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선장이 된 사람

임수민 — 스트리트 포토그래퍼

수민의 집에는 거리에서 주워 온 것이 많았다. 깨진 거울이 침대를 비췄고 화장대와 책장에는 여기저기 부서진 흔적들이 있었다. 그 모든 건 누군가의 것이 아닌 오롯한 수민의 것이었다. 그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풍경 속에서 근사한 장면을 포착하는 눈이 있다. 슬픔도, 아픔도 스스로 만든 좋은 기억으로 덮어버리는 사람. 수민은 자신의 배를 끌고 바다로 나서며 비로소 자기 삶의 선장이 되었다.

포토그래퍼, 브랜드 마케터, 항해사까지 여러 타이틀을 가지고 있어요.

그래도 여전히 저는 스트리트 포토그래퍼 임수민이에요. 거리에서 사진을 찍기 시작한 이후로 제 인생의 큰 전환점을 이루었거든요. 얼마 전까지 브랜드 마케터로 일하다가 최근에 프리랜서로 전향했어요. 마케팅 세일링도 했고, 한 배의 캡틴이 된 적도 있지만, 가장 근본적인 자아는 스트리트 포토그래피에 있어요.

 

최근에 겪은 가장 큰 변화는 퇴사네요.

한 달에 퇴사를 세 번이나 했어요. 다행히 모두 좋게 헤어졌지만, 퇴사를 한 이유는 더 이상 성장할 수 없겠다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에요. 회사와 제가 추구하는 방향이 맞지 않았기도 했지만 회사를 계속 다니면서 겪을 앞으로의 시간이 너무 예상되어서 오히려 답답하게 느껴지더라고요.

 

퇴사가 반복되어 힘들지 않았어요?

지금은 새로운 일상에 적응해서 만족하고 있지만 퇴사 직후에는 고민이 많았어요. 제가 아무리 자유를 추구한다고 하더라도 연속 세 번 퇴사는 너무 하지 않나(웃음). 스스로 자괴감이 들었는데 아무리 생각해 봐도 퇴사할 수밖에 없는 상황들이 있었어요. 대부분 가치관의 문제였고요. 브랜드 마케터라면 그 브랜드를 정말 좋아하고 아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그러려면 가치관이 잘 맞아야 하잖아요. 그게 안 맞는다는 걸 깨달은 순간 출근이 힘들어지더라고요. 무엇보다 저는 시간을 자유롭게 쓰는 게 중요한 사람인데 하루 중 골든타임에 무조건 사무실에 있어야 하는 게 조금 억울하게 느껴지기도 했어요. 저의 반려견 수리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었거든요.

 

마케팅에는 진심이 필요하다는 생각도 드네요. 수민 씨가 직접 브랜드를 만들면 어떤 브랜드가 될지 궁금해요. 

저도 궁금해요. 확실한 건 제품을 판매하는 브랜드는 아닐 거예요. 경험을 제공하는 브랜드에 가까울 것 같아요. 같이 사진을 찍으며 거리를 걷거나 함께 항해를 하겠죠. 많은 사람들이 사진이나 항해의 문턱을 높게 생각하는데 직접 해보면 그렇지 않거든요. 제가 좋아하는 것들을 다수가 같이 좋아하게 되는 일을 해보고 싶어요. 결국 교육이네요.

 

누구를 가르쳐본 경험이 있어요?

영어 선생님으로 일한 적이 있어요. 제가 가르치던 초등학생이 이번에 대학을 갔어요. 저 엄청 재밌게 잘 가르쳐요(웃음.

 

저도 배우고 싶어요(웃음). 항해 이야기가 궁금한데 어떻게 시작했어요?

당시에 사진을 시작하면서 전시도 하고 티브이 프로그램 강연도 나가게 됐는데 그때 주변인들 반응이 다양했어요. 평소에 친하지 않던 사람들에게 연락이 오기도 하고 괜히 소문으로 ‘조금 뜨더니 변했다’는 말도 듣고요(웃음). 진짜 떴으면 억울하지도 않지 저 정말 변한 게 없었거든요. 인간관계에 지쳐갈 때쯤 마침 함께 강연했던 선장님이 태평양에서 부산까지 배를 끌고 오셨어요. 합류할 사람을 모은다고 하시더라고요. 도피하듯 떠났는데 정말 최악의 경험을 했어요. 여자는 저뿐이었는데 같은 배를 탄 아저씨들에게 입에 담기도 싫은 모진 말들을 매일같이 들었어요. 항해에 관해 아무것도 모르다 보니 그 안에서 저는 숟가락만큼이나 쓸모없는 사람이었죠. 나중엔 제 존재 자체에 의문을 갖게 되더라고요. 

도망갈 수도 없어서 더 힘들었겠어요. 그때 힘이 된 사람이 지금의 연인이군요.
그렇죠. 남자친구는 다른 배에 타고 있던 사람이었는데 서로 편지를 주고받으면서 친해졌어요. 배 안에서 힘든 일들을 털어놓으면서 서로 위로가 됐죠. 그 편지가 너무 좋아서 계속 들고 읽을 정도로 소중했어요.

 

첫 항해에 대한 기억이 좋지 않았는데 돌연 갑자기 배를 산거네요.

항해를 마치고 돌아왔는데 사람들이 후기를 묻더라고요. 떠올리기도 힘들어서 한동안 집에만 있었어요. 파도 소리만 들어도 질색했고요. 그런데 바다는 저에게 정말 소중한 존재였거든요. 바다에는 사람의 인생이 있으니까요. 그냥 이렇게 미워해도 되나, 아쉬움이 밀려와서 결국 극복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내 배를 사서 선장이 되어야겠다 결심했죠. 배를 사는 것부터 시작해서 그때도 남자친구가 많이 도와줬는데 계속 의지하게 될 것 같아서 혼자 통영의 비진도로 떠나버렸어요. 그때도 모든 게 처음이라 너무 힘들었지만, 비로소 진짜 항해를 했다고 말할 수 있게 됐어요.

 

도피하지 않은 게 대단해요.

트라우마로 남겨놓으면 나쁜 것들에 패배하는 거니까요. 이길 수 있는 방법은 별로였던 기억을 스스로 만든 좋은 기억으로 바꾸는 것뿐이라고 생각했어요. 이제는 웃을 수 있게 됐죠. 그 경험을 온전히 저만의 것으로 만들었고 그래서 지금의 제가 된 거니까요.

 

작업실 곳곳에도 항해의 흔적이 남아 있네요. 지금은 작업실에서 혼자 일하고 있는데, 프리랜서로서 일상에 어떻게 적응하고 있는지 궁금해요.

나름의 규칙을 세웠어요. 아침에는 꼭 8시에 일어나려고 해요. 그러곤 바로 수리와 한 시간 정도 산책을 하고요. 돌아와서 아주 정성스럽게 아침을 챙겨 먹어요. 최근에는 소금빵을 만들어 먹고 싶어서 실패하고 있지만 계속 시도하고 있어요. 성공할 때까지 해보려고요(웃음). 11시쯤 책상에 앉아서 일을 시작하면 오후 5시까지 계속 오피스 워크만 해요. 낮잠 안 자는 걸 꼭 지키고 있고요. 일이 끝나면 수리랑 산책하고 돌아와서 완전한 자유 시간을 보내요.

 

자유 시간에는 뭘 해요?

크리에이티브한 활동에 투자해요. 최근엔 이젤과 캔버스를 장만했어요. 전자 피아노도 구비해 뒀고요. 누군가는 쓸데없는 걸 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저는 제 삶이 ‘굳이’ 싶은 것들로 가득 채워질 때 행복해져요. 내 시간의 90퍼센트를 돈 벌기 위한 작업에만 쏟는다고 생각하면 너무 슬프잖아요. 최대한 쓸모없는 일들로 일상을 꽉 채우고 그 쓸모없음을 위해 돈을 벌자는 마음이에요.

 

실패하는 베이킹을 계속하는 것도 그렇고, 쓸모없는 일을 하는 게 아니라 작은 도전들로 일상을 채워간다는 생각이 들어요.

사실 저는 도전을 두려워하는 사람이에요. 사람들은 제가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걸 주저하지 않는 성향이라 이런 일들을 해낸다고 생각하는데 오히려 반대예요. 속으로는 ‘어떡하지?’ 하는 생각들로 가득 차 있어요.

 

의외네요.

저 원래 겁쟁이예요(웃음). 아버지가 외교관이셔서 어릴 때부터 해외에서 살았고 3년마다 이사를 다녔는데요. 그때 어머니가 엄청 걱정이 많으셔서 거의 집, 학교 외에 다른 곳을 가본 기억이 별로 없어요. 대부분의 시간을 세상에 대한 탐구보다는 가족들과 날들로 보냈어요. 그렇게 어린 시절을 지나서 그런지 외국에서 자란 기억이 개방적인 성격으로 이어지지는 않았어요. 한국에 돌아와서도 친구들이랑 영화 보러 가는 것도 주저할 때가 있었고요. 대학교 때 큰맘 먹고 혼자 교환학생을 떠나면서 처음 외국에 왔다는 생각을 할 정도였으니까요. 영어를 잘해도 너무 낯설게 느껴졌어요. 엄마가 처음 외국에 왔을 때 이런 느낌이었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죠.

아까 어머니가 직접 만든 인형을 봤는데 너무 예쁘더라고요. 손재주가 좋으신가 봐요. 어머니는 어떤 분이세요?

엄마는 너무 아름다운 사람이에요. 서울대 조소과의 퀸카였고요(웃음). 저랑은 조금 반대의 성향이라 제가 새로운 꿈을 꾸면 많이 반대하시기도 했죠. 제가 막 뮤지컬 배우를 하겠다고 선언했거든요(웃음). 그래도 계속 반대만 하시던 엄마가 저에게 힘을 실어주신 일이 있어요. 부다페스트에 살 때 같이 숲을 산책하다가 이런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수민아, 사람들은 숲을 걸을 때 걷기 쉬운 반듯한 길로 걷기 마련인데 너는 꼭 엉클어진 길만 골라서 걷더라. 넌 저 보이지 않는 너머가 궁금한 거지. 너무 걱정되지만 어쩌겠니, 너는 저 길이 궁금한데.” 하고 말하셨어요. 이 말이 큰 위로가 됐죠. 그때 제가 엄마의 포용력을 배웠다는 생각이 들어요.

 

잠시 어머니가 다녀가신 것 같아요(웃음). 뭉클하네요. 어릴 때 부모님 영향을 많이 받고 자랐나 봐요.

저에게 두 분은 늘 영감이 되어요. 당시에는 영어를 못 하는 외교관들도 많았는데 저희 아버지는 영어를 굉장히 유머러스하게 구사하셨거든요. 외국인들 앞에서 거침없던 아버지 모습이 굉장히 멋있었어요. 지금의 저도 영어로 말할 때 아버지에게 배운 유머와 시니컬한 표현 방식을 쓸 때가 있어요. 글로벌 브랜드 마케팅 일을 할 때 아버지의 태도를 계속 떠올리며 큰 도움이 됐죠.

 

아버지에게는 당당한 태도를, 어머니에게는 포용력을 배웠네요. 이제 그 포용력은 수리에게 돌아가고 있는 것 같아요. 수리와 함께 지내면서 변한 것들이 많다고 했는데, 어떤 변화들이었나요?

제 공간을 가지자마자 신기하게 모성애 비슷한 감정을 느꼈어요. 그게 수리를 데려오는 일로 이어졌고요. 수리와 지내면서 처음으로 혼자 운전을 해서 여행을 다녀오기도 했고, 처음 겪는 일투성이었어요. 애완견 관련 책도 많이 읽고 수리를 혼내기도 하고 겪어보지 못한 문제들과 직면하기도 했고요. 예전의 저였으면 포기했겠지만 수리는 포기할 수 없잖아요. 해서는 안 되고요. 수리와 지내면서 해결 못할 문제는 없다는 걸 알았고 문제를 곧 바로 직면하고 유연히 풀어가는 과정을 배우고 있어요.

 

독립하면서 겪은 변화이기도 하네요. 처음 자기 공간을 가져본 건데, 어떤 기준으로 채워갔나요?

일단 눈을 떴을 때 ‘임수민 공간’이라는 걸 느끼고 싶었어요. 가족들과 살 때는 아침마다 ‘여기가 어디지.’ 하면서(웃음) 낯설어했거든요. 모든 게 다 제가 고른 물건들도 아니었고요. 이 집은 오롯이 제 선택으로 완성됐어요. 벽 색깔부터 물건들 하나하나 다 제가 생각한 것들이에요. 그래서 집들이 선물도 집에 두는 물건은 안 받았어요. 친구들에게 휴지만 사 오라고 당부하고요(웃음). 사실 독립이 꼭 필요한 일은 아니었는데 저에겐 기회비용이 더 중요했어요. 온전한 내 공간이 아니라 누리지 못했던 자아실현들을 이루고 싶었거든요.

 

그럼 이 집에서 가장 ‘임수민다운’ 공간은 어디예요? 

지금은 이 책상이 있는 공간이요. 이 방은 원래 암실이었는데 인화를 자주 하지도 않으면서 사진가라는 정체성을 잃고 싶지 않아서 고집부리듯 유지하던 공간이었어요. 그런데 사실 암실이라는 공간이 저를 증명하는 건 아니잖아요. 과감히 정리하고 책상을 뒀죠. 책상도 벽에 붙이면 공간이 더 넓어 보이겠지만 벽을 보면서 일하고 싶지는 않아서 반대로 돌렸어요. 출퇴근하듯 꺾어서 들어와 책상에 앉을 때 기분이 너무 좋아요. 동선이 불편해도 뚜렷한 이유가 있는 점이 꼭 저 같아서 마음에 들어요.

사진 작업은 어떤 점이 좋아요?

중학교 때부터 친구들을 찍고 다니는 걸 좋아했는데 교환학생 때 사진 수업을 들으면서 본격적인 계기가 됐어요. 이것도 쓸모없는 걸 하고 싶어서 시작한 거였네요. 그때는 디지털이 유행할 때라 필름은 인기가 없었거든요. 처음엔 인화 과정을 신뢰하지도 않았어요. 배우면서도 ‘이게 된다고?’ 하는 의심만 했고요. 첫 인화를 하는데 아니나 다를까 제 사진만 백지였어요(웃음). 용액을 잘못 섞은 거죠. 친구들은 저를 위로했는데 저는 오히려 재밌었어요. 모든 게 버튼 하나만 누르면 다 되는 세상에서 처음으로 제 존재가 필요한 일을 발견한 느낌이었어요. 그때부터 막 사진을 찍고 다니기 시작했죠. 거리로 나갔는데 재밌는 풍경이 너무 많더라고요. 애틀랜타 노숙자들이랑 친해지면서 길거리와 점점 가까워졌어요. 그때 과제가 어떤 직업을 선택해서 사진을 찍어
오는 거였는데 저는 노숙자들을 선택했어요. 그들도 그들만의 일이 있고 그 세계의 룰이 있거든요. 그때 제 사진을 보시던 교수님이 저한테 “너는 스트리트 포토그래퍼구나.”라고 말씀하셨어요. 처음 듣는 단어라 그게 뭐냐고 여쭤봤더니 “그게 너야.”라고 하시더라고요.

 

영화에 나올 것 같은 대사네요.

그런가요(웃음). 그러곤 한국에 돌아갔는데 거리에서 전에는 보지 못했던 것들이 보였어요. 다른 사람들은 그런 것들을 안 보고 그냥 지나치는 것 같아서 보여주고 싶은 마음에 계속 사진을 찍었어요. 과거를 추억하기보다는 현재, 지금의 길거리에 역사가 흐르고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어요.

 

거리에서 본 것 중 지금 떠오르는 풍경이 있어요. 

굉장히 말끔한 행색의 노숙자분이 있었어요. 그분이 노트에 뭘 계속 적고 계시더라고요. 다가가서 뭘 쓰고 계시냐 여쭤봤더니, 책을 쓰고 있다는 거예요. 자기가 오랜 노숙 생활을 하면서 받은 도움이 많은데 그 감사함을 담아 ‘진정한 천사들은 거리에 있다’는 주제로 글을 쓰고 있다고요. 이런 순간들을 포착하고 있는 저 자신이 좋았어요. 좋은 스트리트 포토그래퍼는 길거리에 있는 좀 특이하고 멋진 풍경들만 찍는 게 아니라고 생각해요. 거리에 놓인 풍경을 보고 서술할 수 있어야 해요. 어떤 이야기로 연결 지을 수 있냐는 거죠. 거리를 유심히 들여다 보면 당연해서 모를 뿐이지, 우리의 평범한 삶이 소설같이 특별하다는 걸 깨닫게 돼요.

 

마케팅 일뿐만 아니라 사진, 항해를 하면서도 배운 점이 많은데, 더 이야기해 볼까요?

일단 사진을 찍으면서 관찰하는 습관을 배웠어요. 순간을 포착하고 망설이지 않는 법도 깨우쳐 갔고요. 브랜드 마케터로서는 무언가에 관심 가지는 법을 배운 것 같아요. 내 것, 내 브랜드만 파헤치는 게 아니라 다른 것들도 계속 지켜보고 좋은 건 캐치하는 방식을 배웠어요. 그렇게 인사이트가 넓어지다 보니 일상에서도 제 주변인들에게 필요한 것들이 너무 잘 보여요. 가까운 사람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된 거죠. 항해를 하면서는 뭐든지 의심했어요. 초반에 저 때문에 배가 전복할 뻔한 일이 몇 번 있어서 울면서 의심하는 법을 배웠죠. 수리를 돌볼 때 의심하는 습관이 계속 튀어나와요(웃음).

 

그래도 세 작업 중 평생하고 싶은 일로 하나를 꼽는다면 사진이겠죠?

그렇죠. 저는 뭘 해도 스트리트 포토그래퍼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 같아요. 우연히 일어나는 일들에 의미를 붙이고 혼자서 깨닫는 과정이 즐거워요. 이런 시선이 마케팅을 할 때도 이어지고요. 어떤 사람들은 우연한 가치를 발견하는 일이 너무 운에 기대는 것 아니냐고 말하기도 하지만 그게 얼마나 어려운 건데요(웃음). 그래서 저는 죽을 때까지 스트리트 포토그래퍼의 눈을 가지고 살고 싶어요. 지금은 브랜드 마케팅 일을 하고 있지만 언젠간 다시 돌아갈 거예요.

 

자기 매력을 깨닫는 건 어려운 일인데, 수민 씨는 어떤 매력을 가진 사람인가요?

저의 가장 큰 매력은 실패한 모습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그걸 계속 사람들과 공유한다는 거예요. 어떤 사람이 뭔가를 이뤘을 때 결과보다는 과정이 더 궁금하잖아요. 저는 그 과정을 잘 기록하고 공유하는 사람이에요. 그래서 항상 선포하는 것부터 시작해요. 어떤 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말하고 보는 거죠(웃음). 퇴사할 때도 그랬어요. “여러분 저 퇴사합니다!” 이렇게요. 그러고 나서 변해가는 과정을 함께 공유했어요. 그게 저 자신에게 솔직해질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한 것 같아요.

 

일단 저지르는 거네요(웃음). 오늘 대화를 나누니 수민 씨는 참 자유로운 사람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스스로도 자유롭다고 생각하나요?

처음 항해를 떠날 때까지만 해도 정말 자유롭지 못한 사람이었어요. 항상 부모님과 같이 지냈다 보니 독립심도 부족했고요. 지금은 독립해서 제 공간도 가지고 있고 수리도 있고, 이젠 자유롭다고 생각해요. 나중엔 나이에 매이지 않고 하고 싶은 일은 바로 하는 사람이 됐으면 좋겠어요. 해야 하니까 하는 거 말고, 하고 싶은 이유가 반듯한 사람이 되고 싶어요. 그러다 보면 언젠가는 도전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겠죠.

거리의 작업실, 거리의 문장들

Ⓒ 임수민

1. 사람들은 무심코 지나치겠지만, 내게는 연극의 막이 올라간 것처럼 신경이 집중되는 순간들이 있었다. ‘여자가 허리를 굽혀 땅에 가방을 놓고 물건을 정리한다. 그 뒤로 연관 없는 사람들이 우르르 쏟아진다.’ 클라이맥스 없는 얘기지만, 서술하기 시작하면 모든 동작 하나하나가 의미 있다. 그렇게 나는 서술할 거리가 있는 사람들을 찾으며 길을 쏘다녔다.

Ⓒ 임수민

2. 길에서 자고 있는 남자 곁에서 나란히 자고 있는 개. 과연 주인과 반려견 사이일지는 몰라도, 이 순간만큼은 서로 최고의 동지일 것이다.

Ⓒ 임수민

3. 그 남자는 알았을까. 자신이 휴대폰을 보고 있는 사이 10여 명이 자신의 머리를 쳐다보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인지하지 못하지만 멀리 떨어져서 보면 우리 모습은 배경과 꽤 어우러져 재미난 이야기들을 만들어 내고 있다.

Ⓒ 임수민

4. 배 위에서 나의 유일한 모델은 ‘CHAE’ 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충분했다. 그는 나의 뮤즈였으니까.

Ⓒ 임수민

5. 때로는 사람의 행동에 따라 그를 정중앙에 놓을지, 한 코너에 놓을지 프레임을 선택하게 된다. 그래야 그 역동성이 부각될 수 있다.

Ⓒ 임수민

6. 개와 주인은 닮는다는 말을 증명하는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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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김지수

포토그래퍼 김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