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 떡이 좋다

KOREAN SWEET

쌀 떡이 좋다
KOREAN SWEET

흑임자 떡, 백설기, 찹쌀떡, 꿀떡. 할머니 입맛이라 불릴 정도로 빵보단 떡이 좋다. 추석 즈음이 오면 일주일 내내 송편만 찾기도 한다. 굳이 추석이 아니더라도, 고소하고 달콤한 콩가루가 듬뿍 들어간 송편이 너무나도 생각나 참을 수 없게 될 때가 있다. 그러면 얼마 남지 않은 동네 방앗간에서 쌀가루를 내온다. 빻아온 쌀가루를 치대고, 소를 만든 후 열심히 송편을 빚어 쪄 먹기도 한다. 전문가가 아닌지라 떡이 아닌 밥 비스름한 것이 탄생하고 만다. 그래서 나섰다. 365일 내내 정성스레 빚은 떡을 먹고 싶어서.

골목마다, 상가마다
자리하던 그곳

주변에 떡을 좋아하는 사람이 많지 않다. 아니, 거의 없다고 보는 것이 맞을까. 어쩌다 시루떡을 먹게 되어 양손에 쥐고 허겁지겁 먹은 적이 있는데, 참 희한하다며 요즘 애 치고 떡을 이렇게 좋아하는 사람 처음 봤다는 소리를 들었다. 나로선 쫀득하면서 달달하고 고소하기까지 한 이 맛이 싫다는 것이 더 의아하다. 그러면서도 원인 모를 뿌듯함을 느끼기도 한다. 떡 만큼은 우리 전통을 지키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든 달까. 집에서 송편을 해 먹고 싶을 때, 찹쌀떡을 만들어 보고 싶을 때나, 참고할 수 있는 책을 찾아보지만 떡에 관한 레시피 북이 많지 않다. 외국 디저트에 관한 레시피 북은 분야별로 쏟아지지만. 간혹 서점에서 떡을 주제로 한 책을 보면 반갑다. 구매하진 못하더라도 꼭 열어본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달콤한 무언가가 생각나면, 서양 디저트를 찾는다. 초콜릿과 케이크, 비스킷이나 쿠키, 간소하게는 달달한 라떼라도. 집에서 5분만 걸어 나오면 이 모든 걸 한번에 얻을 수 있으니 금세 기분이 풀릴 수 있다. 하지만 나에게는 그다지 효력이 없다. 이름부터 서양 냄새가 풍기는 것들보단 고소하거나 구수한 냄새가 나는 것이 좋다.

언젠가부터 전통 방앗간은 고사하고 동네마다, 골목마다 자리하던 떡집도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대신 하나 건너 하나꼴로 카페가 들어서 있다. 싫다는 것은 아니다. 나조차도 하루 두 잔씩은 커피를 마셔야 하는 사람이니까. 그래도 그 중 한군데는 떡을 파는 곳이라면 삭막한 골목도 조금은 따뜻해지지 않을까.떡 애호가로서 다행인 것은, 자세히 들여다보면 떡을 알리기 위해 동분서주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점이다. 아직도 오랜 전통을 따르며 떡을 만들고 있는 장인, 약간은 현대화에 맞춰 퓨전 떡을 선보이는 떡 명장, 떡 전문 프랜차이즈, 떡 카페 등. 잊힐 뻔한 우리네 전통 디저트를 다시 살리려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이다. 

요즘은 한식의 세계화에 더불어 떡도 세계적으로 알려지고 있는 추세다. 또한 강연이나 방송에서 땀이 흐르는지도 모른 채 열정적으로 떡을 알려주는 사람을 보면 옆에서 찹쌀이라도 치대어주고 싶다. 사실 인터넷 검색창에 ‘떡’이라고 치면 판매하는 곳이 많기는 하다. 하지만 공장에서 찍어낸 떡이 아닌 정성과 시간을 들여, 손맛이 담긴, 애정이 담긴 그런 떡을 내주는 곳을 찾고 싶었던 거다. 전통 차든 커피든 따뜻한 음료도 함께 곁들이며 떡 한상차림을 받아볼 수 있는, 그런 공간 말이다.

떡, 한상차림
합 合

A. 서울시 강남구 도산대로61길 10 라임빌딩

T. 070 4209 0819

서울 시내 모든 골목 중에 제일 고급스럽다는 청담동 골목길에서 ‘떡’이란 문화를 지키고 있다. 떡집이자 떡 연구소이자 떡 카페다.

많고 많은 디저트들 중 굳이 떡에 꽂힌 이유가 있나요?
‘지화자’라는 떡집에서 일을 했는데 그곳이 문을 닫게 되었어요. 그때 내가 떡집을 해야겠다고 느꼈죠. 동네마다, 상가마다 있던 떡집들이 많이 없어지고 있잖아요. 눈에 보일 정도로 사라져서 이건 아닌 것 같다고 느꼈어요. 나라도 해야겠다고 생각했죠. 사실 개업 당시, 3년 정도 떡집을 하고 접으려고 했어요. 떡 집 운영이 몸도 마음도 힘들기 때문에. 하다 보니 지금은 그만둘 수 없는, 사명감 같은 것이 생긴 것 같아요. 그리고 저 스스로 뿌듯해요.

‘합合’의 뜻이 뭐예요?
이 가게 이름 정할 때, 딱 두 가지만 생각했어요. 합이라는 것을 왜 하는지 근본적으로 생각해봤죠. 제가 당시 결혼한 지 1년 반 정도 되었을 때인데, 와이프는 계속 일본에 살고 있었고 저는 한국에 살고 있었어요. 가게를 하고 번창해서 합쳐서 살 수 있기를 바라는 염원을 담아 합이라고 지은 것이 첫 번째예요. 두 번째는 워낙 ‘합’이라는 그릇을 좋아해요. 뚜껑이 있는 그릇. 여러 단 겹쳐져 있고 뚜껑을 닫는 통을 ‘찬합’이라고 하잖아요. 물론 찬합의 ‘합’과 한자 자체는 틀리지만, 음이 같으니까 의미를 부여해봤어요. 그리고 옛날에는 다 찬합에 음식을 담고 뚜껑 덮고 보자기 포장을 해서 선물을 했단 말이에요. 저는 떡을 ‘합’에다가 담아서 팔아야겠다고 생각했죠. 합이라는 이름 안에 ‘떡을 선물하는 가게’라는 의미를 담고 싶었어요.

떡 연구실 겸 떡 만드는 곳이잖아요. 매일 어느 정도의 떡을 만드세요?
매일 아침 떡을 만드는데, 매장 판매용 떡을 많이 만들어놓지는 않아요. 대량 만들어 놓을 수 있는 시스템도 아니고, 떡 종류 자체도 대량 생산할 수 없는 것들이에요. 판매는 보통 예약으로 많이 이루어져요. 기존 선보이는 것 말고도 원하는 떡을 말씀해주시면 거의 만들어드려요.

만드는 방식은 전통방식 그대로인가요?
떡을 만드는 과정 자체는 전통방식을 따르지만 도구는 프랑스에서 배워온 것들을 접목했어요. 오븐을 이용해서 떡을 만들어요. 보통 오븐을 굽는 용으로만 생각하지만, 저는 스팀 오븐을 사용해요. 스팀 오븐에 찌면서 굽는 것이죠. 예를 들어, 증편 같은 경우는 보통 발효시킨 후 스팀기에 찌거든요. 전 오븐 스팀기능을 이용해서 오븐에서 찌는 방식을 선호해요. 온도와 습도를 완벽히 맞춰놓고요. 증편 만들기가 굉장히 어려워요. 국내에서 증편을 본인 가게에서 만들어 파는 곳은 거의 5퍼센트 이내일 거예요. 그만큼 까다롭죠. 막걸리를 이용해 오랫동안 발효를 시켜야 하기도 하고요. 전통방식으로 발효도 시켜 만들지만 도구사용만 달리하는 거죠.

다른 떡 같은 경우에는요?
종류에 따라서 약간씩 달라요. 약과는 보통 튀겨서 만드는데, 전 기름 사용을 지양해서 구워 만들고 있어요. 인절미는 전통방식을 따라요. 요즘에는 보통 ‘펀칭기’라는 것을 쓰거든요. 가정용 식빵기계 보신 적 있어요? 밑에 보면 프로펠러 같은 팬이 달려 있는데, 그게 돌아가면서 반죽을 섞고 치대 주는 방식이에요. 근데 전통방식은 절구에 반죽을 넣고 방망이로 찧잖아요. 그럼 반죽이 오목해져요. 오목해진 반죽을 접고. 또 찧고 접고를 반복하면 떡 안에 공기층이 생겨요. 그러면 떡이 더 부드러워지고 빨리 안 굳거든요. 그래서 2~3일정도까지 부드럽게 먹을 수 있어요. 펀칭기를 이용하면 공기 층이 생기지 않아요. 그래서 빨리 굳어버리는 거죠. 식감은 더 쫄깃하죠. 각자 장단점이 있는 것 같아요.

그러고 보니까 카페 인테리어에서도 동서양의 조화가 느껴져요.
떡집이기는 하지만 서양의 앤티크한 장식품들이 있어요. 무조건 전통 그릇에 전통 찻잔을 쓰는 게 아니라 서양 앤티크와 한국의 전통적인 면을 같이 보여주는 거죠. 한국 젊은 친구들에게 우리 전통문화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으면, 대부분 약간 촌스러운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근데 이유가 있다고 생각해요. 조선 시대 다음이 개화기였는데, 그때가 일제 강점기잖아요. 우리나라 개화기는 서양문화랑 일본문화가 만나서 만들어진 거죠. 전쟁으로 그나마도 대부분이 없어지고 부서지고. 바로 미국 문화가 들어왔잖아요? 그래서 전통이라고 하면 바로 조선 시대를 생각하게 되는 거죠. 전통이라는 것이 사실 무조건 옛날 것이 아니라 계속 바뀌는 것 같아요. 시간이 지나서 현재를 생각하면 그것도 전통이지 않을까. 그래서 계속 문맥이 이어져야 하는데, 우리나라는 중간에 큰 부분이 단절된 거죠. 아무리 조선시대에 아름다웠던 것도 중간 과정 없이 그대로 받아들이라고 하면 사실 어색할 수 있거든요. 안타까워요. 얘기가 좀 역사적으로 빠졌네요. 아무튼 저는 개화기 때, 우리 문화와 서양문화가 제대로 만났으면 어떤 모습이었을까 상상을 해 봤던 거죠.

영감을 얻은 부분이 있으세요?
<스캔들>이란 영화가 있죠. 사극임에도 배경 음악으로 쳄발로로 치는 바로크 음악을 사용했어요. 조선 시대 당시 서양은 바로크 시대였던 거예요. 그래서 시대를 맞춘 거죠. 너무 잘 어울려서 감동 받았어요. 지역과 나라는 다르지만 시대가 같으면 이렇게 어우러질 수도 있구나. 그래서 저는 그냥 한국적인 것에 서양의 앤티크를 무작위로 접목해 보고 있어요. 그래서 떡도 무조건 도자기에 담아내지 않아요. 케이크나 마카롱 스탠드라든지 서양적인 것에 담아서 내기도 해요.

그릇 중에 놋 쟁반이 예뻐요.
놋 쟁반은 제가 디자인해서 만들었어요. 나머지는 일본에서 사 온 것도 있고 한국에서 산 것도 있어요. 워낙 그릇 모으는 것을 좋아해요. 저희 팥빙수 그릇은 이세웅 선생님이 직접 만드신 거예요. 팬이거든요(웃음). 최근에는 서울대 학생들 작품에 꽂혀있어요. 졸업작품 전시회에 가서 굉장히 많이 사 왔죠. 거의 모든 작품들이 절판이에요. 완성도가 높은 작품들이 많은 것 같아요. 목숨 걸고 사는 분들도 있더라고요.

요즘 개인 떡집 대신 떡 프랜차이즈들이 생겼어요.
그렇게라도 떡이라는 것이 우리 주변에 있어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근데 그런 곳들조차도 장사가 안되는 곳이 많아요. 빵 같은 경우 전 세계에 빵집이 있잖아요. 우리나라 사람들이 빵에 신경을 안 써도 계속 발전할 거예요. 레시피도 계속 업그레이드되고. 근데 떡은 한국밖에 없는 것이기 때문에 한국인이 안 하면 바로 없어져 버리는 것이에요. 그래서 어떤 식으로라도 떡이 주변에 보였으면 하는 마음이죠.

떡을 지키기 위해서 앞으로도 고군분투 부탁해요(웃음).
그럼요! 지금 합에서 보여드리는 떡들 외에 백설기 같은 기본적인 떡도 선보일 예정이에요. 작업실을 한 군데 더 만들 생각이고요. 새로운 떡 개발을 위함이죠. 세계에 어떻게 알릴지 고심도 해요. 사실 해외에서 지금 쌀에 대한 관심이 대단하거든요. 신기한 것이 한국에선 다이어트할 때 샐러드에 빵 먹잖아요. 근데 외국은 밥 먹거든요(웃음). 좀 아이러니하죠? 어쨌든 그만큼 쌀을 매력적인 재료로 인식하고 있고, 그걸로 만든 떡에도 관심이 많을 것이라고 보고 있어요. 쌀을 이용해 떡을 만드는 나라는 우리나라밖에 없거든요. 유일하게. 자랑스럽고 꼭 지켜야 하는 것이죠.

합의 한상차림

증편 막걸리로 발효시켜 전통 증편 그대로의 맛을 즐길 수 있다.
주악 한입에 쏙 들어가는 크기로 간편하게 즐길 수 있다.
약과 적당한 당도로 남녀노소 누구나 좋아하는 맛.
인절미 흑임자 인절미와 콩가루 인절미. 전통방식으로 반죽하고 스팀 오븐에 쪄내 부드럽다.
오죽 검은 대나무로 만든 떡 디저트용 젓가락.

떡 스탠드 프랑스 브랜드 에르퀴스Ericuis의 제품으로 본래는 마카롱 스탠드. 앤티크한 디자인이 떡과 잘 어울린다.
배숙 배와 생강이 들어간 차갑게 마시는 여름 음료. 시원하지만 생강이 들어가 속은 따뜻하다. 겨울에 따뜻하게 데워 마시면 감기나 목 보호에 굉장히 좋다.

AROUND 온라인 구독

어라운드의 모든 콘텐츠를 무제한으로 읽어보세요.

구독 시작하기

에디터 정혜미

포토그래퍼 안선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