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없는 마을]

건강하신지요?

누군가의 호의, 귀여운 우연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곳으로 떠날 때의 설렘을 좋아한다. 걱정스럽거나 고민되는 것은 조금이라도 예측할 수 있을 때이고, 아무것도 모르는 곳으로의 이동이라면 마음을 지배하는 건 보통 설렘이다. 예컨대 잘 준비한 여행이 그러한데, ‘저는 여행자입니다.’ 패치가 장착되면 좀더 신이 나고 거침없어지는 면이 있다. 물론 약간의 걱정과 불안이 따라올 테지만 순수함과 예의를 잃지 않는다면 누군가의 호의나 귀여운 우연이 좋은 곳으로 안내해 주리라 믿는다. 한 권의 책을 기획하는 것도 비슷하다.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주제로 떠날 땐 마음이 설렌다. 조금 안다 싶은 부분에서 걱정과 고민이 피어나기도 하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쪽으로의 기획이라면 머릿속을 지배하는 건 설렘이다. 좀 어렵고 지난해도 순수함과 예의를 잃지 않는다면 누군가의 호의나 귀여운 우연이 좋은 기획에 보탬이 되리라고 믿는다.

내가 예술이라 생각한 것들을 떠올려 본다. 나는 예술을 대개 바닥이나 벽에서 찾는다. 대체로 작고 조용하고, 자칫 잘못하면 그냥 지나칠 것들이다. 내가 보는 바닥엔 계절 모르고 벌써 움틀 준비를 하는 새싹이나 아이의 것이었을 어떤 공작품에서 떨어진 눈알 같은 것들이 있다. 사람의 애씀으로는 흉내 낼 수 없는 식물의 생장, 우연히 떨어진 눈알 스티커가 만들어낸 바닥의 표정 같은 것을 연달아 마주하는 날엔 기분이 좋다. 아주 좋은 전시를 본 것 같은 강렬한 감동은 아니어도 잔잔히 퍼져오는 위로 같은 것이, 평균값 이상으로 마음을 맴돌곤 한다. 나는 그런 것들이 놓여 있는 이 주변이 모두 ‘예술가의 방’에 다름 아니라 생각했지만, 그걸 예술이라 꺼내 보이기 위해서는 좀더 단단한 이야기가 필요했다. 독자들에게 “땅만 보고 걸었고, 거기 귀여운 게 있었습니다.” 할 순 없는 노릇이니까.

마땅한 이야기가 떠오르지 않아 계속 골몰하며 걷던 나는 이번 호는 좀 어렵겠네, 하며 연건동의 한 가게로 들어섰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서 ‘여기엔 아름다운 게 참 많지.’ 생각했다. 선물하기 좋은 것들이 있는 곳, ‘Things We Love’의 약자 TWL을 사용하는 그곳을 나는 늘 선물가게라 불렀다. 따듯하고 잠잠한 환대를 받으며 숍으로 들어서 이것저것 만져보고 두리번거리던 나는 문득 깨달았다. 누군가의 설렘이 곳곳에 닿고, 누군가의 수고로움이 켜켜이 쌓여 있는 여기가 바로 예술가의 방이라는 것을.

《AROUND》 70호, 예술가의 방에 실린 ‘토토빌딩’ 기획은 그렇게 출발했다. 1층의 TWL shop에 모인 아름다움을 살펴보는 것을 시작으로 전 층에 근사함을 만들어내는 팀이 살고 있다는 걸 불현듯 깨달은 까닭이다. 내가 아는 숱한 아름다움을 만들어내는 그래픽 디자인 스튜디오가 토토빌딩에 옹기종기 모여 살았다. 그리고 그 기획의 인터뷰이 중 한 팀이었던 5층 햇빛스튜디오에게 예상치 못한 이야기를 듣게 된다. 아마 이것이 앞서 말한 ‘누군가의 호의이자 귀여운 우연’이었을 것이다.

“2층 관리실에 계시는 관리인 선생님 인터뷰 좀 해주시면 안 되나요? 여든 정도 되셨는데 대단한 분이거든요. 토토빌딩의 모든 안내를 손글씨로 써서 그림까지 그려서 붙여 두세요. 택배 맡아놨다고 말풍선을 그려서 안내문을 만드는데 그 그림이 얼마나 완벽한지…. 그분의 아이덴티티도 토토빌딩의 지분이에요. 아니, 그분은 특종이에요.”

층층이 피어난 꽃말

토토빌딩은 나보다 나이가 많다. 그러나 이 정도 견고함과 단단함이라면 내가 두 번쯤 환생하고도 이 자리에 남아 있을 것 같다. 자주 오가던 빌딩에 인터뷰어라는 이름표를 달고 들어선 어느 겨울날, 나는 풍채 좋은 중년 같은 빌딩 안에서 예상치 못한 귀여움을 곳곳에서 발견했다. 내가 바닥이나 벽에서 예술이랍시고 곧잘 길어 올리던 그것들과 맥을 같이 하는 모습이었다. 에이포 용지에 색연필로 그려진 그림, 그 안에 적힌 손글씨…. 눈길이 닿는 곳에 손수 그린 꽃이 한 송이씩 자리하고 있다. 그 꽃엔 눈도 있고, 입도 있다. 층층이 펼쳐진 꽃은 항상 뭉게뭉게 말풍선을 달고 있는데, 그 안에는 이러저러한 문장들이 큼직하게 적혀 있다.

“And So On. 신입사원으로 입사하시어 한 가족, 됨을 축하합니다.
잠시 잠깐 →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어느 층엔가 새로운 직원이 들어온 모양이다.

“그리하시구요. 떡국도 맛있게 드십시오. ^^ 감사합니다.”
이건 새해 근처에 붙여두셨나 보다.

비슷한 느낌의 안내문들이 여기저기 다른 내용으로 붙어 있었고, 제 역할을 다한, 지난 안내문들은 겹겹 쌓여 관리인실 앞에 놓여 있었다. 나는 살그머니 문을 두드렸다. 근사한 것들을 만들어내는 작가들이 모여 있는 빌딩, 그곳 2층 정면에 위치한 아늑한 방, 바로 이 안에 손글씨를 손수 적어두신 예술가가 계실 것이다. 문을 활짝 열며 인사를 건네는 관리인 선생님은 이미 모든 걸 알고 계셨다. 내가 누구인지, 오늘 내가 여기에 왜 왔는지, 우리가 어디에 몇 시쯤 주차했는지. “오늘 오신 손님이구먼. 식사는 했어? 좋은 일 해, 여기에 훌륭한 사람들이 많아요. 다들 좋으신 분이고.” 여든이 넘었다는 관리인 아저씨 목소리는 힘이 좋았고, 모든 음절에 웃음이 묻어 있어 듣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졌다. 인터뷰하는 동안 잔뜩 예민해졌던 세포들이 천천히 긴장을 푸는 게 느껴졌다. 고단한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올 때 기분 같았다. 무어라 칭하면 좋을까 잠시 고민하다 ‘선생님’ 성함을 여쭤보니 “이순신”이라신다. 그냥 그렇게 부르면 된다고 하신다. 이순신 선생님 이야기가 궁금하다고 하니 “나? 내가 뭘, 한 것도 없는데. 취미가 일인 사람이에요, 저는. 여기 공기처럼 있는 사람이야. 공기는 꼭 필요하지만 보이지 않아서 있는지 모르잖아요. 내가 그래요. 필요로 하기 전에 미리 다 준비하고, 필요한 게 있으면 바로 해주고, 나는 토토빌딩의 공기예요. 아유, 내가 말을 잘 못해가지고….” 물이 흘러가듯 이 얘기에서 저 얘기로, 본인 이야기를 한 자씩 풀어놓는다. 한 30분 정도 대화 나누었을까, 토토빌딩 바로 옆 ‘핫플레이스커피샵’에서 커피를 한 잔 사주시겠다고 한다. 나는 이 정성스러운 예술가가 좋았다. 나를 기쁘게 하는 예술가였다. 이순신 선생님 이야기가 궁금해 어린아이처럼 ‘핫플레이스커피샵’에 따라나서고 싶었지만 나는 어른이었다. 내 옆엔 스태프가 함께였고, 마감이 얽혀 당장 시간 내기가 어려운 통에 다음에 꼭 뵈러 오겠다 인사를 나누고 헤어졌다. 오늘 나눈 이야기는 책에 싣기 전에 한 번 정리해서 보내드리겠다고 하니 “매거진 만드느라 고생이 많아.” 그러신다. 매거진이라는 말도, 잡지라는 장르도 생소하실까 싶어 책이라 풀어서 이야기한 게 조금 멋쩍어진다. 이순신 선생님은 마치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듯 본인의 메일 주소를 적어서 나에게 건네 주신다. 큼직하게 적힌 소문자와 흐르는 듯한 필체가 아름답다. 토토빌딩 곳곳을 장식하고 있는 그 손 글씨와 꼭 닮은 글자들이었다.

어떻게 지내시나요?

다음 날, 문자를 한 통 받았다. 띄어쓰기가 유난히 많은 문자였다. 

이 주연 선생 님, –소중하신 분들과 인연 잘간직하겠습니다. 따뜻하게 점심식사는 하셨는지요?-항상 안전운전 하시고 건강도 유의하시구요. –귀하신 부모님께 제일 기뻐하실 효도이지요. –두분께서 열심히 일하시는 모습 너무 보기줗습니다.언제 한번들리시면 바로옆 핫프레이스커피샵 안내해드리겠습니다.좋으신 오후되셔요. 감사합니다♣ –토토빌딩관리드림–

 

며칠 뒤, 토토빌딩에서 나눈 대화를 문서로 정리하여 메일을 보내드렸다. 혹시 잘 안 보이실까 싶어 폰트 크기를 잔뜩 키운 문서 파일이었다. 

이 주연 선생 님, 안녕하셔요? –종로토토관리인입니다. –잊고있었는데 약속 지켜주셔서 감사합니다. 구름사이의 밝은 햇살이 반가웠던 그런 느낌이네요.칭찬 몸 둘곳이없습니다. –오실기회 있으시면 꼭들려주셔요. 좋으신 하루되십시오.다시한번 감사드립니다. –감사합니다.♣

 

그렇게 몇 번 메시지를 주고받다가 두어 번 답장을 보내지 못했다. 한창 일할 시간에 도착하는 메시지는 놓치기 일쑤였고, 잠잘 시간대에 확인한 메시지엔 답장하기가 어려웠다. 모든 메시지에는 내 건강을 챙기는 한마디가 들어 있었다. 그리고 어느날 이런 메시지가 도착했다.

이주연 선생님, 안녕하셔요? 아직 업무중 이신가요? –시간 내셔서 메일 한번 열어보셔요 꽃 몇송이 보내^~^드립니다 항상 건강유의하셔요. –감사합니다♣

 

업무용 메일함에 한 통의 메일이 도착해 있다. 첫 문장은 ‘아직도 철이 들지않은 할아버지 입니다.’였다. 메시지보다 훨씬 정갈하게 정리된 문장과 엄청나게 많은 꽃 사진이 본문에 첨부되어 있었다. 꽃 아래는 난생처음 보는 꽃 이름들이 적혀 있다. 말나리꽃, 꿩의비름, 아부틸론 꽃, 3000년에 1번 핀다는 우담바라꽃, 개불알꽃, 개갓냉이꽃, 백두산 분홍할미꽃…. 

그 뒤로도 선생님은 문자 메시지와 메일을 종종 보내주셨다. “이 주연 편집자 님, 오늘도 귀하시고 포근하신 엄머님 품으로 돌아 오셨어요?” 저녁 시간대면 내가 집에 무사히 돌아왔는지 물으며 첫 문장을 열었고, 점심 즈음이면 나의 끼니를 걱정해 주셨다. 비가 내리는 날엔 “지금도 구름지난 높은 하늘에는태양이 매달려 있겠지요?”하고 날씨 이야기까지 시처럼 건네주시던 이순신 선생님. 어느 날엔 힘든 일이 있었다면서, 빌딩의 누수 문제를 해결한 과정을 문서 파일로 첨부해 메일을 보내주신 일도 있다. 마지막 메시지가 언제였나 얼어보니 2020년이다. ‘쉬고 싶은데 실현이 안 된다’고, 평소와 다르게 힘듦을 토로한 선생님은 이 메시지 역시 커피 한 잔 사겠다는 문장으로 맺는다. 오랜만에 한 자 한 자 적어 메시지를 보냈다. 

“안녕하세요, 이순신 선생님! 재작년 즈음 만났던 어라운드 주연입니다. 요즘 어떻게 지내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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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주연

일러스트 휘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