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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귀 맞은 영혼》
실연 후의 심리학
사랑을 잃으면 내가 궁금해진다. 배르벨 바르데츠키의 심리치료에 관한 책 《따귀 맞은 영혼》은 우리에게 달라지라고,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렸다고 비난하거나 등 떠밀지 않는다. 대신 우리가 가진 상처, 콤플렉스, 두려움 속으로 차근차근 걸어 들어갈 수 있도록 도와준다.
어느 날 소개팅으로 만난 남자에게서 전화가 왔다. “뭐 해요?”, “영화 보고 있어요.”, “무슨 영화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그러자 그 남자가 말했다. “아아, 그 장애인의 사랑을 상큼하고 산뜻하게 그린 일본 영화!”
그 말을 듣고 나는 아연실색해서 황급히 전화를 끊었다. 사실 나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이라는 영화를 보면서 대성통곡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 영화를 장애인의 산뜻하고 상큼한 사랑 어쩌고저쩌고 라고 평을 하는 감각도 없고 감성도 무딘 남자와는 두 번 볼 것도 없었다.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은 평범한 대학생 츠네오가 우연히 만난 하반신 마비 장애인 소녀인 조제와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다. 맞다. 장애인의 사랑을 그린 것은. 하지만 그게 상큼하고 산뜻했다니, 이렇게 안 맞을 수가. 그 영화를 보고 그렇게나 울었던 이유는 조제가 나 같아서였다. 아니, 조제가 바로 나였다. 물론 내게 조제처럼 장애가 있는 건 아니다. 하지만 내게는 마음의 장애가 있다고 그때는 생각했다. 왜, 20대 초반쯤에는 다들 그런 생각을 하지 않나. 자신의 상처를 동족상잔의 비극, 이산가족의 아픔보다 더한 것으로 치장할 수 있는 것도 그때다. 세상 모든 것을 나를 중심으로 바라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때의 우정이라는 것은 사실 대가를 바라는 우정에 가깝고, 그때의 사랑이라는 것은 상대를 사랑하는 나를 사랑하는 것에 가깝다.
그 나이쯤 하게 되는 첫사랑이 이루어질 확률이 낮은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나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확인했을 때, 이 기적이 잘 믿기지 않는다. 엄마 품에서 떨어져 세상을 나 혼자만의 힘으로 헤쳐나가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후부터 우리는 끝도 없는 허기와 같은 외로움, 그리고 두려움에 시달려왔다. 그런데 그 외로움과 두려움을 일거에 소탕해줄 짝을 드디어 찾게 된 것이다. 유레카! 우리는 상대에게 이제껏 겪고 입었던 고통과 상처를 달래 달라고 요구하기 시작한다. 우리가 하려는 짓은 이제는 엄마에게는 할 수 없는 짓, 그러니까 어리광이다.
그래서 조제가 츠네오를 만났을 때처럼, 업힐 수 있는 상대가 생기자 나는 그의 등에서 내려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아마 세상 어딘가 살고 있을 나의 첫사랑은 나를 돌아이로 기억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누구도 나를 이해하지 못해도, 심지어 나 자신도 나를 이해하지 못해도 너만은 나를 이해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내가 아무리 못된 짓을 해도 너는 나를 떠나서는 안 된다고도 생각했다. 이렇게 못되게 굴어도 날 떠나지 않으면 그게 날 진정으로 사랑한다는 뜻이리라는 멍청한 생각을 그때는 했다. 적당히 해야 했는데 너무 심했다. 나는 호랑이를 보고 싶고 물고기를 보고 싶다고 칭얼대는 조제처럼 끝도 없이 칭얼댔다. 당연히 그에게는 등에 업힌 내가 너무 무거웠을 테고, 견디다 못해 나를 바닥에 내팽개치고 달아나버렸다.
그래서 그와 헤어진 지 2년이나 지난 후에, 츠네오의 등에 업혀 물고기를 보러 가자고 아이처럼 응석을 부리는 조제를 보면서 나는 엉엉 울 수밖에 없었다. 그런 조제가 지어준 맛있는 밥을 마지막으로 얻어먹고 쿨하게 작별 인사를 하고 나와 새 여자친구를 만나더니 갑자기 길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엉엉 우는 츠네오를 보면서는 아예 땅을 치며 통곡했다.
사랑이 끝나면 우리는 방바닥에 엎드려 휴지를 몇 롤씩 써가면서 울거나, 매일 술독에 빠져 살거나, 머리를 자르거나, 여행을 가거나, 상대에게 복수하거나 하는 식으로 애도의 기간을 가진다. 이 기간이 지나고 나면 우리는 회복기를 지난 환자처럼 비틀거리며 세상 밖으로 나선다. 이제 우리에게는 재활 훈련이 필요하다. 그런데 재활 훈련을 제대로 해내기 위한 첫걸음은 그 사랑이 실패로 끝난 이유에 대해서 생각하는 일이다.
배르벨 바르데츠키의 《따귀 맞은 영혼》은 한때 내가 경전처럼 받들어 모시던 책이다. ‘마음의 상처에서 벗어나는 법’이라는 부제를 단 이 책은 이런 이야기로 시작한다. 극장의 매표소에서 내 앞사람에게 마지막 표가 주어졌을 때, 사무실 동료가 훈계조로 비난했을 때, 애인이 거리를 두자고 했을 때, 구직에 실패했을 때, 아는 사람의 파티에 초대받지 못했을 때 우리는 마음이 상한다. 상대의 진짜 마음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말이다. 이 이야기를 읽으면서 나는 이 책이 나에게 뭔가를 줄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하기 시작했다.
사랑에 실패했는데 왜 연애가 아닌 심리에 관한 책을 고르는 걸까? 이제 우리는 사랑의 문제가 다른 모든 문제와 연결되어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우리가 한 인간으로 제대로 서지 못하면 또다시 같은 실수를 저지를 것을 알기 때문이다. 상대를 계속해서 갈아치우는 거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것 또한 알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가 사랑에 실패한 이유는 우리의 성적 매력이나 외모의 아름답고 추함, 외적인 조건이 아니라 우리가 가진 인간적 결함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는 것도 알기 때문이다. 그걸 아는 건 우리가 자신을 스스로 책임을 져야 하는 어른이기 때문이다.
내가 실연을 통해 깨달은 나의 문제는 이랬다. 나는 나 자신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내가 원하는 기준에 도달하기에 나는 너무 부족한 인간이었다. 아무리 노력해도 그런 나를 바꾸기는 힘들었다. 쉽게 좌절했고 잘 상처받았다. 동시에 사람들과 불화했고 세상과 싸웠다. 그런 기분은 비바람이 미친 듯이 부는 날 비닐로 만든 얇은 비옷 하나 입고 거리를 걷는 기분과 비슷했다. 그런 사람이 제대로 된 연애를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런데 바르데츠키의 책은 단순히 ‘남들 생각 따위에는 신경 쓰지 마라’, ‘쿨하게 살라’고 선동하는 대신, 차근차근 마음의 상처 속으로 걸어 들어갈 수 있게 도와준다. 그리하여 우리는 자신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왜 별것 아닌 일에도 불같이 화를 내는지,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도대체 그 두려움은 어디에서 왔는지를.
이런 심리 치료법을 게슈탈트 치료법이라고 부르는데, 이는 상담을 받는 사람이 잃어버린 자신의 일부를 만날 수 있게 해주는 치료법이라고 한다.
물론 심리 상담 책의 판에 박힌 ‘내면의 어린아이를 찾아 그 아이를 잘 달래주라’는 어조는 처음에는 솔깃하지만 자주 듣다 보면 김이 빠지는 면이 있다. 심지어 나는 자기 자신을 가엾게 여기는 사람들을 못 견디는 못된 성미의 소유자다. 그런데 이 책은 이런 글로 나를 홀렸다.
배르벨 바르데츠키는 우리가 완벽한 인간이 될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하지 않는다. 그리고 우리가 상처받지 않고 살 수 있을 거라고 약속하지도 않는다. 대신 그녀는 상처와 두려움, 불완전함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한다.
이는 내가 들은 어떤 조언보다 마음을 편하게 만들어 줬다. 나처럼 저 높은 곳에 있는 완벽함을 바라보느라 발에 걸리는 것을 다 걷어차 버리는 사람에게는 특히 그랬다. 바르데츠키는 ‘자기야말로 자신을 가장 심하게 비난하는 사람이라는 것, 자신에게 높은 목표를 설정해놓고 어떤 실수도 용납하지 않는 장본인이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자신’이라고 말한다. 결국 연애에서나 일에서나 인간관계에서나 삶 전반에서 내가 겪었던 어려움의 이유 역시 내가 스스로에게 거는 무거운 기대 때문이었을지도 몰랐다.
앞서 이야기했지만 바르데츠키를 비롯한 많은 심리 상담가들은 우리가 어린 시절이나 과거에 받은 상처부터 달래주어야 한다고 말한다. 물론 그런 시간도 필요하다. 하지만 내 생각에는 어느 정도 나이를 먹고 나면 그 상처는 이제 내 일부가 된다. 절대로 지워지지 않는 반점이나 조제의 장애처럼 말이다. 벗어날 수도 덜어낼 수도 없다. 그렇다면 끝도 없이 누군가를 원망하거나 자신을 미워하기보다는, 상처와 문제와 장애를 안고도 어떻게든 살아나가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할머니 없이, 츠네오 없이도 혼자 살아나가는 조제처럼. 전동 휠체어를 타고 혼자 장을 보고 조용한 집에서 묵묵하게 요리를 하는 조제처럼. 요리가 끝난 후에는 가슴이 철렁할 정도로 의자에서 쿵, 하고 담담하게 떨어지는 조제처럼.
아무튼 바르데츠키의 조언에 따라 나 자신에게 관대해지기로 한 끝에 나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을 완전히 헛짚은 남자에게도 한 번 더 기회를 주기로 했다. 다행히 그 남자는 아직 나를 버리지 않았다. 아, 이게 다 《따귀 맞은 영혼》 덕분이다.
에디터 이현아
글 한수희 사진 박선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