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는 사람을 아는 공간에서

박기민 — MMK

우리에게 주방은 어떤 공간일까. 끼니를 채우는 동안에만 머무르는 곳, 어느 집에나 있지만 그다지 눈여겨보지 않던 곳, 모두가 같은 모양에 같은 쓰임만을 가진다고 생각하는 곳. 오랫동안 공간 디자이너로 활약한 박기민 대표의 키친 퍼니처 브랜드 ‘MMKMuseum of Modern Kitchen’는 다른 답을 말한다. 주방은 쓰는 사람의 취향과 목적을 분명히 드러낼 수 있는 가능성을 품은 곳이고, 그 공간이 변한다면 그 안에서의 매일도 달라진다고. 그가 제안하는 주방의 면면이 우리에게 매력적인 이유는 아름다운 미감과 높은 실용성뿐 아니라, 그 너머로 쓰는 사람을 형형히 바라보기 때문이다.

이쯤에서 MMK의 시작을 물어보고 싶어요. 주방을 위한 브랜드를 어떤 계기로 시작하게 됐어요? 

저에겐 직업을 대하는 가치관이 1단계부터 3단계까지 있어요. 첫째는 나의 노동력으로 물리적인 대가를 받는 단계, 둘째는 이 업으로 나의 커리어를 쌓고 그걸 통해서 성취와 보람, 스스로의 희열을 느끼는 단계고요. 셋째는 이 업을 통해서 누군가한테 얼마큼의 영향력을 줄 수 있는지 즉 소명 의식에 관한 단계예요. 앞서 말한 공간 디자인 브랜드뿐 아니라 다양한 사업을 꾸려오면서 항상 잊지 않았던 건, 브랜드를 경험한 사람들의 인식과 의식을 얼마나 바꿀 수 있고 또 그럴 만한 경험을 줄 수 있는지에 대한 생각이었어요. 제가 1년 동안 소화할 수 있는 프로젝트는 한정적이고 아무리 많은 프로젝트를 하더라도 인생은 한계가 있으니까, ‘그러면 나는 어떻게 살아가는 게 맞나?’라는 걸 10여 년간 고민하게 됐죠. 나이가 들어서 죽더라도 혹은 내가 이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는 상황이 되더라도 누군가한테 오랫동안 영향을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무얼 할지에 대한 답으로는 슬럼프를 이겨내게 해준 요리가 떠올랐고요. 

베베를 만난 이후에 또 다른 고비가 찾아왔던 건가요? 

맞아요. 사람들이 머무는 영역을 만드는 업은 계약과 미팅, 몇 차례에 걸친 설계와 시공, 마무리까지 호흡이 정말 길거든요. 이만한 집도 두 달은 걸리고 건축까지 포함하는 프로젝트라면 3년은 족히 잡아야 해요. 그 긴 시간 동안 창조와 더불어 리스크를 감수하고 변수에 대처하는 일은 업무 강도가 절대 가벼울리 없겠죠. 거기서 오는 스트레스나 번아웃을 저는 요리로 해소했어요. 끼니를 직접 만들어 챙기는 건 자기 자신에 대해 만족감을 주고, 굉장히 짧은 시간 안에 나의 창의성을 보여줄 수 있잖아요. 손질부터 시작해 재료 형태를 바꾸고 적절한 것들을 넣거나 빼면서 마지막에 가니시를 올리는 과정은 건축과도 꽤 비슷하고요. 그리고 그 요리를 혼자 먹을 때도 좋지만 다른 이들과 나누면서 관계에서 비롯된 긍정적인 영향도 받을 수 있어요. 누군가에게 식사를 대접하는 설렘과 기쁨, 식사하는 동안에 나누는 대화나 교감 같은 것들 덕분에요. 아, 혹시 요리라는 말이 어떤 뜻으로 이루어져 있는지 아세요? 

 

잘 모르겠어요. 어떤 뜻이에요? 

무언가 정의를 알고 싶을 때 말의 한자 뜻을 찾아보는 걸 좋아해서 요리도 검색해 본 적 있어요. 요는 ‘헤아릴 요 料’인데 뜯어보면 ‘쌀 미’, 단위 용량이나 퍼내는 용기를 뜻하는 ‘말 두’가 함께 있더라고요. 쌀을 뜨는 일은 헤아림이 필요하다는 의미로 만들었겠죠? 거기다 제 시선을 더해보자면, 쌀의 관점이 아니라 요리를 먹는 사람의 관점에서도 헤아림이 들어가야 된다고 생각해요. 먹는 사람이 될 나 또는 타인이 어떤지 헤아린 후에 요리라는 행위로 이어져야 한다고요. 그렇게 비롯된 함께하는 시간과 공간은 두터운 관계를 만드는 힘이 있다고 믿어요. 생각해 보면 저한테는 요리보다도 그걸 매개로 이루어지는 관계가 더 소중해요. 

더 많은 이야기가 궁금하신가요?
AROUND Club에 가입하고 모든 기사를 읽어보세요.

AROUND는 우리 주변의 작은 것에 귀 기울이고 그 안에서 가치를 발견합니다.

에디터 이명주

포토그래퍼 강현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