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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고로, 좋아하는 마음이란 나눌수록 더 커지는 법. 덕질이란 세계는 무수한 교집합 속에서 더욱 깊어지고 넓어진다. 세대와 성별을 불문하고, 사랑한단 이유만으로 이 멋진 세계 속에 뛰어들기로 작정한 이들을 위해 ‘요즘 덕질 지침서’를 공개한다.
가끔 최애를 향한 마음이 흘러넘쳐서 주체할 수 없을 때가 있다. 당장이라도 문을 박차고 나가 턱 끝까지 차오른 사랑의 문장들을 세상에 고하고 싶지만, 애써 억누른 채로 일기장에 닿지 않을 혼잣말을 적으며 아쉬움을 달래던 날들. 이제 덕후들은 애정 어린 마음을 홀로 삼키거나 삭히지 않는다. 대신 ʻ00사랑논술클럽’에 가입해 매주 한 편의 글을 작성한다. ʻ처음’, ʻ생일’ 같은 의미 깊은 단어부터 좋아하는 노래의 한 구절이나 최애가 팬들에게 전했던 말에서 키워드를 뽑아내기도 한다. 정해진 주제에 맞춰 적어 내리는 문장들은 언젠가 시험장에서 원고지에 써낸 글처럼 논리적이지 않다. 사랑이란 언제나 설명할 길 없이 찾아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언제 당신을 알게 되었고, 당신의 어떤 면을 그토록 아끼는지, 무엇이 나를 오래도록 당신 곁에 머무르게 했는지. 형용할 수 없는 감정들에 서사를 부여하고 이름을 붙이는 동안 내가 그를 좋아할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알게 된다. 낱낱이 써 내려간 고백은 대문호가 연인에게 부친 편지처럼 절절하고도 찬란하다. 익명의 덕후들은 문장을 나눠 읽으며 서로의 정을 연료 삼아 마음을 불태운다. 그 연대를 보고 있자면 심장 한쪽부터 뭉근해져 온다. 역시 무언가를 좋아하는 일은 정말 아름다운 거라고.
1년에 단 한 번뿐인 누군가의 생일을 축하하는 건 즐거운 일이다. 내가 좋아하는 이의 생일이라면 더욱 그렇다. 학창 시절, 온갖 포털 사이트 비밀번호로 등록해 놓았던 네 자리 숫자. 그러고도 잊을세라 달력에 크게 별을 그려둔 그날이 돌아오면 우리는 작은 케이크를 사서 조촐한 생일 파티를 했다. 귀여운 유난을 떨던 아이들은 최애를 위해 체력과 재력을 바쳐 ʻ생일 카페’를 여는 어른으로 자랐다. 팬들을 대표하여 총대를 멘 이들은 기념일에 맞춰 영화관, 혹은 음식점이나 카페를 대관하여 최애가 남긴 흔적들로 공간을 정성스럽게 꾸민다. 직접 찍은 장면들로 디자인한 포스터와 현수막을 크게 내걸고, 기꺼이 걸음 해준 팬들을 위해 비공식 포토 카드나 스티커 같은 굿즈를 제작해 나눔을 한다. 최애가 좋아하는 커피나 음료 메뉴를 주문하면 그의 사진이 대문짝만하게 박힌 종이컵과 컵홀더가 함께 나온다. 방문한 이들 중 그 컵을 사용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다들 프린팅된 사진을 어루만지듯 바라보다 얼굴에 물 한 방울이라도 닿을세라 가방에 고이 넣어 보관한다. ʻ그래봤자 주인공은 자리에 없는데 왜들 그렇게 야단법석인 거야?’라고 물을 수도 있겠다. 간혹 인증을 하러 온 나의 최애와 만나 계 타는 경우도 있지만 그런 행운은 바라지도 않는다. 단 한 번 뿐인 오늘을 최선을 다해 축하하는 일. 각기 다른 생일 카페의 컵홀더를 탑처럼 쌓아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을 보고 있자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해 보인다. 작은 공간을 가득 채운 우주적인 사랑을 목도하고야 만다.
언젠가 너나 할 것 없이 카메라를 켜두고 차트 1위를 휩쓸던 유행가의 커버 UCC를 찍어 인터넷에 올리던 시절이 있었다. 한동안 기획사들은 전부 기억에 남는 후렴과 쉬운 포인트 안무를 남기기 위해 혈안이 되었다. 그렇게 전 국민이 따라 추던 아이돌 안무는 ʻ칼군무’ 열풍이 불어닥치면서 그들만의 리그로 변모했다. 그러던 어느날 별안간 지코가 과제 하나를 툭 던져주었다. “왜들 그리 다운돼 있어?” 묻더니 아무렇게나 춤춰도 괜찮다며 우리를 앉은 자리에서 일으켜 세웠다. ʻ어 이거 한 번 해볼 만하겠는데?’ 싶었던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챌린지에 탑승했다. 그 춤바람에 힘입어 영상은 열흘 만에 조회 수 1억 뷰를 기록했고, 노래는 순식간에 입소문을 타고선 음원 차트를 석권하기에 이르렀다. 그 후 챌린지는 케이팝 산업에서 필수 문화로 자리 잡았다. 숏츠, 릴스, 틱톡의 알고리즘을 타고서 사람들의 피드에 흘러든 영상들은 덕후들의 잠재되어 있던 댄스 욕망을 자극했다. 나의 최애처럼 절도 있는 동작을 구사하기 위해, 하루짜리 강좌까지 들으며 영상을 찍는 이들도 늘어났다. 삼각대와 핸드폰만 있으면 어디든 멈춰 서서 챌린지를 찍을 수 있으니, 이보다 더 재미있는 덕질은 없을 터. 혹시 또 모른다. 어느 날 우연히 내 ʻ뚝딱임’이 최애의 피드에 닿게 될지.
덕후라면 세상 끝 어디라도 최애와 함께하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 그만큼 내 님의 모든 것을 알고 싶고, 따라 하고 싶어서 안달이다. 최애의 유년 시절 추억이 스민 분식집이나 회사 근처 참새 방앗간처럼 드나들던 카페는 물론이요, 여행을 다녀와서 추천했던 관광지, 뮤직비디오에 잠깐 등장한 잘 알려지지 않은 촬영 로케이션까지. 팬들은 그의 숨결이 머문 코스를 따라 성지순례를 하듯 흔적을 뒤쫓는 여정을 감행한다. 유명한 스타를 배출해 낸 지역은 덕후들을 불러 모으고자 그들의 모교 주변에 위치한 다양한 관광지를 콘텐츠화 하여 소개하기도 한다. 팬들을 위해 스타가 서서 사진을 찍은 자리를 포토존으로 지정해 두기도 했다. 최애의 온기가 남은 자리에 앉아 밥을 먹고, 발도장이 새겨진 골목에 서서 같은 포즈로 인증 사진을 찍고선 잠시 멈춰 흘러가는 풍경을 바라본다. 그 순간 그가 느꼈을 감각이 나에게도 고스란히 전이되는 듯하다.
수많은 플랫폼이 등장한 이후로 하루에도 수백 개의 콘텐츠가 쏟아진다. 공중파 방송사에서 만드는 예능은 기본이며 컴백 맛집이라는 유튜브 콘텐츠, 그뿐만 아니라 스케줄 틈틈이 팬들과 소통하기 위해 켠 라이브 방송. 영화와 앨범 하나를 홍보하기 위해 프로모션을 도는 한 달 사이 챙겨 봐야 하는 영상들만 수십 또는 수백 편이 쌓인다. 넘쳐나는 떡밥들에 행복하다가도 현실을 살아가며 이 모든 콘텐츠를 따라잡기에는 다소 벅차다. ʻ팬튜브’는 팬들이 최애의 영상을 편집하여 올리는 2차 창작물이다. 이는 마치 무궁무진한 시험 범위 속 알짜 핵심만 담겨있는 요약 노트와도 같다. 제작자들은 ʻ내가 앓을 구간은 나 스스로 정한다.’는 마음가짐으로 콘텐츠들을 애정 어린 시선으로 면밀히 살펴본다. 나만 아는 매력이 잘 드러난 구간을 골라낸다. 철저히 방송사 입맛에 따라 직조된 클립은 새로운 시각으로 재탄생한다.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않고, 그저 좋아하는 마음 하나만으로 만든 영상에는 최애의 사소한 습관, 말투, 몸짓이 그대로 묻어난다. 올곧은 시선으로 포착해 낸 10분 남짓한 영상을 보고 있자면 영상 속 주인공을 사랑하지 않고선 못 배길 것만 같다.
예전에는 맛집을 찾으려면 초록창에 동네 이름과 함께 ʻ짱맛’을 검색해야 했다. 물론 광고 사이 섞여 있는 진짜 맛집을 선별하기 위해 조금의 수고를 거쳐야 했지만 그래도 이만한 방법이 없었다. 이제는 덕후들이 다수 포진해 있는 파란 앱에서 특정 멤버의 이름이 들어간 해시태그를 검색한다. 이를테면 ʻ#제노의 맛그당어’,ʻ#캐럿들_여기_캐맛있어’ 같은 덕후력 짙은 문구. 마치 ʻ알리바바와 40인의 도적’에서 나올 법한, 팬들 아니면 절대 모를 암호 같은 문장을 적어 넣는다. 하루 종일 열심히 스케줄을 뛰느라 바빴을 나의 친구들이 한 끼라도 거르지 않길 바라며. 기왕이면 맛있는 걸 먹고 기운을 차릴 수 있기를 기원하며 고심하여 추천한 맛집 목록들을 만나볼 수 있다. 최애의 입맛은 덕후가 가장 잘 안다고, 280자 꽉꽉 채워 적은 추천 이유를 보고 있자면 ʻ역시, 맛있는 음식을 먹고 나면 사랑하는 사람이 떠오르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구나.’ 싶어진다. 그와 함께 업로드된 ʻ예절샷’은 덤이다. 손바닥만 한 포토 카드에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최애의 순간이 담겨있다. 혹여나 기스라도 날까 싶어 투명한 탑로더 안에 고이 담아놓은 사진을 슬쩍 내밀며 음식과 함께 인증사진을 남긴다. 식사 전 신에게 일용한 양식을 주심에 감사하다는 기도를 올리거나, 어르신이 숟가락을 뜰 때까지 먼저 기다리는 것처럼. 그것이 덕후라면 꼭 지켜야 하는 ʻ예절’이니까.
에디터 오은재
일러스트 은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