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에서 산다는 것

《시골은 그런 것이 아니다》, 《가족의 시골》

BOOK 《시골은 그런 것이 아니다》, 《가족의 시골》

Living in Countryside
시골에서 산다는 것

도시를 떠나 시골로 간다는 것은 단순히 삶의 터전을 옮기는 것이 아니라, 지금껏 살아온 삶의 방식을 바꾸겠다는 뜻이다. 이 책들은 시골살이가 마냥 낭만적이고 이상적이지만은 않다는 경고이면서, 외적인 것들에 휘둘리지 않고 삶의 본질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서 시골살이를 택한 용기 있는 이들이 건네는 조언이다.

나처럼 자주 징징대는 사람이 이런 말을 하면 어디 가서 돌 맞을 텐데, 정작 나는 남이 징징대는 소리를 들어주기 싫어한다. 징징대는 사람도 싫어한다. 이기적이고 매정한 성격이다. 반대로 나는 상황이 아무리 엉망이라도 씩씩하고 꿋꿋하게 버텨나가는 사람들을 좋아한다. 거기에 삐딱한 농담이라도 한 마디 보탤 수 있다면 더할 나위가 없다. 영화 <다이 하드> 시리즈(브루스 윌리스가 멋진 척을 안 한 3편까지만)를 좋아한 이유 역시 같았다. 세상에서 죽는 게 가장 힘든 경찰 존 맥클레인이 온갖 절체절명의 상황 속에서도 숙취와 두통에 시달리며 내뱉는 자조적인 농담들이 근사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처음에 그들은 당신과 당신 생활에 흥미와 동경을 품어 접근해 올 것입니다. 너무 많이 수확해서 처치가 곤란한 야채나 과일을 듬뿍 안고 찾아옵니다. 당신은 크게 감격할 것입니다. 바로 이거야, 내가 바라던 정이 넘치는 인간관계. 시골로 이사한 결정이 그르지 않았다는 것에 자신감은 더해 갈 것입니다. 도시에서는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친밀하고 정 많은 적극적인 왕래에 신선한 기쁨까지 맛봅니다.
여기에서 한 가지 묻겠습니다.
그런 감동에 젖어 있는 당신은 왜 지금껏 이웃에게 다가가지 않았을까요. 인정머리 없는 도시에서는 무리라고 처음부터 포기하고 있었나요. 아니면 약간 시도해 보다가 호감을 얻지 못한 탓에 그만두었습니까. 아니면 그런 왕래를 본인도 귀찮게 생각하고 있었습니까. 

– 마루야마 겐지, 《시골은 그런 것이 아니다》 중에서 

일본의 작가 마루야마 겐지는 벌써 몇 편의 수필집을 통해 시니컬하고 단호하며 거침없고 매정한 성격을 아낌없이 드러낸 바 있다. 북알프스 산록의 나가노현 오마치시에 거주하며 문단은 물론 세상과도 단절한 채 철저히 스스로를 고립시키며 글쓰기에만 몰두하고 있다는 이 대쪽 같은 할아버지는 시골 생활 틈틈이 가죽 점퍼를 입고 바이크 라이딩을 즐긴다고 한다. 하지만 내 머릿속에서 그는 늘어난 러닝셔츠에 고무신을 신고 마을 어귀에서부터 곡괭이를 휘둘러 침입자들을 쫓아버릴 것만 같은 이미지다.

그는 《시골은 그런 것이 아니다》에선 도시인들이 시골에 품은 환상을 대놓고 공격하는데, 그의 말에 따르면 시골은 낙원도 유토피아도 아니다. 이웃들은 도시에서 온 이상적이고 순진한 당신을 마구 부려 먹을 것이며, 시골에서의 일이라는 것은 버티기 힘들 정도의 중노동인데다, 도시와는 달리 별다른 오락거리도 없고 자연은 혹독하기 그지없다. 시골 역시 치열한 생존의 장일 뿐인 것이다. 책을 읽다 보면 매정한 나도 ‘헉!’ 하고 놀랄 때도 꽤 있고 ‘이렇게까지 말할 건 없지 않나’ 싶을 때도 있다. 어쩐지 주눅이 들면서 ‘맞아, 시골 생활은 역시 만만치 않았어’ 라는 생각도 한다. 하지만 이처럼 매섭게 몰아붙이는 할아버지가 미워지지는 않는다. 강도에 대비해 사나운 개를 키우라거나 긴 막대기에 칼을 꽂아 창을 만들어 무기로 활용하라는 둥, 어쩐지 엉뚱하고 귀여운 구석이 있어서다. 애니메이션 영화 <늑대아이>에 나오는 무뚝뚝하지만 속마음은 따뜻한 아랫집 할아버지 같다. 

마루야마 겐지가 비판하는 대상은 시골 생활 자체가 아니다. 시골에 대한 밑도 끝도 없는 환상을 품은 나태한 도시인(=한수희 같은 자)이다. 작가 자신은 불편함과 어려움을 무릅쓰고 시골 생활을 택해 오랜 시간을 살아왔다. 그런 그가 독하게 내뱉는 조언은 결국 생활의 터전은 물론 생활의 방식, 삶의 철학까지 송두리째 뒤집어엎을 각오 없이 시골에서 살겠다는 결심을 쉽게 해서는 안 된다는 뜻일 테다. 반대로, 시골 생활은 도시에서는 불가능하던 다른 삶을 가능케 해준다는 뜻이기도 하다. 

불편함이, 너무 편리한 도시 생활로 흐늘흐늘해진 당신 심신을 단련시켜 줍니다.
불편함이, 당신 뇌를 계속 지배해 온 싸구려 이미지를 말끔히 제거하고 가혹한 현실과 대치하는 묘미를 알게 해 줍니다.
불편함이, 당신 정신을 본래로 돌려줍니다.
불편함이, 당신 모습을 본래로 돌려줍니다. 

– 마루야마 겐지, 《시골은 그런 것이 아니다》 중에서

본래의 나라는 건 어떤 모습일까. 본래의 내 정신이란 건 어떤 것일까. 나는 어떤 것들에 현혹되어 있는 걸까. 가혹한 현실을 마주했을 때 내게는 맞서 싸울 용기와 힘이 있을까. 해보지 않고는 모를 일이다. 나는 딱히 선물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아닌데, 간혹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선물하고픈 마음이 드는 책들이 있다. 매정한 나와는 달리 따뜻하고 다정한 책들이다. 그러면서도 착한 척하지 않고 멋진 척하지 않는 소박하고 정직한 이들이 자신만큼이나 소박하고 정직한 단어들로 담담히 써내려간 그런 책들이다. 그 책들 중의 하나가 바로 《가족의 시골》이다. 

가구를 만드는 부부가 어린 딸을 데리고 안동의 고택으로 이사를 간다. 아파트에만 살던 아이에게는 애니메이션 <이웃집 토토로>에서 토토로가 살던 것 같은 집이라고 미리 말해주었다. 엄마는 아빠가 혼자 내려가 고치고 있는 새 집으로 가는 길을 보여주겠다며 손을 동그랗게 모아 망원경을 만들어서는 아이에게 그 안을 들여다보라고 한다. 엄마는 토토로의 집으로 가는 마을 입구의 오래되고 넓은 강이 어떻게 반짝이는지를, 몇 개의 밭을 지나야 하는지를, 전신주 곁에 늘 서있는 오토바이를, 커다란 소나무들을, 마을 정자를, 논길을, 강아지가 짖는 집을, 청개구리가 사는 회화나무를 이야기해준다. 그것들을 지나 마침내 토토로의 집에 도착하면 그곳에서는 보고 싶은 아빠가 아이를 위해 그네를 만들고 있을 것이다. 

남편은 밤이면 칠흑 같은 어둠 속에 세상도 그리고 자신의 존재도 묻혀버릴 것 같은 기분이 든다고 했다.
“그렇다면 매일 아침, 다시 태어나는 기분이 되지 않겠어?”
대답하는 내 목소리가 설레었다. 

– 김선영, 《가족의 시골》 중에서

작가 김선영은 남편과 함께 집 옆에 마련한 공방에서 가구를 만든다. 처음부터 끝까지 그들이 직접 만들어 정성이 담뿍 들어간 가구다. 아이는 도시의 단짝친구를 잃었지만 닭 두 마리를 벗 삼아 마당의 풀밭에서, 밭두렁에서, 강가에서 신나게 뛰논다. 텃밭에서 난 채소로 소박한 식사를 하고 짬이 나면 하릴없이 강가를 산책하고 새까만 밤이면 좁은 방에 셋이 함께 누워 추위를 피하는 그야말로 단순한 생활.

논두렁을 두리번거리고 있으니 아랫집 할머니가 담배를 물고 집 앞에 서계신다. 내가 인사를 하니 짧게 손을 흔든다. 우직하다. 특유의 미소도 잊지 않으신다. 팔순이 넘었는데도 힘있고 멋지다. 처음 만났을 때도 밭에 난 고추와 가지를 툭툭 뽑아내 내게 한아름 안겨주시며 짧게 “얼릉 가 먹어.” 하셨던 분. 정말 맛나게 담배를 피운다. 빈집에 홀로 살아도 변함없이 탄탄한 사람이 있고, 사람들과 부대끼며 살아도 고립으로 괴로운 사람이 있다. 나는 확실한 후자였던 것 같다.
이제야 마주하고 싶다. 

– 김선영, 《가족의 시골》 중에서

이 책을 읽고 있으면 왜 이렇게 뭉클해지는지 모르겠다. 읽을 때마다 코끝이 시큰해질 때가 태반이다. 나처럼 매정한 사람이 말이다. 도대체 왜지? 왜인 거지? 우리가 사는 집은, 그리고 우리가 사는 동네는, 도시는, 국가는, 우리의 삶을 담는 그릇이라서 늘 거기에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살아가려 애쓸 수밖에 없다. 내 의지대로 살아가고 있다고 착각하지만 실은 그것들이 내 삶을 규정하는 것이다. 지방의 소도시, 시골에 가까운 환경에서 나고 자란 나의 유년시절은 지금 도시에서 자라는 내 아이들이 상상조차 못할 정도로 다이내믹하고 다채로웠다. 말 그대로 산과 들과 바다를 제집처럼 뛰어다니며 놀았다. 하지만 사춘기를 지나면서 시골 생활이 지긋지긋해지기 시작했다. 좁아터진 시내도, 전무한 문화시설도, 멋없는 사람들도, 고요하고 지루한 하루하루도 싫었다. 그 나이의 소녀들이 그러듯 세련되고 활기 넘치고 변화무쌍한 도시 생활을 꿈꾸었다. 

스무 살에 대학에 입학하기 위해 상경한 후 나는 매일 버스를 타고 지하철을 타고 걸어 다니면서 서울에서의 삶을 만끽했다. 짬이 날 때마다 혼자서 낯선 동네를 산책했다. 어딜 가도 날 알아보는 사람이 없고, 어딜 가나 새로운 것들이 있다는 사실이 신기하고 즐거웠다. 하지만 이 생활도 익숙해져서 더 이상 새롭지도 신기하지도 않아질 무렵부터는 서울이라는 도시가 갑갑해지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다들 무언가에 쫓기는 것 같고 돈 쓸 곳은 널렸지만 그만큼 돈을 벌어야 한다는 것이 괴로웠고 또 그렇게 돈을 써봤자 달라지는 것은 별로 없었다. 남들이 다들 부러워하는 도심의 초고층 아파트에 놀러 가도 커다란 통유리창 밖으로 뿌연 하늘과 다닥다닥 붙은 아파트와 멋없는 집들만 내다보이는 데 실망했다.

그제야 나는 내 유년시절의 풍경을 떠올리게 됐다. 방금 뽀득뽀득하게 닦아낸 유리창처럼 깨끗한 하늘과, 매일 뛰어다니던 뒷산의 오솔길들과 돌담에 매달린 애호박들, 지천이던 대파와 깻잎과 호박꽃들, 벚나무가 빽빽이 들어서 벚꽃으로 천장을 이루던 등하굣길도 떠올리게 됐다. 옥상에만 올라가도 눈앞으로 펼쳐지는 따뜻한 남해 바다와 그 위에 점점이 떠 있는 작은 섬들과 그보다 더 작은 고깃배들도 떠올리게 됐다. 햄버거도 노래방도 서점도 지겨워지면 친구들과 버스를 타고 바다까지 갔던 기억도 떠올렸다. 그 풍경들이 내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도 알게 됐다. 매일 바다를 보며 살았기에 세상에는 나보다 더 크고 높은 것이 있음을 굳이 생각하지 않아도 마음으로 받아들이며 자랐다. 풀과 꽃의 아름다움을 누군가로부터 배운 것이 아니라 매일 눈으로 보고 코로 냄새를 맡고 손으로 만지며 느꼈다. 도시의 팍팍한 삶으로 내몰리지 않은 시골 사람들이 누추하나마 자신의 집에서, 자기 삶의 최소한의 존엄을 지키며 살아가고 있는 모습도 매일 똑똑히 보았다. 

마당에 서서 새벽안개가 물러나는 걸 본다. 새들이 낮게 날고 마을을 둘러싼 산이 서서히 드러나는 순간을 나는 가장 좋아한다. 풀밭에 서서 커피를 마신다. 풀밭에 서서 커피를 마시는 내가 좋다. 

– 김선영, 《가족의 시골》 중에서

이 구절은 내가 이 책에서 가장 좋아하는 구절이다. 좋아하는 일을 좋아한다고 말하는 것, 그리고 좋아하는 일을 하는 나를 좋아한다고 말하는 것. 이 짧고도 단순한 문장들 속에 이 사람이 살아온 길이 보이는 것 같다. 이 사람이 고민하던 것들, 감내하던 것들, 뚫고 나온 것들을 나 역시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이 사람의 고뇌와 희망과 두려움과 용기가 보이는 것 같다. 그래서 나도 이 사람을 좋아하게 되고 만다. 

어쩌면 그래서 눈물이 날 것 같은가 보다. 이 사람이 보여주는 삶의 단순하지만 어려운 진실을 외면하면서 살고 있던 나 자신이 떠올라 슬퍼지나 보다. 내가 현혹되어 있던 것들, 두려워하고 있던 것들을 담담히 헤쳐나가는 어떤 이를 보고 있는 것 같아 슬퍼지나 보다. 그런데 그 슬픔은 따뜻한 슬픔이다. 이 세상의 어딘가에는 씩씩하게 살아가는 좋은 사람들이 분명히 존재하리라는 희망을 품은 슬픔이다. 

분주한 하루가 가고 졸음이 밀려오는데, 참아내지 않으면 나의 하루는 생활에 함몰되고 만다. 찬물에 세수하고 어제 덮어둔 책을 연다. 누구도 흉내 내지 않으며 살아간다는 것은, 외롭고 또 자유롭다. 

– 김선영, 《가족의 시골》 중에서

동물의 한 종으로 태어나 꼭두각시로 살아왔습니다. 후반 인생에서라도 인간으로 살다 죽어 갈 길을 찾을 수 있다면, 이것은 당신이 살아오면서 이룬 가장 큰 공적이 될 것입니다. 이 세상을 산 증거이자 가장 멋진 추억이 될 것입니다. 더할 나위 없는 희열도 맛볼 것입니다. 

– 마루야마 겐지, 《시골은 그런 것이 아니다》 중에서

시골은 그런 것이 아니다
마루야마 겐지ㅣ바다출판사ㅣ208쪽

귀촌과 귀농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실질적인 조언을 전하기 위해 마루야마 겐지는 자신의 이야기를 가감 없이 책으로 담았다. 시골이라 하면 평온과 평화만을 담고 있을 거라는 어떤 환상을 위한 책.

가족의 시골
김선영ㅣ마루비ㅣ240쪽

자연의 순리는 시간이 더디다. 계절과 흐름의 순리를 그대로 살아가는 것은 어쩌면 현대인이 가장 견디기 힘든 고난인지 모르겠다. 그리고 김선영 작가는 삶의 느린 발자욱을 그대로 좇기로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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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한수희

사진 이자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