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ROUND
CLUB ONLY
SERIES
MEET AROUND
SUBSCRIBE
SHOP
I AM NOT A PHOTOGRAPHER
시간을
뉘어 놓는 시간
지나가는 시간을 기록하고 그걸 돌아보는 순간은 꼭 필요한 걸까. 당장 살아가는 일도 바쁜데, 오늘을 기록해야 하는 이유는 뭘까.
춥고 긴 겨울을
견디는 법
이번 겨울에는 혼자 방에 앉아 찍어둔 사진을 보곤 했다. 밤이 되면 컴퓨터를 켜고 외장하드를 꽂았다. 사진 폴더의 이름은 ‘CONTAX T3 184TH ROLL; 교토 땅콩 강’ 같이 적혀있기에 보고 싶은 필름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사진을 고른 후에는 음악을 고민했다. ‘교토, 땅콩, 강’ 같은 단어를 곱씹다 보면 어떤 풍경이 떠오르고 어렵지 않게 틀어야 할 음악을 기억해낼 수 있었다. 음악을 틀어놓고 ‘슬라이드 쇼’라고 적힌 버튼을 눌렀다. 첫 장이 시작되면 두 다리를 의자 위로 올리고 팔로 무릎을 감쌌다. 팔 위에 턱을 괴고 가만히 사진을 봤다. 폴더 안에 있는 사진들이 화면을 가득 채우고 일정한 속도로 한 장씩 지나갔다. 그렇게 쌓아둔 것들을 뒤적거리다 보니 춥고 긴 겨울이 지나갔다. ‘지나갔다’라고 적는 순간, 어떤 밤들이 떠오른다. 사실, 이전에도 그런 일을 몇 번 반복했다. 견딜 수 없이 더워서 깬 여름의 새벽, 서늘한 바람이 불어 창문을 닫던 가을의 저녁, 집 앞 나무에 잎이 돋은 게 기뻐 와인을 까던 봄의 밤….
한 장의 사진을
바라보는 시간
‘슬라이드 쇼’라는 말을 언제, 어디에서 쓰기 시작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파워포인트에서도 쓰이고, 영상이나 음악 편집을 할 때도 쓰이는 말이다. 내 경우에는 대학 새내기 시절 수업을 듣다 알았다. 사진가의 사진을 보고 이야기를 나누는 강의였다. 수업을 시작하기 5분 전쯤, 선생님은 강의실 컴퓨터에 USB를 꽂고 사진과 음악 폴더를 열었다. 정시가 되면 불을 끄고 음악을 튼 후, 사진 폴더에 들어가 슬라이드 쇼 버튼을 눌렀다. 가사 없는 잔잔한 음악이 흘러나오면 어느 작가의 사진이 강의실 앞 스크린을 채웠다. 사진은 3초마다 한 장씩 넘어갔고 어둠 속에서 그렇게 사진을 감상했다. 영화나 발표 자료를 스크린에 띄워 보는 것과는 다른 경험이었다. 영화를 보는 시간은 명확한 이야기를 갖고 빠르게 지나가고, 발표 자료를 보는 시간은 글자를 읽느라 부지런히 지나갔다. 한 장의 사진을 바라보는 3초는 그런 시간과는 조금 다르게 다가왔다.
강의를 듣던 때는 시골에서 막 상경했을 때라 잘 몰랐는데, 그 후 곳곳에 전시를 보러 다니며 알았다. 전시장에 가면 강의실에서 보던 것보다 그럴싸한 슬라이드 쇼를 볼 수 있다는 것을. 사진전에 가면 작가의 사진을 필름 그대로 보여주곤 한다. 스크린에 비추는 빛을 따라가면 끝에 기계가 있고 거기에 필름 슬라이드가 끼워져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동그랗게 줄을 세워 필름을 꽂아두면 그것들이 순서대로 돌아가며 스크린에 보이는 방식이다. 작은 필름을 확대해서 투영하는 기계를 ‘슬라이드 영사기’라 부르고, 내가 스크린이라고 부르던 스크린을 ‘영사막’이라고 부른다는 것은 뒤늦게 안 사실이다. 내가 아는 슬라이드 쇼의 원형이 영사기로 필름을 보는 일이었다. 영사기에 꽂은 필름은 컴퓨터처럼 부드럽게 넘어가지 않고 슬라이드를 넘길 때마다 소리가 “딱” 하고 나는데 그 소리가 필름과 퍽 잘 어울린다.
오늘을 위해
찍어둔 사진
영사기로 보면 좋겠지만, 그럴 수가 없기에 수업 시간에 선생님이 보여주신 방식으로 사진가의 사진을 보곤 했다. ‘윌리엄 이글스턴William Eggleston’, ‘워커 에반스Walker Evans’, ‘알프레드 스티글리츠Alfred Stieglitz’, ‘낸 골딘Nan Goldin’ 같은 좋아하는 작가의 이름으로 폴더를 만들고 사진을 모았다. 수집한 파일이 늘어갈수록 사진을 들여다보는 시간도 길어졌다. 책상이나 침대에 앉아 그렇게 사진을 보다가 ‘내 사진도 이렇게 보면 어떤 기분일까.’ 하고 스캔한 필름을 넣어둔 폴더를 열어봤다. 사진가들의 사진을 볼 땐 ‘어떻게 저런 구도로 찍었을까’, ‘빛이 정말 아름답구나’, ‘저긴 어딜까’, ‘피사체와 사진가가 가까운 사이인가 보다’ 같은 생각을 했다면, 내 사진을 볼 땐 다른 생각을 했다. ‘저 사진은 그 높은 언덕 위에 올라가서 찍었지’, ‘해가 뜨기 직전의 그 빛은 정말 아름다웠는데’, ‘저길 다시 갈 수 있다면 좋겠네’, ‘아, 다들 보고 싶다’. 그 기분이 좋았는지 그 후로 종종 내 사진을 보는 시간을 갖는다. 언젠가 다시 보겠다는 마음으로 찍은 것이 아니었는데, 번번이 오늘을 위해 찍어둔 것 같다.
혼자 어둑한 방에 앉아
시간을 눕혀두고
“요즘 왜 이렇게 연락이 안 돼? 잘 지내는 거야?” 누군가 안부를 물어오면 우물쭈물 답을 못 하는 날이 있다. 선뜻 잘 지낸다고 대답을 못 할 때는 적당히 둘러대고 방 안에 앉아 전에 찍은 사진을 열어본다. 사진을 보다 보면 그즈음의 일기나 편지 같은 것도 궁금해지는데, 그런 걸 꺼내 보고 있으면 거기에서 타인에게 들려주지 못한 내 목소리가 들린다.
혼자 어둠 속에 앉아 옛 사진을 보거나 일기를 들추는 걸 외로움이나 쓸쓸함으로 부르기엔 부족한 감이 있다. 집 밖에서 동료들과 일을 하면 시간은 빠르게 흐르고, 여행을 떠나 가족이나 친구와 여유를 부리면 느리게 흐르고, 좋아하는 사람과 입을 맞추면 흐름을 멈추기도 한다. 누군가와 함께 하는 시간은 그렇게 흐른다. 혼자 어둑한 방에 앉아 그런 날들을 돌아보면, 시간은 움직이거나 멈추지 않고 그대로 뒤쪽을 향해 가만히 눕는다. 내가 방에 앉아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도 창밖에는 누군가 걸어간다. 거리를 지나는 사람 중에는 좋아하고, 미워하고, 그리워하고, 아끼고, 사랑하고, 보고 싶은 사람들이 있다.시간을 눕혀두는 일을 건너뛰고 계속 시간을 흘려보내기만 한 적이 있다. 금세 지쳤고, 지루해졌고, 여기 아닌 어디론가 향하려고 애를 썼다. 어제, 오늘, 내일이 마구 섞여 방향을 잃었다고 해야 할까. 오늘을 잘 지내지 못한다고 느껴지는 날에는 당장 어디론가 향하려는 마음을 잡아두고, 홀로 어둑한 방에서 시간을 뉘어놓고 어제를 돌아볼 시간이 필요하다. 그래야 흐릿하던 오늘이 선명해지고, 천천히 몸을 움직여 다시 어디론가 걸음을 옮길 수 있게 된다.
글·사진 박선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