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마테크 프랑세즈

구글 지도에 ‘film’ ‘cinema’를 검색하고 장소를 저장한다. 니스도 파리도 바르셀로나도 마드리드도 포르투도 리스본도 베를린도 뮌헨도 온통 극장으로 채워진다. 관람하는 영화에 한해서는 관객 모두가 시공간을 공유하고, 동일한 시청각적 체험을 하도록 의도되어 있는 공간(물론, 언제 어디서든 이런 의도에서 벗어난 행동을 하는 이들은 있기 마련이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곳인가! 구태여 공간에 관련한 정보를 더하지는 않는다. 별 모양으로 가득한 나만의 극장 지도’, 그걸로 충분하다. ‘제로 베이스(zero base)’ 상태로 다닌 덕에 휴업일인 줄도 모르고 극장으로 향한 적도 있고, 영업시간까지 한참이나 남아서 건물 밖 철창 너머로 잘 보이지도 않는 내부를 하염없이 바라보기만 한 적도 있다. 당시에는 아쉽고 허탈해서 한 번만 검색해볼걸뒤늦은 후회도 했다. 그럼에도 많은 정보를 찾지 않는 이유는, 글쎄, 이런 아쉬움이 또다시 그곳을 찾을 동력이 될 것 같다는 막연한 생각도 있고, 무엇보다 그냥 우연한 걸음을 통해 만나게 되는 어떤 면면이, 그 설렘의 공기와 온도를 더 기억하고 싶어서인 것 같다. 그렇다. 그날의 기분에 따라, 발길이 닿는 대로 걸으며 만난 극장과 운명적으로 보게 된 영화를 기억한다. 아주 사적인 기록을 바탕으로 만나게 된 극장에서 느낀 감정과 영화로운 순간을 공유하고 싶다.

처음으로 갔던 유럽, 유럽의 극장에서 본 첫 번째 영화. 칸국제영화제를 가기 위해 니스를 방문한 여정 중 굳이 파리에서 2 3일을 보낸 이유. 파리 에어비앤비 선정의 유일한 조건은 시네마테크 프랑세즈까지 걸어서 갈 수 있느냐였고, 니스에서 파리까지 버스를 이용해 이동한 이유 또한 시네마테크 프랑세즈가 위치한 베르시 공원이 차고지였기 때문이었다. 시네마테크 프랑세즈는 프랑스 영화 산업을 육성하는 복합 문화 공간으로, 상영관을 비롯하여 박물관, 전시장, 도서관, 자료 보관실, 연구실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많은 설명을 더 할 필요가 없는 공간, 한마디로 영화를 사랑하는 이들의 성지라고 할 수 있겠다. 생생하게 기억한다. 에어비앤비에 캐리어를 풀어두고 호스트와 나누던 대화를. “파리에서 가장 먼저 어디에 갈 거야?”라는 물음에 시네마테크 프랑세즈! 그래서 너의 에어비앤비를 예약했어.”로 답하는 내 모습이 낯설었는지 정말 시네마테크 프랑세즈?”라고 되묻던 그의 표정을. ‘나만의 극장 지도에 가장 먼저 찍혀있던, 언제 찍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 나의 첫 번째 별, 시네마테크 프랑세즈로 향하던 발걸음을. 극장을 가르키는 푯말 하나에도 설레서 연거푸 사진을 찍어대던 순간을. 그날 파리에 쏟아지던 햇살마저도 내 걸음을 축복해주는 것 같아서 시종일관 웃음만 나던 그 기분을.

파리의 에어비앤비에 도착해서 시네마테크 프랑세즈 홈페이지에 들어갔더니 크리스 마커(Chris Maker)의 특별전을 한다는 공지가 있었는데, 시간표를 확인하다 오후에 프랑수아 트뤼포의 영화 <포켓 머니>가 상영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트퓌포의 각별한 팬이 아니더라도 시네마테크 프랑세즈라는 그 공간에서 트뤼포의 영화를 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너무나 큰 설렘이었다. 달뜬 얼굴로 발권을 하려는 내게 영화에 영어 자막이 없는데 괜찮냐고 직원이 물어왔다. 이미 본 영화라고, 트뤼포의 영화를 이곳에서 본다는 것 자체가 내겐 의미 있는 일이라 답했다. “Perfect!”라는 회신과 함께 환한 웃음으로 티켓을 건네주던 그의 얼굴이 선연하다. 북샵에서 판매하는 굿즈 중 장 뤽 고다르, 짐 자무시, 프랑수아 트뤼포, 자크 리베트, 샹탈 애커만, 구로사와 아키라 등의 에코백이 가장 눈에 들어왔고, 고민 끝에 두 개를 구매했다. , 참고로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에 들어갈 때는 간단한 보안 검사를 한다. 극장을 찾으며 이런 경험은 또 처음이라 가방 안에 일반적인 소지품밖에 없었지만, 괜스레 심장이 빨리 뛰었다. ‘혹시 나 입장 거부당하면 어떡하지? 안 되는데, 이곳이 내 파리의 전부인데…’ 그 짧은 찰나에도 이런 상상을 했다. 물론, 당연하게도 아무 일 없었지만.

이곳에 왔다는 것이 꿈만 같아서 안팎을 한참이나 둘러보고 곳곳을 사진으로 남겼다. 상영관 내부는 자유롭게 착석하게 되어 있는데, 영사실이 잘 보이는 자리에 앉아 작은 창 너머 보이는 필름 영상기를 한참이나 바라봤다. 내가 거의 겪어보지 못한 필름 시대의 영화에 대해 생각했다. 한국에서도 시네마테크를 찾을 때면 항상 같은 자리에 앉는다. J6 혹은 J17인데, 가장 뒷줄 사이드 자리를 선호한다는 이유도 있지만, 필름 상영을 할 때면 영사기 돌아가는 게 잘 보이는 자리이기도 하기 때문에. 씨네코드 선재가 있던 시절에도 역시나 영사창 너머 필름이 잘 보이던 자리가 좋았다. 가끔 필름 상영을 앞두고 자리에 앉아 필름이 걸려있는 영사기를 찍곤 했다. 필름 돌아가는 소리와 필름의 질감, 하나의 롤이 끝나고 다음 롤로 교체되어 영화가 이어지는 순간(이런 연유로 한 롤의 필름에 영화를 담을 수 있는 시간, 40~50분이 지날 때쯤 의도적으로 영사실을 바라보곤 한다.)이 좋다. 물론 이날의 <포켓 머니>는 디지털 상영이었기에 필름이 걸려있지는 않았지만, 아무튼 영사창 너머 영사기를 바라보는 건 극장에서 내가 가진 작은 습관, 좋아하는 행위 중 하나다. 이걸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에서도 똑같이 하고 있다니, 쉬이 믿어지지 않아서 꿈같다는 이야기를 얼마나 많이 했는지 모르겠다. 영화 시간이 다가올 때쯤, 형광 노란색 조끼를 입은 유치원생 혹은 초등학교 저학년 정도 되어 보이는 아이들이 우르르 극장에 들어왔다. 그 아이들과 함께 영화를 봤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자 주도해서 손뼉을 치는 아이들. 처음 아이들을 마주했을 때, 귀엽다는 생각과 함께 관람 중 시끄러우면 어쩌지를 떠올렸던 내가 부끄러워졌다. 이들에겐 어렸을 때부터 이곳이, 영화가, 이곳에서 영화를 본다는 행위가, 영화관에서 지켜야 하는 관람예절까지 모두가 아주 자연스러운 일상이구나. 한참을 자리에서 일어날 수 없었다.

시네마테크 프랑세즈

A. Cinémathèque Française, 51 Rue de Bercy, 75012 Paris, France

H. cinematheque.fr

T. +33 1 71 19 33 33

 

We Around Project
내가 사랑한 유럽의 극장

 

씨네21의 객원기자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작년 이맘때, 칸국제영화제의 <미치광이 피에로> 포스터에 매료되어 무작정 프랑스로 떠난 것이 유럽 극장 여행의 계기가 되었습니다. 유럽의 극장에 찾아가 머무르는 동안 보고 느낀 것을 글로 적어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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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 이나경 크리에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