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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지 — 사이에
사이에 그릇에는 파스타를 담아도, 제육볶음을 올려도, 김치를 올려도 잘 어울린다. 수채 물감이 물에 퍼져 나가듯 모든 음식이 그릇과 어우러지고 섞여드는 것만 같다. 그러나 정말 아름답다고 느낀 순간은 갓 씻은 오이 한둘을, 막 사 온 자두 몇 알을 올려두는 그 순간이었다.
만나서 반가워요.
안녕하세요, 사이에Saie Pottery의 김민지예요. 사이에는 저의 엄마이자 큰 선생님이신 이미옥 작가님과 함께 만들어가는, 대구에 기반을 두고 있는 세라믹 스튜디오이자 브랜드예요. 엄마에게 배운 도예로 함께 작업해 나가며 지내고 있어요. 2015년에 아주 작은 공간에서 소규모로 수업을 진행하는 형태로 시작했는데, 2017년도에 공간을 확장하면서 우리가 축적해 온 것들을 본격적으로 풀어보고자 했어요. 새로운 시작을 꿈꾼 거죠. 엄마와 저, 그리고 우리 작업 사이의 닮은 점, 다른 점을 나열해 보다가 둘 사이에 놓인 닮음과 다름이 앞으로도 우리가 보여줄 작업의 모습이지 않을까 싶었어요. 그런 생각으로 사이에라는 단어를 한글, 영어로 적어보고, 소리 내서 불러도 봤는데 발음이 마음에 들더라고요. 우리말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이국적인 느낌으로 와닿았거든요. 찾아봤더니 불어로 ‘ca y est’는 사이에와 비슷하게 발음되는데 ‘이거야!’, ‘됐다!’라는 의미였어요. Saie가 ‘Say’의 구식 표기법이라는 점도 마음에 들었고요.
한글 의미만 생각했는데 불어로도, 영어로도 의미가 깊네요. 사이에 작업은 몇 개 라인으로 구분되는 것 같아요.
다양한 방식과 형식을 취하고 있다 보니 다양성을 이끌고 갈 에너지를 유지하는 것에 관한 고민이 컸어요. 가격 고민도 그렇고요. 희소성과 작업 과정에 따라 가격 폭이 크게 달라져서, 고가로 책정될 땐 사이에의 주 고객층 수요와 부딪쳐서 절충하던 시기도 있었거든요. 이때 작업에 회의감이 생기고 힘이 빠지더라고요. 모든 작업을 사이에 이름으로 이끌어 가는 데 한계가 있다고 판단했어요. 그래서 Saie Pottery라는 큰 틀 속에서 서브 브랜드 개념으로 Saie Crafts, La ensalada, Rosie Grove 세 라인을 통해 작업을 확장하고 각기 다른 스타일의 작업을 느린 속도로 해나가고 있어요. Saie Pottery는 접근하기 쉬운 작업들, 특히 식기 위주의 작업이에요. Saie Crafts는 엄마가 이끄는 라인으로, 옻칠을 가미한 도태칠기나 장작 가마 작업 등의 전통적인 기법을 주축으로 정교하고 깊이 있는 수공예 작품들을 소개하죠. La ensalada에서는 연리문 작업을 선보여요. 연리문은 색이 다른 소지(흙)를 겹쳐 다양한 방식으로 무늬를 만들어내는 기법이에요. 페인팅이나 유약으로 장식하는 것과는 또 다른 아름다움과 매력이 있죠. 마지막으로 Rosie Grove는 핸드 빌딩(손을 이용한 성형 기법) 위주로 러프한 형태의 작업으로 구성하고, 자연에서 영감을 받은 색의 조합을 입혀 완성해요. 이 세 라인의 이름으로 나오는 작업은 대부분 하나뿐이거나 소량으로 생산되는 것들이에요.
라인마다 분위기가 다른데도 모녀 손에서 탄생해서인지 연결된 느낌이 있어요. 이번엔 민지 씨 이야기를 들어볼게요. 로지Rosie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죠.
로지는 본명을 향한 애증에서 시작된 이름이에요. 민지라는 이름은 돌아서면 또 다른 민지가 있을 정도로 흔한 이름이라 은근히 스트레스를 받았거든요. 개명해 달라고 투쟁한 적도 있죠(웃음). 이젠 민지란 이름과 제가 꽤 잘 어울린다고 생각해서 받아들이게 됐지만, 그래도 다른 이름으로 활동해 보고 싶단 마음이 있었어요. 그러다 제가 좋아하는 뮤지션에 공통적으로 ‘로지’라는 이름이 들어간다는 걸 깨달았죠. 로지 플레인Rozi Plain과 로지 로우Rosie Lowe. 자주 검색하다 보니 어느 순간 민지와 로지가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역시 흔한 이름이지만 좋더라고요.
이제 민지 씨 것이 된 것 같아요. 어디선가 로지란 이름을 보면 민지 씨가 떠오르더라고요(웃음). 사이에 소개를 듣다가 궁금해졌어요. 엄마랑 일하는 건 어때요?
처음에는 아주 치열하게 싸웠어요. 운영과 작업 방식에서 부딪치는 부분이 많았거든요. 돌이켜보면 제가 부족해서 더 그랬던 것 같아요. 엄마는 강인하고 소신 있으면서 유연하신 분인데 저는 유연함이 부족했어요. 지금도 그렇고요. 여전히 투닥거리며 지내지만 서로를 너무 잘 알기에 이해하고 협력하려고 해요.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사실은 엄마와 함께 일할 수 있어 감사하다는 거예요. 사실 누구든 함께 일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잖아요. 전체적인 기획은 같이, 또 따로 해나가고 있어요. 저는 작업 외 홍보, 디자인, C/S 등의 업무도 맡고 있고, 잔소리도 담당해요(웃음). 가족이라 어려울 때도 있지만 가족이어서 서로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어서 좋아요. 애틋하니까요.
사이에의 소개 문장을 좋아해요. “바다와 하늘의 빛, 잎이 맺히는 열매 그리고 꽃. 시간과 계절의 흐름과 함께 변화하는 자연의 다양한 빛과 형태들을 도자에 담아냅니다.”
사람과 자연은 연결되어 있고, 많은 작업자가 자연에서 영감을 받는다는 건 아주 자연스러운 일 같아요. 저는 경북 성주에서 학창 시절을 보냈는데 이때 기억이 저를 지탱하는 큰 힘이거든요. 계절의 변화를 온몸으로 느끼며 살아왔고 그게 너무나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이었어요. 성인이 되어 도시 생활을 하면서 시골에서의 경험을 계속해서 돌이켜보면서 그때가 정말 소중했다는 걸 알았어요. 추억하고 그리워하다 보니 자연에 더 집중하게 된 거죠.
그래서 제품 소개도 항상 자연과 닿아 있군요. “여린 빛의 풀을 담았습니다.”, “촉촉하고 깊은 내음이 나는 초록색 풀잎과 어우러진 풀밭의 풍경과 떠오르는 기분을 은은한 수채로 담았습니다.” 자연에서 길어 올리는 것들에 관해 좀더 들어보고 싶어요.
자연에 둘러싸여 11년 정도를 살다 보니 친구들과 노는 곳도 자연이었어요. 어떤 곳에 자주 가다 보면 처음에는 미처 몰랐던 것들이 보이곤 하잖아요. 저한테 자연이 그런 공간이었던 거죠. 작은 바람의 온도와 향기의 변화 같은 것에 빠르게 반응하게 돼요. 자연은 우리에게 많은 걸 느끼게 하지만 그중에서도 편안함과 자연스러움에 가장 많은 영향을 받고 있어요. 그래서인지… 원색을 사용할 때도 물론 있지만, 주로 차분한 색들로 표현하게 되는 것 같아요.
도자기 작업이지만 그림을 그리는 것처럼 보이기도 해요. 그런데 가마에 들어가면 애써 그려둔 그림의 색이 변하잖아요. ‘어떻게 나올지 모른다’는 점에서 확신하기 어려운 영역이라는 생각도 들어요.
맞아요. 가마 문을 열기 전까지는 그 어떤 것도 확신할 수 없어요. 그래서 늘 가마에 재임하고 문을 닫는 순간에는 아주 예민해지고, 가마 문을 여는 순간에는 걱정과 불안을 안고 들여다보게 돼요. 늘 잘 나오던 작업도 그렇지 않을 때가 있기 때문에 항상 마음 졸이곤 하죠. 반대로, 확신할 수 없기 때문에 의외의 아름다움을 마주할 때도 많아요. 그럴 때는 그 어떤 순간보다 행복해져요.
이번 호 주제어는 ‘디저트’예요. 디저트는 맛도 중요하지만 시각적인 요소로 기분을 좋아지게 하죠. 이에 플레이팅은 중요한 역할을 하고, 플레이팅에 있어 식기는 빠질 수 없을 텐데요. 식기가 우리의 테이블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매일 마주하는 식탁은 삶의 방식을 만나볼 수 있는 작은 장소 같아요. 차리는 음식과 그것이 담긴 그릇은 우리의 라이프스타일과 애티튜드를 보여주는 방법 중 하나라고 생각해요. 저는 식탁에서의 시간은 충전과 동시에 나를 위한 시간이라고 느껴서 시간과 에너지가 허락한다면 할 수 있는 한 정성 들여 식사를 하는 것이 좋아요. 같은 음식이라도 어떤 곳에 놓여 있는지에 따라 분위기가 달라지잖아요. 아무리 간단한 요리라도 그것을 놓는 일까지 대충 하면 어쩐지 섭섭한 기분이 들 때가 있어요. 음식을 정성 들여 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을 그릇에 담아 서브하는 일에 정성을 들일 수도 있겠죠. 요리 과정엔 식기를 고르는 일도 포함될 거예요. 사이에 제품을 촬영할 때 직접 플레이팅하기도 하는데요. 많이 부족하지만 사이에 그릇에 제가 그려낸 그림 중 일부를 담아 보여주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물론 사용자의 취향과 식습관에 따라 놓이는 음식은 달라지겠지만요.
용도 또한 그런 것 같아요. 편의상 컵, 접시, 화병 같은 이름을 붙여주지만 소서에 음식을 담아 먹을 수 있는 것처럼요.
맞아요. 사실 사이에를 운영하면서 받는 질문 중 의아한 것 하나가 “이건 어떻게 쓰는 거예요?”인데요. 저는 한결같이 “원하는 용도로 쓰시면 된다.”라는 답을 먼저 한 후에 사용할 수 있는 용도를 제안해요. 이가 나간 접시에 화분 받침 같은 새로운 용도를 부여할 수 있듯, 용도는 각자의 생활방식에서 찾는 게 좋아요. 문득 Rosie Grove 라인으로 만들어내는 pinch pot cup 시리즈를 자주 찾던 손님이 생각나네요. 컵이라는 이름을 붙이긴 했지만 저는 pinch pot cup에 과일이나 야채를 담기도 하고, 열쇠 등을 놓아두기도 하거든요. 그분은 이 작업에 물이 적게 필요한 화분을 식재하셨다고 했어요.
집에서 디저트도 자주 해 드시는 것 같아요. 배우자가 딸기라떼를 만들어 주기도 하고 커스터드 푸딩을 직접 만들어 드시기도 하더라고요.
맞아요(웃음). 1인 출판사 타바코북스의 일러스트레이터 기탁 작가와 부부로 지내고 있는데, 제가 딸기라떼를 무척 좋아하거든요. 집 주변에선 원하는 맛을 찾기가 힘들던 차에 기탁 씨가 칼로 야채를 다지듯 딸기를 다지고, 설탕 대신 꿀을 넣고, 우유갑을 손으로 마구 흔들어 만든 밀크폼을 올려 딸기라떼를 만들어 주었는데… 겨우내 해달라고 조를 정도로 맛있었어요. 사 먹는 디저트도 좋아하지만 남들에 비해 많이 소비하고 있진 않아요. 대신 좋아하는 건 집에서 만들어 봐요. 저희가 원하는 재료로 대체하고 시도해 볼 수 있다는 점이 좋기도 하고, 제가 만든 음식이나 디저트를, 제가 만든 그릇에 담아낼 때면 그 재미와 뿌듯함은 더 배가 돼요.
직접 만든 딸기라떼라니, 생각만 해도 포근해지네요. 또 좋아하는 디저트 있어요?
어릴 때 시골에서 먹던 간식들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아요. 시골에서는 파는 간식을 접할 기회가 많지 않기 때문에 제철 재료로 만들어 먹을 때가 많아서 디저트도 계절의 영향을 많이 받았어요. 어떤 계절만 되면 그 계절에 자주 먹은 것들이 꼭 한 번씩은 생각나요. 밭에서 따온 초여름 딸기에 연유와 얼음을 갈아 만든 슬러시, 엄마가 손수 강판으로 갈아주던 과일 주스, 재료가 적은 겨울에 찹쌀 반죽을 전처럼 부쳐 황설탕을 뿌려 먹던 일을 떠올리면 늘 행복해져요.
사람마다 디저트의 정의가 다른 것 같아요. 후식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맛보다 모양이나 기분을 생각하는 사람도 있죠.
도자 작업이 신체적, 정신적으로 고될 때가 많은데, 집에서 식사한 후 여유롭게 휴식을 취할 때 디저트를 먹으면 한껏 날이 서 있던 마음이 녹아요. 편안해지죠. 디저트는 준비하는 시간부터 먹는 순간까지의 시간을 달콤하게 채워주는 것 같아요. 준비할 때는 그것을 아름답게 놓으면서 시각적으로 행복하고, 먹을 땐 특히 누군가와 함께할 때 소소하고 기분 좋은 대화를 나눌 수 있잖아요.
맞아요. 완벽하지 않아도 좋은 것들은 분명히 있는 것 같아요. 민지 씨도 SNS에 “서툴러서 예쁜 것들이 있어요, 확실히.”라는 문장을 적어둔 적이 있죠. 완벽보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있을 것 같은데, 사이에만의 가치를 세 가지 꼽아본다면요?
개인적으로 손과 눈이 자주 가는 건 사람의 손길이 느껴지는 작업이에요. 사이에는 조화, 자연스러움, 편안함에 가장 많이 집중해요. 너무 과하지 않은 것을 좋아하죠. 여러 가지 색을 쓸 때도 그 조화에 주로 집중하고, 귀여운 작업도 과하지 않은 귀여움으로 표현하려고 해요. 또, 기능을 포함한 작업은 기능을 잃지 않는 선에서 표현해 실질적인 사용으로 이어지도록 하면서도 그 자체만으로 매력을 가지도록 노력하고 있죠.
그런 매력 덕분에 사이에를 꾸준한 마음으로 응원해올 수 있었어요. 앞으로는 또 어떤 모습으로 만날 수 있을까요?
최근에 좋은 기회로 책 표지 작업을 하면서 오랜만에 종이에 그림을 그렸는데 그 매력에 매료되었어요. 그 후로 종종 시간이 나면 종이에 무언가를 담아보며 지내고 있죠. 이것들을 차곡차곡 모아 언젠가 보여드리게 된다면 좋겠어요. 또 내년에는 Rosie Grove 라인의 작업을 모아 작은 전시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하고 있어요. 사이에는 계속해서 다양한 작업을 해나갈 예정이랍니다. 느리더라도 저희만의 속도로 꾸준하게, 계속해서요!
에디터 김지수
사진 사이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