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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바도르 달리
스스로 자신의
박물관을 만든 사람
살바도르 달리
“매일 아침 잠에서 깨어날 때마다 나는 최고의 희열을 느낀다. 내가 살바도르 달리라니!” 달리가 했다는 이 말을 처음 들었을 때 나는 몹시 기분이 좋아져서 한참을 깔깔 웃었다. 나는 살바도르 달리의 작품을 잘 모르고, 특별히 좋아하는 작품도 없지만, 달리에 대한 이야기를 찾아 읽다 보면 한없이 기분이 좋아지곤 한다. 거침없이 상상하고 최선을 다해 마음대로 사는 사람, 자기 검열 따위 없는 사람이 이 세상에 살았다는 것만으로도 위안이 될 때가 있다.
가우디와 피카소,
그리고 살바도르 달리
유럽, 그중에서도 스페인에 살아 좋은 점 중의 하나는 위인전에서나 만날 법한 사람들이 영 멀리 있는 것처럼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내가 살고 있는 바르셀로나에는 135년째 공사 중인 성당이 있다. 건축가 가우디가 설계한 ‘성 가족 성당’. 가우디는 이미 세상에 없지만, 그가 설계한 성당은 오늘도 지어지고 있다. 그래서 이곳 시민들에게 그리고 나에게 가우디는 ‘과거의 사람’이 아니다. 가우디는 우리가 잘 아는 화가 피카소보다도 29년이나 먼저 태어났다. 피카소가 스페인에서 지낸 어린 시절 동안 가우디의 영향을 받았다는 이야기도 있다. 젊은 달리가 파리에 가서 피카소를 처음 만났을 때 피카소는 이미 대가였다. 피카소와 살바도르 달리, 두 사람은 또한 23살 차이가 난다.
가우디가 만든 보도블록 위를 걷고, 피카소가 그렸다는 벽화 앞을 지나다니고, 또 달리가 로고를 디자인했다는 츄파춥스 사탕을 먹다 보면, 이 명장들이 과거의 위인이 아니라, 지금 바로 옆에서 활약하고 있는 셀러브리티 같은 느낌을 받는다. 가우디와 피카소는 내가 태어나기 전에 이미 세상에 없었지만, 달리는 1989년에 사망했다. 그러니까 우리는 실제로 동시대를 함께 산 셈이다. 기억은 나지 않지만, 초등학생 시절 지구 반대편에서 달리의 부고 기사를 읽었을 수도 있다. 그리고 28년 뒤 나는 스페인 거리를 걷고 있다. 스페인 사람들이 달리의 사망 당시 바로 이 길 위에서 그를 애도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자 시간과 공간이 뒤섞여 묘한 기분이 된다.
한번 산다면
달리처럼
내가 좋아하는 화가들은 대부분 가난했다. 생전에 작품을 인정받지 못해 생활고를 겪은 화가는 셀 수 없이 많다. 폴 고갱이나 모딜리아니도 사후에야 제대로 인정을 받을 수 있었고, 특히 반 고흐는 사는 동안 내내 가난에 시달렸다. 영국 드라마 <닥터 후> 에피소드 중에 고흐가 시간을 거슬러 오늘날의 파리의 오르세미술관에 방문하는 장면이 있다. 관람객으로 꽉 찬 전시장 벽에 자신의 그림이 빽빽하게 걸려있는 모습을 보고 반 고흐는 온 얼굴이 점점 빨개지며 눈물을 흘린다. 나는 그 장면을 돌려볼 때마다 그와 함께 우는데 그건, 살아생전 그는 자신이 이렇게 사랑받을 줄 알았을까, 하는 안타까움과 아쉬움 때문이다.
하지만 살바도르 달리는 다르다. 달리는 살면서 인정받았고, 사랑받았으며 스스로를 사랑했다. “나는 천재다. 나는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라고 확신했다. 그리고 돈도 많이 벌었다. 고흐를 생각하며 조금 침울해진 마음이 달리를 떠올리면 다시 밝아진다. 나는 고흐의 그림을 더 좋아하지만, 한번 산다면 달리처럼 살아보고 싶다.
바르셀로나에서 북쪽을 향해 차로 한 시간 반쯤 달리면 닿는 도시 ‘피게라스’에는 달리가 생전에 직접 조성한 달리 박물관이 있다. 그 얘기를 듣자마자 나는 또 기분이 좋아져서 당장 그곳에 가보고 싶어졌다. 와, 자신의 그림을 모아, 살아생전 번 돈으로, 직접 자신을 위한 박물관을 만들었다고? 화구 살 돈도 없던 반 고흐가 들으면 부러워서 한 번 더 울 일이다.
피게라스에 있는
달리 박물관
사람이 사는 동네를 두고 ‘볼 게 없는 곳’이라는 표현을 하지 않으려고 애쓰는 편인데, 미안하지만 피게라스는 정말 볼 게 별로 없는 도시다. 내가 다녀본 스페인의 도시들은 오래된 건물들이 분위기 있게 낡아가는 곳이었다. 나이 든 건물 사이 거리는 밝고 사람들은 느긋한 곳. 하지만 차가 피게라스에 들어가는 순간, 나는 스페인이 아닌 한국의 쇠퇴한 지방 도시에 들어선 것 같은 인상을 받았는데, 달리 박물관 앞에 이르러 그 느낌은 더 강해졌다. 대충 지은 것 같은 건물에 관리 안 된 인도, 도로에 세워진 차는 많았는데 거리에 사람은 별로 보이지 않는다. 급히 만들어졌다 쓰임새가 없어져 버림받은 지방 위성 도시 같다.
내비게이션이 ‘달리 박물관’에 도착했다고 알렸다. 하지만 주변을 둘러봐도 근처에는 한국의 예식장 같이 생긴 건물뿐이다. 그 건물 앞에는 좁은 찻길을 사이에 두고 주차 타워가 있다. 주차 타워라니, 스페인에서 처음 보는 것. ‘정말 주차 타워?’ 하며 스쳐 지나가는 순간 방금 본 조악한 건물이 ‘달리 박물관’이라는 것을 알았다. ‘극장’을 개조한 박물관이라고 들었는데, 내가 상상한 유럽의 극장은 ‘오페라 하우스’나 ‘원형 경기장’ 같은 것이었나 보다. 실망은 내 탓이다.
공터에 차를 세웠다. 그리고 달리 박물관까지 걸어 올라가는 동안, 말라비틀어진 개똥과 깨진 보도블록을 수없이 지나쳤고, 시멘트 담 위를 천천히 걷는 비쩍 마른 고양이를 보았다. 피게라스에서 태어났지만 마드리드나 파리 등에서 주로 생활했던 달리는 생의 마지막에 이곳으로 돌아와 이 도시와 딱 어울리는 외양의 박물관을 만들고 그곳에 묻혔다.
달리의 뇌 속을
여행해볼까
박물관 내부는 외관과 달리 웅장하고 우아하다. 입장하면 내부 지도를 하나씩 주는데, 동선에 따라 번호가 쓰여 있다. 그 번호대로 걸으며 감상하면 된다. 이 작품을 어디에 걸지, 어느 위치에 설치할지 달리는 하나하나 직접 정했다고 한다. 그래서 달리 박물관을 보는 일은 다른 박물관들을 관람하는 것과 아주 달랐다. 관람이라기보다는 체험 같고, 작품을 감상한다기보다 그의 뇌 속에 들어가 있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작품을 보며 ‘이 작품이 의도한 것은 무엇일까?’ 생각하는 동시에 ‘이 작품이 여기에 놓여있는 이유는 무얼까?’ 더불어 고민하게 된다.
그러는 동안 나는 마치 그를 직접 만난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그와 마주보고 앉아 맥락 없지만 깊은 대화를 나누며, 그의 복잡한 머릿속을 들여다본 것 같았다. 사물에 대한 엉뚱하고 발랄한 시선을 마주하기도 하고, 한 사람에 대한 맹목적 사랑도 눈치 챘다. 그리고 무덤 앞에서 짧은 묵념도 했다.
한 사람의 고통과 기쁨, 삶과 죽음을 짧은 시간 동안 받아들이다 보니 박물관 내부를 걷는 동안 여기저기 내 몸이 아픈 것 같은 기분마저 들었다. 그만큼 달리 박물관은 걸을수록 달리에게로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가도록 촘촘하게 설계된 공간이었다. 달리의 의도대로 나는 그에게 빠졌다.
박물관을 나오면서 계속 생각했다. 달리는 행복했을까. 한평생을 예술가로 살며, 끊임없이 활동하고 부를 누리며, 한 여인을 사랑했던 사람. 자신의 족적을 스스로 모아 박물관을 만들고 태어난 곳에서 세상을 떠난 사람. 달리는 그래서 행복했을까. 저만치 걷다 달리 박물관을 한번 뒤돌아 보다, 씨익 웃음이 났다. 행복했겠지. 태어나보니 살바도르 달리고, 살바도르 달리로 죽었으니. 틀림없이 행복했겠지.
글 정다운
사진 박두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