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sic Around Us]

소리 안의 말과 언어

음악은 여러 요소의 총합이다. 멜로디가 있고, 리듬이 있다. 유려한 코드 진행, 소음에 가까운 연주 역시 음악의 요소들 중 하나다. 그럼에도, 최소한으로 음악을 정리해야 한다면 우리는 다음처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음악은 사운드다. 여기에 노랫말이 결합된 형태를 (연주 음악을 제외한다면) 우리는 대중음악이라고 부른다. 보통은 그렇다. ‘소리’와 ‘노랫말’에 대한 셀 수 없이 많은 정의들 중 내가 아는 한 가장 널리 알려진 어구는 다음과 같다. 저명한 록 비평가 사이먼 프리스Simon Frith가 그의 저서 《Sound Effects》에서 쓴 문장이다. “음악에서 가장 중요한 건 소리다. 리듬이다. 가사는 그다음 문제다.” 과연 그렇다. 음악을 듣는다는 건 소리를 듣는다는 거다. 이걸 부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우리는 이렇게 고백하는 사람을 살면서 여럿 마주한다. “이 노래는 가사가 참 좋아.”

말과 언어가 기거해야 할 장소

사피어 워프Sapir Warp 가설이라는 게 있다. 요약하면 우리의 인식이 언어를 형성하는 게 아니라 우리의 언어가 인식을 형성한다는 거다. 영화 <컨택트>(2016)를 예로 들 수 있다. 이 작품에서 인간의 언어를 하던 루이즈는 외계의 언어를 하게 되면서 외계인의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된다. 대표적인 사례는 또 있다. 바로 무지개다. 우리는 ‘일곱 빛깔 무지개’라고 하지만 아메리카 원주민에게 물어본 결과 부족에 따라 대답이 제각기 다 달랐다고 한다. 사피어 워프 가설대로 언어가 (무지개에 대한) 인식 체계를 구축한 셈이다.

물론 사피어 워프 가설은 완전한 이론이 아니다. 언어학자들 중 반대하는 사람도 꽤 많다. 그럼에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 하나 있다. 언어가 어쨌든 우리의 인식에 영향을 미친다는 거다. 이런 측면에서 언어는 곧 타격이다. 언어는 우리 내부 인식의 보트를 뒤흔들고, 더 나아가 왜곡된 세계에 충격을 줄 수도 있다. 그 어떤 운동에서든 ‘구호’가 반드시 붙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언어로 이뤄진 구호 아래에 서 참여자의 인식은 서로 연결된다. 운동의 방향에 가속을 더해준다.

내가 일하는 MBC 화장실에는 이런 문구가 붙어 있다. “차별적인 언어 습관부터 바꿔요.” 언어를 바꾸면 인식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리가 없다. 나부터가 그랬다. 과거에는 습관처럼 내뱉던 말들, 더 이상쓰지 않으려고 최선을 다해 노력한다. 소셜 미디어의 분노 가득한 개똥 같은 글로 누군가에게 상처 주지 않으려고 애쓴다. 말과 언어가 기거해야 할 장소, 그곳에서는 어디까지나 섬세함과 신중함이 곧 미덕으로 여겨져야 할 테니까.

다음은 우리 가요계에서 내가 꼽는 언어의 마술사들이다. 작사 쪽에서 일가를 이뤘다고 볼 수 있을 뮤지션 둘을 소개한다. 이소라와 윤종신이다.

언어는 타격

이소라

이소라의 노랫말이야말로 ‘언어는 타격’이라는 정의에 딱 부합한다. 굳이 돌아갈 것도 없다. ‘금지된’ 의 다음 가사를 읽어보라.

검은 밤이 내 진의를 숨쉬게 하면 얕은 잠이 새 밀회를 꿈꾸게 하면 음험한 얘기들 못내 그리고 선행의 시간들 다 멈추니 내 고귀한 이성이 매를 높이 들어 나를 병들게 해 숨이 막히는 죄의식 저 원칙의 엄숙이 자를 높이 들어 나를 미치게 해 줄에 매인 시간들

“줄에 매인 시간들”이라니, 슬픔에도 스케일이 있다면 이것은 대규모다. 원칙과 이성이 지배하는 이 세계에서 화자의 죄의식은 사라지지 않는다. 음험한 얘기들이 허락되지 않는 고로 나는 병들어간다. 이소라는 “줄에 매인 시간들”이라고 노래하는 바로 그 순간 거의 시적 발화에 육박하는 설득력을 폭발시킨다.

대표곡이라 할 ‘바람이 분다’에서도 마찬가지다. 곡에서 이소라는 ‘곧 누군가 좋은 사람이 나타날 것’ 이라고 거짓 위로하지 않는다. “세상은 어제와 같고, 시간은 흐르고 있고, 추억은 다르게 적힌다”라면서 내면의 격랑을, 엇갈림과 사무침을 고통스럽게 토해낸다. 그러니까, 이소라의 이별 속에서 장밋빛 미래 따윈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괴로운 현재만이 도돌이표처럼 중첩되면서 쌓여갈 뿐이다. 그야말로 진짜배기 이별인 것이다. 자전하는 슬픔 속에서 이소라는 이별과의 전면전全面戰을 불사한다. 여기가 바로 지옥이다. 그의 또 다른 곡 ‘Praise’의 가사에 나오듯이 그 지옥에서는 “내가 나를 벌한다.” 과연 그렇다. 이소라의 세계에서 언어는 곧 타격이다.

[라이브](2001)

언어는 환기

윤종신

윤종신 가사는 이소라와는 대척에 있다. 쉽다. 우리가 실생활에서 쓰는 언어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그의 가사를 음악과 함께 곱씹어보면 저절로 머릿속에 어떤 그림이 그려진다. 정말이다. 대한민국에서 윤종신만큼 회화성 강한 노랫말을 쓰는 작사가는 드물다. 저 유명한 ‘이별택시’의 가사를 보면 알 수 있다.

건너편엔 니가 서두르게 택시를 잡고 있어 익숙한 니 동네 외치고 있는 너

그러면서도 무릎을 탁 치게 하는 표현을 집어넣을 줄 안다. ‘이별택시’에서는 “와이퍼는 뽀드득 신경질내는데”라는 구절이 대표적이다. 이런 기가 막힌 의인화 또한 윤종신 가사의 특징이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그러면서도 어렵지가 않다. 그는 격렬함과는 거리가 먼 순한 언어로 일상의 풍경을 포착한다. 이별을 노래하면서도 이소라와는 다른 결을 지향하는 셈이다. ‘이별택시’ 외에 박재정과 규현이 함께 부른 ‘두 남자’의 가사를 들어보라. 

곡에서 어떤 한 공간에 머물고 있는 두 남자는 서로 모르는 사이다. 한데 본능적으로 알아챈다. 저 사람도 지금 나처럼 이별의 몸살을 겪고 있음을 직감한다. 이 와중에 윤종신은 다음 같은 구절을 통해 이별이라는 과정 속에서 우리 모두 느낄 수밖에 없을 어떤 핵심을 길어 올린다.

아무도 모르게 아파야 모두가 행복하다는 그 고약한 밤을 보냈나요

어떤가. 뼈저린 이별, 그러나 아픈 만큼 누구에게 털어놓을 수도 없는 그런 이별을 겪어본 사람이라면 동의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싶다. 무엇보다 ‘고약한 밤’이라니, 가히 윤종신만이 쓸 수 있는 ‘표현의 발견’이다. 우리는 대중음악을 통해 어떤 순간이나 시절을 ‘환기’하는 체험을 하곤 한다. 적어도 이별이라는 카테고리 안에서 윤종신이 써온 언어보다 환기력 강한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어떤 언어가 타격하는 와중에 어떤 언어는 환기한다. 윤종신이 부리는 언어가 바로 그렇다.

[행보 2020 윤종신](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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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배순탁(음악평론가,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