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기리야, 세상의 꼭대기에서

Standing Around Top of the World

스리랑카로의 여행, 처음에는 내키지 않았던 게 사실이다. 낯선 장소에 대한 설렘과 기대, 두려움을 극복할 때의 짜릿함이야말로 여행의 묘미가 아니던가. 3년간 남인도 지역에서 일하며 그 문화에 이미 익숙해진 내게 스리랑카는 그다지 매력적인 여행지가 아니었다. 하지만 언젠가 ‘그것’을 본 이후 생각이 달라졌다. 위풍당당한 모습으로 우뚝 서 있는 난공불락의 요새, 시기리야Sigiriya. 나는 무성한 초록 숲 위로 우뚝 솟아오른 바위산에 사로잡혔다. ‘시기리야’라는 이름은 ‘사자 바위’라는 뜻으로, 사자의 모습을 한 높은 절벽 때문에 일명 라이언 록Lion Rock으로 불린다. 스리랑카의 고대 왕조 카샤파 1세가 지은 이곳은 웅장한 모습만큼이나 광기 어린 비밀을 갖고 있다. 왕위 계승권 때문에 부친을 살해하는 패륜을 저지른 카샤파가 세상의 눈을 피해 숨어 살던 천혜의 요새였던 것. 동생의 보복이 두려워 도망쳤고, 이후 전의를 상실한 채 서서히 미쳐가던 그는 결국 자살을 선택했다고. 주변에는 초록색 이불 같은 밀림에 띄엄띄엄 늘어서 있는 돌산들을 볼 수 있었다. 카샤파도 이중 하나에 자신의 불안을 잠재울 성채를 지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제 그 흔적이 모두 사라지고 터만 남아 역사를 기억하고 있었다. 시기리야를 차치하고서라도 ‘인도의 눈물(현지인들은 망고 모양이라고 하지만)’이라는 애달픈 별명이나 내가 거주하는 지역에서 비행기로 1시간 남짓 거리에 있다는 위치상의 장점이 내게 떠나야만 하는 이유를 만들어주었다. 그리고 얼마 후, 나는 스리랑카로 향했다. 

수도인 콜롬보Colombo에 도착한 시각은 새벽 4시, 일단 이곳에서 하루를 보내고 시기리야행 계획을 세우기로 했다. 가까운 곳이라서 너무 마음을 놓고 온 걸까, 무거운 짐을 이끌고 시기리야까지 갈 엄두가 나지 않아 다음날 렌터카를 빌렸다. 얼마나 달렸을까. 문득 창밖을 보니 그제야 스리랑카의 풍경이라든지, 현지인들의 일상이 눈에 들어왔다. 냇가를 두고 양쪽으로 늘어선 자그마한 집들, 뭔가를 잔뜩 싣고 흘러가는 나룻배, 아이스크림이나 과일 따위가 놓여있는 자그마한 카트, 혼잡한 시장에 돗자리를 깔고 물건을 파는 상인들, 허리에 레이스가 달린 사리를 입은 여자들…. 그렇게 한참을 들여다보는 동안 어느새 울창한 산길과 작은 마을, 익숙한 논밭을 지나 시기리야에 도착했다. 사실 출발 전에 콜롬보 기차역에 들러 이것저것 알아보느라 시간이 많이 지체되었다. 이러다가 시기리야에 오르지 못하는 건 아닌지 조바심이 났다. 해가 지고 나면 도저히 그 높고 가파른 곳에서 내려올 수 없어 저녁이 되면 입장을 금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시간은 적당한 오후, 뜨거운 태양도 서쪽으로 넘어가는 때라 산행하기에 아주 좋은 시간이었다. 스리랑카는 아주 더운 열대기후이기 때문에 사시사철 덥다고 하지만 한겨울에도 햇살이 강렬했다. 낮에는 감히 산행을 할 수 없을 정도여서 아침이나 저녁시간을 이용해야 한다고.  

시기리야 일대는 세계 각지에서 모여든 관광객들로 북적거렸다. 가는 길에는 고대 왕조의 아름다운 정원이 펼쳐져 있었다. 그 주위에는 해자(성 주위에 둘러 파서 못으로 만든 곳)가 있었는데 가끔 악어가 나오기도 하므로 수영이나 물놀이는 절대 금지였다. 마치 바위를 떠받치듯 넓은 평원이 펼쳐져 있고, 잔디와 나무가 자라나 건물이 무너진 공간을 메우고 있었다. 높다랗게 자란 열대 나무가 눈부시게 푸르른 정원, 웅덩이마다 파란 하늘과 구름이 가득 담겨 있었다. 천천히 길을 따라가다 보니 쭉 뻗은 숲 속으로 가파른 돌산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냈다. 절벽 사이로 움푹 파인 동굴도 여럿 있었다. 좁은 공간에 길이 난 모양 때문에 사람들은 ‘코브라 동굴’이라 불렀다. 동굴을 빠져나오니 이번에는 까마득한 높이의 계단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셀 수 없이 많은 계단을 부지런히 올랐다. 서서히 높아지는 걸 느끼기는 했지만 문득 고개를 들어 주변을 둘러보았을 때 확연히 달라진 풍경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우리가 지나온 평평한 터가 한눈에 다 보이기 시작했으며, 그 위를 걷는 사람들이 개미처럼 작아져 있었다.  나는 절벽에 기대어 선 채 잠시 그 모습을 감상했다. 하지만 요새의 입구까지 가려면 이제부터가 시작이었다. 절벽을 따라 박아놓은 철제 계단이 유일한 길이었는데, 아주 좁아서 한번에 한 사람씩 통과해야만 했다. 오로지 손잡이와 디딤대에 의지해 아슬아슬하게 한 발 한 발 나아가다 보면 계단 사이로 아찔한 광경이 펼쳐졌다. 회전계단처럼 높은 벽을 빙글빙글 돌며 올라가는 구간에서는 사람들이 마치 각자의 몸에 꼭 맞는 우리 속에 갇혀 있는 것처럼 보였다. 걸어온 길은 더 이상 보이지 않고 저 멀리 숲과 호수만이 보였다.

아름답지만 공포스러운 기분도 함께 들었다. 직각으로 깎아지른 무시무시한 절벽에 매달려 한참을 가다 보니 어느덧 벽화 앞에 다다랐다. 15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미인도’였다. 유록색과 황금색 피부의 여인들이 화려한 장신구를 걸친 채 야릇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지금은 그들의 일부만 남아있지만 나머지 모습을 상상하기에 무리가 없었다. 미인도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모두 하나쯤은 갖고 있는 문화재다. 미에 대한 기준은 다르지만 그 나라 장인의 손 끝에서 탄생한 미인들의 모습은 어딘지 모르게 신비로운 느낌이 닮아 있었다. 나는 다시 정상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요새까지 가는 길은 여전히 멀고 높기만 했다. 벽을 따라 계단을 오르고 다시 산길에 닿아 수십 개의 벽돌 계단을 또 올랐다. 그러다 마침내 저 멀리 입구가 보이자 길을 함께 오르던 사람들이 작은 환호성을 질렀다. 정상이 머지 않았다는 안도의 한숨 한 번, 막바지 가파른 계단을 오르면서 절망의 한숨 한 번. 다들 그렇게 옹기종기 모여 같은 심정을 공유했다. 입구에는 큰 발톱이 달린 사자의 앞발이 지키고 서 있었다. 암벽을 깎아 만들어 앞발까지만 조각돼 있었는데, 마치 나머지는 돌산에 서서히 흡수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커다란 사자는 그 자체만으로도 오묘한 자태를 풍겼다. 어른 한 명이 발톱 하나를 겨우 가릴 수 있을 만큼 거대한 규모였다. 그 묵직한 양 발로 요새를 수호하며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임무를 해내고 있었으리라. 

입구를 지나 정상을 향해 가는 길목, 산 중턱이었지만 주변에 산맥이 있는 게 아니라 시야에 걸리는 것 하나 없이 탁 트인 경치를 만날 수 있었다. 주변에는 낮은 밀림과 호수만이 있어 먼 곳까지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구름이 눈앞에 떠 있고, 하늘과 땅이 맞닿고, 바닥은 온통 보송보송한 풀색 카펫이 깔려 있는 것만 같았다. 나는 철제 계단 아래로 또 다른 돌계단이 차곡차곡 쌓여 있는 걸 발견했다. 왕이 살던 시절, 이 요새에 살던 사람들이 이용했을 법한 이 돌계단은 어디로 이어지는 걸까, 어쩌면 요새의 은밀한 곳까지 파고들 수 있을지도. 바람은 머리칼을 휘젓고 삐걱거리는 철제 계단을 흔들었다. 지구 반대편에서 동양의 신비를 찾아온 여행자도, 검은 눈의 배낭 여행자도, 단체 관광객도 그리고 스리랑카 현지인들도 이 엄청난 바위를 오르고자 애쓰는 더없이 작은 존재들이었다. 앞사람의 헉헉대는 숨소리를 들으며 눈이 마주칠 때마다 조심하라는 인사를 잊지 않는 우리를 태운 공중 계단은 그렇게 정상까지 쉬지 않고 이어졌다.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만 같던 가파른 계단 너머, 드디어 바위산 정상에 닿았다. 광기의 왕이 세상으로부터 도망친 요새에 다다른 것이다. 꼭대기는 평평하고 너른 광장 같았다. 아주 오래 전, 전쟁으로 이미 모든 것이 파괴된 이곳은 바닥에 그 흔적만이 드문드문 있었다. 황량했다. 그때 수천 킬로미터를 여행하던 바람이 들이닥쳤다. 바람은 순식간에 땀을 식히고, 이전의 시간을 날려 보냈다. 초록색 숲은 어느새 오렌지색으로 물들었다. 사람들은 각자의 그림자를 늘어트리고 풍경에 취재 한참이나 말없이 앉아 있었다. 바위는 그 일대에서 제일 높았기 때문에 그 위에 서 있으면 마치 하늘에서 땅을 내려다보는 듯 했다. 고개를 돌리면 해가 뜨고 지는 모습을 가장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곳. 모든 것을 잃은 왕이 어째서 이렇게 높은 곳에 요새를 짓고 틀어박혔는지, 왜 외로움을 끌어안고 혼자 남기로 작정했던 것인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바람만이 머물다 가는 이곳은 지극히 평화로웠고, 세상을 가만히 내려다보는 일 또한 정말이지 감동이었다. 마치 초월적인 존재라도 된 듯한 기분이었다. 그도 이런 마음이었을까? 자신이 버린 대지에서 멀리 떨어져 이전의 모든 죄를 용서받고 싶었던 건 아니었을지. 속세의 모든 희로애락을 잊고 이 아름다운 풍경 속에 그저 동화되고 싶었던 건 나뿐만이 아닌 듯하다.

시기리야 빌리지 호텔

SIGIRIYA VILLAGE HOTEL

www.sigiriya-village-sigiriya-sri-lanka.ko.ww.lk

콜롬보에서 시기리야를 찾아갈 때, 렌터카를 이용할 수 도 있지만, 캔디Kandy라는 도시로 기차를 타고 두 시간가량 달린 후, 릭샤나 일일 택시를 이용하면 비교적 저렴한 경비로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다. 스리랑카에서는 너무 짧은 하의는 입지 않는 것이 예의며, 대부분의 절이나 사원을 들어갈 때 맨발로 입장한다는 점을 기억하자. 하루를 묵을 계획이라면 ‘시기리야 빌리지 호텔’을 추천한다. 시기리야의 자연과 정취를 느낄 수 있는 이곳은 건물 정면으로 시기리야 록이 보이는 최고의 전망을 자랑하며, 자연친화적인 방갈로 형태로 이뤄져 있다. 호텔 내부에는 수영장과 레스토랑 등의 편의시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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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사진 현소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