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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와세 나오미
<앙: 단팥 인생 이야기>(2015)
헝클어진 머리로 담배부터 무는 이 남자의 아침은 무기력하고 권태롭다. 아니, 그의 하루가 온통 권태롭다. 회색 눈빛을 한 남자, 센타로는 삶에 지쳐버렸다. 실수로 사람을 해쳐 감옥에 있는 동안, 그의 어머니는 세상을 떠났다. 상실의 그림자를 지고 오늘도 그가 향하는 곳은 흐드러진 벚나무 아래에 있는 도라야키 가게. 도라야키에 별생각은 없다. 업소용 대량 팥소로 겨우 빵 속을 채워 넣을 뿐이다. 센타로를 닮은 무기력한 가게에 한 노인이 문을 두들긴다. 마음으로 팥소를 만드는 한센병 환자 도쿠에다. 아르바이트생이 되겠다는 그녀를 센타로는 몇 번이고 돌려보내지만, 그녀가 만든 팥소의 황홀한 맛에 반했다. “괜찮으시다면 함께 일하시겠습니까?” 도쿠에가 들어선 센타로의 작업실은 전과 다르다. 도쿠에는 팥의 소리에 귀 기울이며 정성스럽게 팥소를 만들고, 센타로는 밀려드는 손님을 맞이한다. 그녀의 곁에서 센타로는 멈췄던 발장구를 다시 치며 삶을 다시 조금씩 헤엄친다. 이제 센타로의 작업실을 채우는 건 살아 있다는 감각, 나아갈 수 있다는 희망이다.
센타로의 기쁨도 잠시, 가게는 예전으로 돌아간다. 도쿠에의 병이 소문나 사람들이 더 이상 도라야키를 찾지 않기 때문이다. 그를 짓누르던 삶의 무거움과 가게를 떠난 도쿠에의 조용한 죽음만이 그의 곁에 남았다. “타인을 이해하지 않는 세상에 짓밟힐 때가 있어.” 세상에 떠밀려간 도쿠에는 그녀와 같은 작은 존재, 센타로에게 유언을 남긴다. 사장님만의 특별한 도라야키를 만들어 낼 거라 믿는다고. 영화는 센타로의 새로운 가게를 비추며 끝이 난다. 흐드러진 벚나무 아래, 작은 도라야키 노점이다. “도라야키 사세요!” 센타로는 다시 힘차게 삶을 유영하기 시작한다.
낸시 마이어스
<인턴>(2015)
희끗하게 머리가 센 노년의 남자가 사무실 책상에 앉아 있다. 은퇴 후 지역사회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온라인 의류 회사에서 시니어 인턴으로 입사한 벤이다. 그는 ‘아날로그’라는 단어가 어울리는 사람이다. 이제는 쓸모를 다한 클래식한 서류 가방부터 책상에 놓인 계산기, 매일 갖춰 입는 양복까지. 그를 이루는 것들은 하나같이 오래되고 기품 있다. 아날로그한 것은 그의 외관만이 아니다. “손수건을 갖고 다니는 가장 큰 이유는 빌려주기 위해서야.” 타인을 찬찬히 관찰하며, 상대의 마음을 먼저 헤아리는 벤의 마음은 퍽 느리고 다정하다. 벤이 일하는 사무실은 사실 그에게 익숙한 공간이다.
같은 공간을 썼지만, 지금은 사라진 전화번호부 회사에서 그는 40년간 일했다. 낯설지만 낯설지 않은 이 작업실에 벤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온기를 풀어놓는다. 누구도 하지 않는 일을 부드럽게 처리하며, 젊은 동료들의 연애 상담사를 자처하는 그. 대표 줄스도 전문 경영인에게 회사를 맡기는 것이 맞을지 고민하며 벤을 두드린다.
그런 줄스에게 벤은 용기의 말을 불어넣는다. “경험이 많은 사람이 들어올 수 있지만, 그 누구도 사장님이 아는 것을 대신할 수는 없어요.” 벤은 그간 줄스가 회사에 쏟은 열정과 사랑을 알았기에, 그녀가 다시금 나아갈 수 있도록 힘을 북돋는다. 벤이 다시 찾은 작업실에는 응원과 다정이 있다. “프로이트는 말했습니다. ‘사랑하고 일하라. 일하고 사랑하라. 그것이 인생이다.’” 사무실 안팎의 사랑을 구분하지 않는 벤. 그 지혜가 피어나는 이곳은 벤과 동료들의 작업실이다.
벤 스틸러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2013)
폐간을 앞둔 잡지사 ‘라이프’에서 일하는 월터의 사무실. 마지막 잡지 발행을 앞두고 필름을 살피는 그의 표정이 심상치 않다. 사진작가 숀이 보내온 필름에 표지용 사진이 없다. 구조조정을 앞둔 그의 타는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사라진 필름의 행방은 오리무중이다. 기댈 곳은 숀이 남긴 단서뿐. 연애 사이트 프로필에 있는 ‘경험’ 칸에 아무것도 적지 못할 만큼 월터는 단조로운 삶을 살아왔다. 그는 묵묵히 사진 작업을 해오던 작업실을 뒤로하고, 숀을 추적해 세계 곳곳으로 떠난다.
긴 여행에도 필름은 찾지 못했다. 그가 아끼던 사무실은 이미 사라졌고, 월터는 삶의 터전에서 해고당한다. 하지만 이대로 포기할 수는 없다. 가까이에서 찾은 단서로 다시 여행을 떠나는 월터. 그는 사라진 작업실을 넘어, ‘라이프’에서의 끝내지 못한 업무를 재개한다. 드넓게 펼쳐진 세상은 그의 새로운 일터다. 부딪히며 성장하는 미지의 공간이다. 늘 같은 일상 속에서 상상의 나래만 펼치던 평범한 직장인 월터는, 이제 네팔의 산들을 넘고 수염을 기른 탐험가다.
마침내 손에 넣은 사진에 담긴 건 라이프에서 일하던 월터의 모습이었다. 숀은 그에게 말해주고 싶었다. 삶의 아름다움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다고. 삶은 그 자체로 풍성하고 다채롭기에 그 의미에 더 가까이 다가가자고. 매일 몸담는 공간 속의 나 그리고 그 너머의 나는 있는 그대로 아름답다. 월터와 숀이 설원에서 가만히 지켜봤던 눈표범처럼. 라이프 건물 앞에서 현상할 필름을 들여다보던 보통날의 월터처럼.
글 차의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