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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 저널리스트 카시아 세인트 클레어
세상의 색이
우리에게 오기까지
카시아 세인트 클레어
세상의 모든 것이 저마다 이야기를 속삭이고 있다면, 카시아 세인트 클레어Kassia St Clair는 그중 색의 속삭임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이다. 그녀는 색에 관한 흥미로운 이야기를 담은 책 《컬러의 말》을 쓴 저자로, 런던을 베이스로 디자인 저널리스트이자 색 작가로 활동한다. 자신이 어떻게 색에 빠지게 되었는지, 그리고 우리 삶에 색이 어떻게 들어와 있는지에 대해 그녀와 두 번의 메일을 주고받았다.
Interview
디자인 저널리스트 카시아 세인트 클레어
“색에 관한 글을 쓰며 색에 대한 저의 인식도 바뀌었어요. 시계 초침이 똑딱거리는 걸 알아차리게 된 것과 같죠. 방에 있을 때, 일단 그 소리를 한 번 듣게 되면 절대 무시할 수 없어요. 색도 마찬가지예요. 이제는 여기저기에서 색에 관한 매우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눈에 띄어요.”
지금 작가님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풍경의 색깔이 궁금해요.
저는 런던에서 정원이 딸린 아파트에 살고 있어요. 정원 안쪽의 작은 창고에서 주로 글을 쓰죠. 한쪽 벽이 통유리로 되어 있어 무화과나무와 화초가 심어진 화분들을 볼 수 있어요. 반대쪽 벽은 전체가 책장이에요. 책상 앞에는 좋아하는 그림들과 친구, 가족에게 받은 카드를 붙여두었어요. 제가 좋아하는 감상적인Sentimental 것들이에요.
어머니가 플로리스트였다는 인터뷰를 봤어요. 색깔의 측면에서 어떤 꽃들이 기억에 남아 있나요?
어머니를 생각할 때 가장 강렬하게 떠오르는 꽃은 스노드롭Snowdrop이에요. 어릴 때 어머니가 집에서 스노드롭을 키우셨어요. 이 꽃은 하얀색이고 1월의 매우 추운 날에만 피어나죠. 그리고 밝은 노란색의 수선화도 생각나네요. 둘 다 어머니의 가게와는 아무 상관이 없지만, 매우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 있어요. 지금 제 정원은 보라색 꽃들로 가득해요. 남편이 식물을 살 때 그런 꽃들에 끌리는 모양이에요.
옥스퍼드에서 18세기 여성복식사를 공부하기도 하셨죠. 작가님 삶의 이런 요소들이 색에 관심을 갖는 데 어떤 영향을 주기도 했나요?
물론이죠. 여성복식사 연구는 저에게 아주 큰 영향을 줬어요. 저는 18세기 사람들이 입던 의복의 색깔에 대해 연구하는 걸 매우 좋아했죠. 당시에는 오늘날 우리가 멋지다고 생각할 만한 색들과는 사뭇 다른 색들을 선호했어요. 물론 색깔의 이름 역시 바뀌었죠.
색에 관한 글은 언제부터 쓰셨나요?
2012년부터 쓰기 시작했어요. 당시 《엘르 데코레이션Elle Decoration》에 색에 관한 칼럼 아이디어를 냈고, 그때부터 계속해서 칼럼을 쓰고 있어요.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작가님의 색에 대한 인식도 바뀌었는지 궁금해요.
확실히 바뀌었어요. 마치 시계 초침이 똑딱거리는 걸 알아차리게 되는 것과 같아요. 방에 있을 때, 일단 그 소리를 한 번 듣게 되면 절대 무시할 수 없죠. 색도 마찬가지예요. 이제는 여기저기에서 색에 관한 매우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눈에 띄어요. 신문이나 잡지에 색에 관한 글이 있으면, 친구나 제 책을 읽은 누군가가 제게 그것을 읽어보라고 보내줄 거예요.
《컬러의 말》을 쓰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저는 더 많은 사람과 색에 대한 저의 열정을 더욱 깊게 나누고 싶었어요. 오늘날 색깔은 너무나 당연하게 여겨져요. 하지만 색에 대해 연구해보지 않는다면 결코 가늠할 수 없는 완전한 역사를 색은 가지고 있죠. 또한 문화 와도 매우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어요. 특정한 시대, 특정한 장소에서 성장한 사람들은 그 밖의 다른 누군가와 공유할 수 없는 매우 독특한 관점으로 색을 바라보는 것 같아요. 같은 것을 보더라도요. 색의 그런 점은 정말 매력적이에요.
섹스 피스톨스, 네버 마인드 더 블록스, 1977
“1972년 크레욜라는 울트라 핑크와 핫 마젠타가 포함된 여덟 가지 형광색의 한정판을 출시했다. 모든 색깔은 불가시광선 아래서도 밝게 빛났다. 엄청나게 밝은 색의 거친 자신만만함은 부상하던 펑크 운동의 미학과 완벽히 어울렸다. 엄청나게 밝은 플루오레센트 핑크는 모히칸 헤어스타일이나 당시의 많은 고전 펑크 앨범의 글자에 쓰였다. 1977년에 제이미 리드가 디자인한 섹스 피스톨스의 앨범 ‘네버 마인드 더 블록스Never Mind the Bollocks’의 표지가 좋은 예다.”
– 《컬러의 말》, 플루오레센트 핑크 중에서
조반니 바티스타 살비 다 사소페라토, 기도하는 성모, 1640-1650, 캔버스에 유화, 58x73cm
“서양에서 울트라마린의 부상은 동정녀 마리아 덕분이었다. 1400년대부터 화가들이 자긍심과 신성함의 상징으로 울트라마린 망토나 가운을 입은 마리아를 그리는 비율이 높아졌다. 조반니 바티스타 살비 다 사소페라토는 ‘기도하는 성모(1640-1650)’에서 동정녀 마리아만큼이나 한밤중의 아름다움 같은 울트라마린에게 경의를 표하는 것 같다.”
– 《컬러의 말》, 울트라마린 중에서
100년 뒤 아보카도 그린에 대해서 읽은 이도 혼란스러울 것이다. 우툴두툴한 껍질의 어두운 색인가? 아니면 과육 바깥면의 클레이 그린인가? 그것도 아니면 씨 근처의 버터색인가? 하지만 오늘날의 사람들에게 아보카도 그린은 의미가 통하는 색이다. 세월이 흐르면서 색의 오차 범위도 커졌다. 그림이나 유물 등의 기록된 근거가 있더라도 만들어졌을 때와 전혀 다른 빛 환경에서 보는 경우가 잦다. 또한 많은 염료와 물감이 최근의 발명품이므로 변색 가능성도 있다. 따라서 색은 주관적인 문화의 창조물로 받아들여야 한다.
– 《컬러의 말》 중에서
책을 읽기 전에는 단지 미술사와 관련된 색 이야기일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훨씬 더 광범위한 이야기더라고요. 색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쓰임까지요. 책을 쓰는 과정이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정말 힘들었어요. 몇 가지 색은 정의하기가 매우 어려웠고요. 왜냐하면 짧은 기간 동안 유행했거나 사용된 색들은 많이 다루어지지 않았고, 다루어졌더라도 그에 대한 자료가 정확하지 않을 수 있거든요. 글을 쓴 사람이 오해했거나 혼동했을 수도 있고요. 상당한 연구가 필요했지만, 운이 좋게도 연구는 제가 무엇보다도 좋아하는 일이에요.
《컬러의 말》에는 75가지 색의 이야기가 있어요. 이 중에서 딱 하나만 소개해야 한다면, 작가님은 어떤 색을 선택하실지 궁금해요. 제가 정말 흥미롭게 읽은 부분은, 미라 가루로 물감을 만든 거나 우주 전체를 놓고 보면 우주가 일종의 베이지색이라고 한 코스믹 라테나 99.965퍼센트까지 빛을 흡수해 세상에서 가장 검은 물질이라고 불리는 반타블랙 이야기예요.
제 책을 접해보지 않은 분들에게는 주로 울트라마린에 대해 이야기해요. 수백 년 동안 예술가들이 사용해온 이 놀라운 블루 계통의 색상은 유럽 미술사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어요. 일반적으로 아프가니스탄의 광산에서 추출한 청금석(라피스 라줄리Lapis Lazuli, 라틴어로 ‘파란 돌’을 의미한다)으로 만들어지죠.
작가님은 책에서 색 각각의 비밀에 관해 이야기해요. 비밀을 파헤치면서 발견한, 색의 이야기를 구성하는 공통점이 있다면 뭔가요?
특별한 하나의 색을 찾기 위해 떠나는 여정이 책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테마예요. 사람들은 아름다운 색을 얻기 위해 막대한 돈을 지불하고 독성이 있는 화학물질과 상호작용하거나 먼 곳으로 길을 떠나기도 해요.
‘언어의 색, 언어가 색을 규정할까?’라는 글에서 언어와 색의 관계에 관해 쓰셨어요. 그리스 문학에서 발견된 엉망진창의 색깔 묘사를 예로 들며, 당시 그리스인들이 우리만큼 색에 흥미를 느끼지 못했을지도 모른다고 하셨죠.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가 색에 대해 말하는 방식은 색에 대한 사회적 관심의 증가를 반영한 걸까요?
우리는 색을 좋아한다고 생각하지만 우리가 다른 시대의 사람들보다 더 색을 좋아하는 건지는 잘 모르겠네요. 현재 우리에게 색은 희귀하거나 소중한 것이 아니에요. 옷 가게에 가면 상상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색깔의 티셔츠를 구매할 수 있고, 페인트 가게에서는 원하는 페인트를 찾을 수 있어요. 이런 면에서 매우 큰 결단력을 발휘해야만 하던 과거의 사람들과는 다르죠. 또한 우리는 너무 많은 색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기술적 역할을 맡은 사람들은 CMYK나 RGB 같은 코드를 사용해서 색깔을 말해요. 이런 방법이 정확도를 높일 수는 있겠지만, 무언가를 히아신스 블루나 제이드 그린으로 부르는 것과 같은 힘을 가지고 있지는 않을 거예요.
색과 관련해 여전히 존재하는 편견에 관해 얘기해볼게요. 대표적으로 핑크와 블루로 성을 구분하는 게 있어요.
핑크 대 블루는 매우 중요한 사안이에요. 나아지기는커녕 점점 더 나빠지는 것처럼 보여요. 어린 조카딸을 위해 옷이나 장난감을 살 때, 상품 대부분이 핑크죠. 남자아이들을 위한 선택지는 훨씬 더 다양해요. 역시나 블루가 주가 되긴 하지만요. 이상하죠. 전통적인 성 역할에 도전하는 게 전 세계적인 추세인데 말이에요.
요즘은 옷부터 자전거 헬멧, 요실금 패드까지 여성을 위한 제품이 남성이나 소년을 위한 것과 똑같은데도 더 비싸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2014년 11월 프랑스의 여성부 장관인 파스칼 부아스타르는 ‘핑크색이 사치의 색입니까?’라는 질문을 던졌다. 마트에서 핑크색 일회용 면도기가 1개에 1.93달러인 데 반해 파란색 일회용 면도기는 10개 들이에 1.85달러에 팔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을 이제는 ‘핑크 세금Pink Tax’라고 일컫는다.
– 《컬러의 말》 중에서
“누드가 색상이 아닌 색의 범위”라는 말도 인상적이었어요. 누드처럼 지금 다시 정의되어야 하는 색이 있을까요?
누드는 단지 피부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에 대한 하나의 이름이 아니라, 놀라운 범위라는 점에서 제게 매우 중요했어요. 이것과 비슷한지는 모르겠지만, 남성의 경우 비즈니스 상황에서 똑똑하고 진지하고 존경받을 만한 사람으로 여겨지는 색이 매우 한정적인 점이 아쉬워요. 주로 검은색과 다크 블루로 제한되죠. 이 카테고리에 더 많은 색이 포함된다면 정말 좋을 거예요.
‘누드’가 특정 피부색을 지칭하는 색깔의 이름이 아니라는 점을 주장해도 큰 무리는 없을 것이다. 진짜 문제는 색이나 단어 자체가 아니다. ‘누드’라는 단어 뒤에 도사리고 있는 자민족중심주의다. “‘누드’보다 피부색이 짙은 우리는 반창고부터 팬티스타킹, 브래지어에 이르기까지 얼마나 긴 세월 동안 우리가 색의 측면에서 배제되어왔는지 깨닫는다”고 스튜어트는 2010년에 쓴 바 있다.
– 《컬러의 말》 중에서
심플한 디자인, 흰색과 검은색 같은 무채색이 유행하는 현상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흑백 패키징과 디자인은 종종 ‘미니멀Minimal’, ‘세련미Tasteful’, ‘고가Expensive’, 또는 ‘독점Exclusive’의 의미로 사용돼요. 어떤 면에서는 맞아요.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색깔에 의존할 수 없다면 다른 디테일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죠. 하지만 안타깝다는 생각도 들어요. 특히 우리에게 더 많은 색이 필요하다고 느끼게 하는 도시들에서요.
혹시 색맹인 독자가 있었는지 궁금해요.
아니요. 하지만 상당히 흥미로운 공감각을 가진 독자들의 감상을 들은 적은 있어요. 읽어보면 알겠지만, 제 책은 역사에 관한 책이에요. 누구에게나 흥미로울 수 있죠. 하지만 책의 디자인 또한 매우 컬러풀하기 때문에, 색 구별에 어려움을 겪는 분들에게는 쉽지 않은 책일지도 몰라요.
《컬러의 말》을 다 읽고 나면 세상의 모든 색에 이름이 있을 것만 같아요. 이름을 붙여줄 색깔이 아직 남아 있나요?
아주 많이요! 어떤 것이든 색깔 참고 도서를 보면서 거기에 있는 모든 색깔에 이름을 붙여보세요. 금세 벽에 부딪힐 거예요. 물론 당신이 부르는 이름들은 다른 사람들이 사용하는 이름과 다를 수도 있어요. 저에게 흥미로웠던 연구 중 하나는 매니큐어 회사에서 신제품의 네이밍을 담당하는 팀과의 면담이었어요. 어떤 색상의 이름은 아주 쉽게 결정되지만, 이름을 정하는 데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경우도 있다고 하더군요. 같은 색을 보면서도 저마다 의견이 다르기 때문에요.
좋아하는 색깔이 매번 바뀐다고 들었어요. 요즘엔 어떤 색깔에 빠져 있나요?
맞아요. 늘 바뀌어요. 지금은 다크 그린과 페일 핑크예요. 그런데 최근에는 오렌지색도 좋더라고요. 오렌지는 지금까지 한 번도 좋아해본 적이 없는 색이에요.
저는 도시마다 고유한 색깔이 있다고 생각해요.
저도 도시들에서 각각이 지닌 독특한 팔레트를 자주 발견하곤 해요. 샌프란시스코의 집들은 그레이, 라이트 블루, 다크 블루, 화이트로 칠해져 있어요. 베로나는 소프트 오렌지와 요키 옐로로 가득하죠. 크로아티아의 두브로브니크는 블루, 화이트, 그리고 테라코타로 나누어져 있고요. 같은 장소를 방문하더라도 사람들이 매료되는 색깔은 분명 저마다 다를 거예요. 하지만 이런 색상 팔레트를 보고 그 도시의 이름을 떠올릴 수 있는지 지켜보는 일은 정말 재미있을 거예요.
한국에 와본 적이 있나요? 서울에서 어떤 색을 발견했을지 궁금해요.
한국에 가본 적은 없지만 기회가 된다면 꼭 방문하고 싶어요. 저는 항상 남편에게 도시마다 다른 색상 팔레트를 가지고 있으니 우리가 가본 곳들을 토대로 시리즈를 만들어야 한다고 얘기해요. 어쩌면 서울이 다음 목적지가 될 수도 있겠네요.
컬러의 말
카시아 세인트 클레어 | 윌북
《엘르 데코레이션》에서 정기적으로 연재하던 색깔에 관한 칼럼이 큰 사랑을 받아 책으로 출간되었다. 우리가 색을 어떻게 인식하는지에 대해서부터 시작해 하양, 노랑, 오렌지, 핑크, 빨강, 자주, 파랑, 초록, 갈색, 검정 계열의 익숙하고 낯선 75가지 색에 관한 매력적인 이야기를 담았다.
빈센트 반 고흐, 해바라기, 1888, 캔버스에 유화, 93x73cm
“화가와 미술 애호가들에게는 슬프게도, 크롬 옐로는 시간이 지나며 갈색으로 변하는 단점이 있다. 암스테르담에서 반 고흐의 그림을 수년간 연구한 학자들은 햇볕에 노출된 꽃잎의 크롬 옐로가 심각할 정도로 진하게 변색되었음을 밝혔다. 그래서 반 고흐의 해바라기는 실제 꽃이 그렇듯 시드는 것처럼 보인다.”
– 《컬러의 말》, 크롬 옐로 중에서
에디터 김혜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