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집하는 영화

블루레이, 그리고 플레인아카이브

수집하는 영화

블루레이, 그리고 플레인아카이브

타이베이에서 만난 취재원이 나에게 물었다. “플레인아카이브 알아요? 기다리고 있는 블루레이가 있어요.” 블루레이는 영상미에 민감한 영화 팬에게 생생한 영상을 전달하는 디지털 매체다. 그리고 ‘플레인아카이브’는 근사한 블루레이 타이틀을 제작하는 스튜디오다. 바다를 건너 이국의 영화 마니아에게 소문날 정도로.

플레인아카이브를
찾아서

파주에 위치한 플레인아카이브 사무실 안에는 사람보다 박스가 많다. 사무실과 창고를 겸하는 이곳에서 플레인아카이브의 블루레이와 DVD가 탄생하고 또 곳곳으로 퍼지기 때문이다. 플레인아카이브의 시작은 201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디자인 스튜디오 ‘프로파간다’의 디자인을 입혀 2013년 출시한 영화 〈멜랑콜리아〉 블루레이가 첫 작품이다. 프로파간다 특유의 캘리그래피가 쓰인 커버 디자인은 백준오 대표의 의도대로 블루레이 시장에서 새롭게 보였고, 〈멜랑콜리아〉는 말 그대로 ‘완판’됐다. 

그때부터 플레인아카이브는 예술영화, 제3세계 영화 등 재조명할 가치가 있는 다양한 영화를 최적의 패키지와 디자인으로 선보이고 있다. 플레인아카이브는 소장하고 싶은 패키지 디자인과 알찬 구성의 책자로 주목받았다. 디자인 요소를 하나하나 살펴보면 그 세심함에 놀라게 된다. 그러나 디자인이 다는 아니다. 플레인아카이브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디스크, 즉 부가 영상이다. 로컬 코멘터리가 없을 때부터 영화평론가의 코멘터리를 담고, 〈올드보이〉에서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드는 것으로 극대화됐다. 안과 밖, 모두에 충실한 플레인아카이브의 블루레이는 완성도가 높다. 그래서 자꾸 손이 간다.

좋아하는 것을
곁에 두는 법

IPTV와 스트리밍으로 영화를 보는 시대다. 영화관에 가는 일도 예전처럼 잦지 않다. 그런데 누군가는 왜 영화를 손에 쥐려고 하는 걸까. “좋아하는 것을 곁에 두는 일은 물리 매체만 가능해요. 영화도 마찬가지예요.” 백준오 대표는 말한다. 물리적 형태의 어떤 것을 소장하는 일은 비용이 발생하는 일이기도 하지만 내 공간을 내어주고 마음을 나누는 일이다. 블루레이나 DVD로 영화를 소장하는 일은, 영화를 사랑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 중 하나임이 분명하다. 연초마다 영화진흥위원회는 한국 영화산업 리포트를 발표한다. 플레인아카이브가 속한 패키지 시장 매출액은 2017년 전년 대비 32.3퍼센트 감소했다. 그리고 매년 감소해왔다. 

2013년부터 2018년 현재까지, 플레인아카이브가 발매한 블루레이는 50개가 넘는다. 5년 동안 쉴 새 없이 달려온 플레인아카이브는 이러한 환경의 변화 속에서 영화를 소장하는 더 넓은 방법을 고민 중이다. 각본집과 영화음악 음반 등으로 말이다. 그리고 이것은 좋아하는 영화를 오래도록 곁에 두기 위한 플레인아카이브만의 방법일지도 모른다. “블루레이가 없어지더라도 어떤 방식으로든 물리 매체를 소장하는 사람은 있을 거예요. 최후의 역할을 하는 하나가 저희가 되면, 그것도 좋지 않을까요?”

플레인아카이브의
블루레이 4

올드보이
Oldboy

“플레인아카이브가 할 수 있는 것을 극한까지 밀어붙인 작품입니다. 〈올드 데이즈〉라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드는 작업이 가장 컸습니다. 총 제작 기간만 3년이 걸렸어요. 플레인아카이브에 기념비적인 작품입니다.”

1 플레인아카이브에서 처음 시도한 박스판. 2 미공개 현장 스틸 화보집. 400여 롤의 필름, 총 1만 3000여 컷의 현장 스틸 사진을 10년 만에 전부 스캔했다. 〈올드보이〉 블루레이는 영화 제작진과 배우들이 모두 참여했다는 데에서 의미가 큰데, 스틸 화보집에 달린 코멘트는 사진가가 직접 썼다. 3 개봉 13년 만에 중구난방으로 나뉘어 있던 자료가 한곳으로 모이고 정리됐다. 스토리보드 북에 담긴 콘티는 제작사 컴퓨터에 아래한글 파일로 남아있던 것. 플레인아카이브에서 기획하고 만든 다큐멘터리 영화 〈올드 데이즈〉는 〈올드보이〉의 스페인판과 독일판 블루레이에 들어간다. 한국에서 만든 부가 영상이 한 편의 영화처럼 해외에 판매되어 더욱 뜻깊다. ‘아카이빙’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는 작품.

Title 올드보이: 디럭스 박스 한정판 Release date 2016년 12월 30일 Contents 에세이북, 각본집, 스토리보드, 미공개 현장 스틸 화보집, 포스터 화보집 Special Features 음성 해설(총 6개 트랙 – 박찬욱 감독, 박찬욱 감독과 최민식·유지태·강혜정 배우, 박찬욱 감독과 정정훈 촬영감독, 신형철 문학평론가, 김영진 영화평론가, 해리 노울즈Harry Knowles AICN 운영자), 새롭게 제작한 〈올드보이〉에 대한 HD 다큐멘터리 영화 〈올드 데이즈〉, 감독과 배우와 제작진 19인의 심층 인터뷰 영상

캐롤
Carol

“〈캐롤〉은 플레인아카이브에서 대성공한 타이틀입니다. 〈캐롤〉의 방점은 ‘피그말리온’에게 있었습니다. <캐롤> 개봉 당시 선재 디자인을 담당한 스튜디오로, 소재의 특성과 디자인의 조화에 탁월한 분들입니다.”

1 〈캐롤〉은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져봐야 더욱 진가가 드러난다. 양장으로 제작한 박스에 금박 레터링으로 고급스러운 느낌을 냈다. 2 역시나 금박 레터링을 한 풀슬립과 양장 하드커버의 포토북, 각본집. 각본집은 플레인아카이브에서 기획하고 제작했다. 영화에 나오지 않는 삭제 장면을 궁금해하는 팬들을 위해 만들었다. 아름답고 섬세한 영화의 분위기를 잘 살릴 수 있도록 번역했다. 또한 눈의 피로감을 덜고 영화의 분위기를 잇기 위해 한쪽 면에만 글씨를 인쇄했다. 3 캐롤이 테레즈에게 남긴 편지로 만든 굿즈와 흑백 사진 카드. 굿즈를 담는 봉투에는 실링 왁스와 장식 끈을 사용해 더 레트로해 보인다.

Title 캐롤: 디럭스 박스 한정판 Release date 2017년 3월 17일 Plain Archive Numbering #033 Contents 양장 하드커버 박스, 금장 배지, 각본집(국문 번역본), 양장 포토북, 에세이북, 캐롤의 손편지, A3 접지 포스터, 양면 3단 아코디언 엽서, 사진 카드 6종 Special Features 음성 해설(김혜리 《씨네21》 편집위원), 영화 뒷이야기(주연 배우와 주요 제작진), 배우 및 제작진이 함께하는 관객과의 대화, 예고편, 현장 메이킹 B-Roll, 감독과 배우와 제작진 15인의 심층 인터뷰 영상

폭스캐처
Foxcatcher

“운동화 박스가 콘셉트였기 때문에 판형과 레이아웃과의 싸움이었습니다. 내부는 영화가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소품들로 채웠습니다. 구매하신 분들이 만족하고, 영화 제작사인 안나푸르나 픽쳐스도 좋아해주셔서 기억에 남습니다.”

1 보통의 운동화 박스보다 단단한 이 박스는 플레인아카이브와 디자인을 담당한 프로파간다가 함께 고민한 결과다. 어떻게 하면 두껍게, 그리고 쉽게 열고 닫게 할 것인가. 운동화 박스의 리얼리티를 살리기 위해 구멍도 뚫었다. 판매를 위한 바코드는 운동화 박스에 붙어있는 스티커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이 또한 프로파간다의 센스다. 2 풀슬립 케이스와 〈폭스캐처〉를 국문 번역한 각본집. 〈폭스캐처〉는 각본이 뛰어난 영화다. 3 운동화 박스 안을 채운 건 영화를 연상시키는 스포츠 용품들이다. 〈폭스캐처〉의 상징적인 로고가 그려진 스포츠 타월이 맨 위에 놓인다.

Title 폭스캐처 스틸북: 디럭스 박스 한정판 Release date 2017년 8월 31일 Plain Archive Numbering #022 Contents 하드 박스, 블루레이 스틸북, 풀슬립 케이스, 각본집(국문 번역본), 에세이북, 굿즈 봉투, 일러스트 우표 카드, 포스터 카드 3종, 3단 접지 엽서, A3 접지 포스터, 스포츠 타월, 메달, 실리콘 팔찌 Special Features 음성 해설(이동진 영화평론가), 메이킹 영상, 삭제 장면, 예고편

들개
Tinker Ticker

“〈들개〉는 도전 같은 영화였습니다. 김정훈 감독님이 소장용 DVD를 만들고 싶다고 찾아오셨는데, 여러 상황을 보고 블루레이를 제안했죠. 반응이 무척 좋았습니다. 저희가 판매한 게 3500장 정도인데요. 영화 관객 수가 3000명 정도예요. 영화를 극장에서 보신 분들보다 블루레이로 접한 분들이 더 많은 거죠.”

1 홍보 선재물이 거의 없는 영화였다. 김정훈 감독의 모든 걸 동원해서 만들었다. 당시 촬영 현장에서 아무 생각 없이 찍어둔 아이폰 영상부터 감독의 외장하드까지, 싹싹 긁어 모았다. 2 영화 속 택배 박스를 그대로 재현했다. 보내는 사람과 주소도 그대로. 박스 이미지는 실제 7~8개의 박스에 테이프를 붙여가며 전문 사진가가 촬영한 것. 박스 가장자리의 골판지 골, 청테이프의 반들반들한 느낌의 디테일이 살아있다. 3 두 가지 버전의 〈들개〉 블루레이 중 남은 하나. 영화 소재인 폭탄을 만들었다. 〈들개〉의 미술감독을 찾아가 영화에 등장한 사제 폭탄을 다시 만들어달라고 부탁해 촬영한 것.

Title 들개: 넘버링 한정판 Release date 2016년 5월 23일 Plain Archive Numbering #021 Contents 풀슬립 케이스, 소책자, 포스터, 트레이딩 카드 Special Features 음성 해설(김정훈 감독, 박정민 배우, 변요한 배우), 관객과의 대화(한국영상자료원), 감독 인터뷰, 배우 인터뷰, 삭제 장면, 또 다른 엔딩, NG 장면, 오디션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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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김혜원

포토그래퍼 Hae R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