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그해 크리스마스 시즌에는 포르투에 있었다. 구글 지도에 별 표를 찍어둔 극장이 열지 않아 길거리에서 급하게 극장을 검색했다. 크리스마스를 가족과 함께 집에서 보내는 것이 오랜 문화로 정착된 만큼, 유럽의 가게 대부분이 영업시간을 단축했다. 극장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런 와중에 마주친 것이 시네마 트린다지 포르투다. 문을 연 극장을 발견해 일차적으로 반가웠는데, 12월 20일부터 26일까지의 영화 라인업도 놀라웠다. 장 뤽 고다르의 <미치광이 피에로>와 <이미지 북>, 알폰소 쿠아론의 <로마>,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어느 가족>, 파베우 파블리코프스키의 <콜드 워>라니.
넷플릭스에 공개되어 엄청난 호평을 얻은 <로마>를 제외하고는 모두 그해 칸국제영화제와 관련 있는 작품이다. 2018년 칸의 메인 포스터는 장 뤽 고다르의 대표작 중 하나인 <미치광이 피에로> 속 자동차 키스신으로 완성되었다. 또한 개막식에서 이 영화의 클립영상을 상영하며 영화제의 시작을 알렸다. 나머지 세 편은 모두 경쟁 부문에서 공식상영을 가졌으며, 황금종려상(<어느 가족>), 특별황금종려상(<이미지 북>), 감독상(<콜드 워>)의 영예를 안았다. 이렇게나 아름다운 영화 라인업을 선보이는 극장을 근처에 발견한 게 너무 기뻐 길거리임을 잊고 소리쳤다. ‘원래 가려던 극장이 문을 닫지 않았다면 다른 극장을 찾아보지 않았을 텐데’라는 생각이 들어서 이러한 우연에 감사하기도 했다.
포르투의 역사적인 영화관 시네마 트린다지는 많은 우여곡절을 지녔다. 1913년에 영화관, 무도회장, 카페, 당구장, 테라스로 구성된 ‘트린다지 가든 라운지(Salão Jardim da Trindade)’라는 이름으로 처음 개관했고, 1957년 본격적인 영화관의 모습으로 개조하며 ‘시네마 트린다지’로 명칭을 변경했다. 이후 1970~80년대의 예술 위기로 문을 닫은 극장은 1990년대 초에 규모를 축소해 재개관을 꾀한다. 하지만 이것도 잠시, 포르투 지역 내 문제로 2000년에 다시 문을 닫게 된다. 이로부터 근 20년이 지난 2017년 2월 5일, 결국 다시 문을 여는 데 성공해 지금까지 운영되고 있다. 200석 미만의 상영관 두 개를 둔 소규모 극장으로, 매일 오후 2시에 영업을 시작한다. 일반 티켓값은 6유로. 카드 결제가 불가능하니 현금 챙기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시네마 트린다지를 찾은 날은 마침 장 뤽 고다르의 두 작품을 이어서 상영하는 날이었다. 아시아 프리미어로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공개되었지만 영화제 현장을 취재하느라 볼 수 없었던 고다르의 신작 <이미지 북>. 그리고 내 발걸음을 무작정 칸으로 향하게 만들었던 영화 <미치광이 피에로>. 그 여정을 파리 시네마테크 프랑세즈를 비롯한 몇몇 극장에 방문한 것으로 끝맺음 지은 후 본격적인 ‘유럽 극장 여행’이 시작되었다. 따지고 보면 나를 포르투의 한 극장에 있게 만든 영화(정확히는 영화의 한 신으로 만들어진 포스터지만)가 바로 <미치광이 피에로>인 셈이다. 누군가에게는 사소해 보일지라도, 내게는 결코 사소하지 않은 작은 계기에도 의미를 부여하게 된다.
<미치광이 피에로>는 이미 본 영화지만, ‘극장에서 영화를 본다는 것’에 또 다른 의의를 두는 사람이기에 이 작품을 극장에서 다시 볼 기회가 생겨 무척이나 기뻤다. 그리고 그 기회를 잡은 극장이 한국도 누벨바그(1950년대 후반에 시작된 프랑스의 영화 운동으로 ‘새로운 물결’을 뜻한다. 장 뤽 고다르는 누벨바그를 대표하는 감독이다)의 본고장 프랑스도 아닌 포르투갈이라니. 상상도 해보지 못한 일이었다.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계획하지 않고 여행을 떠나 걸음이 닿는 대로 극장을 찾는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마주하는 우연한 면면이 모두 영화롭기 때문에. 열댓 명의 관객과 함께 <이미지 북>을 보고, 이어 상영하는 <미치광이 피에로>는 혼자 보았다. 텅 빈 극장에서 왜인지 모를 헛헛함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섰다.
상영관 밖에서 필름으로 장식한 크리스마스트리의 사진을 잔뜩 찍은 후에는 눈이 마주친 극장 직원과 크리스마스 인사를 나눴다. 주고받은 “메리 크리스마스” 한 마디에 온기가 스몄고, 이것도 꽤 괜찮은 크리스마스라는 생각을 하며 극장 밖으로 나섰다.
시네마 트린다지
A. Cinema Trindade, Rua do Almada 412, 4000-235 Porto, Portugal
H.www.cinematrindade.pt
T. +351 22 316 2425
We Around Project
내가 사랑한 유럽의 극장
씨네21의 객원기자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작년 이맘때, 칸국제영화제의 <미치광이 피에로> 포스터에 매료되어 무작정 프랑스로 떠난 것이 유럽 극장 여행의 계기가 되었습니다. 유럽의 극장에 찾아가 머무르는 동안 보고 느낀 것을 글로 적어보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