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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션 장필순
슬퍼지고
싶을 때마다
뮤지션 장필순
어째서일까? 슬퍼지려 할 때마다, 슬퍼지고 싶을 때마다 가장 먼저 장필순의 음악이 떠올랐다. 살다가 한 번은 만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이번이 꼭 그랬다. 더 늦으면 어딘가로 숨어버릴 것 같은 사람. 너무 아련해서 지워질 것 같은 목소리. 그녀, 장필순을 제주에서 만났다.
어제는 무얼 했나요?
서울에 다녀왔어요. 12월쯤에 공연이 잡혀있어서 관계자분들과 수인사 나누고, 막 내려와서 종일 집에서 쉬었어요.
아무것도 안 하고요?
보통 아침에 일어나서 제일 먼저 강아지들을 돌봐요. 처음에 키우던 강아지는 두 마리였는데 유기견을 하나둘 거두다 보니 지금은 모두 여덟 마리가 됐네요.
강아지를 키우는 건 알고 있었지만 여덟 마리라니. 손이 많이 가지 않나요?
따로 미용을 한다거나 그런 건 한계가 있고요. 대신 마당에 풀어놓고 답답하지 않도록 해줘요. 하루에 두세 번은 나가서 놀아주는 정도? 데려다 놓고 안 놀아주면 미안하잖아요.
제주에서 생활한 지 10년도 더 지난 거로 알고 있어요.
10년 전에 비해 시간 개념이 사라졌다고 느낄 때가 많아요. 아침 6시에 일어났어도 9시 같고 11시에 일어나도 저에게는 9시인 거죠. 시간에 따라서 움직이기보다는 제가 활동하는 동안에 하루가 맞춰지는 셈이에요. 오늘 같은 경우도 건태 씨를 만나야 하니까 아이들(강아지)과 좀 더 일찍 시간을 보내고 왔어요. 그런 게 가장 큰 변화가 아닐까 싶네요.
그러고 보니 저도 시계를 보는 게 습관이 됐어요.
도시에서 살면 몇 시에서 몇 시까지 무엇을 할지 거의 정해져 있잖아요. 음악 할 때도 스튜디오 시간에 맞춰서 작업해야 하고요. 여기에서는 마음이 내킬 때 하고, 하기 싫은 날에는 주로 멍하게 있어요. 저녁 좋은 날 석양을 보면서 ‘하루가 지나고 있구나.’ 생각하는 거죠.
10년이면 더는 이주민이나 이방인이라는 호칭이 유효하지 않을 것 같아요.
워낙 성격이 적극적이지 못해서 이웃을 대할 때 억지로 친해지지는 못해요. 그저 여기서 지낼 수 있음에 고마워하고, 그분들 또한 우리 마을에 누가 왔구나, 하며 반가워 해주시죠. 그래도 처음처럼 어색하고 불편하진 않아요. 가끔 마을 회의도 참여하고 의사를 결정해야 하는 일에는 투표도 곧잘 해요.
관계를 맺는다는 게 참 어렵죠.
네. 아직은 저한테 더 시간이 필요한 거 같아요(웃음).
그게 제주라는 공간적 특별함 때문이 아니라 여태껏 장필순이 살아온 방식인 거겠죠?
그렇겠죠. 저는 음악을 하면서도 관계의 틀이 좁았어요. 새로운 음악,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서 무언가를 하는 것보다는 한 군데에 머무르면서 좀 더 깊이 들어가는 걸 좋아했어요. 우물 안 세상일지 모르지만 그 안에서도 다양한 감정들이 나오더라고요.
이야기가 나왔으니 질문을 이어가 볼게요. 장필순의 음악을 이야기하면서 ‘하나음악(1990년대 수많은 명반을 만들어낸 음악공동체)’을 빼놓을 수 없을 것 같아요. 하나음악은 장필순에게 어떤 의미일까요?
글쎄요…. 한 20년쯤 되려나. 너무 오래되어서 그들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다고 한마디로 표현하기는 조금 그렇지만, 굳이 이야기하자면 ‘오해가 없는 사이’ 같아요. 사람 관계라는 것이 아무리 친하고 자주 만나도 어떤 문제가 생기면 서운해하고 틀어지기도 하잖아요. 하나음악 사람들의 경우 그런 일이 거의 없어요. 누군가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더라도, 그저 그런 이유가 있을 것이다 생각하게 되는 거죠. 그러다 보니 언제 보더라도 요란하지 않고 마냥 반갑다고 느껴요. 좀 더 지켜볼 수 있는 마음이 된 거죠.
편안해 보여요.
부유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주변에 음악 하는 사람들은 하나음악이라는 공간을 부러워하시는 게 느껴져요.
음악적으로는 어떤가요? 하나음악만의 특별한 지점이 있을 거 같아요.
그 안에서도 생각이 다 다르겠지만 저는 음악으로 장사하지는 않겠다는 생각이 컸어요. 물론 저에게 이것이 직업이고 생계수단이지만 대중들에게 얼마나 어필할 수 있을지 고민하기보다는 좀 더 순수하게 작업하자고 마음을 먹은 거죠. 순수하다는 말이 참 촌스러운 표현이긴 해요. 대중음악을 하는 사람이 뭐 그런 생각을 하느냐고 한심해하는 사람도 간혹 있었지만, 어떤 계획보다는 순간순간 음악을 즐겼던 거예요. 그래서인지 대중들의 반응이 그렇게 강하지 않았죠(웃음). 그래도 지금까지 하고 있다는 게 어디예요.
지금까지 하고 있다는 말이 참 와 닿아요. 저 역시 좋아하는 일을 얼마나 오랫동안 순수한 마음으로 지켜나갈 수 있을지 늘 고민하거든요.
그만큼 또 응원해주는 사람들이 있으니까요. 그게 단 몇 사람일지라도 기다려주는 사람이 있다는 게 엄청 큰 에너지가 되거든요. 사람이 혼자 살지 않잖아요. 제가 혼자인 걸 좋아해도 그건 그저 성격일 뿐이지 사실 근본적으로는 지지해주고 응원해주는 사람이 있으면 좋더라고요.
기다림이 그리워 음악을 한다고 이야기할 수도 있겠네요.
네, 그럼요. 노래하면서 항상 좋을 수는 없지만, 아니 오히려 힘든 날이 더 많지만, 누군가 기다려주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이어나갈 수 있거든요.
데뷔 후 30년도 더 지났어요. 감이 잘 안 오더라고요. 처음을 기억하나요?
저도 감이 안 와요. 그렇게 안 지나간 거 같은데(웃음). 처음이라…. 선명하진 않지만 기억이 나요. 저는 대학교에서 기타 치며 자연스럽게 음악을 시작했어요. 마음에 맞는 친구들이랑 같이 곡 쓰고 팸플릿도 만들면서, 내 젊은 날을 멋진 시절로 물들여간다는 느낌으로요. 음악에 대한 열정은 있었지만 가수가 꼭 되고 싶다는 생각은 아니었어요. 그런데 우연히 음반을 내고 무대에 서게 되면서 지금까지 온 거죠.
자연스러운 일이었네요.
언제든지 상황이 안 되면 음악을 그만할 수도 있겠구나, 생각해요. 그건 지금도 변함이 없어요. 그건 저의 의지와는 상관없는 거니까. 당장 내일이라도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거잖아요. 그저 조금 덜 의식하고 지금 하는 것을 가장 재미있게 즐기자는 마음인 거죠.
장필순의 음악을 두 번 다시 못 듣는다고 생각하면 조금 슬퍼지는데, 어쩐지 내일을 강요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도 들어요.
음악을 하는 사람들만의 특권이 아닐까 생각해요. 딱히 정해진 규칙이 없잖아요.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내려놓을 수도 있고, 그러다가 다시 출발점에 설 수도 있고요. 그런 면에서 제가 가진 달란트를 고마워해야겠죠.
삶과 노래 사이에 얼마만큼의 거리를 두나요?
최대한 가까워지려고 노력하면서 살아요. 뭐라고 말해야 할까(창밖을 오래 바라본다). 처음 제주에 내려간다고 했을 때 친구들이 어떻게 그런 결정을 쉽게 할 수 있느냐고 걱정했어요. 하지만 저는 그렇게 어렵지 않았거든요. 잘 내려왔다고 생각해요. 변화한다는 것, 그런 시간이 있다는 게 저를 찾아가는 데 도움도 주었고요. 음악적으로도 늘 그런 자연스러움을 생각해요. 삶이든 노래든 억지로 무언가를 해야겠다는 생각보다는 흐름에 맡기는 편이에요. 저는 몰랐는데 사람들이 노래에 이곳에서의 삶이 느껴진다고 얘기하더라고요. 그러면 아, 나 참 잘 내려왔구나 하고 생각하게 되는 거죠.
6집과 7집 앨범 사이에 11년이라는 시간이 있었어요. 그 사이가 궁금해요.
서울에 살 때는 일정한 생활패턴이 있어서 반드시 무엇을 해야 한다는 압박이 있었어요. 여기서는 굳이 음악을 하지 않아도 얼마든지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것들이 많았거든요. 내 집 마당에서 나무 심고 채소 가꾸고, 강아지 돌보고, 그러다 기타를 잡고. 특별히 음악에서 손을 놨다는 생각은 없었는데 어쩌다 보니 그렇게 시간이 지났네요.
그렇지만 마냥 게으르게만 보이지는 않는 것이, 장필순의 음악은 알게 모르게 계속 변화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어느 것 하나 지난번의 성공을 답습하지 않는다는 느낌 말이에요.
음악적으로 고민을 많이 하는데 특히 스스로 안일해지지는 않으려고 해요. 이 사람이 다음에는 어떤 음악을 발표할까? 그런 기대를 하게 하는 음악을 하고 싶은 거죠. 그건 가사에서 나타날 수도 있고 멜로디에서 드러날 수도 있을 거예요. 눈에 띄게 변하지는 않을 테지만 한 곡 한 곡 발전하는 모습이 보인다면 좋겠어요. 그래서 나중에 저의 음악을 펼쳐놓았을 때 하나의 스토리 안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보였으면 해요.
30년 차 가수도 매너리즘을 고민하네요.
늘 생각하죠. 그런 의미에서 제주에서 정규앨범 작업을 했던 게 저한테는 굉장히 큰일이었어요. 이제 또 해야 하는데…. 그래도 요즘에는 두세 달에 한 번씩 싱글 작업을 하니까 무언가 열심히 하고 있다는 기분이 들어요.제주에 내려오기 전에 장필순의 모든 노래를 듣고 오자고 마음먹었거든요.
유난히 ‘외로움’과 ‘슬픔’이라는 단어가 눈에 띄더라고요. 하나의 감정을 노래할 때 어떤 위치에 서 있나요?
폭발하는 음악은 많잖아요. 하지만 저는 노래를 부를 때 가사나 멜로디에 감정을 모두 담지는 않는 편이에요. 노래하는 사람이 반 정도의 감정을 담고 나머지는 듣는 사람이 채워주는 거라고 생각해요.
저는 위로 받고 싶을 때 장필순의 음악을 찾아요. 그런데 한참을 듣다 보면 오히려 노래하고 있는 장필순을 위로해주고 싶다는 느낌이 들기도 하더라고요. 묘한 감정이죠.
아유, 감사합니다(웃음). 듣는 사람에 따라 다른 느낌을 가져갈 테지만 건태 씨가 그렇게 들었다면 제가 감사하죠. 사실 누군가를 위로해주고 싶은 마음으로 노래할 때가 많아요. ‘너라면 할 수 있어’라고 말하는 것도 물론 좋겠지만, 슬픔을 슬픔 자체로 읊어주면 위로가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으로요.
장필순도 장필순의 노래를 듣나요? 그러니까 위로받고 싶을 때 말이에요.
가장 힘들었을 때 들으면서 많은 위로를 받았고, 그래서 다시 부른 곡이 조동진 선생님의 ‘제비꽃’이에요. 제비꽃의 단순한 멜로디 안에 1, 2, 3절의 가사가 하나의 시간을 보여주거든요. 가사가 너무 좋아서 종종 들어요.
노래하며 운 적이 있나요?
많죠. 참 많아요. 녹음작업 하면서도 울고, 무대 위에서도 멜로디에 이야기를 전하다 보면 갑자기 복받칠 때가 있죠. 공연할 때는 따로 가사를 보지 않으려고 하거든요. 중간에 틀리는 한이 있더라도 눈 감고 노래하는 게 아직은 더 좋아요.
예전 봉하마을 공연에서 마지막에 목이 메는 모습을 봤거든요.
노랫말에 따라서 달라지겠지만 개인적인 감정이 특히 많이 들어간 곡이 있잖아요. 물론 노래하는 사람이 먼저 터지면 안 될 거라는 생각을 하니까 가능하면 그러지 않으려고 노력은 하죠.
가수 장필순의 가장 큰 매력이 뭘까요?
글쎄요. 뭐가 있을까?
저는 목소리가 첫 번째라고 생각했어요. 시골 할머니 댁에 가면 꼭 하나 있을 것 같은 붉은색 담요 있잖아요. 무겁고 투박한데 너무나 따듯한. 그런 목소리.
감사합니다(웃음). 목소리가 좀 별나죠?
예전에 故 김광석 씨와 함께 한 라디오 방송을 들었어요. 그때 목소리를 예쁘게 해달라고 소원을 빌었더라고요.
제가 그랬었나요(웃음)? 예전에는 목소리가 워낙 콤플렉스였거든요. 자꾸 물어보니까 누구 앞에서 말하는 것 자체를 꺼렸어요. 아마 기타를 배운 것도 그런 이유였던 것 같아요. 제가 가진 끼를 표현하고는 싶은데 노래로는 아니라고 생각했거든요. 지금이야 흔하지만 당시에는 기타를 치는 여자들이 많지 않았어요. 뭐랄까, 혼자 굉장히 뿌듯해했죠.
그때 그 모습을 보면서 지금의 후배들이 성장한 거겠죠.
제가 원했건 원하지 않았건 하나의 색깔 있는 뮤지션으로 봐주고 계시지만 저는 그게 저 혼자서 이뤄낸 일은 절대 아니라고 생각해요. 함께 한 스태프들이 있었고, 그걸 서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면서 만들어진 음악들이 있었고, 또 그 음악을 좋아해 준 사람들이 있었고, 전부 다 고리처럼 연결돼 있으니까 앞으로도 조바심 느끼지 않고 늘 감사하며 가고 싶어요.
오랜 시간 동안 장필순이라는 뮤지션은 누군가에게 영향을 준 사람이 되었어요. 정작 본인은 무엇으로부터 영향을 받나요?
사람? 사랑? 대상이 무엇이든 간에 사랑을 주고받는 것. 저에게는 그게 강아지가 될 수도 있고 자연도 되기도 하고 함께 음악 하는 친구들이 되기도 해요. 흔한 얘기이긴 하지만 사랑을 주고받는 것이 저에게는 가장 큰 에너지가 아닐까 생각해요.
기분이 이상하네요. 사랑이라는 단어가 나올 줄 몰랐거든요.
모든 게 거기에서 시작되지 않을까요.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있다면 억지로 이해할 필요 없이 그저 받아들이는 게 답이라고 여기거든요. 그러려면 사랑이 있어야 할 거고요. 어제는 바람이 굉장히 많이 불었어요. 마당의 나무가 부러질 정도였으니까요. 처음에는 그 모습을 보고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내가 이곳에 발을 잘못 들였구나(웃음). 그런데 지금은 부러진 나무를 보면서, 자라는 동안 충분히 돌봐주지 않아 미안한 마음이 커요. 그리고 그렇게 바람이 불었을 때 끝내 버텨주려 했던 고마운 마음도요. 하다못해 그 무서운 바람조차 나를 확인시켜주려고 불어온 것 같기도 하고요. 강아지들도 마찬가지예요. 애들이 워낙 몸집이 크니까 마당에 나갈 때마다 앞치마를 두르고 나가요. 덤벼들면 안아줘야 하니까. 하나음악 역시도 그 안에 서로 아껴주고 사랑하는 마음이 기본으로 뭉쳐져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해요. 어디에 가더라도 항상 내가 돌아올 곳이 있다는 것. 아마 거기에 가장 진한 사랑이 있겠죠.
노래하고 싶은 것 역시 사랑인가요?
사랑이라는 게 사실 격한 무언가를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고 그저 일상이 되었으면 해요. 이렇게 굳이 사랑이라는 말을 쓰지 않아도 편안해지는 것. 글쎄요. 뭐라고 이야기하면 좋을까. 노래 속에 노여움 같은 게 없었으면 좋겠어요. 제 노래 중에 직설적인 것들도 더러 있지만 그건 힘든 현실을 이야기함으로써 사람들이 따듯해졌으면 하는 바람이 큰 거거든요.
그런 현실이 아니었으면 더 좋겠고요.
그렇죠. 결과적으로는 그럴 수도 있겠네요. 세상이 마냥 따듯한 게 굉장히 재미없을 거 같고 밋밋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다고 전 믿어요. 저는 그냥 심심한 게 좋아요. 그런 세상 속에 아직 살아보지 않아서 확신은 못 하겠지만 좀 더 단순해지고, 느려지고, 따듯해졌으면 좋겠어요.
우스운 질문일 거 같은데 당신에게도 꿈이 있나요?
꿈이라…. 꿈은 없는 거 같아요. 아니다, 이것도 꿈이라면 꿈일까? 누구나 갖는 똑같은 생각일 것 같은데, 죽을 때 여러 사람 힘들지 않게 했으면 좋겠다는 꿈. 그거 말고는 특별히 뭐 원하는 건 없고 그저 지금에 감사하면서 살고 싶어요.
자주 마지막을 상상하나요?
언제까지 살고 싶다 그런 것보다는 당장 내일이라도 간단하고 쿨하게 이별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죠. 이별하는 시간이 길어지면 힘들잖아요.
죽는다는 건 결국 당사자에게는 마지막 이별이잖아요. 문제는 남겨진 사람들의 시간일 것 같은데, 견뎌내야 하는 그 시간이 짧았으면 좋겠다는 뜻인 거죠? 빨리 잊었으면 하는 마음.
그런데 보니까, 남아있는 사람은 어떻게든 남더라고요. 그들은 남아서 이별하잖아요. 그리움이라고 해야 할까. 그런 건 있지만 결국에는 남아있어요. 짧은 이별을 하면 남아있는 사람들이 좋은 추억을 많이 갖더라고요. 반면에 힘들게 헤어지면 남은 시간이 길어져서 더 많이 아픈 것 같고요. 저의 마지막이라면 항상 좋은 모습만, 편안한 모습만 보여주다가 떠나고 싶어요. 하지만 그게 자기가 원하는 대로 되는 건 아니겠죠. 어렵네요. 무지 어려운 일일 거야. 어떤 상황에서는 스스로 결단을 내려야 할 필요도 있을 거고. 쉽지 않죠. 오늘은 바람이 많이 부네요.
그러네요. 바람 정말 많이 불어요. 그런데 저는 제주에서 바람이 제일 좋더라고요.
어, 그래요? 제주 와서 살면 되겠다. 그런데 여기 바람이 얼마나 무서운데.
사실 지금 여행을 하고 있어요. 다른 에디터들하고 각자 여행을 하다가 내일 저녁에 만나기로 했거든요. 모여서 해가 지는 걸 보자고. “낙조는 역시 ‘애월낙조’지!” 하면서요(웃음). 섬마을 사람으로서 추천해줄 장소가 있나요?
(웃음)네, 거기 좋아요. 차귀도 쪽도 좋고 하귀에서 애월항까지 해안도로가 있거든요. 거기도 해질 때 멋있어요. 어제보다 날씨가 좋아서 낙조를 볼 수 있을 거 같은데. 제가 많이 안 돌아다녀서 특별한 곳을 추천해드리지는 못하겠고, 일단 한적한 곳이면 다 괜찮을 거예요. 사람 많이 없는 곳. 외롭다고 해야 하나, 그런 데 살아보니 사람 귀한 줄 알겠더라고요. 만남을 더 소중하게 생각하는 거죠.
대화하며 장필순은 자주 창밖을 응시했다. 말과 말 사이의 빈 공간이 많았고, 그건 다음 말을 이어가기 위해 생각을 채우는 과정이 아니라 오히려 반대처럼 보였다. 말의 밀도를 낮추고 덜어두는 일. 나는 가만히 사이를 기다렸는데 그 시간이 참 좋았다. 아주 조금도 답답하지 않았다. “사는 데 많은 걸 필요로 하지 않는 느낌이에요.” 내가 말하자 장필순은 “그게 말처럼 쉽나요.”라고 대답했다. “이곳에서 사는 게 불편하지는 않나요?”라고 다시 묻자 그녀는 “처음보다 길이 너무 많아졌어요.”라고 대답했다. 아무것도 아닌 대화를 아무렇지 않게 할수록 그녀가 더 좋아졌다. 영문도 모른 채 그저 닮고 싶다고 생각했다. 무엇을 닮아야 하는지, 정확히 그게 어떤 이유에선지 아무것도 몰랐지만 그냥 그런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그녀의 얼굴을 생각할 때마다 이상하게도 슬퍼지는 마음이 들어 자꾸만 입술을 깨물어야 했다.
함께 듣고 싶은
장필순의 노래
제비꽃
음악적 동지이자 스승인 조동진의 노래를 다시 불렀다. 음악적으로 힘들 때 그녀가 가장 많이 부르고 들었던 노래 중 하나다.
맴맴
매미 울음소리를 들으며 깜빡 잠들다 깨는 순간을 그렸다. 단순한 가사지만 그녀의 몽환적인 목소리와 어우러지며 깊은 울림을 준다.
애월낙조
재즈 피아니스트 임인건, 베이시스트 최성원, 편곡자 조동익과 노래하는 장필순이 모여 제주 애월포구의 붉은 태양을 노래했다.
에디터·포토그래퍼 김건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