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운 분리배출 생활

올바른 분리배출을 하려면 네 단계를 기억해야만 한다. 내용물을 비운 후, 이물질을 제거한 뒤 깨끗이 헹군다. 이후 종류별로 구분해 배출 하면 된다. 다만 이 마지막 단계에서 우리는 매번 헤매고야 만다. “아니 왜? 플라스틱은 플라스틱대로, 종이는 종이대로 버리면 되는 거 아니야?” 순진무구한 얼굴로 어깨를 으쓱이는 사람들에게 전하는, 우리가 미처 몰랐던 ‘진짜’ 분리배출의 세계.

컵라면 용기

가끔 봉지 라면 보다 컵라면의 간편함이 그리울 때가 있다. 뚜껑을 연 뒤 분말수프를 넣고 3분 정도만 기다리면 땡. 맛도 있고 게다가 신속하기까지. 다만 컵라면은 먹는 수고보다 버리는 수고가 더 든다. 내부에 비닐 코팅이 된 종이 용기는 깨끗하게 씻어내야 한다. 육개장 사발면 같은 스티로폼 재질로 된 용기는 아무리 세척해도 벌겋게 얼룩이 남아버린다. 백색 스티로폼은 수거 후 하얀 재생 원료로 부활하지만, 유색 스티로폼이 섞일 경우에 급이 떨어지고야 만다. 이런 불상사를 막기 위해 장시간 햇빛에 말려 색소를 충분히 분해해야만 한다.

유리병

어릴 적, 어느 집이든 델몬트병에 담긴 보리차와 코카콜라병에 담긴 참기름이 하나쯤 있었다. 유리병의 큰 장점은 바로 재사용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환경 호르몬 같은 유해 물질이 나오지 않고 세척도 용이하기 때문이다. 공병이 재활용이 되려면 색깔별로 분리배출을 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깨지거나 손상될 경우 컨베이어 벨트나 선별 과정에서 문제가 생기므로 최대한 안전하게 버리는 것이 관건이다. 소주병을 반환할 때는 병 입구가 훼손되거나 이물질이 들어가지 않게끔 마개를 닫는 것도 필수다. 기왕이면 모아둔 공병을 들고 가까운 가게로 가는 편이 제일 좋다. 회수된 병은 음료 회사 공장으로 가 살균 과정을 거친 후에 다시 세상 밖으로 나오기도 한다.

택배 박스

“택배 왔습니다.” 남녀노소 불문하고, 택배 소식은 언제나 우리를 설레게 한다. 받아볼 때까지만 해도 분명 신이 났는데, 개봉 후 갈기갈기 찢긴 셀로판테이프와 텅 빈 상자를 보고 있자면 ‘내가 또 쓰레기를 만들었구나.’ 싶어 공허한 마음이 든다. 택배 상자 분리배출의 핵심은 상자에 덕지덕지 붙어 있는 테이프와 송장을 모두 제거하는 것이다. 접착제와 코팅 물질은 자칫 재활용을 어렵게 만드므로 최대한 흔적을 남기지 말자.

영수증

‘잠깐! 여기서 영수증이 왜 나와?’ 하고 멈칫한 사람이 한둘은 아닐 테다. ‘앞을 봐도 뒤를 봐도 여간 없이 종이 쪼가리 아닌가’ 싶다. 영수증은 일반 용지가 아닌 감열지이므로 재활용이 어렵다. 감열지는 열을 가하는 순간 색이 나타나도록 표면에 화학 물질을 바른 합성재다. 이때 사용된 BPA라는 화학 물질은 소각 시 엄청난 양의 온실가스가 배출된다. 우리나라에서 한 해 동안 영수증으로 사용된 종이 양은 9.358톤으로, 매년 12만 그루 이상의 나무가 무참히 쓰레기통으로 들어간다. 재활용이 불가능한 이상 증빙용 외엔 발급하지 않는 것이 최선이다.

우유 팩과 두유 팩

우유 팩과 두유 팩은 얼핏 보면 형제처럼 보인다. 주 재질이 똑같이 종이지만 코팅 비닐이 섞인 비율이 다르다. 굳이 따져보자면 같은 피를 공유하고 있으나 그다지 닮지 않은 사촌 정도로 비유할 수 있겠다. 우유 팩은 결로 현상 때문에 표면이 축축해지는 걸 방지하고자 양면 모두 비닐 코팅을 해두었다. 이는 살균 팩으로 불린다. 반면에 두유 팩은 산소가 내부로 유입되는 걸 막기 위해 내부에 알루미늄 포일을 덮어놓았다. 이는 멸균 팩으로 일반 우유 팩과 구조가 다르다. 2022년 1월부터 종이 팩을 일반 팩과 멸균 팩을 따로 분류하는 방안을 권고하고 있다. 종이를 재활용하려면 얇게 얽힌 셀룰로스 섬유를 풀어내야 하므로 물에 담가 해리 공정을 거친다. 우유 팩은 일반 폐지보다 해리하는 시간이 훨씬 길어 따로 배출해야만 고급 티슈로 재탄생할 수 있다.

아이스 팩

냉동 보관 식품을 살 때마다 꼭 딸려 오는 아이스 팩. 한두 개 정도는 냉동실에 얼려두었다 무더운 계절이나 민간요법이 필요할 때 요긴하게 사용하지만 대개 처치 곤란이다. 물을 넣은 아이스 팩은 겉면에 적힌 안내 사항을 참고하면 되지만, 보냉재가 들어간 아이스 팩은 일반 쓰레기로 분류해야 한다. 젤리 형태의 보냉재는 합성 고분자 물질, 이른바 플라스틱이다. 내용물을 변기에 버리는 순간 바다로 유해 물질을 흘려보내는 셈이다. 이에 따라 지자체나 환경 단체에서도 아이스 팩을 수거함을 설치하며 재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 중이다. ‘리아이스팩’이란 서비스를 통해 근방의 수거함을 찾아낼 수 있으니 적극적으로 이용해 보는 것도 좋은 방법!

칫솔과 치약

플라스틱 분리배출은 품목별 세부 기준이 없다는 것이 우리를 혼란의 늪으로 몰고 간다. 무엇보다도 부피가 작은 생활용품은 선별이 어렵다 보니 철저히 분리배출을 잘 하더라도 재활용이 되는 경우가 드물다. 칫솔이야 말로 그렇다. 손잡이는 플라스틱이지만 솔은 나일론이다. 손잡이만 따로 버려도 선별장의 높은 장벽을 넘지 못하고선 쓰레기 취급을 당하고야 만다. 손바닥보다 크기가 작은 것들은 대부분 이러한 결말을 맞이한다. 치약 또한 마찬가지다. 안에 있는 내용물을 알뜰살뜰하게 써도 허사가 되고 만다. 다만 분리배출 표기가 붙어 있으므로 원칙대로 분리를 하긴 해야 한다. 그러니 애초에 플라스틱 양치 도구를 쓰지 않는 편을 고려해 보면 어떨까. 대나무 칫솔과 고체 치약 등등 대체할 수 있는 물건이 참으로 많으니 말이다.

요구르트 뚜껑과 초콜릿 포장재

분리배출시엔 사소한 요소 하나 하나 나노 단위로 따져보고 의심해 봐야 한다. ‘이거 하나쯤은 괜찮겠지.’하고 넘어가는 순간, 선한 의도로 시작한 일이 물거품이 될 수가 있으니까. 재활용의 세계에선 제대로 제거하지 않은 플라스틱 요구르트병의 알루미늄 뚜껑마저 최악의 빌런으로 거듭나곤 한다. 플라스틱은 재질별로 선별하여 파쇄를 한 후 세척하여 녹이는 공정을 거친다. 세척 과정에서 작은 조각으로 분해된 플라스틱은 물에 가라앉는다. 플라스틱과는 다른 재질의 조각이 섞일 경우 용융기 안에서 체로 걸러내어야 한다. 그러나 제대로 걸러질 확률은 얼마 되지 않는다. 이때 제대로 제거하지 못한 알루미늄 마개가 문제를 일으킨다. 그러니 놓치기 쉬운 작은 알루미늄 포장재들은 각별히 유의하여 선별해내면 재활용이 가능하다. 해외에서는 초콜릿 포장재나 요구르트 뚜껑은 야구공 크기로 뭉쳐 분리배출 한다. 작은 알루미늄은 ‘뭉치면 산다’는 것을 꼭 기억하자.

플라스틱 컵

눈이 잘 떠지지 않는 출근길에도, 점심을 먹고 나서 배를 통통 두드리며 회사로 돌아가는 산책길에도 우리 손에 들려 있는 일회용 컵. 한 잔의 여유를 위해 소비되는 플라스틱은 사상 초유의 수치를 기록하는 중이다. 플라스틱은 재활용 시 무조건 같은 재질끼리 모아야 한다. 그러나 플라스틱 일회용 컵은 종류가 다양하다. PET가 주로 사용되지만 PP와 PS라고 표기되는 폴리프로필렌과 폴리스티렌과 섞이면 육안 상으로 구분하기가 어렵다. 모두 투명한 재질이기 때문에 선별장에서 이를 골라내는 데 곤욕을 겪는다. 무엇보다도 대부분의 프랜차이즈 카페에서 사용 중인 브랜드 로고가 인쇄된 컵은 재활용 시 품질을 떨어지게 만드는 결정적인 요인이 된다. 플라스틱 컵과의 전투에서 승리하기 위해선 텀블러와 다회용 컵을 적극적으로 사용할 것!

페트병

포장재로 가장 많이 사용되는 페트병은 플라스틱 중에서도 재활용률이 높은 편에 속한다. 이전까지만 해도 선별장으로 모인 페트병을 재활용 업체로 보내 색깔별로 분류하는 작업을 한 번 더 거쳤는데, 2020년부터 환경부 지침에 따라 개개인이 투명 페트병과 유색 페트병을 구분하여 배출하는 방향으로 바뀌었다. 페트병 재생 원료는 대개 포장 용기나 폴리에스터 섬유로 재탄생한다. 하지만 이제껏 제대로 분류하지 않거나 라벨 및 접착제를 철저히 제거하지 않아 고품질 재생 원료로 활용하기 어려웠다. 페트병이 제대로 순환하기 위해선 강화된 기준에 맞춰 꼼꼼하게 분리배출을 해야 하니 꺼진 불도 다시 보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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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오은재

일러스트 장세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