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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문정 — 오이타
알싸한 추위에 가지들은 이미 빈손이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자그마한 눈이 달려 있다. 분재 스튜디오 오이타의 최문정은 가지 끝에서 솟아오른 꽃눈을 보며, 잎이 떨어진 식물도 이렇게 힘을 내기에 아름답다고 말한다. 계동 골목길 한편 한옥집에서 식물의 자리를 만든 그는 자연스럽기 때문에 생동감이 흐르는 식물을 보듬으며 지낸다. 어느 누가 겨울의 식물이 초라하다고 했는가. 오이타의 정원에 머무는 존재들은 힘껏 가지를 굽히고 뿌리를 내리며 여기저기 목소리를 낸다. 아주 기운차고 생생하게.
초대해 주셔서 감사해요. 계동 골목길의 한옥에서 식물들을 만날 거라곤 생각도 못 했어요. 새해는 잘 맞이하셨나요?
연말부터 독감에 걸려서 휴일 내내 요양하면서 보냈어요. 전시를 준비하느라 바빴는데 긴장이 풀린 모양이에요. 그래도 오랜만에 가족들도 만나고, 식물 정리하고 분갈이도 하면서 지냈어요. 겨울은 오이타를 재정비하는 시간이거든요. 이제 곧 엄청난 한파가 올 테니까요. 여기 귤 좀 드세요. 분재 수업 수강생이 제주도에서 보내주셨어요.
(귤 하나를 까먹는다.) 너무 맛있어요! 그러고 보니 식물은 대부분 겨울에 취약하겠어요.
지금은 식물에게 쉬어가는 때가 아니라 준비하는 때인데요. 추위는 느끼게 하되 이 공간과 식물이 얼지 않도록 사람이 조금 애를 써야 해요.
마냥 따뜻하게 해주는 게 아니라 추위를 느끼긴 해야 하네요.
그럼요. 지금이 겨울인 줄 알아야 봄에 다시 힘차게 싹을 틔울 테니까요. 분재는 사계절을 느껴야 하는데 갈수록 계절이 흐릿해지거나 날씨의 오르내림이 심해 고민이 커요. 분재를 가르쳐주시는 강경자 선생님에게 고민을 털어놓았는데, 괜찮을 거래요. 모든 식물은 살아 있고 또 적응하는 존재니까.
소개가 늦었는데, 먼저 간단히 인사해 주실래요?
그럴까요? 저는 분재 스튜디오 ‘오이타oita’를 꾸려나가는 최문정이라고 합니다. 이름의 의미를 궁금해하는 분들이 많은데요. 돌아가신 아버지의 성함에서 예뻐하는 글자들을 골라 조합해서 지었어요. 저는 무언가를 위해 희생하는 마음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럽다고 생각해서요. 식물 가꾸는 걸 좋아하던 아빠를 기리고 싶었고, 지갑에 사진을 넣거나 입던 옷을 바라보는 것 말고 매일 가까이서 아빠를 마음으로 느끼고 싶었어요.
아름다운 이름이네요. 오이타를 열기 전에도 플랜트 숍을 운영했다고 들었어요.
동업으로 논현동에서 ‘반짝반짝’한 숍을 차렸어요. 인테리어는 대리석에 화이트였고, 토분도 반짝이는 소재를 썼죠. 식물도 잘 죽지 않는 선인장류였고요. 좋아하는 식물군도, 공간의 분위기도 아니다 보니 손님에게 진심으로 추천하기가 어려웠어요. ‘나는 논현동 사람도 아니고, 논현동에서 이런 식물을 살 법한 사람도 아닌데 왜?’라면서 괴리감이 컸죠. 사람이 계속 무뎌지잖아요. 초반에는 손님이 오면 벌떡 일어나서 안내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테이블에 앉아서 인사하게 되더라고요. 그런 저 자신이 싫어서 그곳을 나오기로 했죠. 수중에는 적은 돈뿐이었지만 나의 공간을 찾기로 마음먹었어요.
그렇게 도착한 곳은 어디였나요?
종로 내자동이었어요. 건물 2층에 있는 큰 옷 수선집에 가벽을 놓고 쓰는 아주 작은 작업실이었죠. 바로 옆에는 미싱 돌리는 분들 계시고, 오른쪽 방에선 시낭송협회 할머니들과 할아버지들이 맨날 마이크 들고 트로트 부르셨어요. 시는 가끔이고요(웃음). 방음도 안 되고 개인 화장실도 없었어요.
아이고…. 일하기 쉽지 않았겠어요.
그런데 정감 가고 좋더라고요. 사실 저는 어르신들과 시간 보내는 게 훨씬 편해요. 왜 그런 거 있잖아요, 어른의 관용 같은 것. 아직 어리니까 뭘 해도 괜찮다고, 잘했다고 해주시는 마음들이요. 그 안에 있으니 언제나 어린아이여도 괜찮다는 안심이 들었죠. 한편으로는 어느 누가 내가 여기 있다는 걸 알까 싶기도 했어요. 살아남기 위해서는 사람들이 여기까지 찾아오게 만드는 힘을 작업에서 갖춰야겠다고 다짐했죠. 사람들과 복작복작 모여서 무얼 해도 인정받고, 작고 허름하지만 감당 가능한 월세를 내면서 행복하게 일하던 때예요.
가장 마음에 남는 공간인가 봐요.
그곳이야말로 바로 저의 첫 작업실이죠.
그럼 계동에는 어떻게 닿게 된 거예요?
지금의 오이타로 온 건 식물에게 좋은 거주 환경을 고려하다 보니 자연스러운 결정이었어요. 빛이 충분히 들고, 겨울 이외에는 마당에서 키울 수 있고요. 마당은 빛과 물과 바람, 온습도까지 자연 그대로라 야생이 고향인 식물에게는 최적의 환경이거든요. 그리고 계동에는 오래된 분식집과 문구점, 미용실이나 동네를 지킨 어르신들이 많아서 좋았어요. 상업적으로 개발된 곳에 가면 스스로 좀 작아지는 기분이라 좋아하지 않거든요. 아무도 나를 신경 쓰지 않아도요.
공감해요. 유독 마음이 가고 익숙한 동네가 있잖아요. 어디 있느냐에 따라 내 태도도 달라지고요. 한옥에서 머무는 건 어때요?
한옥살이 몇 년 해보니까 겨울마다 수도가 언다는 걸 알게 됐어요. 얼마 전에는 주차하고 걸어오는데 어디선가 샤워하는 소리가 들리는 거예요. 누가 샤워하나 보다, 하고 생각했는데 근원지가 여기더라고요. 문을 열었더니 수도가 터져 분수처럼 솟구치고 있었어요. 그걸 보자마자 마트로 달려가서 사장님께 수도 터졌다고, 수리 기사님 번호 좀 알려달라고 소리쳤죠. 저는 동네 터줏대감이 마트라고 생각하거든요. 주민들이 자주 찾는 곳이니 만능처럼 다 알고 계실 것 같았고요. 그때도 사장님이 같이 달려오셔서 도와주셨어요. 한옥 생활이 쉽지 않지만 주변 어른들의 노하우와 지식을 빌려 문제들을 해결하고 있어요.
분재는 단순히 식물을 키우는 것과는 조금 다른 일이죠. 설명을 듣고 싶어요.
쉽게 말하면, 낮은 화분에 식물을 키우는 걸 분재라고 하는데요. 정확하게는 낮은 화분에 뿌리를 적응시키는 거예요. 긴 뿌리나 큰 식물을 만드는 게 아니라 키가 작더라도 굵은 가지와 촘촘한 뿌리를 만드는 거죠. 그렇기 때문에 많은 뿌리를 화분에 욱여넣는 게 아니라, 조금씩 다듬으면서 시원하게 호흡할 수 있도록 정리하고 적응을 도와줘야 해요. 이후에는 원하는 수형에 따라 가지를 매만지고요.
같은 식물이라도 누가 어떤 태도로 매만지느냐에 따라 다른 모습을 띠겠네요. 문정 씨는 어떤 마음을 담아 작업해요?
한마음으로 작업을 반복하기보단 그때그때 다른 마음으로 해요. 나라는 사람은 오늘 다르고 내일 다른데다가, 하루에도 수십 번 기분이 바뀌니까요. 대신 순간의 마음을 그대로 옮기려고 노력해요. 복잡한 생각이 드는 날에는 단정한 자태로 가다듬고, 나에 대해 고민한 날엔 식물을 화분에 넉넉하게 담기도 하죠. 기쁜 날도 마찬가지고요. 모두 저를 담았지만 분재의 형태도 부피도 달라요.
긍정적인 기분만이 아니라 모든 마음을 화분에 담는 이유가 있어요?
결국엔 저도 행복하기 위해 하는 일이니까요. 속인다면 아마 식물도 다 느낄 거예요.
시간을 거듭하다 보면 작업의 이상형이 달라질 수도 있을 텐데요.
어릴 때는 수형이 독특한 식물을 찾아 헤맸어요. 철사를 걸고 기술을 부려 세상에 하나뿐인 모양으로 만들고 싶었죠. 어느 순간, 그런 식물이 부담스럽게 느껴지더라고요. 솔직히 욕심은 나지만 기교를 부린 듯 과한 모습이 자연스럽지가 않고요. 만든 이부터 특별한 수형의 식물을 부담스러워하는데 자신의 공간에서 키우려는 분들은 얼마나 큰 무게를 짊어지겠어요. 그래서 자연스러운 식물을 건강하게 생육해서 소개하는 일이 가치 있다고 깨닫고 이상형을 틀었죠. 분재라는 일을 하는 시간이 쌓여가면서 겪는 가치관의 변화 같아요. 저도 그런 편안한 식물처럼 계속 나이 들고 싶은데, 내일은 또 어떨지 몰라요(웃음).
오이타를 꾸준히 지켜봐야겠네요. 일상 속 한 장면이 영감이 된 적도 있어요?
가끔씩 반짝 튀어 올라요. 작업실에 앉아 유리창 너머 하늘을 보는데, 에메랄드빛 화분과 길게 자란 이파리가 시야에 살짝 들어와요. 그 순간이 만드는 조합이 아름다워서, 햇빛이 충만한 하늘처럼 지글지글한 느낌의 화분을 만드는 거죠. 반짝이는 생각은 일주일에 한 번, 한 달에 한 번 무심코 튀어나오니까 그럴 때마다 놓치지 않고 표현하려고 해요. 아마 일상의 여운을 길게 받는 편이라 그런가 봐요. 오늘 하루 들은 말, 발견한 장면과 사람에게서 쉽게 감동을 받거든요. 어릴 때는 미련이 많은 건 줄 알았는데 지금은 작업의 도구가 되네요.
그럼 주변의 평가에 대해서는 어때요? 분재는 뿌리와 가지 등의 ‘멋’이 중요한데, 사실 멋이라는 기준은 주관적이잖아요.
음, 좋게 말하면 감동을 쉽게 받는 거지만 나쁘게 말하면 주변 상황에 많이 흔들린다는 뜻도 될 것 같아요. 그래서 오랫동안 평정심과 안정감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했어요. 자연히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노하우가 쌓여서 저만의 심지도 두꺼워졌죠. 저는 분재라는 분야에서 이리저리 샛길로도 걸어보고 싶어요. 나만의 경치를 상상하며 나아가려면 누구도 아닌 나의 심지가 중요한 것 같아요.
식물 다루는 일을 시작하게 된 것도 ‘나만의 것’을 찾기 위한 걸음의 결과죠?
원체 원초적인 일을 좋아했어요. 어릴 때도 뛰어나가서 놀다 넘어져서 울고, 그네를 세게 타면서 바람을 느끼는 걸 좋아했죠. 머리를 쓰는 것보다 지금 내가 느낀 무언가를 표현하고 드러내는 일이 쉬웠나 봐요. 손으로 할 수 있는 일 중 나의 흥미를 끌고 평생 해나갈 일이 뭘까 오래 궁리하고 찾아 헤맸어요. 한 가지 일을 평생 하려고 했던 이유는… 시간이 아까웠기 때문이에요. 스무 살부터는 매일을 내 뜻대로 살아가고 싶어서 단 하루도 허투루 쓰고 싶지 않았어요. 복잡한 생각 하지 않고 한길로 쭉 걷고 싶었죠. 분재 이외의 일을 하고 싶은 적은 없지만 지금 보면 어리석은 생각 같네요(웃음). 그때는 식물을 다루는 게 낯설더라도 잘 해내고 싶어서 무거운 걸 들고 어려운 일도 맡으면서 무리했어요. 몸이 많이 상하기도 했지만 그 시절의 치열한 경험이 지금의 저를 만드는 데 도움을 줬다고 생각해요.
생계유지를 위한 일의 지속성도 중요하게 생각하세요? 이를 테면 상업적인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것처럼요.
아니라고 말할 수가 없어요. 처음에는 제가 해나가는 일이 곧 오이타가 되니까, 어떤 일을 하고 또 하지 말아야 할지 판단하는 게 어려웠어요. 슬프게도 자유도가 높으면 수입이 적고, 제한이 많으면 수입이 컸으니까요. 그때 누가 이런 조언을 해줬는데, 자기 자신을 서랍장이라고 생각하래요. 어떤 일이 들어왔을 땐 한 서랍만 열어 나를 보여주고, 다른 일을 하고 싶으면 반대쪽 서랍을 열어주라고요. 어느 쪽을 열더라도 내가 서랍장인 건 변하지 않잖아요. 좋아하는 일을 하기 위해선 개인 작업 이외에 외주를 해야 하는 게 당연하고, 한계를 깨는 느낌이라 이제는 즐기기도 해요. 오이타에 상업적인 가치를 부여해 주는 분들에게도 감사하고요. 좋아하는 일만 한다면 발전이 없지 않을까요?
문정 씨와 분재를 말할 때 강경자 선생님의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어요. 오랜 사제지간이자 함께 전시를 열고 책도 펴내셨잖아요. 인연의 시작은 어땠나요?
원예와 가드닝에만 익숙했을 때라 분재는 한창 제멋대로 하던 때였어요. 어떤 환경에서 어떤 방법으로 해야 할지 배경지식이 없다 보니 죽는 걸 보면서 너무 안타깝더라고요. 그래서 이 분야에 오래 계신 어르신들을 찾아다녔어요.
아니, 수도가 터졌을 때랑 똑같네요!
그러게요(웃음). 인연을 잇고 이어 강경자 선생님을 만나게 되었는데, 그간 만난 어르신들 중 가장 어려웠어요. 선생님이 절 엄하게 대하신 게 아니라, 제가 분재를 생각하는 마음 그대로 선생님을 바라보니까 편하게 대할 수가 없었죠. 오랫동안 수업을 들으면서도 항상 깍듯하게 인사드리고 손 한 번 잡은 적이 없는데, 얼마 전 선생님께서 함께한 인터뷰에서 이런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이제는 나를 선생님이 아닌 동료로 생각하고 편하게 대해줬으면 좋겠다고요. 그러곤 꼭 안아주셨는데 그 고백에… 마음이 두근거리고 감회가 새로운 거 있죠. 이제는 고민을 털어놓기도 하는 감사한 사이예요.
문정 씨는 식물을 오랫동안 곁에 두었는데 아직도 궁금하거나 헤맬 때가 있어요?
선생님은 60년 정도 식물을 다루셨는데도 모르겠다고 말씀하시는걸요. 저도 똑같아요. 작년에는 건강했던 식물이 시름시름 앓으면 의사처럼 청진기를 갖다 대고 싶은 마음이에요. 무엇이 문제인지 몰라 답답한 계절들이 많죠. 식물을 다루는 것뿐 아니라 일을 하는 방식부터 연구가 필요하다는 막막함도 느끼고 있고요. 사실 해답은 분명해요. 다가오는 문제에 그때마다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행동을 하는 것뿐이죠. 모든 문제를 다 어떻게 해결하겠어요? 세상 사람의 맘을 전부 이해하기 어려운 것처럼 식물도 계속 알아가고 맞춰가야죠.
어려움은 언제나 어디에나 있는 것 같아요(웃음).
해결하면 또 다른 어려움이 찾아오고요(웃음). 문제가 주어지고 대처하면서 그 과정이 저를 수련한다고 생각하려고요.
선생님께서 조언도 많이 해주셨을 텐데, 떠오르는 게 있다면 들려주실래요?
“많이 흔들리면서 자란 나무가 뿌리도 깊고 부러지지 않는다. 그러니까 충분히 흔들려도 된다.”
문정 씨 마음이 흔들릴 때 해주신 말씀인가 봐요.
네. 분재는 화분 안에 심는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에요. 중요한 핵심은 세월이죠. 세월이 흘러야 가치가 있는 분재가 되는데 저보다도 오래 산 분재가 많거든요. 그렇다 보니 젊은 사람이 문제를 다루는 것에는 한계가 생기고 외부와의 잡음도 많았어요. 어리다는 이유로, 분재라는 업이 연륜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벽을 느끼곤 했죠. 그때마다 선생님께서 중심을 잡아주려고 하셨고, 저는 선생님의 시간을 업고 나아간다는 생각을 해요. 내가 아직 어려도 내 뒤엔 선생님이 계신다는 마음으로요.
연륜을 갈망하지만 한편으로 얄밉기도 해요. 노력한다고 해서 단숨에 얻을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물리적인 시간과 단단한 내실이 필요하니까요.
맞아요. 이 일을 할수록 빗물, 바람, 햇빛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시간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시간이 식물에게는 생명과도 같은 건데, 그걸 많이 쌓아서 오이타에 온 분들에게 아낌없이 나눠주고 싶어요. 이 친구는 처음에는 어떤 모습이었고 몇 년 전에는 이런 일이 있었고…. 식물이 보여주는 경우의 수를 다 알고 있는 연륜이 가득한 사람이 되는 게 지금의 목표예요.
식물 가꾸는 일이 참 평화로워 보이지만, 마냥 낭만적인 일은 아닐 듯해요. 기다림의 연속 같기도 하고요. 어때요?
“편안하게 걷는 오이타”라는 슬로건을 써서 소개하곤 하는데요. 편안함과 안정감을 늘 추구하지만, 그걸 누리기 위해서는 그렇지 않은 시간이 더 길어야 돼요. 하루 중 이곳에 가만히 앉아 있는 시간보다 운전하는 시간이 훨씬 길고, 무거운 것도 번쩍번쩍 들어야 하죠. 환경을 끊임없이 관리해 주면서, 전국 곳곳에서 나와 시선이 맞는 식물들을 찾으러 다니고요. 여름에는 덥게, 겨울에는 춥게 생활해야 해요.불편한 만큼 거기에서 얻는 평안이 크게 와닿는 일이에요.
일과 일 이외의 생활은 균형이 잘 맞춰져 있어요? 왠지 바쁘실 것 같아요.
늘 식물을 돌보는 삶에 익숙해져 있어요. 매일 일에 전념하다 보니까 자연스레 일상이 분재고 분재가 삶이고…. 오히려 쉴 때 마음이 불편하기도 해요. 좋은 음악 틀어놓고 혼자 물 주고 청소하는 게 저에게 에너지를 주다 보니 휴가가 따로 필요 없어요. 그 순간이 마음을 보살펴 주니까요. 일과 여가를 나누지 않아도 불편하지 않기 때문에 경계가 흐린 삶을 살아도 괜찮아요.
식물은 말이 없잖아요. 작업실에서의 시간이 외롭진 않아요?
소리 없는 아우성이라고 하잖아요. 딱 그 모양이에요. 고요하게 하나씩 들여다보면 마음에 한 자리씩 다 채워져서 되게 시끄러워요. 전혀 심심하지 않아요.
식물을 어떤 태도로 바라보고 있는지 느껴져요. 동등한 시선으로 대하네요.
제가 위에서 이 친구들을 내려다볼 이유가 없거든요. 낮은 시선에서 봐야지만 얻을 수 있는 게 더 많고요. 얼마 전에 가족들을 만났는데, 할머니 손이 너무 차가운 거예요. “할머니, 춥지?” 하면서 만지는 차가운 손. 그런 감각과 기분을 식물을 대할 때에도 느껴요. 작업실에 하루건너 나오면 이파리 색깔이 달라져 있는데 춥겠다 하면서 손으로 만져보면 엄청 차갑거든요. 마음이 쓰이고요. 그래서 식물이 저에겐 가족 같기도 하고 동료 같기도 하고, 어떤 때는 나를 묵묵히 기다려주고 배움을 주는 부모 같기도 하고요. 삼촌, 고모, 친구, 동생 같기도 해요(웃음).
(웃음) 이 일을 오래 하고 싶다고 했으니 한 30년 후를 상상해 볼까요?
음…. 그 정도 시간이 지났다면 지금의 저랑 비슷한 친구들을 만났겠어요. 나이테가 주는 신비로움을 갖고 있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네요. 내 손을 거쳐 간 수많은 식물과 경험과 배움이 나이테에 차곡차곡 기록되어 있길 바라요. 그걸 다양한 세대와 나누고 싶어요. 지금의 대화보다 더 풍부한 이야기도 할 수 있을 거예요.
그때도 아직 계동에 있으려나요?
그건 또 모르겠네요(웃음). 다만 지금보다는 좀 단출해지고 싶어요. 수많은 식물을 가꾸기보단 나와 오랫동안 연을 쌓은 식물을 껴안고 싶거든요.
1. 운용동백과 솔잎란
편안하게 걷는다는 오이타의 슬로건처럼 찬찬한 호흡으로 걸어 자라는 듯한 느낌을 전하고자 가꾸었습니다. 지난 세월이 상상되는 화분부터 굽은 줄기를 따라 잎과 꽃봉오리까지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마음이 가뿐해져요.
2. 구지뽕나무
거친 환경에 적응하며 살아낸 듯, 생명력이 느껴지는 수형이 특징입니다. 나무가 가진 사연을 읽어보고 싶은 적이 있나요? 가지에는 자연의 변화와 적응 그리고 안정을 모두 상상해 볼 수 있는 멋이 있어요. 다가올 봄에 피어날 구지뽕나무의 잎은 무척 보드랍답니다.
3. 석화회
옛 선조들은 이 수형처럼 나무가 전하는 여백을 보고 한적함을 느꼈다고 하지요. 보통 나무와 달리 석화회의 잎은 꼬들꼬들한 촉감, 동글동글한 모양새가 특별한 감흥을 전합니다. 늘 푸른 상록 식물이라, 잎의 작은 변화에도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세심한 분들께 흔쾌히 추천해요.
에디터 이명주
포토그래퍼 김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