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 그리는 사람 lee Soyoung

식물세밀화가 이소영

욕심을 버리고
식물의 형태를 기록하는 일

Botanical Artist 이소영

‘식물세밀화가’라고 들었어요. 전 사실 처음 들어보는 직업이에요.
맞아요. 좀 생소하죠. 저는 식물세밀화를 그리는 일을 하고 있어요.

식물화와 식물세밀화는 다른 것이라고 하던데, 어떻게 다른가요?
식물세밀화는 식물을 식별하기 위해 형태를 그린 그림이에요. 이 작업의 목적은 ‘기록’에 있어요. 아름답게 보여주기 위한 그림이 아니고, 식물의 분류를 위해 정확하게 그리는 거죠. ‘식물학’ 그러니까 ‘과학’ 안의 예술이거든요, 예술학에 속한 것이 아니어서 보기 좋게 그리는 것보단 자세히 관찰하고 정확하게 그리는 것에 집중해요. 식물 연구를 위한 기록이다 보니, 오차가 있으면 안 되거든요.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식물화’와 ‘식물세밀화’가 잘 구분되지 않고 있지만, 학계에선 엄연히 다른 분야로 보고 있고요.

외국에서는 이런 부분이 잘 나뉘어 있나 봐요.
일본이나 유럽의 경우에는 식물학을 수백 년간 연구해왔기 때문에 그만큼 기록물도 많이 남아있어요. 우리는 일제 강점기를 겪으며 당시 일본 식물학자들이 들어와 그들의 연구를 했어요. 그렇다 보니 스스로 시작할 수 있었던 시간은 50년도 안 되어요. 자연스레 기록물이 적을 수밖에 없고, 식물세밀화에 대한 인식도 낮을 수밖에 없죠.

사진으로 기록할 수 있을 텐데, 그림으로 남겨야 하는 이유가 있을까요?
사진기가 생기기 전엔 그림이 유일한 기록 수단이었어요. 지금은 사진기가 생겼으니 그림은 필요 없을 것 같지만, 학술지에선 그림과 사진을 함께 소개해요.

세밀화는 한 페이지에 식물의 형태와 다양한 각도에서 바라본 모습 등을 함께 기록할 수 있거든요. 연구자가 보기에 더 효율적인 방식이죠.

식물세밀화에는 색이 없는 경우가 많던데, 그 이유도 어쩐지 연관이 있을 것 같아요.
맞아요. 색을 입히면 그 강렬함 때문에 식물의 형태보다 색 자체로 인식할 수가 있어요. 그래서 형태로만 구분할 수 있도록 연구에선 색을 사용하지 않아요. 무엇보다 ‘분류키’에 색이 포함되지 않는다는 이유가 가장 커요. 식물을 분류하는 키는 오로지 형태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에 색은 분류키로 보지 않아요. 암술이나 수술의 개수 같은 세세한 것이 오히려 색보다 중요한 분류키예요.

그런데 식물세밀화로 보이는 어떤 그림엔 색이 들어가기도 하던데….
일반 사람들의 흥미를 불러일으켜야 하는 작업엔 색을 넣어요. 연구자들에겐 색이 중요한 부분이 아닐 수 있지만, 일반인은 색이 들어가면 좀 더 집중해서 봐주니까요. 제가 독립출판으로 만든 책 중에 블루베리를 소개하는 책이 있어요. 블루베리라는 커다란 이름 아래에도 다양한 종이 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만든 책인데, 그걸 그릴 땐 색을 사용했어요.

아름다움을 목적으로 하는 작업을 해보고 싶을 때도 있지 않나요?
분명히 있죠. 그럴 땐 개인 작업을 해요. 방금 말씀드린 블루베리도 그런 작업이었고요. 사진으로 찍어두고 SNS에 기록하는 방식 등으로 다양한 개인 작업을 하고 있어요.

식물의 이름을
불러주는 일

식물은 언제부터 좋아했나요?
식물을 좋아하시는 아빠 덕분에 어릴 땐, 산과 들로 놀러 다닐 기회가 잦았고 그때부터 식물을 좋아했던 것 같아요. 아빠의 영향이 컸어요. 원예학 선택을 고민할 때도 다른 어른들은 “취업이 잘 되는 학과를 선택해.”라고 조언했지만, 아빠는 “평생 꽃만 바라보며 사는 일이 얼마나 행복하겠냐.”라고 말씀해주셨어요. 여러모로 아빠의 도움이 컸던 것 같아요.

학교에서 식물세밀화를 배우진 않았을것 같아요. 소영 씨는 어떤 계기로 식물세밀화를 그리게 되었나요?
취업을 앞두고 디자인 공부를 하고 싶어 드로잉을 배우러 갔는데, 선생님이 식물세밀화를 그리는 분이었어요. 전 제가 꼼꼼한 줄 몰랐는데, 뜻밖의 재능을 거기에서 발견했어요. 집착해서 세밀하게 접근하는 내면이 나오더라고요(웃음). 

그렇게 국립수목원에서 식물세밀화가로 일하게 되었군요.
막상 식물세밀화가 그리고 싶어지니 취업문이 좁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우선은 국립수목원의 다른 부서에서 아르바이트부터 시작했어요. 그렇게 식물세밀화를 그리는 부서 근처를 맴돌며 기웃거렸죠.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고 식물세밀화를 그릴 기회를 얻게 되었어요. 4년을 그곳에서 식물세밀화가로 일했고 작년부턴 프리랜서로 일하고 있어요.

왠지 우리나라에 식물세밀화를 그리는 분이 많진 않을 것 같아요.
맞아요. 손에 꼽을 수 있을 정도로 적어요. 그 안에서도 취업을 통해 일할 수 있는 곳은 국립수목원밖에 없어요. 보통은 다른 일을 하며 프리랜서로 세밀화를 그릴 수밖에 없죠.

그래도 요즘엔 식물세밀화에 대한 인식이 전보단 나아졌어요. 예전에는 ‘식물세밀화가’라고 검색하면 거의 정보가 없었는데, 최근에는 교육기관도 생기고 아는 분들도 조금씩 늘어나고 있는 듯해요.

식물화와 식물세밀화가 다르듯, 식물 그리기를 좋아한다고 해서 식물세밀화를 계속 그릴 순 없을 것 같아요. 소영 씨는 어떤 마음으로 식물세밀화를 그리고 있나요?
식물의 종을 기록함으로써, 종의 보존에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늘 갖고 있어요. 수목원에서 일할 땐, 국가적으로 하는 연구가 많았거든요. 식물의 보존에 대해 보고 듣는 것이 많아지니, 책임감이 생기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우리 주변엔 알려지지 않은 식물들이 많고, 그 이름이 정확히 불리는 경우가 드물어요. 그래서 요즘엔 연구 외에 다른 작업을 통해 식물의 이름을 알리려 노력하고 있어요. 사람들이 식물의 이름을 정확히 알면 좋겠단 생각을 해요.

출간하신 책, 《세밀화집, 허브》에서도 그런 마음이 느껴졌어요. ‘허브’라는 이름 아래에 있는 수많은 종의 식물을 세밀화와 함께 소개하고 있더라고요.
보통 허브라고 하면, 외래종으로 들어온 식물만 생각하는 경우가 많아요. 바질, 페퍼민트, 로즈메리 같은 것들요. 하지만 우리가 자주 먹는 마늘이나 양파 같은 것들도 허브 종이거든요. 그런 사실을 알려주고 싶었어요. 식물의 보존은 꼭 새로운 종을 발견하고 연구하는 일에서만 생기는 게 아니라고 생각해요. 누군가가 그 식물의 이름을 불러주는 일이 보존의 시작 아닐까요. 그런 의미에서 더 많은 사람이 식물의 정확한 이름을 알았으면 좋겠어요.

긴 시간을 들여 완성하는
하나의 그림

식물세밀화 하나를 그릴 땐, 얼마만큼 시간이 걸리나요?
그림을 그리는 것 자체는 오래 걸리지 않아요. 세 시간 정도? 하지만 한 가지 종에 대한 식물세밀화를 완성하려면 1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해요. 꽃, 열매 같은 것을 한 종이 안에 그려야 하거든요. 사진을 보고 그리는 게 아니라, 실제로 그 모습을 보고 그리는 거라 사계절동안 관찰해야 하죠.

그 전체적인 과정은 어떤가요?
어떤 식물종을 그려야 한다고 결정이 되면, 그 식물이 속해있는 ‘속’이라는 단위의 식물들과 그들이 어떤 차이점이 있는지 분류키를 찾아요. 우선 유사 종에 대한 정보를 찾아보고 조사한 다음에 자생지 정보를 찾아보고 그 식물이 자생하는 곳으로 가요. 자생지에서 그 식물이 살아있는 모습을 보며 그곳에서 최대한 많이 기록해요. 치수도 다 재고요. 그리고 그걸 채집해요. 채집봉투에 담아 와서 그린 후에는 표본으로 만들죠. 앞서 말했듯 이 과정이 한 번으로 끝나는 게 아니에요. 꽃이 피거나 열매가 열리는 시기가 다 달라서 자생지에 가서 1년 이상을 그 식물을 지켜봐야 제대로 된 식물세밀화가 나올 수 있어요.

식물세밀화를 그리려면, 식물을 잘라 작업실로 갖고 와야만 하잖아요. 식물을 아끼는 사람으로서 그게 마음이 아프진 않나요?
마음이 아프죠. 너무 아프죠. 그래서 채집후 그림을 그리고 나서도 그게 살아 있으면 심어줘요. 하지만 죽어있는 경우가 많죠. 그럴 땐 버리지 않고 식물세밀화가 아닌 다른 기록물을 만들어요. 그래서 시작한 작업이 ‘표본’과 ‘사진 작업’이에요. 식물세밀화를 그리기 위해 채집하는 종은 희귀하거나 보존하고 기록해야 하는 것들만 있거든요. 그렇다 보니, 세밀화와 함께 다른 방식의 기록을 남겨 죽은 식물에 미안한 마음을 달래죠.

겨울엔 식물도 쉬는 경우가 많아서 좀 한가할 것도 같아요.
어느 정도 쉬는 기간일 수도 있지만, 제게는 채집했던 식물들을 정리하고 완성하지 못한 그림을 완성하는 기간이기도 해요. 나무에 있는 ‘겨울 눈’ 같은 것도 그려야 하고요. 겨울에도 생생한 식물들이 몇 있어 그런 것들도 그리고요. 그러고 보니, 딱히 쉬는 때가 있진 않네요(웃음).

숲을 거닐며 일하는 것

채집을 위해선 숲에 자주 가잖아요. 그곳에서 일할 땐, 어떤 생각이 드나요?
진부한 얘기일 수 있지만, ‘대단하다’는 생각을 많이 하는 것 같아요. ‘자연은 놀랍구나. 대단하구나.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몇 년을 일하면서도 매번 감탄하게 돼요.

숲에선 왠지 나쁜 생각은 안 들 것 같아요.
맞아요. 숲 안에선 착해지는 기분이 들어요. 식물은 착한 것 같아요. 동물이나 곤충도 마찬가지고요. 나에게 너무 많은 걸 해주고 있다고 느껴요. 그래서 저도 착해지고 싶은 기분이 들어 숲에서 일하길 좋아해요. 숲에서 나오고 나면 다시 나쁜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웃음). 보통 좋아하는 일은 직업으로 삼으면 안 된다고 하잖아요. 그런데 식물은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좋은 생각만 들어요. 원래 이렇게까지 식물을 좋아하진 않았는데, 가까워질수록 그 존재감이 마음속에서 자꾸 커지고 있어요.

숲이 있는 곳에 작업실이 있어요. 가끔 서울에 가면, 어떤 기분이 드세요?
서울에 살다 처음 이 도시에 왔을 땐, 꽤 자주 서울에 갔어요. 서울 생활이 익숙해 이곳이 지루하게 느껴졌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이상하게 서울엔 잘 안 가게 돼요. ‘내가 이렇게 좋은 곳에 있구나’라는 걸 알게 된 것 같아요. 친구들이 보고 싶을 땐, 미팅이 있을 때 나가서 겸사겸사 보고 와요. 친구들이 종종 이쪽으로 쉬러 오기도 하고요.

쉴 땐 주로 뭐 하세요?
식물 물주고… 그리고 또 뭘 하더라. 생각해보니 쉴 때도 항상 식물이랑 같이 있는 것 같네요. 영화 보는 걸 좋아하는데 영화 속 집안에 식물이 있으면 ‘저 식물은 뭘까’ 생각하고 있어요. 여행도 좋아하는데 그때도 자연이 있는 곳을 찾아가게 되고요. 너무 식물 얘기만 하죠(웃음). 강원도에 ‘제이드 가든’이란 곳이 있는데, 한 번 가보세요. 쉬러 가기 좋은 곳이에요.

혹시 서울 안에서도 추천해주실 곳이 있을까요?
‘서울숲’ 좋아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다양한 종이 서식하고 있거든요. 그리고 제가 일했던 국립수목원도 추천해요. 서울은 아니지만, 멀지 않거든요. 수목원으로 들어가는 길목까지도 참 예뻐요.

일상 속에서 식물을 만났을 때, 이름이 궁금해지면 바로 알 방법이 있을까요?
가장 좋은 방법은 자신에게 맞는 식물도감을 찾아서 그걸 들고 다니는 거예요. 하지만 번거롭다 보니, 최근엔 그런 어플을 개발하고 언젠가 식물 사진을 찍으면 이름이 나오는 어플도 나올 것 같은데, 아직은 아니에요. 식물 사진을 찍어두고 그걸 국립수목원이나 환경부 같은 사이트에 올리면 어떤 식물인지 알려주죠. 가까이에 식물학자가 있다면 물어보는 것도 좋을 듯 해요. 아무래도 스스로 도감으로 공부하는 게 자신에겐 가장 도움이 되긴 해요.

식물뿐만 아니라 곤충과 동물도

식물뿐만 아니라 곤충이나 동물에까지 관심을 두고 계시다고요.
생태계는 톱니바퀴처럼 연결이 되어있어요. 식물을 매개로 하는 곤충이나 동물도 중요한 연구와 보존의 대상이에요. 그래서 수목원엔 동물이나 곤충도 있어요. 그건 동물원도 마찬가지예요. 사람들은 동물원이나 식물원이 전시(보여주기 위한)의 목적만을 갖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중요한 목적 중 하나가 ‘보존’이에요. 그래서 어떤 동물원이 특정 종의 번식 기술을 갖고 있거나 하는 게 그들 안의 중요한 화두가 되어요. 동물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함 만이 그들의 목적이 아니니까요. 그런 사실을 모르고 무조건 동물원을 동물을 가둬두는 좋지 않은 곳으로 인식하는 분들이 많더라고요.

생태계 보존을 위해 각 기관이 협업하는 부분은 어떤 게 있나요?
제주에 한란이란 곳이 있는데, 그곳을 보존하기 위해 곤충들을 방사한다고 해요. 곤충이 식물의 보존을 도우며 서로 살게 하는 거죠. 그 가운데 식물원이나 동물원 같은 기관들의 연구와 협력이 있고요.

요즘은 어떤 생물에 특별히 관심이 있나요.
버섯의 매력을 많이 느꼈어요. 버섯은 참나무 밑에서만 나는 류, 전나무 밑에서만 나는 류 같은 게 있어요. 식물과 땔래야 땔 수 없는 거죠. 최근엔 해양동물에 관심이 가고 그리고 싶기도 해요.

동식물을 둘러싸고 일을 하다 보면 슬퍼질 때가 있을 것 같아요.
종의 멸종이나 그런 것도 있겠지만, 사람들이 화려하고 예쁜 것들에만 관심을 가질 때 슬퍼져요. 보이지 않는 곳에 숨어있는 들꽃 같은 아이들은 알아봐 주지 않거나 할 때 말이죠. 그래서 계속 제가 하는 작업으로도 그걸 알리고 싶고, 그래요.

세밀화집, 허브 이소영 지음 | 유어마인드 | 72쪽 | 240x320mm

처음 이 책을 받았을 때, 흑백으로 그려진 허브 그림 몇 점을 가만히 보기만 했다. 볼수록 낯선 이 식물을 뭘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림 옆에 붙은 설명을 보고서야 ‘이게 마늘이라고? 그리고 마늘이 허브였어?’ 하며 당황했던 기억이 난다. 이 책은 그런 책이다. 우리가 모르고 사용해온 다양한 종의 허브 식물과 그 식물의 세밀한 모습을 보여준다. 자세히 보면 선 안에 작은 점들이 채워져 있는데, 현미경을 들여다보며 한참을 그걸 그렸을 작가를 생각하면 결코 쉽게 책장을 넘길 수가 없어진다.

점심을 못 먹고 왔단 얘길 했었는데, 그걸 기억한 그녀가 “라면 먹고 갈래요?”라고 물어주어 작업실에서 라면을 먹었다. 다 먹고 일어나려는데, 귤을 몇 개 챙겨주더니 입구에 있던 알로에 한 줄기까지 잘랐다. “가끔 이렇게 잘라줘야 잘 자라요. 집에 가서 얼굴에 팩을 하시거나 물에 타드세요.”라고 말하며 넣어준 알로에 한 줄기. 서울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그 잎을 만지작거리며 ‘식물은 정말 착한 것 같아요’라고 여러 차례 말하던 그녀의 착한 목소리를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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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포토그래퍼 선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