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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곳을 산책하는 동안
메뉴판 위에 시간이 쌓이면 많은 것이 변한다. 가격이 변하고, 처음 가졌던 마음이 변하고, 때때로 주인이 변하기도 한다. 내가 찾은 네 개의 메뉴판은 하나같이 때가 타고 귀퉁이가 낡은 것들이었다. 그곳에는 멈춰버린 시간이 있다. 단순히 가격이 싼 가게를 이야기하고 싶었던 게 아니라는 걸 취재를 다니며 깨달았다.
장수이용원
주소 서울시 종로구 종로17길 36
가격 이발 3,500원 염색 5,000원
머리 감을 시 500원 추가
처음 시간이 멈춘 메뉴판을 생각하며 가장 먼저 종로 탑골공원 뒤편의 이발소 골목을 떠올렸다. 인사동이나 익선동에 가기 위해 종종 걸었던 곳인데, 막상 목적을 가지고 길을 걸으니 뭔가 더 많은 것을 기억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곳에는 아주 많은 백발의 어르신들이 있었고, 그들은 잘 닦은 구두와 체크무늬 중절모가 어울리는 사람들이었다. 간이 포장마차 앞에 서서 자연스럽게 낮술을 마시는 광경이나 오랜 친구를 만나 길에서 하이파이브하는 어르신들, 팔짱을 끼고 걷는 노인 커플까지, 젊은이들의 전유물이라고 여겼던 풍경들이 바로 거기에 있었다.
나는 친한 동생 창근이와 그 길을 걸었다. 창근이는 기타 치고 노래하는 싱어송라이터로 그와는 매거진 인터뷰로 인연을 맺었다. 우리는 가끔 만나 술을 마시는 사이였는데, 그날은 조금 특별한 이유로 만나게 됐다. “창근아, 너 머리 자를 때 안 됐어?”, “갑자기 왜요?”, “내가 너 머리 좀 잘라주고 싶어서. 탑골공원 근처에서.”, “안 해요.” 그는 완고했다. 하지만 역시 천성이 착한 아이여서, 며칠의 실랑이 끝에 자신의 머리카락 1센티미터 정도를 허락해주었다.
아마 그 시각 그 거리를 걸은 사람 중 애송이는 우리 둘 뿐이었을 것이다. 우리는 머뭇거리며 이발소 앞에 섰고, 문 앞에서 담배를 피우던 이발사 아저씨는 선뜻 젊은 사람의 방문을 반겼다. 능숙한 솜씨로 보를 두르고 아무 말도 없이 가위를 들었다. 창근이는 주저리주저리 자신이 원하는 스타일을 설명했는데, 아저씨는 이미 모든 것이 결정된 듯한 표정으로 가만히 말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채 10분이 지나지 않아 모든 작업이 끝났다. 창근이는 깊게 엎드려 비누로 머리를 감았다. 그사이 나는 이발사 아저씨들에게 무언가를 물어보려고 했는데, 아저씨들은 생각보다 너무나 바쁘게 움직였다. 단골인 듯한 할아버지는 가게에 들어오자마자 웃통을 벗은 채 염색을 기다렸고, 머리가 열 가닥 정도만 남은 할아버지는 심각한 표정으로 가르마를 고민했다. 그동안 내가 얻은 정보는 ‘오래됐다.’, ‘아침에 아주 일찍 문을 연다.’가 전부였다. “생각보다 시원한데요?” 창근이는 이발소를 나오며 그렇게 말했다. 그러고는 머지않아 이렇게 소리쳤다. “아, 옷 속에 다 들어갔어!”
겨울나그네
주소 서울시 광진구 군자로 8-4
가격 돈까스 3,500원 생선까스 3,500원
B정식 7,000원
20여 년의 시간을 거슬러, 초등학교, 아니 당시로 치면 국민학교에 다니던 나를 떠올린다. 아이는 학교가 끝나면 친구들과 공을 차거나, 병아리 아저씨 앞에서 알짱대거나, 꼬마들을 모아놓고 책을 팔던(무려 옆집 텔레비전 채널까지 바꿀 수 있다던 신기한 리모컨이 사은품이었다) 판매 상인에게 현혹되며 시간을 보냈다. 아이의 엄마는 미용사였다. 집과 연결된 미용실에서 하루 종일 아줌마들의 머리를 말았다. 아이는 파마 약 냄새가 싫어 최대한 오래 바깥에서 시간을 보냈는데, 그마저도 저녁 식사시간에 맞춰 들어가지 않으면 하루 종일 배를 곯아야 했다. 엄마는 늘 김치찌개를 끓였다. 큰 솥에 사골을 우려 며칠씩 데워먹거나 강된장을 만들어 밥에 비벼 먹도록 했다. 아이의 취향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그야말로 어른의 식사였다. 그러던 어느 날,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엄마는 아이에게 옷을 단단히 여미도록 했다. 외식이었다. 우리는 ‘겨울나그네’라는 당시로써는 굉장히 낭만적인 이름의 레스토랑에 갔다. 고상한 음악이 흐르고 머리에 포마드를 바른 검은색 나비넥타이 청년이 서빙을 하는, 아주 생경한 장소였다.
아이는 어쩐지 뻘쭘해졌으나 잠자코 어른의 선택을 기다렸다. 아이는 그날 처음 스테이크(정확히는 함박스테이크)라는 음식을 먹었다. 길게 썬 양배추에 옥수수를 올리고 분홍색 소스(아마도 케첩과 마요네즈가 아니었을까)를 뿌린 샐러드와 아이보리색 수프, 새콤달콤한 스파게티가 함께 나오는 식사. 믿을 수 없는 맛이었다. 아이는 그날을 두고두고 떠올리며 ‘미각이 열린 운명의 날’이라고 추억했다.
순전히 그날의 기억 때문에 ‘겨울나그네’를 선택했다. 아직도 이런 이름을 쓰는 곳이 있단 말이야?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찾은 동명의 가게는 인근 대학생들이 가벼운 호주머니로 즐길 수 있는 술집이었다. 선뜻 안으로 들어가기 망설여지는 외관과 달리 내부 인테리어가 매우 인상적이었는데, 붉은색 카펫이 깔린 바닥이며 부스 형태의 좌석, 낡았지만 고상한 장식들로 미뤄볼 때 가게가 처음 생긴 24년 전에는 누군가의 운명의 공간이 아니었을까. 솔직히 말해 아주 감동적인 맛을 느끼지는 못했다. 하지만 때로는 혀보다 추억으로 먹는 음식도 있는 법이다.
을지다방
주소 서울시 중구 충무로 72-1
가격 쌍화차 4,000원
평양냉면을 좋아한다. 여름이건, 겨울이건, 아침이건, 저녁이건, 술안주로, 또는 해장을 위해, 어느 순간이든 나의 첫 번째 선택은 평양냉면이다. 얼마 전에는 을지면옥에 다녀왔다. 평양냉면의 끝판왕이라는 명성에 걸맞은 맛과 풍미였다. 잔뜩 부른 배를 두드리며 밖으로 나왔는데, 인상적인 간판 하나가 눈에 띄었다. 같은 건물 2층에 자리한 을지다방이었다. 따로 찾아보지 않아도 ‘이곳은 아주 오래된 곳입니다.’라는 말풍선이 저절로 떠오르는 곳이었다. 사실 카페에 자주 가는 편은 아닌데 어쩐지 이런 곳이라면 조금 오래 시간을 보내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커다란 주전자 가득 물이 끓고, 손으로 직접 써 붙인 메뉴와 촌스러운 주황색 소파가 있고, 낡은 네모 탁자 위에는 설탕 종지가 놓여있었다. 모두 어디로 갔는지 손님과 주인 모두 자리에 없어 나는 가만히 소파에 앉아 텔레비전을 봤다. 브라운관 속의 현철 아저씨는 자신의 신곡이라며 노래를 불렀는데, 어쩐지 낯이 익은 노래였다.
얼마나 기다렸을까 계단을 오르는 소리가 들리더니 착하게 생기신(실례인 건 알지만 정말 이 표현이 가장 어울리는 분이었다.) 아주머니 한 분이 들어오셨다. “아이고, 내가 밖에서 수다 떠느라 손님 온 줄도 몰랐네. 쌍화차 드릴까?” 아주머니는 당연하다는 듯 그렇게 물었고, 나는 조금 두려웠지만 티 내지 않고 달걀노른자를 추가했다. 아주 진하게 우려낸 쌍화차 속에는 대추와 당귀, 잣, 기타 정체를 알 수 없는, 그러나 몸에 좋을 것이 분명해 보이는 약초가 들어있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달고 편한 맛이었다. “맛은 괜찮아요?” 아주머니는 멀찌감치 떨어진 곳에 앉아 그렇게 물었고, 나는 최고라고 대답해주었다. “젊은 사람들이 많이 오나요?”, “자주 오죠. 멀리서도 일부러 찾아오고, 할아버지들은 점심쯤에나 오시고.”, “얼마나 된 거예요?”, “여기 밑에 을지면옥하고 같은 날 생겼어요. 일부러 내가 오픈하는 날 맞춰서 문 연 거야.” 우리는 서로 세 테이블 정도는 떨어져 앉아 그런 대화를 나눴다. 쌍화차가 퍼지면서 몸이 따듯해졌다. 늘어지는 느낌, 잠깐 쪽잠을 자도 좋을 것 같은 기분이었다.
도고탕
주소 기록할 수 있는 주소지가 사라졌다
가격 성인 4,500원 소인 2,000원이었다
어렸을 적 일주일에 한 번씩 엄니는 나에게 만원이라는 거금을 쥐여주며 목욕탕에 가도록 명령했다. 엄니의 지시는 단순했다. ‘온탕에 30분 이상 앉아있을 것, 세신사 아저씨에게 때를 밀 것, 항아리 우유는 하나만 먹을 것, 오락실에는 절대로 가지 말 것.’ 하지만 그 명령은 아주 지키기 힘든 것들이어서 나는 자주 일탈했다. 온탕보다는 냉탕에 더 오래 있었고, 항아리 우유 대신 커피 우유를 마셨으며, 때때로 아주 대담하게 때도 안 밀고 오락실로 직행했다. 역시나 엄니는 내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지혜로운 사람이었고, 나는 매번 거짓말이 들통나 종아리를 걷어야 했다. 나는 이제 나의 의지대로 목욕탕에 간다. 시설은 더없이 깔끔해졌고, 심지어 욕탕에 담기는 물에도 어떤 효능이 있다고 선전하는 그런 곳에. 거기에는 무언가를 지시하거나 금지하는 사람이 없다. 추억도 없다.
얼마 전, 어라운드 영문판에 실릴 예전 기사를 찾아보다가 ‘서울, 목욕탕 여행’이라는 기획을 추가로 취재하게 되었다. 그저 지금도 영업을 하고 있는지, 바뀐 정보는 없는지 정도의 간단한 작업이었는데, 그 기사가 쓰인 지 3년이 지난 현재 네 군데의 목욕탕 중 두 곳은 문을 닫은 상태였다. 이미 오랜 시간을 버텨왔기에 언제라도 사라지는 것이 어색하지 않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그 역사의 페이지를 더 이상 쓸 수 없다고 생각하니 묘한 기분이 들었다. 앞서 나의 경험을 이야기한 그 목욕탕 역시 아파트단지 재개발과 함께 사라진 지 오래였다.
수소문하던 중 나는 예전과 크게 다르지 않은 요금을 유지하며 손님을 받는 목욕탕 하나를 발견했다. 길동역 근처에 있던 도고탕이라는 이름의 구식 목욕탕이었다. 낡은 상가 건물 옥상에 멀리서도 눈에 띄는 굴뚝이 있고, 동그란 반원형의 매표소 건너 할머니가 앉아있는 곳. 아무도 찾지 않을 법한 옛 느낌이 반가웠다. 나는 표를 끊고 안으로 들어갔다. 을지다방과 마찬가지로 그곳에는 주인도 손님도 없었다. 그걸 고요함이라는 말로 바꿔 부를 수 있다면 좋겠지만 어쨌든 이상한 기분이었다.
옷을 벗고 나무 의자에 앉아있는데, 창고 같은 곳에서 주인으로 보이는 할아버지가 살짝 고개를 내밀어 나를 보고는 다시 들어가 버렸다.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눈치였다. 나는 어릴 적 그때처럼 슬금슬금 탕에 들어가 몸을 불리고 냉탕에서 수영을 했다. 오래된 목욕탕 특유의 냄새도 실컷 맡았다. 때나 밀어볼까 생각하며 주인 할아버지를 찾았는데, 할아버지는 “이제 없어요.”라는 이해하기 힘든 말을 하며 거울을 가리켰다. 거기에는 ‘그동안 이용해주신 가족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리며’라는 문장으로 시작된 공고문이 붙어있었다. 읽으면 읽을수록 어쩐지 늦어버린 사람이 된 듯한 기분이 드는 이상한 종이였다.
에디터·포토그래퍼 김건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