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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병주 — 망우삼림·20세기 인쇄사무실
널찍한 유리창이 건물을 빙 두른 을지로의 한 현상소. 좁은 계단을 올라 문 위에 새겨진 글자 앞에 마주 섰다. “망우삼림 ; 나쁜 기억을 잊게 해주는 망각의 숲.” 문 너머에 펼쳐진 작업실 풍경은 바깥에서 쌓은 기억을 잠시 잊을 만큼 독특하고 신비롭다. 윤병주 대표가 이곳에 채운 건 어설픈 화려함도, 성급한 욕심도 아닌 있는 그대로의 자신이었다. 현상소 바로 위층에 꾸린 새 공간, 20세기 인쇄사무실에서 그와 함께 솔직해져 보기로 했다.
현상소 망우삼림에서 바쁘게 작업하시는 모습을 종종 봤어요. 대표님과 이야기를 나누는 건 처음이에요.
반갑습니다. 사진작가로 활동하다 지금은 현상소를 운영하는 윤병주입니다.
사진과는 어떻게 시작된 인연이었나요?
스물일곱에 사진과에 입학했어요. 미술 관련된 일을 하고 싶었는데, 여러 일들로 상황이 여의치 않았거든요. 늦게나마 꿈에 도전해서 학교에서 사진을 공부하게 됐어요. 남들보다 늦게 시작했지만, 좀더 빨리 데뷔해 작가로 왕성하게 활동했죠.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생계가 어려워서, 제가 가진 기술로 어떤 일을 하면 좋을지 고민하다 현상소를 차렸어요.
사진 관련한 일 중에서도 현상을 선택하신 이유가 있나요?
사진이 아닌 일로 생계를 이어가다가 결국 그만두는 선배들이나 친구들을 봤어요. 하지만 제가 찍고 싶은 작품이 아닌, 남들이 요구하는 사진을 찍는 일도 굉장히 힘들더라고요. 여기 망우삼림이 처음엔 스튜디오를 겸했는데, 필름 현상만으로도 가게를 운영할 수 있게 됐을 때쯤 스튜디오를 없앴어요.
망우삼림 이전에도 현상소를 경험하신 적이 있나요?
대학교와 대학원을 다니며 각각 1년 동안 사진관에서 일했어요. 동네 사진관 같은 곳이었는데, 거기서 많은 걸 배웠어요. 제가 아는 사진적 지식과 손님을 맞이하는 건 다른 문제더라고요.
그때의 경험이 현상소를 차리는 데 큰 영향을 미쳤던 걸까요?
찍고 싶은 걸 찍으려면 경제적 뒷받침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마침 사진관에서 일하며 필름 사진 수요가 늘어나고 있다는 걸 알았죠. 전보다 작업량이 늘어서 사진관 사장님이 관련 기계도 늘리셨거든요. 현실적인 측면과 필름에 대한 비전이 복합적으로 얽히면서 현상을 선택한 것 같아요.
자연스럽게 당도한 현상이었는데, 독보적인 공간을 만드셨어요.
이렇게 많은 분들이 망우삼림을 알게 되실 줄 전혀 몰랐어요. 큰돈 들이지 않고 만든 곳이었거든요. 그때 마침 여유 자금도 약간 생겨서, 저와 친구들 세 명이서 망치 들고 여기를 직접 수리했어요. 하나부터 열까지 남의 손을 빌린 게 하나도 없어요. 페인트칠까지도요.
손수 이곳을 꾸미실 때 지향하셨던 점도 있었겠지요.
그건 아주 분명했어요. 남들이 하지 않는 것이요. 저는 미술을 했기 때문에 따라 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 내지는 강박이 있어요. 그래서 망우삼림을 만들 때도 현상소 하면 떠오르는 전형적인 이미지를 탈피하고 싶었던 거예요. 그렇게 이곳을 꾸리고 나니 그 생각이 더 확고해졌어요. 이곳과 비슷한 공간이 정말 많이 생겨나더라고요.
대표님만의 공간을 떠올리며 현상소를 만드셨을 텐데, 속상하셨겠어요.
조금 실망스러웠다고 해야 할까요. 이곳을 만들면서 제 안의 솔직함을 끄집어내고 싶었어요. 인테리어든 손님을 대하는 방식이든 처음이라 서툴고 부끄러운 부분들도 물론 있었어요. 하지만 저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은 건 솔직했다는 점이에요.
대표님은 나다움, 떳떳함을 추구하시는 분 같아요.
이곳에는 남미도 있고, 일본도 있고, 홍콩도 있어요. 제가 좋아하는 것들로 자취방 꾸민 듯이 해 놓은 것뿐이었어요.
현상소를 을지로로 정한 이유도 궁금해요.
장사를 하겠다고 마음먹고 나서는 서너 달 동안 집 밖을 못 나갔어요. 생업에 뛰어들고 나면 사진 작업을 영영 못하게 될까 봐 두려움이 정말 컸죠. 그때 대학원 석사 논문을 써야 했는데 작업도 잘 나오지 않았고요. 우울증까지는 아니었지만 은둔생활자처럼 집 안에서만 지냈어요. 그런 저를 보고 을지로에서 바리스타로 일하던 친구가 그러더라고요. 그러다 죽는다고. 커피 내려줄 테니 을지로로 나오라고.
힘든 시간이었을 것 같아요…. 그때 을지로에 가셨나요?
정말 가기 싫었는데 그 친구에게 진 빚이 있어 가겠다고 했어요. 친구가 을지로3가역 8번 출구로 나오라고 했는데, 지하로 걸어 다니기 싫어 지금 망우삼림이 있는 11번 출구로 나왔죠. 그런데 출구 바로 앞 건물에 ‘임대’라고 써 있는 거예요. 가게를 하긴 해야겠는데 하기 싫은, 복잡한 마음이었죠. 여기 자리가 정말 좋은데 분명 비싸겠지 싶기도 했어요. 그래서 그냥 돌아가려고 했는데 마침 건물 2층이 부동산인 거예요.
그래서 부동산에 들어가셨나요?
돈 없어 보인다고 무시하면 어떡하나 두려운 마음을 안고 부동산 문을 열었어요. 그런데 들어가자마자 부동산 사장님이 저를 보시고는 바로 “안 돼요.”라고 시더라고요. 위치가 좋으니 젊은 사람들이 카페를 하겠다고 많이 찾아왔나 봐요. 그런데 여긴 원래 커피나 음식을 팔면 안 되는 곳이에요.
왜요?
건축 용도상 식당으로 쓸 수 없는 곳이었대요. 그래서 “저 그게 아니라 사진관 할 건데요….”라고 했죠. 그러니까 사장님 눈빛이 변했어요. 바로 공간을 둘러보게 해주셨는데, 정말 마음에 들었어요.
창이 넓게 트여 전망이 좋죠.
맞아요. 예상했던 것보다는 월세가 쌌지만, 제가 갖고 있던 자금보다는 비쌌어요. 그래도 ‘내가 그 정도도 마련 못 할까.’라는 생각에 충동적으로 계약을 했죠.
우와, 기적처럼 만난 장소였군요.
그때 저를 을지로로 불러준 친구 덕분이에요.
망우삼림 내부는 어떻게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됐는지도 궁금해요.
국민학교 4학년 때 부모님이 헤어지신 뒤 어머니 밑에서 자랐는데, 늘 혼자 지냈어요. 친구들은 학원에 가니 저는 하루 종일 집에서 텔레비전만 봤죠. 그때 거의 이동진 평론가급 ‘영화광’이었어요(웃음). 만화가 끝나면 볼 게 없어서 매일 비디오 가게를 들렀는데, 당시 유명했던 홍콩 영화를 많이 빌려 봤어요. 배우들이 너무 멋있었거든요. 그때부터 쭉 홍콩 영화를 좋아했어요.
홍콩 배우들 정말 멋지죠. 저도 참 좋아해요.
배우 양조위를 굉장히 좋아했어요. 초등학생이 뭘 안다고(웃음). 그분이 그런 매력이 있나 봐요. 수염도 양조위를 따라 스무 살 때부터 기른 거예요. 망우삼림을 이렇게 만든 건 ‘홍콩이 유행이라서, 예전에 좋아했던 기억이 떠올라서’가 아니라 어릴 때부터 좋아하는 마음이 쭉 이어져 왔기 때문이에요. 당시 집도 작업실도 그냥 망우삼림 자체였어요. 그 느낌을 좋아해 왔으니까요. 이곳을 꾸밀 때 다른 스타일을 생각할 여지가 없었어요.
대표님의 취향에 대해 더 듣고 싶어요. 이런 취향은 어디에서 출발한 걸까요?
여유로운 사람에게서 오는 느낌은 아니에요. 굉장한 부족에서 오는 욕망 같은 느낌이죠. 어릴 때부터 항상 결핍이 있었으니까요. 그래서 영화, 애니메이션, 만화책에 심취하게 됐고요. 남들이 만든 세계관이 아무도 없는 고요한 집에서 유일하게 저를 행복하게 했거든요. 이렇게 취향을 공간에 펼쳐 놓으니 남들이 보기에는 멋져요. 하지만 부러워할 만한 취향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한 개인이 살기 위해 찾았던 도피처니까요. 그런데 소장품을 모아 놓고 보니 저도 뿌듯하긴 합니다(웃음).
이곳은 현상이 진행되는 치열한 작업실이지만, 취향이라는 도피처가 모인 이중적인 의미의 공간인 것 같아요.
도피처로는 이미 끝났어요(웃음). 저도 이제 이곳에서 일한 지 6년이 됐거든요. 도피처는 다시 집이 됐어요. 3층 망우삼림은 전쟁터죠. 어제도 아침 7시까지 일했어요. 버티는 거 하나는 잘하거든요. 손님들이 아무리 몰려와도 쓰러지기 전까지는 일단 해보자는 마음이에요. 도피처라기보다는 삶의 현장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이제는 4층 20세기 인쇄사무실이 도피처인데, 여긴 잘 못 올라와요. 음악도 틀고, 손님들과 이야기도 나누고 싶은데 아직까지 여유가 없어요.
공간을 꾸밀 때 대표님의 취향과 고객의 시선 사이에서 고민은 없으셨나요?
편하게 이야기하면 ‘알게 뭐람.’ 이런 마음이었어요(웃음).
어머(웃음).
그 마음을 유지하고 싶지만, 지금은 사람들 시선을 많이 신경 쓰죠. 방송인들도 처음엔 자연스럽게 행동하다가 유명해지면 조심스러워지게 되잖아요. 마찬가지로 나중에 생긴 4층은 어느 정도 남들의 시선을 고민한 흔적이 남아 있어요. 최대한 신경 쓰지 않는 척하려고 했지만요.
4층보다는 3층을 좀더 자유롭게 꾸미셨군요.
3층 망우삼림은 자취방 꾸미듯 제 마음대로 만들어간 공간이에요. 위대한 공간을 만든 건 아니에요. 성수동 같은 곳에 가면 유명한 디자이너들이 만든 멋있고 화려한 공간도 많죠. 여기는 소박하고 거친 느낌으로 꾸미고 싶었어요.
이곳을 찾는 분들이 망우삼림의 그런 편안한 느낌을 좋아하는 것 같아요.
특별한 매력이 있죠. 그래서 그런지 손님들과 이야기도 많이 하게 돼요. 사실 현상 작업을 좋아한다기보다는 사람들 만나는 게 좋아요. 손님들이 소품들을 보고 “사장님, 이거 어디에서 샀어요? 이건 뭐예요?”라고 물어보시는데, 거기서부터 시작하는 대화가 즐거워요.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4층 20세기 인쇄사무실에 대해 더 듣고 싶어요. 망우삼림 바로 위층에 자리하고 있죠.
4층은 임대한 지는 3년이 됐지만, 그간 창고로만 쓰다가 작년 10월에 열었어요. 현상소를 운영하면서 손님들이 찍은 사진을 물성으로 소장하는 즐거움을 제공하고 싶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죠. 20세기에는 사진을 앨범에 저장했지만, 21세기에는 휴대폰에 저장하잖아요. 그건 재미없다고 느꼈어요. 그러다 티셔츠나 가방에 사진을 인화해 주면 어떨까 싶었어요.
단순히 티셔츠를 만들어준다는 개념으로 생각하면 간단해 보이는데, 현상소가 바로 아래층이라 더 특별하게 느껴져요.
티셔츠를 제작하는 인터넷 사이트는 많아요. 하지만 제가 찍은 사진을 누군가에게 줘버리는 느낌이에요. 하지만 여기는 3층 현상소와 4층 인쇄소가 연결돼 있으니, 현상을 한 뒤 인화하는 경험을 한 번에 줄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엄밀히 말하면 프린트지만요. 프린트와 인화는 엄연히 달라요. 프린트는 층 위에 잉크가 얹혀 있지만, 인화는 그 층 안에 흡수되는 거예요.
4층에도 여러 소품이 보여요. 어떤 물건들인가요?
그동안 모아온 물건들이에요. 만지작거리지 못해 아쉬워요. 닦으면서 매일 ‘잘 있었니?’ 해줘야 하는데.
우와, 평소에 소장품을 닦아서 관리하세요?
네. 저기 놓인 만화책도 비닐로 포장돼 있어요. 그런 관리 작업을 해줘야 해요. 저한테는 그게 일종의 취미예요.
소품들에서 공통적인 분위기가 느껴지는 것 같아요.
소품은 제가 좋아하는 80-90년대의 것들이에요. 당시엔 애플처럼 수려한 디자인의 제품도 있었지만, 저는 기계적이고 해체적인 물건이 좋아요. 쇠나 철 같은 것들이요. 그래서 모은 게 대부분 이런 종류예요. 저기 보이는 IBM 데스크탑, CD 플레이어, 사무실 책상들이요. 어떻게 모았냐고 물어보신다면… 그래서 돈을 못 모았다고 대답할게요(웃음).
80-90년대는 작가님의 유년 시절의 향수가 묻은 시대인 것 같아요. 그래서 그때 만들어진 작품을 좋아하시는 걸까요?
그렇죠. 그때는 환경에 대한 인식도 지금보다 현저히 낮은 때라 공산품이 다양하게, 많이 만들어졌어요. ‘생산 춘추전국시대’라고 해야 할까요. 지금은 휴대폰도 딱 두 브랜드로 귀결되는 세상이잖아요. 물론 환경에 여러 문제가 생기긴 했지만요.
3층과 4층 모두 작가님만의 작업실은 아닌, 많은 분들이 오가는 공간이기도 해요. 열린 작업실이랄까요. 손님들을 맞이하시면서 가장 기억에 남은 일이 있나요?
사실 잘 기억이 안 납니다. 워낙 많은 걸 좋아하다 보니까 빨리 포맷하고 다른 걸 머릿속에 넣어야 해요(웃음). 파편적으로 기억은 나지만, 저는 그냥 손님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게 좋아요.
작업실 바깥에서는 어떻게 시간을 보내시는지 궁금해요.
3개월이나 6개월에 한 번 해외에서 사진 작업을 하고 와요. 그게 가장 큰 행복이에요. 평소엔 거의 집에 있으면서 물건들 먼지를 닦고요. 음악도 듣고, 영화도 보죠. 그렇게 평소에 비축해둔 에너지를 해외에서 무거운 장비를 들고 다니며 모두 소진해요. 참, 집에 고양이가 있어요. 집에서 고양이와 시간도 보내요.
에디터 차의진
포토그래퍼 김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