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담은 공간

자그마치와 오르에르

자그마치와 오르에르

하나의 공간을 오랫동안 지켜본 사람은 안다. 무엇이 그곳을 따뜻하게 혹은 낯설게 만드는지. 음악과 색감, 가구의 배치, 공기와 조명, 그곳에 머무르는 사람들의 표정은 어디를 향해있는지. 공간을 이루는 다양한 요소들을 발견하고 어울림을 생각하는 사람들. 나는 그들을 성수동에서 만났다. 자그마치와 오르에르. 이곳은 인쇄공장과 가죽공장이 머물던 자리이며, 시간이 담긴 공간이다. 그들은 때 묻은 역사 위에 이야기를 덧씌우는 사람들이다.

첫 번째 시간의 공간
자그마치 ZAGMACHI

INTERVIEW 김재원, 정강화

낮에 성수동을 조금 걸어봤는데 느낌이 낯설더라고요. 자그마치는 어떤 곳인가요?
김재원 성수동은 서울 동북쪽의 준공업지역으로 문화적 불모지 느낌이 강한 곳이에요. 이태원이나 홍대, 강남에 비교했을 때 이렇다 할 즐길 공간이 없는 편이고, 인쇄소나 가죽 공방 같은 공장들이 많아서 동네 자체의 콘텐츠가 부족하죠. 제가 런던에서 학교에 다녔는데, 그때도 동쪽 지역은 삭막한 느낌이었어요. 거기에 디자이너와 예술가들이 모여들면서 굉장히 흥미로운 곳으로 변하게 되었어요. 성수동 역시 기존의 어두운 분위기에 디자인 적으로 상반된 요소들이 섞여들며 재미있는 분위기가 생겨났어요. 그런 분위기 안에 자그마치가 있는 거고요. 인쇄공장을 개조한 공간으로, 도면함이라든지 라벨 같은 공장의 흔적이 아직 남아있죠. 그런 것들이 공간이 가지고 있는 히스토리를 이어간다고 봐요.

무언가를 남겨두는 것과 새로운 공간을 만드는 것은 어떤 다른 매력이 있을까요?
김재원 만약 자그마치나 오르에르가 강남이나 청담동 같은 곳에 있었다면 그 동네와 어우러지도록 세련된 디자인을 추구했을 거예요. 그저 예쁘고 좋은 재료들로 공간을 꾸밀 수도 있었겠죠. 하지만 성수동이라는 동네의 특성, 즉 벽돌 건물과 공장의 느낌을 무시할 수가 없었어요. 공간을 새로 만드는 것보다는 기존의 것을 남겨두는 인더스트리얼 스타일이 더 매력적이라고 판단한 거죠. 자그마치의 철문 역시 기존의 인쇄소가 사용하던 걸 없앨까 하다 그대로 남겨둔 경우인데, 지금은 철문에 그린 ‘Z’자가 이곳의 시그니처가 됐네요.

자그마치의 공사 전 모습을 사진으로 봤어요. 철근과 콘크리트가 전부인 텅 빈 곳이었죠.
김재원 예, 그게 전부였어요. 그 뒤로는 계속 공간을 채우는 과정이었어요. 천장에 조명을 달기 위해 대여한 사다리를 반납 전에 잠시 놔뒀는데 어느 날 보니 생긴 게 재미있더라고요. 그래서 그대로 두고 그 위에 식물을 올려놨어요. 차가운 물성의 물건과 따뜻한 식물이 만나면서 생기는 반전이 흥미롭더라고요.
정강화 저희가 공간을 연출할 때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은 책상이라든지 기물의 배치가 사람들에게 다중적으로 읽혔으면 하는 거였어요. 언뜻 무심하게 놓인 것 같지만 세련된 구성이 되도록 나름 신경을 썼죠. 자그마치의 가구나 오브제들은 모두 움직일 수 있는 재료들이에요. 고정된 공간이 아니기에 변화에도 예민하게 반응할 수 있어요. ‘지난번에는 이런 모습이 아니었는데?’ 이런 식으로요.

하나의 공간이 어떻게 생명력을 갖는지 궁금했는데, 살아있는 식물, 움직이는 공간, 무심한 조화로움이 그 답이었네요.
김재원 일주일에 한 번씩 꽃 시장에 가요. 자그마치에 어울리는 꽃을 직접 사는데, 너무 예쁘게 생긴 것, 동그랗고, 리본 달아서 파는 인위적인 느낌들을 안 좋아해요. 그저 무심하게 툭 던져놓은 것처럼 보이지만 나름 굉장히 계산해서 꽃을 놓아둬요.
정강화 아주 건조한 인쇄공장이 하나 있어요. 페인트 냄새가 진동하는 그곳의 문을 열면 공업적인 분위기가 강하게 나죠. 그런데 거기를 뚫고 나오는 식물이라든지 생명력 있는 요소들이 있다고 상상해보세요. 그런 분위기나 스타일에 공감하는 분들이 점점 늘어나고, 그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자그마치는 대화와 교류의 장소가 되는 거예요.

자그마치처럼 공간의 역사를 살리며 무언가를 새로 더해야 할 때 무엇을 살리고 버릴지 그 기준이 중요할 것 같아요.
정강화 모든 공간은 각자의 뼈대와 스킨을 가지고 있어요. 뼈는 건물의 중심에 있으면서 그 특성을 좌우해요. 자그마치 같은 경우에는 굉장히 넓은 건물 부지에 굵은 기둥이 있고, 그 사이마다 인쇄 기계를 지탱할 철근 구조물이 지나가요. 바로 그 부분이 자그마치의 역사가 새겨진 부분이라고 할 수 있죠.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성수동이라는 배경 또한 무시할 수 없겠고요. 미장센이나 조형점 역시 이곳이 어떤 공간을 표방하는지 드러내는 중요한 요소예요. 대개의 사람들은 빠르고 쉽게 공간을 꾸미기 위해 석고보드를 사용하고 페인트를 발라버리죠. 하지만 석고보드는 물성 자체가 무심해서 저희와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어요.

김재원 요즘에는 과거를 잘 살린 미술관이나 카페도 여럿 있어요. 공간이 가진 이야기와 깊이가 있죠. 그런 공간에는 사람들이 기억할 수 있는 요소가 많아서 일종의 경험을 선물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어요. 그저 예쁜 공간이라면 돈을 많이 투자하면 해결될 일이에요. 하지만 예쁜 것은 또 다른 예쁜 것이 나오면 질려버리죠. 저희는 무엇보다 공간이 가진 스토리가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뿌리를 단단하게 만드는 과정 말이에요.

정강화 저희는 중간을 이어주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해요. 일종의 계주 선수 개념으로요. 공공개념은 아니지만 어쨌든 많은 사람이 저희의 공간을 사용하고, 저희는 그다음에 이 공간이 활용될 것까지 염두에 두고 이야기를 덧씌우는 역할을 하는 거죠. “아, 여기 이 전에는 자그마치였대. 그 전에는 인쇄공장이었고. 이번에는 이렇게 바뀌었네?”라는 이야깃거리가 있었으면 하거든요.

공간을 소유의 개념이 아니라 머물다 가는 것으로 보는 거네요.
김재원 그래서 더욱 성수동이라는 동네에 초점을 맞춰서 공간을 기획하려고 해요. 많은 사람이 자그마치를 이야기하며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을 걱정하는데, 저희 역시 머물다 간다는 의식이 있기에 함께 문제를 생각하는 거예요. 그래서 자그마치 안의 테이블이나 여타의 공정들은 모두 성수동 안의 공장들에 의뢰를 하고, 또 그게 성수동에 있는 브랜드로서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거죠.

브랜드로서 자그마치는 어떤 역할을 하나요?
김재원 많은 사람들이 자그마치를 단순히 카페라고만 생각하지만 저희는 이것을 하나의 브랜드로 접근했어요. 상표등록 같은 경우도 카페로만 하는 게 아니라 의류나 문구 등 다양한 방식으로 모색했죠. 이곳에 커피를 마시러 오는 사람들도 저희와 함께 다양한 것을 누렸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홍대나 한남동에 가지 않아도 전시나 강연을 만날 수 있도록 말이에요.

구체적으로 이 공간을 다른 용도로 활용한 사례가 궁금해요.
김재원 부끄럽지만 사실 저의 개인적인 취향으로 협업을 기획하는 편이에요. 장우철 기자님의 전시도 그렇고, 정인혜 씨, 슬로우파마씨와 함께한 선인장 기획도 마찬가지고요. 자주 오시는 손님이 계셨는데 알고 보니 그 분이 방송에도 자주 나오시는 프로파일러셨던 거예요. 너무 신기해서 알은 체를 했더니 프로파일링의 뒷이야기를 해주시더라고요. 제가 또 그런 것에 관심이 많거든요(웃음). 그런 인연으로 강연을 부탁드린 게 ‘손님의 발견’ 첫 번째 기획이었어요. ‘손님의 물건’ 같은 경우는 사실 저의 물건을 팔고 싶어서 기획한 프로그램인데, 처음부터 저의 물건을 팔기가 우스운 거 같아서 성수동에 재미있는 물건을 가진 분들을 수소문했죠. 물론 이런 저런 기획들을 진행하는 것이 신경 쓸 부분도 많고 힘이 들어요. 하지만 스스로 재미있기도 하고 자그마치를 찾는 분들도 ‘어 얘네 또 뭘 하네?’ 하는 기대를 하시는 게 좋더라고요. 

정강화 저희끼리 재미있는 대화를 많이 해요. 공간을 가지고 있으니까 무엇이라도 기획할 수 있는 거잖아요. 사실 기획을 하면 손해를 봐요(웃음). 매출도 떨어지고, 돈도 써야 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일을 하는 이유는 성수동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즐겨보면 어떨까 하는 마음 때문이에요. 자그마치가 있는 성수이로에 대림창고를 비롯한 대표적인 몇 개의 공간들이 있잖아요. 처음에는 하루에 열 명 스무 명만 오던 길이 지금은 문화적으로 무척 풍성해졌어요. 거기에 자그마치가 조금이나마 어떤 역할을 했다는 데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어요.

이야기를 들어보니 자그마치라는 공간을 채우는 요소 중 하나로 다양한 기획을 꼽을 수 있을 것 같은데, 거기에 또 하나를 추가한다면요?
김재원 자그마치는 밤이 되면 분위기가 달라져요. 강화 교수님이 조명 전문이라서 신경을 많이 쓰셨거든요. 이유가 궁금해 여쭤봤더니 씩 웃으시면서 “그런 거 같아?”라고 하시더라고요. 빛의 온도와 방향에 신경을 많이 쓰신 것 같아요.
정강화 자그마치는 인쇄공장의 흔적 때문에 마감이 거친 부분이 있어요. 조명을 마냥 밝게 해놓으면 조금 부조화스러울 수 있어서, 조명의 위치와 방향을 조금 조절했어요. 보통은 등을 천장에 달아서 위에서 밑으로 빛을 쏘도록 하는 게 일반적인데, 자그마치의 조명은 측면에서 빛이 오는 경우가 많아요. 빛의 높이가 낮으면 심리적으로 안정된 느낌을 받거든요. 그리고 무엇보다 옆에서 빛을 받으면 사진이 잘 나와요(웃음).
김재원 안으로 들어가면 공간을 나눠서 조명의 방향을 다르게 했어요. 커다란 회의용 테이블이 있는 공간은 조금 더 밝은 느낌으로 배치했고요.

같은 시간에 방문하더라도 자리에 따라서 느끼는 감정이 달라질 수 있겠네요.
정강화 그런 셈이죠. 그리고 자그마치는 기본적으로 서쪽으로 창이 나 있어요. 저녁이 되면 노르스름한 자연광이 들어오는데, 낮의 분위기와 저녁의 분위기, 밤의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달라지게 되어있는 거죠.

두 번째 시간의 공간
오르에르 or. er.

자그마치가 개방된 광장의 느낌이었다면 오르에르는 조금 더 비밀스러운 분위기가 있어요.
김재원 오르에르는 건물 자체가 독특하게 생겼어요. 앞은 네모난 상가 건물의 모습인데 복도를 거쳐 안쪽으로 들어오면 옛날 주택 모양이 나타나거든요. 처음 공간 기획할 때 며칠을 관찰했는데 아무리 봐도 그 모습이 굉장히 특이하더라고요. 1층은 조그만 가죽 가게 세 개가 나란히 있었고, 뒤쪽 마당으로 돌아 들어오면 원룸이 또 세 개, 2층은 구두 공장이 있던 자리예요. 한 건물에 모두 아홉 개의 전기 계량기가 돌아가던 공간이 이제 하나의 오르에르가 된 거죠.

여러 개의 정체성이 하나로 모인 공간이네요.
김재원 하나로 모이긴 했지만 층마다 다른 기능을 두고 싶었어요. 1층의 ‘오르에르 가든’과 2층의 ‘오르에르 라운지’는 그 느낌이 다르죠. 오르에르 가든이 여성스러운 느낌이 강하다면 라운지는 좀 더 드라이한 콘셉트예요. 기름기를 쏙 뺀 느낌의 벽지와 스피커로 분위기를 내서 혼자 작업하는 손님들이 많이 이용해요. 자그마치와 마찬가지로 강연과 세미나 공간으로 활용하려 만든 공간인데, 손님이 갑자기 늘어나면서 두 공간을 함께 오픈하게 되었어요. 보시다시피 주변에 다른 카페가 없어요. 손님을 그냥 돌려보내기도 죄송한 마음에 개방한 거죠. 그 외에도 지하 갤러리와 3층 공간이 있는데 아직 둘 다 정식 오픈한 상태는 아니에요. 3층 공간은 물건을 파는 상점과 실크스크린 작업실, 기획 사무실로 활용하고 나머지 거실 부분은 지인들과 함께하는 살롱으로 꾸밀 생각이에요.

2층에 있으면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이 떠올라요.
김재원 (웃음)1층은 여자분들이 좋아하고, 2층은 남자 손님들이 훨씬 좋아해요. 가능한 한 달달하게 분위기를 낸 공간과 최대한 건조하게 만든 공간의 차이인 거죠.

겉에서만 보기에는 잘 드러나지 않는 곳이 많은데, 제가 가장 주목한 장소는 후원後園이에요. 어떻게 기획한 공간인가요?
김재원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처음부터 이 공간이 가지고 있었던 형태적 특수함에 집중했어요. ‘팔방미인 미용실’과 ‘파랑새 노래방’ 사이에 있는, 자칫 모르고 지나칠 만한 평범한 건물에 들어서면 전혀 다른 세계가 나타나도록 유도한 거죠. 기획 단계부터 뒷마당에 힘을 실어야 한다는 논의가 있었어요. 그곳에 덩그러니 자리한 창고 건물 역시 팝업 전시를 진행할 수 있는 중요한 요소가 될 거고요. 사실 정원이라는 것은 일부러 콘텐츠를 바꾸려 노력하지 않아도 늘 변하잖아요. 이곳을 방문하는 사람들은 계절마다 새로운 것을 만날 수 있을 거예요. 

계절의 변화라고 말씀하셨는데, 저도 정원을 지켜보면서 비가 내리는 풍경을 상상했어요. 사방이 벽으로 둘러싸여 있지만 이 공간에서만큼은 자연을 느낄 수 있겠다고 말이에요.
김재원 건물 안쪽에서 정원을 바라볼 수 있도록 창을 냈는데, 그것들이 하나의 프레임 속에 담겨 그림처럼 보이길 바랐어요. 다른 나라, 누군가의 집에 방문해 창밖을 바라보는 구조로 만들어보자고요. 정원 가장자리의 대나무 역시 이웃집과 담을 쌓는 대신 심어놓은 풍경이에요. 바람이 부니까 대나무 스치는 소리가 너무 좋더라고요.
정강화 나무를 심으니 새가 날아왔어요. 신기한 일이죠.정원을 가꾸자 이곳은 새가 날아들고 파도소리처럼 바람이 부는 장소가 됐네요.
김재원 네, 맞아요. 지난번에는 사마귀도 나왔죠(웃음). 제가 자그마치에서 식물을 다루지만 절화를 만지는 것과 자연 그대로의 것을 가꾸는 것은 확실히 달라요. 손은 훨씬 많이 가지만 어떻게 변할지 기대되는 부분이 커요.

공간에 식물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요?
김재원 저 역시 처음부터 식물에 관심 있는 사람은 아니었어요. 자그마치에서 식물을 다루기는 했지만 그건 ‘키운다’는 느낌보다는 예뻐서 ‘가지고 싶다’는 느낌이 더 컸어요. 실제로 자그마치 전시 때 장우철 씨가 식물을 여럿 가지고 오셨는데, 그때 제가 산 것들이 다 죽었어요. 당시만 해도 저에게 식물은 삭막한 공간을 꾸미는 일종의 오브제 기능이 강했어요. 하지만 오르에르의 식물은 달라요. 별로 좋아하는 표현은 아니지만, 스스로 자라는 걸 지켜보면서 일종의 힐링을 느꼈어요. 도심에서 벗어나지 않아도 눈으로 녹색을 보고, 바람 소리를 듣고, 벌레는 물론 싫지만(웃음), 가만히 앉아서 여유를 느낄 수 있게 됐어요. 

하긴 저도 저곳에 나무가 없었다면 바람이 부는 것조차 몰랐을 것 같아요.
김재원 그렇죠. 하루 종일 사무실에 앉아 컴퓨터를 하다가도 ‘아, 맞다. 물 줄 시간이지.’라며 아무 생각 없이 그들과 시간을 보내면 그게 그렇게 좋더라고요. 식물을 안 키워봤던 사람이라 하나하나 공부하고 있어요.

바깥을 채우는 것이 식물의 역할이라면, 안쪽 공간은 어떤 기준으로 채우는지 궁금해요.
김재원 크게 정원을 바라볼 수 있는 비밀스러운 방과 커다란 홀로 구분했어요. 내부를 구성하는 프레임 역시 방과 가까워질수록 나무 프레임을 적용했고요. 홀에 다가갈수록 앤틱과 빈티지의 느낌을, 2층 같은 경우는 최대한 건조한 느낌을 살리고자 했어요. 한번은 2층 벽을 칠할 때 도장하시는 사장님께서 자기는 생전에 이런 색깔은 처음 써봤다면서, 여기는 무당집이냐고 혼을 내기도 했죠(웃음). 

가게 한가운데 기다란 의자가 있어요. 교회 의자라고요.
김재원 사실은 그 의자를 처음 본 게 3년 전이에요. 자그마치 입구에 놓을까? 생각하다가 도저히 안 어울리겠다 싶어 그냥 두었던 거예요. 사실 교회 의자의 특성상 길이가 길어서 일반인들이 집에 들여놓기는 무리가 있어요. 뭔가 애매한 크기여서 의자를 잘라 벽을 사이에 두고 놓아둘까 생각하며 샀어요. 어차피 반으로 자를 거였기 때문에 배달해주신 아저씨께 “일단 거기에 놔주세요.” 하고 말했던 게 지금 자리예요(웃음). 우연한 계기로 제자리를 찾게 된 거죠.

우연히 찾은 자리라는 것. 어쩌면 창밖의 계절이 변하는 것과도 비슷한 맥락처럼 보여요.
김재원 벽 한쪽에 식물 그림자가 드리워지는 자리가 있어요. “이런 것마저 계산한 것이냐. 치밀하다.” 하고 감탄하시는데 그건 사실 손님의 동선을 유도하기 위해 놓은 화분이었거든요. 우연히 만들어진 무늬인 거죠. 하지만 모든 것들을 우연에 기대는 건 아니고, 대부분은 치밀한 계획에 의해 배치해요. 비워야 할 곳과 채워야 할 곳을 적절히 분배하는 과정이 공간 기획 안에 있는 거죠.

그동안 자그마치와 오르에르 두 공간을 채웠어요. 비워야 하는 순간이 왔다고 가정했을 때 하나의 요소만 남길 수 있다면 무엇을 지킬 건가요?
김재원 음…. 글쎄요. 잘 모르겠어요. 우선순위가 없는 것 같아요. 이 공간을 채우는 요소들, 식물, 가구, 음악, 천, 벽지, 우연히 만들어진 것들까지 모든 게 다 연결되고 계산된 거라서 하나만 선택하기가 힘드네요.

결국 공간이 하나의 유기체로 작동한다는 이야기네요.
김재원 이것은 저것 때문이고, 저것은 또 다른 걸 선택하게 하니까요. 뭘 빼야 할까요?

듣고 보니 굳이 안 빼도 될 것 같은데요(웃음).
김재원 그렇죠?

이곳의 손님이 되어본 적이 있나요?
김재원 그럼요. 지금도 손님처럼 보이잖아요.

이 공간을 조금 더 많이 아는 손님으로서 사람들이 이곳을 어떻게 누렸으면 하나요?
김재원 오르에르가 위치한 연무장길은 가로수길과 길이가 비슷해요. 하지만 가로수길보다는 조금 덜 깔끔하고 교통도 불편하죠. 처음에 저희가 걱정했던 것은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외부적인 요소들 때문에 불편함을 느끼면 어쩌나 하는 거였어요. 하지만 걱정과는 달리 사람들이 ‘여기는 성수동이니까 그럴 수도 있다.’라는 마음을 갖고 방문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지금은 오히려 성수동만의 고유한 준공업지역 느낌이 최대한 사라지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청담동에 있는 오르에르가 아니라 성수동에 있는 오르에르 그대로를 즐기고 재미있게 봐주셨으면 좋겠어요.

시간의 공간을
이루는 요소들

두 개의 시간이 담긴 공간이 있다. 이곳에 머물며 공간을 채우는 네 개의 요소들을 찾아보았다.

자그마치

01 공간을 움직이는 기획

자그마치의 기획은 공간을 움직이게 한다. 운동회를 해도 남을 만큼 넓은 공간을 무대로 다양한 일들을 꾸민다. 손님을 섭외해 강연을 의뢰하기도 하고, 재미있는 물건을 내어다 팔기도 한다. 이런 기획들은 대부분 작은 상상으로부터 시작된다.

02 빛과 조명

자그마치의 빛은 서쪽에서 시작된다. 저물녘 하늘이 커다란 창으로 비춰들면 이곳은 금세 노란 물결이 되고 머지않아 밤이 찾아온다. 공간을 다양한 각도에서 비추는 조명 인테리어 덕분에 자리마다 조금씩 다른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03 인쇄공장의 흔적

공간을 지탱하는 커다란 기둥과 과거 인쇄공장의 흔적이 남아 있는 구조물은 자그마치의 시간을 추적할 수 있는 일종의 나이테 역할을 한다. 그들은 잠시 머물다 가는 사람으로서 과거를 허무는 대신 그 위에 시간을 쌓기로 마음먹었다.

04 자그마치에 어울리는 커피

원두는 비교적 자주 교체되는 편이다. 마치 하나로 고정되고 싶지 않은 공간적 열망이 커피에도 깃든 것처럼 말이다. 단 하나의 커피를 추천해 달라고 했을 때 바리스타는 일반적인 라테보다 우유가 적어 고소한 맛이 배가된 플랫화이트Flat White를 추천했다.

오르에르

01 오르에르 가든의 후원

프루스트 마담의 비밀정원에 가본 적은 없지만 아마 이런 곳이 아닐까? 무심하게 배열한 식물의 조화가 조금 오래 앉아 있어도 괜찮을 것 같은 기분을 들게 한다. 정원에 가만히 앉아있으면 대나무 스치는 소리가 평화롭다. 눈이 내린다면 더 좋을 것 같은 곳이다.

02 층마다 다른 이름들

과거 아홉 세대를 아울러 하나의 공간이 태어났다. 그만큼 다양한 기억들이 공간 안에 숨겨 있을 것이다. 이 공간의 기획자는 지하부터 옥상에 이르기까지 층마다 이름을 짓고 각자 다른 정체성을 부여했다. 계단을 오를 때마다 달라지는 풍경이 색다르다.

03 우연이 만든 공간

1년여의 기획을 통해 오르에르는 철저히 계산된 공간으로 태어났다. 그들이 가장 신경 쓴 부분은 디테일과 무심함이다. 가장 작은 부분까지 철저히 계산하되 힘을 빼야 할 곳에서는 우연에 맡기기로 했다. 우연히 놓인 의자, 우연히 생긴 그림자.

04 빵순이의 인연으로 만든 케이크

누군가는 오르에르를 ‘자그마치의 여동생’이라는 별명으로 부른단다. 달달하고 여성스러운 분위기 때문인데, 오르에르에서는 디저트를 맛보길 권한다. 손님으로 만난 ‘빵순이’와 그녀의 파티시에 친구들이 케이크를 책임진다. 추천 메뉴는 오르그레이Orgrey.

자그마치
A. 서울시 성동구 성수이로 88
H. instagram.com/zagmachi
T. 070 4409 7700
o. 11:00~23:00

오르에르
A. 서울시 성동구 연무장길 18
H. instagram.com/or.er
T. 02 462 0018
o. 11:00~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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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김건태

포토그래퍼 안가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