요. 

 

우리나라 안에서의 비교뿐 아니라 다른 나라의 식문화와도 견주어 볼 수 있을까요? 

그럼요. 엇비슷하거나 확연히 다른 점을 가진 문화들이 있을 텐데요. 잠시 해외에서 머물던 경험이나 제 외국 친구들한테 들은 이야기를 떠올려 보면, 주방을 살아 있는 공간처럼 써요. 친구들끼리 다 같이 모여 파티를 해도 소파가 있는 거실이 아니라 다들 주방 근처에 머무르죠. 소파는 술에 잔뜩 취한 친구들이 드러눕는 곳이고요(웃음). 그리고 주말 아침에는 가족이 주방으로 모여 식사를 준비하고 끼니를 챙기는데 아이들도 빠지지 않아요. 각자 할 수 있는 몫만큼 식사 준비에 참여하죠. 식탁을 따로 두는 경우도 있지만, 보통은 ‘바’ 형태의 작업대를 겸한 곳에서 준비와 식사를 마치도록 간소화되어 있어요.

 

이쯤에서 MMK의 시작을 물어보고 싶어요. 주방을 위한 브랜드를 어떤 계기로 시작하게 됐어요? 

저에겐 직업을 대하는 가치관이 1단계부터 3단계까지 있어요. 첫째는 나의 노동력으로 물리적인 대가를 받는 단계, 둘째는 이 업으로 나의 커리어를 쌓고 그걸 통해서 성취와 보람, 스스로의 희열을 느끼는 단계고요. 셋째는 이 업을 통해서 누군가한테 얼마큼의 영향력을 줄 수 있는지 즉 소명 의식에 관한 단계예요. 앞서 말한 공간 디자인 브랜드뿐 아니라 다양한 사업을 꾸려오면서 항상 잊지 않았던 건, 브랜드를 경험한 사람들의 인식과 의식을 얼마나 바꿀 수 있고 또 그럴 만한 경험을 줄 수 있는지에 대한 생각이었어요. 제가 1년 동안 소화할 수 있는 프로젝트는 한정적이고 아무리 많은 프로젝트를 하더라도 인생은 한계가 있으니까, ‘그러면 나는 어떻게 살아가는 게 맞나?’라는 걸 10여 년간 고민하게 됐죠. 나이가 들어서 죽더라도 혹은 내가 이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는 상황이 되더라도 누군가한테 오랫동안 영향을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무얼 할지에 대한 답으로는 슬럼프를 이겨내게 해준 요리가 떠올랐고요. 

베베를 만난 이후에 또 다른 고비가 찾아왔던 건가요? 

맞아요. 사람들이 머무는 영역을 만드는 업은 계약과 미팅, 몇 차례에 걸친 설계와 시공, 마무리까지 호흡이 정말 길거든요. 이만한 집도 두 달은 걸리고 건축까지 포함하는 프로젝트라면 3년은 족히 잡아야 해요. 그 긴 시간 동안 창조와 더불어 리스크를 감수하고 변수에 대처하는 일은 업무 강도가 절대 가벼울리 없겠죠. 거기서 오는 스트레스나 번아웃을 저는 요리로 해소했어요. 끼니를 직접 만들어 챙기는 건 자기 자신에 대해 만족감을 주고, 굉장히 짧은 시간 안에 나의 창의성을 보여줄 수 있잖아요. 손질부터 시작해 재료 형태를 바꾸고 적절한 것들을 넣거나 빼면서 마지막에 가니시를 올리는 과정은 건축과도 꽤 비슷하고요. 그리고 그 요리를 혼자 먹을 때도 좋지만 다른 이들과 나누면서 관계에서 비롯된 긍정적인 영향도 받을 수 있어요. 누군가에게 식사를 대접하는 설렘과 기쁨, 식사하는 동안에 나누는 대화나 교감 같은 것들 덕분에요. 아, 혹시 요리라는 말이 어떤 뜻으로 이루어져 있는지 아세요? 

 

잘 모르겠어요. 어떤 뜻이에요? 

무언가 정의를 알고 싶을 때 말의 한자 뜻을 찾아보는 걸 좋아해서 요리도 검색해 본 적 있어요. 요는 ‘헤아릴 요 料’인데 뜯어보면 ‘쌀 미’, 단위 용량이나 퍼내는 용기를 뜻하는 ‘말 두’가 함께 있더라고요. 쌀을 뜨는 일은 헤아림이 필요하다는 의미로 만들었겠죠? 거기다 제 시선을 더해보자면, 쌀의 관점이 아니라 요리를 먹는 사람의 관점에서도 헤아림이 들어가야 된다고 생각해요. 먹는 사람이 될 나 또는 타인이 어떤지 헤아린 후에 요리라는 행위로 이어져야 한다고요. 그렇게 비롯된 함께하는 시간과 공간은 두터운 관계를 만드는 힘이 있다고 믿어요. 생각해 보면 저한테는 요리보다도 그걸 매개로 이루어지는 관계가 더 소중해요. 

 

단어 의미에 대한 이야기를 좀더 해보자면, MMK 는 ‘뮤지엄 오브 모던 키친’의 영문 첫 글자를 딴 거죠. 

‘모던’은 새로움을 말하잖아요. 산업혁명 직후에 등장한 단어가 현재까지 쓰이는데 앞으로도 그 말은 사라지지 않고 새로운 것들에 따라붙을 거예요. 우리도 늘 새로움을 추구하는 존재들이라는 생각으로 그 단어를 썼어요. 그리고 ‘뮤지엄’은 제가 여행을 다닐 때마다 꼭 들르는 곳이 박물관이나 미술관인데, 오래전부터 시공간에 남겨진 기록을 소장하는 곳을 말하죠. 우리가 만드는 부엌도 누군가의 시간을 소장하고, 다른 이들에게도 전달하는 역할을 하길 바라며 단어들을 조합했어요. 이름이 정해진 후에는 팀 구성원이 함께 나아갈 방향으로 “We Build Kitchen Culture(우리는 주방 문화를 만든다.)”라는 슬로건도 정했고요.

그런 마음가짐 아래 선보이는 MMK 의 주방 가구에 대한 소개를 듣고 싶어요. 

MMK 의 키친 프로덕트는 몇 가지 타입이 있어요. 보통 MMK라고 한다면 미니멀한 느낌과 개인의 취향이 담긴 컬러 배색 디자인을 곧잘 떠올리시더라고요. 먼저 ‘에센셜’ 타입은 작업대 전면부의 마감재를 우드와 컬러, 메탈 중에 선택할 수 있고 열여섯 가지 컬러 배색이나 여섯 가지 손잡이 타입 등을 활용해 취향을 오롯이 담아낼 수 있죠. ‘센추리’는 미드센추리 시대의 특징을 재해석한 디자인으로 전면부 겉면과 서랍 내부의 컬러가 달라 부엌의 새로운 재미 요소가 되어줘요. ‘무빙’은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는 구조로 기능뿐 아니라 조형미까지 보여주는 타입이고요. 이외에도 ‘컬래버레이션’과 ‘누드’, ‘엣지’ 타입으로 구분되고 테이블과 의자를 비롯해 선반이나 트롤리, 상하부장과 램프도 선보이고 있어요. 전부 디자인이나 소재, 디테일, 브랜드와 고객 간의 균형을 생각하면서 세심하게 만든 것들이에요. 

 

브랜드를 이끌어 오면서 어떤 고객들을 마주하고 싶다는 바람도 있을 텐데요. 

우리가 지향하는 슬로건을 이루려면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MMK 를 누려야 해요. 그런데 아무리 아름답고 쓸모 있는 걸 만든다 하더라도 보는 이들이 브랜드를 소비할 능력이 없다면, 한 걸음이라도 다가올 만한 마음을 끌지 못한다면 뜬구름을 잡는 것밖에 안 되잖아요. 그래서 특수 계층만 누리는 하이엔드나 단순히 저가로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브랜드가 아닌, 높은 디자인 감도를 합리적인 가격대로 안내하는 브랜드가 되기로 했죠. 생산에 대한 효율성을 확보해서 적절한 선에서 단가를 유지하면서, 누군가의 로망이 되어줄 가격대를 설정했어요. 로망이 필요한 이유는, 그래야 나의 재화와 교환해 얻는 무언가에 대한 가치를 느끼기 때문이에요. 어느 정도 문턱이 존재해야 로망을 이루기 위해 작게는 하루의 모습부터 바꿀 테고, 스스로 긍정적인 힘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거예요. 

 

규모가 큰 가구 외에도 ‘히어리 세라믹스’와 세라미스트 김민선의 ‘선과선분’, 공예 아티스트 오유우 등과 협업하여 식기를 선보였잖아요. MMK만의 티 타월, 테이블웨어 등 주방에 실용과 생기를 더해줄 작은 소품들도 매력적으로 보였어요. 

주방을 당장 바꿀 여력이 안 된다면 우리를 로망이 아닌 꿈처럼 바라보다 끝나버릴지도 몰라요. 단순히 비용 문제가 아니라 혼자 자취하거나 나만의 공간이 아직 없는 분들도 있잖아요. 아티스트와 협업하거나 우리만의 큐레이션으로 소개하는 소품들을 통해 MMK 를 보다 가벼운 마음으로 곁 할 수 있도록 접점을 찍었어요. 우리의 분위기가 좋다면 앞치마 하나, 플레이트 하나를 구매해서 그날 식사에 입고 쓴다면 기분부터 달라질 거예요. 마치 박물관이나 미술관에서 전시를 다 본 후에 아트숍에 들러 좋아하는 소품 몇 가지를 고르는 마음의 무게와 비슷하겠죠? 부엌에 서는 일도 좀더 즐거워질 테고요. 로망을 현실로 이루어 내기까지, 그 과정에 대한 접점을 단단히 해두고 싶어요.

대표님은 공간이 그 안에 머무는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잘 알고 계신 듯해요. 공간을 다루는 업에 오랜 시간 임하면서, 자연스레 체득한 깨달음이겠죠. 

생각을 바꾸려면 환경이 먼저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주어진 목적성과 역할이 사용자에게 만족감 있게 전달된다면 우리는 좋은 공간 안에서 머문다고 할 수 있을 텐데요. 변화가 필요하다는 느낌이 들었다면 사무실이나 집, 별거 아닌 방만 바꾸더라도 충분한 환기가 돼요. 그중에서도 주방이 나답게, 내 마음에 든다면 거기 서서 요리하거나 그 요리를 즐기는 시간을 내고 싶은 건 당연한 순리죠. 주방을 바꾸는 건 참 어려운 결정이고, 수행 과정에 물리적으로 들어가야 할 것들이 무척 많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획적으로 준비한다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하면 좋겠어요. ‘다 바꿔야 하니까 못 할 거야.’가 아니라 ‘이렇게 한다면 나의 삶이 굉장히 바뀔 거야.’라는 마음가짐으로요. 

 

부엌을 둘러싼 이야기로 한참 긴 대화를 나눴네요. 마지막으로, 대표님이 생각하는 기분 좋은 식사 시간에 대해 듣고 싶어요. 

기분이 좋다라…. 기억에 오래 남는 식사 시간을 말하는 것 같아요. 우리가 누군가와 밥을 먹을 때 어떤 사람은 본인 이야기만 하느라 바쁘고, 다른 누군가는 이야기 대신 묵묵히 밥만 먹기도 하죠. 그런데 그 식사 자리에 있는 사람들과 마음이 잘 통하면 말수가 적은 분들도 자기 이야기를 꺼내고, 말이 많은 분들도 다른 이의 이야기를 듣게 되는 순간이 생기더라고요. 저는 그걸 교감이라고 생각하거든요. 본인만이 가진 성향이 분명히 있지만 그걸 앞세우기보다 서로 배려해 주는 모습들이요. 그 순간이야말로 오래도록 간직하고 싶은 기분 좋은 식사 시간 아닐까요?

그동안 가까운 이들과 어떤 집에 살고 싶은지, 어느 동네를 좋아하는지 이야기 나눈 적은 많지만 어떤 주방을 갖고 싶은지는 물은 적 없다. 분명 성실하고 단정한 태도로 하루 세 번, 끼니를 잘 챙겨 먹는 일이 나와 가깝지 않다고 여겼기 때문일 테다. 하지만 그와 이야기를 나눈 후에 두 가지가 분명해졌다. 주방은 나의 삶에 빼놓을 수 없는 공간이라는 것. 그리고 주방에서의 시간을 아는 만큼 나에 대한 이해가 높아진다는 것. 끼니를 준비하는 일에 서툴더라도 일상을 살아낼 힘을 얻는 그곳에서의 시간을 다시금 되짚어 보고 싶어졌다. 이후에는 내가 어떤 모양의 궤도를 만들고 싶은지 스스로 선택하고 나아가면 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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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이명주

포토그래퍼 강현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