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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동적인 책 읽기의 힘
문득 회사 생활과 가장 반대되는 단어는 무엇일까 생각해봤다. 아마도 ‘낭만’ 이 아닐까. 낭만의 사전적 의미는 ‘현실에 메이지 않고 감상적이고 이상적으로 사물을 대하는 태도나 심리 또는 그런 분위기’다. 회사는 매일의 현실이고, 감상적 태도는 절대 필요하지 않은 곳이지만, 가끔 그곳의 낭만을 꿈꿀 때가 있다. 특히 소위 말하는 노잼시기(무엇을 하고, 누구를 만나도 해결할 수 없는 시기)가 오거나 뼛속 힘까지 다 쥐어짜 내서 녹다운된 복서 느낌으로 사무실 의자에 앉아있을 때, 그리고 나는 여전히 회사의 책상이라는 비극적인 현실을 마주할 때. 어떻게 내 삶에 ‘낭만’을 더할 수 있을까.
엘리베이터를 같이 타는 빌딩 내 다른 회사원과의 로맨스야말로 즐거운 낭만이라고 생각하지만, 언제 어디서나 누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니 다양한 것을 시도해보았다. 날씨 좋은 날에는 산책을 나가고, 인터넷 쇼핑도 해보았으며, 꽃을 가져다 놓기도 했다. 신입 시절에는 이상한 반항심에 회사 앞 바에서 샴페인 한 잔을 우아하게(마음은 조급하게) 마시고 들어가 본 적도 있었다. 이들 모두 순간적인 즐거움은 있었지만 건조한 현실을 촉촉하게 적셔주는 일은 해주지 못했다. 그리고 우연히 답을 찾게 되었다. 바로 ‘능동적인 책 읽기’. 단순히 책장을 넘기는 데서 그치지 않고 소리를 내서 텍스트를 읽을 때, 능동적인 책 읽기가 완성된다.
올겨울 우연히 좋아하는 작가에 대해서 알아보고 이야기 나눌 수 있는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되었는데, 그곳에서 작가의 글을 낯선 사람들과 소리 내 읽는 시간을 가졌다. 텍스트를 나의 목소리로 읽다니. 단순하지만, 충격적으로 신기한 경험이었다. 하루의 대부분을 텍스트를 읽고 정리하는데 보내지만, 누군가 쓴 글을 한 번도 소리 내 읽어본 적은 없었다. 활자를 눈으로 보고, 나의 목소리로 읽음과 동시에 그 텍스트를 다시 한번 듣는 경험은 친숙하고 낯설었다. 내가 처한 현실에서 벗어나 텍스트로 정교하게 만들어낸 새로운 세계로 완전히 몰입할 수 있는 손쉬운 방법이기도 했다. 그렇게 여러 문단을 읽어내고 나니 이상하게 힘이 났다.
그저 좋아하는 소설의 몇 문단을 소리 내서 읽었을 뿐인데, 새로운 것을 시도해보고 싶은 에너지가 생기고, 냉소적으로 바라보았던 관계에 대해서 관대해지다니. 이런 변화가 놀라웠다. 온몸의 감각을 사용해서 능동적으로 소설을 읽는 시간이 나에게 자신감을 주었다. 내가 변화하지 않으면 절대 바뀌지 않던 현실을 뭔가 바꿀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 능동적인 책 읽기는 현실에서 벗어나 감상적인 허구의 세계에 완전히 몰입하게 해주었고, 나의 삶을 다시 감상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낭만을 더해주었다.
다시 돌아온 오피스의 오후, 좋아하는 소설책과 마음에 드는 글이 실린 잡지를 책상 옆 창가에 세워 놓았다. 그리고 참을 수 없도록 무료한 시간이 오면, 능동적으로 텍스트를 읽는다. 마음속으로 소리 없이 읽을 때도 있고, 혼자 야근하는 밤에는 소리 내서 읽기도 한다. 아름답게 지어진 글을 읽고 듣다 보면 어느 순간 충만해진다. 건조하고 무료한 오후, 그렇게 내 삶에 낭만을 되찾는다.
Youtube의 마케터로 일하고 있습니다. 이상한 고백이지만 노는 것만큼이나 일을 좋아합니다. 그만큼 생활의 밸런스를 중요하게 생각해, 오후 네 시가 되면 남은 하루를 위해 재충전하는 시간을 보내곤 합니다. 저의 영수증이 하루의 리듬을 바꾸고 싶은 직장인에게 작은 가이드가 되면 좋겠습니다.
글 김보경 크리에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