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길과 눈길이 닳고 닳은 자리

느릿느릿 배다리 씨와 헌책 수리법

엄마가 지금 나의 나이였을 때 읽었다던 소설책이 고스란히 내게 왔다. 모든 종이가 누렜고, 글자는 파르라니 변질되어 있었다. 결국에 다 읽지는 못했지만 나는 그 책이 이유 없이 좋았다. 정작 엄마는 모르는, 나만 아는 우리의 유대감이 형성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내가 엄마의 둥지를 떠나 자취를 하게 된 다음에도 나의 책장 구석에 그 책은 여적 꽂혀있다. 왠지 거기서 익숙한 우리 엄마 냄새가 나는 것 같기도 하다.

INTERVIEW 

이야기, 김보리, 이재영

“이 많은 책을 언제 다 읽어요?”
“언제 다 읽긴요. 안 읽죠. 그냥 헌책들이 좋아요. 책을 사 와요. 그리고 수건으로 깨끗이 닦아요. 그리고 햇볕에 말려요. 꽂아요, 이렇게. 이게 다는 아니고, 가끔 다시 꺼내서 냄새를 맡아요. 여기 앞 페이지 보면, 김은성이 누구 게요? 맞아요, 번역자예요. 이 책 주인은 선물 받은 걸 버린 거예요. 또 다음에는, 이 책은 1978년 6월 7일 저녁에 비가 왔고, 지숙 씨는 우울했대요. 이게 제 취미예요.” 영화 <아내가 결혼했다>의 주인공 인아는 헌책을 모으는 것을 좋아했다. 헌책마다 앞 장에 누군가 새겨놓은 수줍은 편지나 메모를 보며, 헌책에 축축이 스며 들은 사소한 이야기를 관음하기도 하면서 말이다. 출판사 ‘6699press’에서는 이러한 수줍은 마음을 어떻게 알아차렸는지 《느릿느릿 배다리 씨와 헌책 수리법》을 발간했다. 그렇게 동인천의 작은 카페에서 배다리 씨를 만났다.

지금의 세 분이 함께 《느릿느릿 배다리 씨와 헌책 수리법》 (이하 《헌책 수리법》)이라는 도서를 제작하게 되었던 배경이 궁금해요. 모두 출판사 ‘6699press’에서 활동 중이신 건가요?
야기 재영 씨는 ‘6699press’에서 1인 출판을 하고 있고요, 보리 씨와 저는 각자 개인 작업을 하고 있어요. 정확히 말하자면 하나의 유닛처럼 ‘배다리 헌책’과 관련된 일을 할 때 셋이 모이는 거예요. 일단 책을 만들게 되었던 이야기를 하기 전에 배경적인 설명이 필요할 것 같아요. 인천의 배다리 헌책방 거리에는 마을을 새로 가꾸기 위해서 여러 사업이 진행되어 왔어요. 

물론 유의미한 일들이 많았지만, 거리 자체를 위한 일보다는 참여자들 자신의 작업을 위한 수단으로 그치는 경우가 더러 있었어요. 그렇다 보니 오래 지속되기 어려웠고, 마을의 명맥을 이어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더라고요. 그런 것과 더불어서 이곳을 바라보는 외부의 시선 또한 ‘과거’를 회상하는 곳으로만 여기면서 소모적이기도 했어요. 여기는 ‘현재’ 있는 곳이잖아요. 태동하는 작업들도 많은데 드러나지 않는 거죠. 그래서 세 명이 함께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까 의논을 하다가 일이 시작됐죠.

재영 이 거리에서 디자인과 관련해서 많은 작업들이 있었고, 또 새로이 진행하려는 것들도 있었어요. 그렇게 간판을 만들고, 리플렛도 만들고, 인포메이션도 만들었죠. 하지만 여기 서점 사장님들, 출판사 사장님들과 이야기를 해보니 추가적인 정보 전달이나 간판 단장보다는 우선 사람들이 이곳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고, 또 이곳을 기억해줘야 한다는 것이 더 중요한 것 같더라고요. 

그렇게 시작된 것이 ‘느릿느릿 배다리씨와 헌책잔치’예요. 헌책잔치는 헌책을 가진 사람들이 와서 책을 사고, 팔고 하는 자리예요. 평범한 장터처럼 보이지만, 모이는 사람들 모두가 평소와 달리 느릿느릿한 시간을 보내고 서로의 이야기를 찾아가는 곳인 거죠. ‘아, 여기에 배다리가 있었구나. 헌책방이 이곳에 모여 있었구나.’ 하고 알 수 있는 거예요. 결국 책이라는 것은, 사람이 있는 곳에 있어야 해요. 헌책 잔치 때문이라고 하기는 어렵 지만, 실제로 배다리 거리에 변화가 생겼어요. 헌책방 투어나 헌책방 신문같이 이곳 주민들 내에서 다양한 행사가 자율적으로 생겨나면서 온 거리에 활력이 생겼거든요. 서로가 영감을 주고받는 것 같아요.

헌책 잔치와 《헌책 수리법》은 어떤 관계가 있는 건가요?
보리 헌책 잔치를 시작하기 전에, 잔치를 어떤 방향으로 꾸려나갈지 준비하면서 책방 사람들을 만나 인터뷰를 했어요. 이곳에 진짜 필요한 게 무언지 피부에 와 닿도록 듣고 싶었죠. 그런데 헌책 잔치 자체도 좋지만 이곳의 생각을 전달할 수 있는 무언가가 함께 있으면 좋겠더라고요. 그런 과정에서 이야기를 하고 들으며 각 서점의 특징을 알게 되었어요. 그중에서도 한미서점의 헌책 수리법을 많은 이들과 공유하고 싶어졌죠. 그렇게 한미서점의 사장님께 헌책 수리법을 직접 배워서 각 과정을 촬영하고, 당시에는 작은 프린트로 비치를 했어요. 어떻게 보면 헌책잔치를 꾸리면서 생겨난 하나의 가지인 거죠. 

야기 보리 씨의 작업이 워낙 좋아서 하나의 아카이빙으로 남겨두고 싶었어요. 잔치 자체가 헌책의 가치와 헌책방의 의미를 되짚어 보기 위한 행사잖아요. 그렇다 보니 책과 사람들, 그리고 배다리와 사람들의 연결고리 역할을 한다고 생각해요. 또, 비단 배다리만의 문제는 아니겠지만 요즘 헌책에 대한 수요가 줄고 있어요. 새 책을 사고 새 책을 고집하는 것이 나쁘다는 말은 아니지만, 사실 모든 책은 구입과 동시에 헌책이 되거든요. ‘책’이라는 것 자체가 가지는 가치와 의미가 분명 있는 거죠. 각자가 가지고 있는 책에 대한 기억과 기억이 꼬리가 물고, 그 끝에 배다리가 있는 거예요. 더 많은 이야기가 흘러나와서 이 거리가 더욱 시끄러워졌으면 좋겠어요. 실제로 배다리 지역을 거슬러 올라가서 이야기하면, 일제강점기 당시 인천이 개항하면서 조선 사람들이 중구 쪽으로 밀려 올라와 자리를 잡은 곳이 배다리예요. 당시에는 엄청난 규모의 장이 서고, 많은 사람들의 왕래가 있었죠. 그런데 점차 이 지역이 쇠락하기 시작하면서 인천 사람들의 문화 생활 전반이 이루어진 이곳을 잊어버리고 있어요. 잊히는 것은 늘 자연스러우니까요.

한미서점의 노하우를 전수받았다고 하셨어요. 한미서점과의 이런 유쾌한 연맹은 어떻게 맺을 수 있었나요?
보리 한미서점은 2대가 이어서 내려오는 서점이에요. 그곳에서 헌책 수리에 관한 정보를 들을 수 있었죠. 보통 인터넷에 올라와 있는 책 수리 관련 정보들은 사서들이 교육과정으로 배우는 부분이거나 혹은 책을 아예 복원하는 수준의 전문적인 것들이 많아서 일반 사람들에게 진입장벽이 굉장히 높은 편이었어요. 이러한 정보를 실생활에서 어디서나 쉽게 따라 할 수 있도록 바꾸고 싶었죠. 사실 책이라는 것은 망가지기 쉬운데, 그렇다면 헌책은 망가지기가 더 쉽거든요. 더 오랫동안 보고 싶고, 함께 있고 싶은 것들이 있으면 그렇게 할 수 있도록 저희는 도와주고 싶었어요. 

한미서점의 사장님은 굉장히 섬세하고 꼼꼼하세요. 서점 한 켠에는 작은 공방이 있는데, 이것저것 만드는 워크숍을 열기도 하고, 혹은 헌책 수리에 관한 행사를 하기도 하죠. 직접 손을 움직여서 무언가를 만드는 것들에 대해서 많이 알려주시거든요. 저희가 이 정보를 사람들과 공유하고, 또 책을 만들려고 했을 때 이러한 콘텐츠로 수익사업을 하려고 했던 것은 아닌 터라 굉장히 좋아해 주셨어요. 사장님께서 개인적으로 정보의 공유를 바라셔서, 개인 블로그에 게재하기도 하셨었거든요. 아무래도 이런 작업이 혼자 하기에는 힘든 부분이 있다 보니 함께 하는 것을 반겨 주셨던 것 같아요. 

앗, 그렇다면 배다리 씨의 정체는 바로 한미서점인 건가요?
재영 그건 아니에요. ‘배다리 씨’라는 존재는 헌책방에 머무르는 요정이에요. 헌책방 자체이기도 하고요, 우리일 수도 있고, 혹은 찾아오는 방문객들의 모습일 수도 있고요. 누군가를 특정하게 지칭하는 게 아니라, 배다리를 사랑하고 애정을 가진 모든 사람들, 사물들에 총칭이라고 생각하시면 돼요. 우리가 기획한 《헌책 수리법》도 우리가 아니라 ‘배다리 씨’라는 누군가가 만들어낸 책이라고 생각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헌책 수리법》에서 배다리 씨나 배다리 헌책방보다 제작자인 우리가 앞서 드러나는 상황은 지금도 바라지 않고, 또 조심스럽기도 해요.

《헌책 수리법》을 만들면서 어려웠던 점도 있을 것 같아요. 책을 수리하기 어려웠던 적도 있었나요?
재영 일단 죽어가는 책을 살리는 복원 작업이 아니고, 생명유지 기간을 연장하도록 하는 수준의 작업이었기 때문에 벌벌 떨 만큼 어려웠던 일은 없었던 것이 사실이에요. 하지만 각 상황별로 맞는 책을 찾는 것이 생각보다 까다로웠어요. 일부러 책을 손상시킬 수는 없으니까요. 워낙 내용이 실생활에서 수리하는 간단한 방법이다 보니까, 책 맨 앞표지에 쓰여있어요. ‘전문적인 도서 복원을 원한다면 책을 덮으세요.’

보리 그리고 이게 실용서다 보니까 180도 활짝 펴져야 하거든요. 작업을 하면서 책을 다시 접었다, 펼쳤다 할 수는 없으니까요. 그래서 책 제작을 하던 당시에 어떻게든 이 두 명을 설득하려고 정말 애썼어요. 실용서는 무조건 평면으로 펼쳐져야 한다, 그래서 묶음을 이런 식으로 진행해야 한다 하면서요. (책을 펼치며) 그 덕에 책이 이렇게나 잘 펴지죠.

전자책이 유행하고 있어요. 이런 시점에서 왜 우리는 굳이 헌책을 수리해서 읽어야 할까요? 이렇게도 대체재가 많은 세상에서 책을 다시 수리하는 것이 우리에게 도대체 어떤 의미가 있는 건지 궁금해요.
보리 어떤 문화라든지 장소라든지 그것과 관련된 기억은 언제가 사라질 수밖에 없어요. 물론 기록으로서 남을 수야 있겠죠. 이때 중요한 것은 그런 것들이 사라진다고 해서 그대로 방치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숨겨져 있는 가치를 살피는 것이에요.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지속적으로 궁리하고, 묻는 거죠. 

책이 인류역사에서 굉장히 긴 역사를 가지고 있잖아요. 형태는 시대에 따라, 유행에 따라 바뀌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가지고 있는 책에 대한 ‘정서’는 그대로예요. 남아있는 것들이 가지고 있는 그 오래된 가치를 누군가는 지켜줘야 해요. 그게 우리가 마지막 세대일 수도 있는 거겠죠. ‘찢어지면 버리지 뭐’, 혹은 ‘다시 사면 되지 뭐’ 하는 가벼운 생각이랑은 조금 다른 무게를 가지고 있어요. 책을 수리하는 것은 그런 거예요. 그 가치를 조금이라도 더 이어가는 거죠. 더 ‘많은’ 사람들이 ‘오랫동안’, 그리고 ‘같이’ 생각할 수 있도록. 어쩌면 헌책 보존에 대한 사명감을 그런 데서 비롯한 것인지도 모르겠어요.

책의 생명을 연장하는 일에 대한 사명감이라니.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던 것 같아요. 헌책 수리에는 정말 깊은 의미가 있네요.
재영 저는 언젠가 헌책방을 해보고 싶어요. 제 마음속에 있는 꿈이에요. 이 꿈은 늘 현실 앞에서 좌절해요. ‘과연 헌책방을 찾는 사람이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거든요. 요즘에 동네 책방이 많이 들어서잖아요. 하지만 그게 일시적인 유행이라면, 헌책방도 하나의 유행이 되어버리지 않을까 생각을 했어요. 유행은 왔다가 다시 사라지니까요. 서점의 역할은 사실 굉장히 중요해요. 책과 사람이 만날 수 있는 유일한 장소거든요. 하지만 사람들이 그런 의미를 생각하기보다는 와서 구경하고, 사진만 찍고, 다시 휑하니 가버리기만 한다면 무의미할 것 같아요. 그런 것에 동조하고 싶지는 않았어요. 

이 《헌책 수리법》을 만들 때, 슬로건으로 내세운 것이 바로 ‘누군가의 손길로 이어져 온 책, 오랜 삶의 내음이 배어있는 책, 마음속 어딘가에 있던 보물 같은 책’이었어요. 저는 이 문장이 너무 좋아요. 헌책을 다루는 저의 마음이기도 하고요. 만약 제가 어떤 새 책을 사서 내 생애 끝까지 보관한다고 했을 때, 그 이후에는 이 책이 무엇이 될까 상상해요. 그런 상상을 하면, 《헌책 수리법》이 누군가의 다른 손으로 이어지는 한, 찢어지고 버려지더라도 계속해서 존재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긴 생명을 가지고 많은 사람들의 삶과 함께했으면 좋겠거든요. 이런 생각이 이름 모를 누군가에게 전달되길 바라면서요. 

헌책만큼 헌책방도 사랑하시는 것 같아요.
재영 그렇죠. 헌책방에 가면 좋은 책을 많이 발견할 수 있어요. 나와 똑같은 고민을 지녔던, 이 세상을 떠난 누군가의 생각을 들여다보면 좋은 영감이 되거든요. 세대가 지나가면서 그 세대들이 고민하는 것이 나에게 그대로 이어져 내려오듯, 책도 따라 이어오는 거예요. 그런 의미에서 헌책을 수리할 때 찢어진 것을 고치고 젖은 페이지를 빳빳하게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가 샀던 책을 다시 다듬으면서 이 책을 왜 샀었는지, 왜 더 보관하고 싶은 건지 생각하는 것도 중요하겠죠. 

야기 헌책 수리의 의미라, 질문이 조금 어려워요. 두 친구에게 말해본 적은 없지만, 책과 내가 이렇게나 소중한 인연인데 어느 날 갑자기 헤어지는 것은 너무 싫어요. 저는 헌책 잔치를 책과 이별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했어요. 매체의 형태가 앞으로 어떻게 변할지는 모르겠지만, 어떤 증상이나 신호도 없이 갑자기 지금의 책과 멀어지고 싶지는 않아요. 오늘 ‘기억’이라는 말이 유난히 많이 나왔는데, 헌책을 수리하는 것을 물리적인 기억이라고 하고 싶어요. 더 기억하고 싶다는 것은 더 이어가고 싶다는 말이겠죠. 그런 생각에 갑작스러운 이별은 좀 이상하죠. 개인적으로 E-book보다 종이 책이 더 우수하고 좋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물론 아쉽지만 그런 변화가 어쩔 수 없다면 거부하지는 않을 거예요. 여러 면에서의 의미인데, 이별을 하더라도, 더 천천히 곱씹으면서 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그렇다면 이 책을 만들고 나서 가장 보람되었던 순간이 궁금해요. 많은 분들이 직접 수리해보기도 했을 것 같아요.
재영 현실적으로 손끝에 와 닿은 피드백이라면, ‘정말 이 책이 수리가 가능할까?’라는 약간의 의심과 함께 자기가 갖고 있는 책을 따라 해봤다는 사람들이 있었어요. 마무리가 정말 잘 되었다고 말씀을 하시는 분들은 그때부터 책을 의심하는 게 아니라, 자기 손을 의심하더라고요. 대부분 이 책을 사는 사람들이 하시는 말씀이 ‘당장 헌책 수리를 할 마음은 없지만, 이 책은 꼭 사고 싶어진다’고 하세요. 

야기 헌책방에는 언제나 우리가 책을 사러 가거나 혹은 자기가 가지고 있었던 책을 팔러 오잖아요. 우리가 그러한 헌책방 거리를 통해서 정리를 한 내용을 다시 헌책방 사장님들이 직접 판매하는 모습을 보면 그때 느껴지는 이상한 기분이 있어요. 헌책방에 유일한 새 책인 거죠. 짧은 시간에 동나기도 하고요. 무엇보다 본래 목적을 돌이켜 생각해 보면, 이 책을 보고 배다리를 가 봤다는 사람들이 많았다는 게 가장 큰 기쁨이었던 것 같아요. “배다리가 혹시 인천 배다리인가요?”라고 묻는 사람들이 많은데, 헌책 잔치를 이렇게 알게 되어 오시는 분도 많더라고요. 인천에서 태어나도 젊은이들은 배다리의 존재를 잘 모르는 경우도 많은데, 새롭게 알게 된 분들이나, 심지어 타지 사람들도 이곳을 알아주고 찾아와 주곤 해요. 이 책이 언젠가 헌책이 되었을 때 누군가에게 기억될 수 있겠구나, 희망이 들기도 하고요. 헌책방을 가보면 아시겠지만, 보통 운영자나 찾아오는 방문객이나 모두 연령대가 높은 편이에요. 그런데 요즘에는 젊은 사람들이 찾아오는 경우가 점점 늘어난다고 하더라고요. 어느 순간 젊은 청년들이 이곳저곳에서 보이고, 길거리가 시끌벅적해지는 것을 보면서 기뻤어요. 물론 온전히 그게 저희 책 때문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요.

보리 책이 잘 나왔어요. 일단 그게 정말 뿌듯해요. 단순히 어디가 예쁘다 하는 게 아니라 우리가 책을 만들면서 뭘 하려고 했던지가 고스란히 잘 나온 것 같아요. 실용서에 맞게끔 말이에요. 한마디로 책이 잘 빠졌죠. 

재영 저희 책을 보시면, 여기에 하얀 띄지가 있어요. 이걸 할 수밖에 없었던 에피소드가 하나 있는데, 원래는 띄지 없이 책을 만들었어요. 나름대로 책이 잘 나왔다고 생각을 하고 헌책방 사장님께 보여드리고 싶어서 찾아갔더니 책을 보시자마자 엄청 놀라시는 거예요. 그러고서는 ‘아니, 어떻게 헌책을 만드셨냐’고 물어보시더라고요. (모두 박장대소) 그대로 모여서 회의를 했죠. 하얀 띄지를 만들자는 결론으로 지금까지 마무리가 됐어요.

헌책의 매력이란 도대체 무엇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야기 오래된 책 한 권이 보여주는 시대는 전부 달라요. 당시의 상황에 따라 종이의 질감, 디자인, 글자체, 색감 전부 다르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사실 상태가 새것과 다름없는, 얼마 되지 않은 것을 보면 헌책의 느낌이 들지는 않죠. 

재영 헌책방 여러 군데에 가면 어떤 책을 보았을 때 보물을 발견한 듯한 느낌이 들 때가 있어요. 일반 서점이었다면 전혀 눈에 띄지도 않았을 것들이 갑자기 환하게 보이는 거죠. 그게 바로 나와 책이 만나는 순간이에요. 주변이 반짝여요. 내가 만나고 싶었던 책을 마주하는 거란 그런 거예요. 지금 당장 내 상황에서 읽어야 할 책들을 우연히, 혹은 인연처럼 만나는 거거든요. 그 시간이 정말 행복해요. 굉장히 소중한 시간이기도 하고요. 내게 헌책이 말을 걸면 나는 그것에 응답해요. 책과의 인연 또한 매우 소중하거든요. 어쩌면 헌책방에서 이루어지는 역사적인 시간이지 않을까 싶어요. 책 자체가 가지고 있는 매력도 중요하겠지만, 그 안에 들어가 있는 다양한 것들을 만나는 순간이 실은 더 큰 매력일지도 모르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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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이자연

포토그래퍼 오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