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곳간은 모름지기 풍족해야 마음이 좋다. 손 뻗으면 닿는 일상의 간식, 그거 뭐예요?
어렸을 때 할머니 집 뒤 장독을 늘어둔 작은 옥상에서 풀과 꽃을 따다가 그렇게 찧었다. 이건 밥이고 반찬이고 마법의 가루이고, 저건 몸이 가벼워지는 물약이야. 도구는 돌멩이면 충분했다. 우린 뭐든 만들 수 있었다. 같이 상을 차리던 사촌 동생은 나보다 키가 한참 더 커졌고 우리는 더이상 인사를 하지 않게 되었지만, 그 옥상에 귀여움이 묻어 있다.
새로운 영역에 발을 들일 때 세계가 확장되는 경험은 언제나 가슴 떨린다. 차 생활을 시작하고 여러 도구를 야금야금 사들일 때 그랬다. 차는 간단하게 내려 마실 수도 있지만, 나는 굳이 도구를 하나하나 다 꺼낸다. 왼쪽에는 차판과 숙우를, 오른쪽에는 집게, 전기포트, 차 거름망을 적절히 배치한다. 지금 기분에 맞는 차와 다관을 고르는 일은 하루 중 가장 신중한 시간이다. 차를 내릴 때 달그락달그락거리는, 다관(차를 우려내는 그릇)과 숙우(다관에서 우려진 차가 잘 섞이고 온도를 낮추기 위해 따르는 그릇)가, 숙우와 찻잔이 부딪치는 소리가 좋다. 쪼로록 뜨거운 물로 기물을 데우는 것으로 시작해 호로록 차를 마시는 과정은 마치 소꿉놀이 같다.
차를 한 김 식히며 어제 선물 받은 살구 콩포트를 꺼냈다. 회사를 같이 다녔던 언니가 만들어 준 것이다. 콩포트는 과일을 설탕에 졸여 따듯하거나 차갑게 먹는 디저트인데, 우리는 보통 설탕의 양에 따라 잼, 청, 절임, 콩포트 등 기분 내키는 대로 부르곤 했다. 언니의 집에는 이미 저장 음식들로 가득한데, 여전히 계절마다 병조림을 만든다. 매실 청, 귤 잼, 모과 잼, 앵두 청, 보리수 잼, 차조기 피클… 덕분에 잊지 않고 냉장고에 사계절이 찾아온다. 마침 전날 만든 계란 푸딩 -언제나 달콤한 계란찜 느낌이지만-에 살구 콩포트를 두 스푼 올렸다.
살구색이 이렇게 예뻤던가, 식감이 이렇게 보드라웠던가. 새콤한 여름이 입안에서 은은하게 퍼진다. 연하게 우려낸 보이차를 마시며 콩포트를 먹으니 세상 모든 갈등을 다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은 사랑이 샘솟는다. 누구라도 이 즐거움을 같이 누렸으면 하는 마음에 조바심이 날 지경이다. 차한 모금, 콩포트 한 입. 집에는 나 혼자뿐이지만 “아, 맛있다.”라고 소리 내 말했다. 마음을 말로 꺼내며 더 짙어지길 바라면서. 우리 집 거실에서 하는 소꿉놀이에 오늘도 쉽게 행복해진다.
공부하고 싶었다. 직장을 다니며 일곱 번째 해가 지날 무렵이었다. 일과 병행하던 공부로는 성에 차지 않았고, 공부하는 삶으로 더욱더 깊이 다이빙하고 싶었다. 그리고 나는 히말라야 자락 설산이 늘어서 있는 풍경의 북인도 다람살라Dharamshala로 왔다. 학교는 아름다운 자연에 둘러싸여 있다. 이 나무 저 나무를 타고 다니는 원숭이와 하늘에 독수리, 지천으로 널린 망고나무, 창밖으로 보이는 정경은 이제 나의 평범한 하루 일부가 되었다.
수업이 끝나면 가끔 친구와 차이를 마신다. 원래도 밀크티를 선호하지만 인도의 마살라 차이를 더 좋아한다. 진한 홍차 향과 흡사 박하 향처럼 퍼지는 향신료, 미세하게 어우러지는 달콤씁쓸한 맛, 부드러운 우유의 목 넘김은 나도 모르게 어깨에 힘을 빼고 편안한 숨을 들이쉬게 한다. 싱숭생숭한 어느 날에도 차이와 함께였다. 아무리 공부해도 모르는 단어가 쏟아지고, 다른 친구들보다 뒤처지는 것 같은 느낌에 풀이 죽어 있었다. 친구는 방금 끓인 뜨거운 차이를 홀짝이며 내게 말했다. “아니, 너무 당연한 거 아냐? 지금 너 온 지 한 달도 안 됐잖아?” 사실이었다. 나도 차이를 한 모금 넘기며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갓난아기가 두발자전거를 못 탄다고 우는 꼴이었구나, 슬그머니 인정했다. 따뜻한 차이 한 잔 덕분일까. 좀처럼 바뀔 것 같지 않던 마음이 제법 느슨해졌다.
하지만 어떤 날에는 친구와의 차이 한 잔만으로는 풀리지 않는 마음들이 있다. 50도로 치솟는 무더위와 4개월간 비가 내리는 몬순 속에서도 잘 지냈지만 잘 해내고 싶은 욕심은 여전히 어렵다. 자꾸만 안팎으로 부족한 것들이 눈에 띈다. 나의 조건과 주변 상황들이 보잘것없어 보이고, 다른 특별한 무언가를 갈망한다. 이런 날에는 내가 너무 못나 보여서 친구들에게 먼저 다가가기도 조금 망설여진다. 그렇다고 혼자 스트레스 해소 겸 연거푸 차이를 마실 수는 없다. 몇 년 전 크게 아프고 난 후엔 몸에 좋지 않은 음식들을 적당히 가려 먹기 때문이다. 그런 날에는 냉장고 서랍에서 사과를 하나 꺼내어 먹는 편이 낫다. 사과를 먹으면 문득문득 엄마 생각이 난다. 내가 공부하고 있을 때면 엄마는 고운 노란 때깔의 사과 조각이 담긴 접시를 책상 위 내 팔꿈치 쪽으로 살포시 밀어 넣으며, 바로 집어먹기 편하도록 늘 작은 포크를 꽂아주곤 했다. 풀리지 않는 마음으로 시무룩한 날, 사과를 먹는 내게 엄마는 이렇게 말할 것 같다.
“그래, 네 마음이 그렇구나. 그럴 수 있어. 자연스러운 마음이야.” 그리고 아마 별다른 말 없이 옆에 앉은 채 내가 깎은 못난 사과를 맛있게 먹을 것이다. 그저 못난 나와 함께 머물러 주면서 말이다. 부정적인 마음의 회로는 아주 손쉽게 나를 멀고 먼 곳까지 데려다 놓지만 그곳이 어디든, 심지어 길을 잃었을지라도 어느 순간 마음속에 ‘뾰로롱’ 마음속에 엄마가 나타난다. 엄마로 상징되는 내 마음의 밝은 부분은 그때부터 힘을 내기 시작한다. 마치 엄마가 내게 사과 접시를 건네주었을 때처럼 나는 다정한 마음으로 내가 지니고 있는 기회들과 내 곁을 지키고 있는 것들을 다시금 바라본다. 소담한 사과 한 조각을 입에 물며 너무 심각하지 않게 달콤한 차이 한 모금 넘기듯. 이내 고마움과 함께 무엇이든 이대로 충분하다는 마음 하나만이 남는다.
5년 넘게 개인 사업을 하다가 최근 취업을 결심하고 다시 직장인의 삶을 시작했다. 그 후 일상에서 가장 달라진 점을 하나 꼽으라면 바로 주말을 대하는 자세. 주말이 이토록 짧았나? 월요일은 왜 이렇게 금방 오지? 소중해진 만큼 주말에 누구와 무엇을 하며 그 시간을 채울지 매번 신중하게 고민한다.
정신없는 회사 생활 속에서 일에 잡아먹히지 않고 나의 일상을 지켜 내기 위해 새롭게 나만의 ‘주말 규칙’을 만들었다. 첫째 규칙은 주말만큼은 아무것도 생산하지 않을 권리를 주는 것. 생산자의 삶을 잠시 내려놓는다. 매일 여덟 시간 이상씩 키보드 위에서 바삐 움직이며 수많은 문서를 써 내려가던 손가락도, 더블 모니터를 왔다 갔다 열심히 따라다니며 일한 눈동자도, 긴장으로 단단하게 굳어버린 허리와 어깨도 주말엔 모두 파업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입’은 쉴 수 없다. 아니 평일보다 더 열심히 움직여야 한다.
혼자만 바쁘다는 사실에 섭섭하지 않도록, 평일에는 감히 맛보지 못했던 다양한 음식을 끊임없이 선사하는 것이 나의 그다음 주말 규칙이다. 한 시간밖에 안 되는 직장인의 짧은 점심시간엔 여유 있는 식사를 기대하긴 힘들다. 정신없이 배를 채우고 난 후 아이스커피와 함께 잠을 깰 잠깐의 산책 시간이 확보된다면 그것만으로도 감사하지. 그래서 주말은 식사 시간에 제한을 두지 않는다. 먹고 싶을 때, 먹고 싶은 만큼, 먹고 싶은 메뉴를 먹는다.
쌓인 스트레스가 확 풀리는 매운 주꾸미를 먹고 시원한 아이스크림으로 입안을 달래 볼까? 집밥으로 든든하게 챙겨 먹고 싱싱한 제철 과일을 먹을까? 분식으로 가볍게 배를 채우고 콩포트와 그레놀라까지 듬뿍 넣어 그릭요거트볼 하나 더? 내가 좋아하는 ‘먹조합’으로 주말 식사 계획을 채워 보기도 하고, 멀어서 평일엔 가볼 엄두가 나지 않던 다른 지역의 맛집과 카페를 찾아 겸사겸사 주말 나들이 계획도 세운다. 디저트를 단순히 ‘먹는다’는 동사로만 표현하기엔 좀 부족한 기분이다. 무엇을 먹을지 고르고, 눈으로 보면서 달달함을 상상하고,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즐기며 대화를 나누는 이 모든 과정이 포함되어야 하니까. 나에게 후식이 있는 하루는 곧 휴식이 있는 하루와 같다. 마침 오늘은 금요일이다. 내일도 역시나 달달한 휴식 한 조각을 챙겨 먹어야지. 사랑하는 연인과 함께 시원한 냉면을 먹으러 가기로 했는데, 진한 다크 초콜릿 크림 케이크와 커피로 마무리해 볼까 한다.
에디터 이주연
글 서은송, 박은빈, 이혜미 일러스트 오하이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