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프 먹고 갈래?

처음 만난 사이에도 대뜸 음식 얘기를 꺼내고 싶을 때가 있다. 다른 음식도 아닌 ‘수프’ 얘기를. 설명할 순 없지만 어쩐지 마음이 가는 사람을 만났을 때만 피어오르는 충동인 건 분명하다.

눈물이 흐를 땐

주방에 간다

수프 좋아하냐는 질문에는 사실 “언제 한번 수프를 끓여 드려도 될까요?”라는 은밀한 진심이 깔려 있다. 아, 그렇다고 해서 “라면 먹고 갈래?”라는 대사 같은 끈적한 의미로 해석하면 곤란하다. 그간 수프를 끓여주고 싶었던 사람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그리자면 ‘어제는 잘 잤을까?’라는 걱정이 앞서니까. 그건 불꽃 같은 욕망과는 거리가 멀다. 차라리 어깨를 툭툭 털어주고 등을 토닥이다가 시간이 되면 그 자리를 떠나 자기만의 방으로 돌아가는 미지근한 우정에 가깝다. 혹은 깊이는 얕아도 메시지만큼은 선명한 연대, 그것도 아니면 눈물로 범벅이 된 얼굴을 깨끗한 손수건으로 닦아주고 싶다는 연민이다. 그러니까 꼭 터지기 일보 직전인 투명한 물풍선 같은 표정을 한 사람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나는 수프를 끓이고 싶어진다. 

가슴속에 찰랑이는 물결이 터져 나올 것 같은 날에는 주방으로 간다. 내게 수프란 어지럽게 흐트러진 생각들을 모아주고 뾰족하게 돋아난 가시 같은 감정들을 잠재우는 의식과 같다. 한때 눈물샘이 고장이라도 난 것처럼 시도 때도 없이 터지던 시기가 있었다. 누가 뭘 잘못했다고 지적하면 ‘나는 왜 이 모양으로 멍청한가.’라고 자책하며 찔끔, 누가 너 정말 잘한다고 칭찬하면 ‘어라, 내일은 멍청한 짓을 할 텐데 이렇게 기대감만 높여도 되는 건가.’라고 불안해하면서 또 찔끔. 그렇게 찔끔찔끔 흘리다가 회사 화장실 변기에 망연하게 앉아 눈물을 왈칵 쏟아낸 날이었다. 두루마리 휴지를 대충 뜯어 간신히 수습은 했지만 가만히 앉아 모니터를 바라보는데 눈치 없는 눈물은 다시 찔끔 내려올까 말까 간을 보았다. 다급하게 인공눈물을 찾아 넣고 눈을 감았다. 이제 내 눈에 흐르는 눈물은 눈물이어도 눈물이 아닌 것이다. ‘인공’눈물이란 이름이 이렇게 든든할 수가 없었다. 

그 시절 회사에 다니며 배운 건 일이나 사회생활 하는 법뿐만이 아니었다. 취약하고 물어뜯기 좋은 약점을 감추는 꼼수도 연차가 쌓일수록 늘어났다. 똑똑하지만 지루하지 않은, 부드럽지만 자신감 있는. 매일 유능하고 매력적인 사회인이라는 캐릭터를 연기하고 있었다. 연기력은 형편없었고 5년도 채우지 못하고 바닥이 드러났다. 하긴 애초에 설정부터 잘못했다. 내 입으로 이런 말을 하기가 참 괴롭지만, 나는 타고나기를 재미가 없는 데다가 기본적으로 만사에 의욕이 없는 인간이다. 어쩌다 칭찬을 받으면 저의가 뭘까 의심부터 앞선다. 늘 바닥에 가까운 자신감을 들킬까 봐 일부러 크게 목소리를 냈다. 아마 그래서 수프를 끓일 때마다 ‘돌아가는’ 기분을 느낀 것 같다. 잔뜩 웅크리던 몸에 힘이 빠지듯, 무리해서 과시하듯 끌어올린 입꼬리가 마침내 제자리를 찾아가듯. 수프를 끓이는 주말에만 비로소 연기가 아닌 ‘나’라는 사람의 실체와 가까워질 수 있었다.

멋 없어서 오히려

좋은 수프의 맛

수프 끓이는 법은 간단하다. 맛을 내고 싶은 핵심 재료를 깨끗하게 씻어 손질한 다음, 큰 통에 넣고 물을 붓고 끓이다가 소금이나 치킨스톡으로 간을 맞추면 그만이다. 물론 물 대신 채수나 닭고기 육수를 쓰거나, 경우에 따라 월계수 잎을 더하면 풍미가 더욱 깊어지지만 물만 넣어도 한 끼 만족스럽게 챙길 만한 맛은 나온다. 그래도 걱정이 된다면 우유라는 마법의 소스가 있다. 우유를 넣고 블렌더로 곱게 간 뒤에 보글보글 김이 나도록 한소끔 끓이면 크림 질감의 포타주가 되니까. 바꿔 말하자면, 이것저것 시도하고 기교를 부릴 여지가 거의 없는, 지루하다 싶을 정도로 조리 방법이 단순한 음식이라는 소리다. 어차피 재료를 가지고 이것저것 조합한다고 해도, 마지막엔 결국 다 같은 곳에 몽땅 밀어 넣고 끓여야 한다. 수프 맛은 정직하다. 종갓집 장맛도, 절대 미각을 발휘해 간을 맞추는 귀신같은 솜씨도 수프 앞에서는 소용없다. 당신이 넣은 재료, 수프의 맛을 결정하는 건 오직 재료 맛뿐이다. 

입력과 동시에 출력될 결과물을 예상할 수 있는 딱딱한 프로그래밍 언어 같은 이 멋없는 행위가 그래서 좋았나 보다. 수프를 끓이는 동안엔 기교를 부리고 싶어도 부릴 틈이 없다는 점이 좋았다. 멋있는 척, 화려한 척, ‘척’하지 않아도 재료만 잘 쓰면 반드시 제법 쓸 만한 결과가 나온다는 점이 묘하게 위안이 되었다. 좋은 장비나 일반 가정집 주방에서 흔히 볼 수 없는 특이한 조리 도구를 사지 않아도 곧바로 시작할 수 있다는 점도 기특하다. 필요한 건 깊이가 있는 냄비와 국자 그리고 감자나 단호박처럼 재료가 씹히지 않을 정도로 뭉갤 때만 꺼내는 미니 블렌더나 믹서뿐이다. 덕분에 주방이 없던 비좁은 원룸에서도 단호박 수프나 감자 수프만큼은 언제든지 끓일 수 있었다. 

시작할 때 힘이 들지 않고, 동시에 두 개 이상의 불을 쓰지 않아도 된다는 점까지, 수프는 서울에서 방 한 칸을 겨우 빌려 자리를 잡으려고 발버둥 치던 시절에 나의 ‘비빌 언덕’이 되어주었다. 세상에 내 편이 하나도 없는 것 같은 야속한 날이면 집에 돌아와 수프를 끓였다. 불을 피우고 혼자만의 캠핑을 즐기는 사람처럼, 나는 인덕션 위에 재료가 가득 찬 냄비를 올리고 보글보글 끓어오르는 모양을 한참 쳐다보았다. 부글부글 흘러넘칠 듯 끓어오르는 그곳에 대낮의 소음 같은 기억들도 묻어버렸다.

무슨 일이 생겨도

프는 끓일 수 있으니까

위치만 다르지 생김새는 비슷비슷한 좁은 방을 여러 번 전전하는 동안 끓여 먹은 수프 그릇도 쌓여만 갔다. 단호박 포타주, 감자크림 수프, 토마토 수프, 포토뵈, 닭고기 수프, 칠리 콘 카르네, 조개크림 스튜. 어느 순간 요리책을 보지 않고 재료를 이것저것 조합해 새로운 맛을 만드는 놀이처럼 수프를 끓이고 있었다. 놀이가 늘 재미있었던 건 아니다. 어떤 날엔 양배추에서 나는 쓴맛만 가득한 탕약 같은 수프를 억지로 삼키느라 고생했고, 또 어떤 날엔 토마토 신맛만 나서 설탕을 마구 들이부은 뒤에야 겨우 먹을 수 있었다. 

그런데도 근사하게 정리된 조리법을 찾아보는 대신 자꾸만 모험을 택했다. 냉장고에 남아 있는 재료, 주말에 동네를 산책하다 시장에서 홀린 듯 구매한 제철 식재료만 넣어도 그럴싸한 요리로 탄생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품고서. 그런 대책 없는 낙관마저 일단 다 넣고 뭉근하게 오래도록 끓여버리면 그만인 수프이기에 가능했다. 물론 요리 전문가들의 조리법을 참고하면 필요한 식재료 단가가 갑자기 두 배, 세 배 늘어나니까 괜히 그쪽으로는 기웃거리지 말자는 계산도 깔려 있었지만. 어쩌면 나는 주방이라는 실험의 장을 빌려 헤매고 망치더라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걸 확인하고 싶었던 것 같다. ‘실패해도 괜찮아.’라는 힘없는 말 대신 실패의 ‘맛’을 내 목구멍으로 직접 넘겨봐야 안심할 수 있는, 그런 의심 많은 유형의 인간이기에. 놀랍게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예상하던 것과 전혀 다른 맛이 나는 수프를 끓여도. 

기대와 다른 실망스럽고 밍밍한 맛의 수프를 며칠 동안 나눠서 겨우 해치워야 했을 때도. 월계수 잎에 강황가루, 렌틸콩, 소고기까지 큰마음 먹고 싹 다 구매해서 끓인 수프가 썩 만족스럽지 않았던 어느 저녁조차 별일 아니었다. 결국 국물 대신 밥이라도 말아 먹든, 얼려두었다가 바쁜 아침에 식사 대용으로 챙기던 간에 아무튼 다 해결했으니까. 화가 날 정도로 당혹스러운 결과물을 마주한 순간에도 나는 ‘망한 수프 사용법’을 어떻게든 찾아냈다. 정말로 아무것도 아니었다. 울면서 다니던 회사를 대안 없이 그만두는 것도, 나이 서른에 갑자기 작가가 되어야겠다고 하루 종일 카페에서 글만 쓰는 삶도, 매일매일 ‘오늘은 뭐 먹지?’가 인생 최대의 난제인 그런 단순하고 특색 없는 삶을 살게 된 것까지도.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진짜 큰일은 이런 것이다. “어젯밤 잠을 못 자서 안정제를 먹고 겨우 잠들었어요.” “12월 3일 이후로 계속 불안 증세에 시달려서 밥맛도 없네.” “불면증 때문에 어제 한숨도 못 잤어. 나 병원 갈까?” 안정제와 수면유도제,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도움 없이는 일상의 바퀴가 굴러가지 않는 친구들의 근황을 듣고 가슴이 떨리는 것, 더는 살고 싶지 않다던 이에게 할 말을 고르고 골랐지만 적절한 말을 찾지 못해 내 형편없는 말재주에 답답해지는 날. 그냥 같이 울어버리자고 말하기엔 우리가 너무 자란 것 같아서, 그런 날에도 나는 결국 수프 핑계를 댈 뿐이다. “힘들 땐 놀러 와. 수프 먹고 가.” 

Book —《수프 좋아하세요?》 황유미 | 카멜북스

황유미

5년간 광고회사에서 일했고 지금은 7년차 작가다. 소설집 《피구왕 서영》, 《오늘도 세계평화를 찾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산문집 《수프, 좋아하세요?》를 썼고 밀리의 서재 오리지널 《I형 인간의 사회생활》, 《독립어른 연습》을 연재했다. 매일 집에서 ‘오늘은 뭐 먹지’ 고민하는 집밥주의자로, 장래희망은 손맛 좋은 동네 할머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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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황유미

일러스트 오하이오 자료 제공 카멜북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