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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없는 이야기
KTX를 타고 세 시간 남짓, 열차에서 내려 둘러본 사위가 크게 낯설지 않다. 부산이라고 해서 엄청나게 지방답다거나 단번에 사투리가 들려오는 건 아니었다. 그나마 이곳이 부산이라 짐작할 수 있던 건 거대한 역 위로 그려진 ‘부산역’이란 글자 덕분이었다. 우리 가족은 아빠를 따라 부산역 앞에 있는 렌터카 업체로 향했다. 어떤 차인지 묻지 않았지만 아마 적당한 금액에 우리 집 차량과 비슷한 형태의 그것이리라 짐작하면서.
“운전면허증이랑 예약증 보여 주세요.” 부산 사투리가 전혀 섞이지 않은 말투였다. 아빠는 지갑을 뒤적거리다 말고, 당황한 기색도 없이 말한다. “어? 면허증을 차에 두고 왔네.” 광명역에 주차되어 있을 우리 차를 말하는 거였다. 곧이어 엄마가 말한다. “응? 내 면허증은 조수석 서랍에 있는데?” 역시 광명역에 주차되어 있을 우리 차를 말하는 거였다. 부모님은 물끄러미 나를 쳐다본다. 나도 물론 운전을 할 줄 안다. 게다가 자신이 운전을 잘한다고 믿기까지 했다. 그럴 만도 했다. 성인이 되자마자 운전면허 학원에 등록했는데, 하필 궂은 날씨가 이어지던 때여서 꽤 불편한 환경에서 연수를 받아야 했다. 내가 차에 올라 가장 먼저 배운 건 시동 거는 법과 브레이크, 액셀러레이터 위치 그리고 와이퍼 조작법이었다. 교관은 시원한 날 연수를 시작한다면서 웃었다. 그런 날씨를 통과해 연수를 마쳤고 도로주행 시험 날이 밝았는데, 설상가상으로 눈이 내렸다. 살얼음이 얼락 말락 한 도로를 달려 시험에 합격했으니 이상한 자신감이 생길 만도 했다. 게다가 T자 주차 같은 고난도 코스가 포함돼 있던 시절이었고, 쓸데없이 운전면허 필기시험을 만점 받아버린 것도 이상한 자부심에 큰 역할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건 운전면허증과 아무 연관이 없었다. “나? 면허증 안 들고 다니는데?” 왠지 웃음이 났다. 아무도 면허증을 가지고 있지 않다니.
렌터카 직원은 사무적인 눈으로 우리 가족을 바라보았다. 그때만 해도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운전면허쯤이야 주민등록증으로 조회되리라는 시스템을 향한 믿음에서였다. “주민등록증으로는 대체할 수 없는데요.” 여전히 사무적인 말투였지만 그 안에 걱정이 한 줌 담겨 있는 것처럼 느낀 건 왜였을까. 운전면허증도 없이 렌트하러 온 거냐는 듯한 나무람보다는 어쩌지 못해 같이 안타까워하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대단히 따듯한 말투는 아니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것이 부산 사람 특유의 다정함이 아니었을까 싶다. 방법이 없겠느냐 묻는 아빠에게 직원은 고개를 저었다. 우리는 하릴없이 예약을 취소하고 차 없이 렌터카 업체를 나섰다. 부산역은 30분 전 모습 그대로, 거대하고 견고한 자세로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때 우리 여행이 어땠더라? 우당탕탕 정신이 없었을 법도 한데, 이렇다 할 사건은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분명한 것은 렌터카를 수령하지 못했다고 해서 ‘망했다.’ 싶은 순간은 없었다는 것이다. 우리는 요령껏 짐을 포개 버스로 이곳저곳 옮겨 다녔고, 전철을 타고 꽤 먼 동네도 다녀왔다. 사람이 드나들지 않는 시골 마을에 갔다가 교통편이 없어 고생했고, 배까지 고파 곤란했지만 그때 잔뜩 예민해진 감정이야 풍족한 먹거리가 채워주었으니 좋게 기억하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문득 그날 이야기가 떠올라 며칠 전, 아빠에게 물었다. “그때, 우리 중 누구도 운전면허증 없던 거 기억해?” 아빠가 말한다. “다사다난한 목포 여행이었지.” 귀를 의심했다. “부산 아니야?” “목포에서 차를 못 빌려서 진도에 힘들게 갔잖아.” 그때 옆에서 엄마가 그런다. “무슨 소리야, 포항이었어. 울산까지 택시 탄 거 기억 안 나?” 렌트하지 못한 여행이 부산인 것도, 목포인 것도, 포항인 것도 같았지만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 “어쩜, 아무도 운전면허증을 안 가지고 갈 수가 있어?” 그 기억만큼은 확실했으니까.
“곰장어 먹을까? 회 먹을까? 일단 나가자, 코앞이 자갈치시장이야.” 친구들과 처음 해보는 여행이었다. 어른이 되고는 ‘진짜 친구’라 부를 만한 사람을 만들기 쉽지 않음에도 어찌어찌 만나게 된 소중한 인연이었다. 우리를 맺어준 건 음악이었다. 같은 음악을 한마음으로 좋아한다는 건 생각보다 훨씬 멋진 일이었다. 친구를 만들어 준다는 데서도 그랬다. 우리가 다 같이 부산에 간 건 친구 무리 중 두 명이 연이 닿아 결혼했고, 아이가 태어났기 때문이다. 음악 듣다 만난 친구들 사이에서 커플이 탄생하고 이내 가족이란 결실을 맺다니, 신기하고 반갑지 않을 수 없었다. 게다가 그 커플 결혼식에서 우리가 함께 좋아한 뮤지션이 축가를 부른 건 두고두고 즐거워할 만한 일이었다.
그런 이유로 우린 부산에서 1박을 함께하기로 했다. 에어비앤비에 누워 할 일을 떠올리다 곰장어 이야기 그리고 자갈치시장에 가자는 말이 나온 것이었다. 곰장어라니. 한 번도 먹어본 적 없고 실제로 본 적조차 없는 그것을 상상하며 우리는 자갈치시장으로 향했다. 시장은 사람으로 북적였다. 우리 집 앞에 있는 재래시장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재미있는 기분에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물떡’이라는 글자를 발견했다. “물떡이 뭐야?” 친구가 대답도 없이 내 팔을 잡고는 포장마차에 데리고 가더니 “이거.” 하고 답한다. 어묵이 꽂혀 있어야 할 꼬치에 가래떡이 꽂힌 채 숨죽여 선택을 기다리고 있었다. “뭐야? 당연히 맛있겠잖아!” 친구들은 회를 사기 위해 자갈치시장을 누볐고, 나는 사람 틈바구니에서 곰장어 손질하는 상인들을 눈여겨보았다. 시뻘건 속살을 드러낸 채 꿈틀거리는 것들을 매만지는 손길. 저게 곰장어라고? 산 채로 껍질을 벗기는 거란 말에 적잖이 놀란 나는 시선 둘 곳을 찾지 못하고 시장 끄트머리만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쳐다도 못 보는 나를 위해 친구들은 곰장어 대신 회와 과일, 튀김, 물떡과 씨앗호떡 같은 걸 먹자고 했다. 양손 가득 뭔가를 들고는 숙소로 돌아왔다. 그때만 해도 편식이 심했던 나는 회가 아닌 모든 것을 먹으며 그 밤을 보냈다. “회도 먹어봐.” 하는 친구들 말을 귓등으로 들으며 보낸 밤이었다.
생각보다 얌전하게 그 밤이 지났고, 우리는 아침부터 부산스럽게 움직여 부산의 아가를 만났다. 서로가 자신을 ‘고모’라 부르며 소개하기 바쁜 날이었다. 덤으로 반평생 부산에 살았던 친구 추천으로 놀라울 정도로 맛있는 돼지국밥을 먹은 날이기도 했다. 우리는 시간이 며칠 더 허락되면 좋겠다며 KTX에 올랐다. 좋은 기억은 그대로 봉인하고 집에 가서 쉬면 좋겠다고 생각하던 그때, 기다렸다는 듯이 화장실 전쟁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한 명은 아무 말도 없이 배를 부여잡고 화장실로 갔고, 또 누구는 얼굴이 새하얘진 채 얼른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 했다. 서울로 돌아가는 세 시간 동안 이어달리기를 하듯 친구들은 화장실을 들락거렸다. 그 이어달리기에서 배제된 건 어째서인지 나뿐이었다. 범인은 회가 분명했다. 친구들이 괴로움의 성토대회를 하며 사색이 될 때 얄궂게도 나는 우리가 먹은 것들을 하나씩 떠올렸다. 밀면, 물떡, 씨앗호떡, 돼지국밥…. 부산을 대표하는 먹거리는 아주 많았고, 내가 미처 다 먹고 오지 못한 것들을 떠올리며 부산에서 태어난 아가를 생각했다. 이렇게나 맛있는 것들을 먹고 자란다면 분명히 건강할 거라고 확신하며.
부산으로 인터뷰 가던 날이었다. 포토그래퍼 해란과 서울역 내 롯데리아 앞에서 만나기로 했고, 저렴하게 판매하는 커피를 한 잔씩 샀다. 부산에 간다는 것만으로도 왜인지 모르게 약간 긴장하고 설렌 우리는 조금은 달뜬 마음으로 열차에 올랐다. 그러나 2020년은 우리 여행에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았다. 코로나19 시대란 그런 것이었다. 시간을 쪼개 산 커피마저 자유롭게 마실 수 없었다. 김밥과 사이다, 과자와 우유를 먹던 시절이 너무 먼 일처럼 느껴졌다. 허기를 달래고자 이야기를 나누려 했지만 그마저도 쉽지 않았다. 비말이 퍼지지 않도록 식음과 대화가 철저히 단속되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숱한 금지에 순종적이고 싶지 않았다. 모처럼 여행 기분 나는 여정인데, 박지원처럼 필담이라도 나누고 싶은 심정이었다. 요령껏 휴대전화에 글자를 적어 보여주거나 간간이 작은 목소리로 대활 나누며 부산행을 이어나갔다. 평소보다 지치고 피로한 여정이었지만 나름대로 재미있고 신선했다.
우리는 부산을 종횡무진 누비고 다니는 다섯 살 아이, 지민이를 만나기 위해 이곳에 왔다. 산책과 부산 이야기를 지민네 가족과 나누고 싶다는 말에 흔쾌히 응해주어 찾은 곳이었다. 지민의 엄마 효량은 필담을 나누다 지친 우리에게 문을 활짝 열어주었고, 지민의 아빠 영훈은 기다렸다는 듯 향긋한 커피를 내려주기도 했다. 시간 들여 우리를 맞이해 주는 부부와 그림을 그리다 말고 블록을 만지러 계단을 오르던 아이를 보니 KTX에서 억눌린 자유가 이제야 봉인 해제되는 기분이었다.
정말 그랬다. 부산이라고 하면 흔히 떠올리는 해운대나 광안리가 아닌, 그러니까 바다 아닌 것들이 이 집 주변을 감싸고 있었다. 시야 아래로 펼쳐진 수영강변이나 눈높이 위로 펼쳐진 산들이 그랬다. 우리는 그 주변을 산책하기로 했다. 토끼 인형을 챙기고, 산책에 어울리는 옷을 직접 고르고, 작은 가방을 메고, 일회용 카메라까지 들고는 “렛츠 고!”를 외치던 지민이. 카메라를 거꾸로 쥐고 셔터를 누르는 것도, 바람이 많은 부산에 머리카락을 맡기고 눈 감은 채 생각하는 얼굴도 눈 속에 담고 싶어서 본분을 잊고 나는 연신 지민이만 쳐다보며 시간을 보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우리는 지민네 가족과 함께 부산역 앞 만둣집 ‘신발원’에 들렀다. 열차 안에서 뜨끈한 만두를 먹을 순 없었지만 집에 돌아가자마자 먹으면 딱 좋을 허기였다. 만두 맛을 상상하며 지민이네 가족에게 인사를 건네는데, 잠들었던 지민이 눈을 뜨곤 묻는다. “어디 가?” 울먹거리다 이내 울음이 터진 다섯 살 난 아이를 두고 가는 걸음이 퍽 무거웠지만 만두 봉투를 품에 꼭 안으며 약속했다. 이모가 반드시 다시 오겠다고. 피곤한 몸을 열차 간이 테이블에 누이며 부산엔 따듯한 것들이 참 많다고 생각했다. 그건 꼭 바다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글 이주연
일러스트 휘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