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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의 기억들
어린 시절엔 운이 좋았다. 살아온 동네를 생각하면 정말 그렇다. 내가 살던 동네엔 좋은 어른이 많았다. 그때 만난 나쁜 사람이라곤 “주머니에 있는 거 나 줘.” 하던 (“다 내놔.”가 아니었다.) 하굣길 날라리 언니밖에 없었다. 친구들이 체육복 사서 돈이 하나도 없다고 도리질 칠 때, 순순히 주머니에 있던 이백 원을, 긴요하게 필요한 일이 있겠거니 하면서 양손으로 내민 걸 생각하면 동네 사람들을 어지간히 믿고 의지했지 싶다.
어린 시절을 생각하면 대체로 여름이 떠오른다. 이웃과 어울리기 좋은 계절인 까닭일 테다. 미취학 아동이던 시절엔 동네 언니, 동생들이랑 친하게 지냈다. 어른들도 그런 것 같았다. 대단히 사교적이지 않은 우리 엄마도 지은이 아줌마, 나민이 아줌마, 효주네 엄마 등등 어떤 이는 아줌마로, 어떤 이는 엄마로 표현되는 여자 어른들과 종종 담소를 나눴다. 동네를 거니는 시간엔 꼭 이웃들과 마주쳤다. 아줌마 혹은 누구네 엄마들은 “이따 커피나 한잔해!”라는 말로 여자 어른들을 모았다. 굳이 시각을 정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어울리던 시절이었다. 누구든 얼굴만 알면 거리낌 없이 자리로 초대하던 여자 어른들은 친절하고 호쾌했다. 엄마를 쫓아 쭐레쭐레 따라가서 시원한 커피를 한 모금 마시는 건, 집에서 만들어 먹던 팥빙수에 버금가는 여름의 낙 중 하나였다. 우리 동네 여자 어른들은 여자아이들에게 뭐라도 하나 먹이고 싶어 하는 상냥한 사람들이었다. 언니, 동생들과 놀고 있으면 용케 찾아서는 감자를 삶아 흑설탕과 함께 건네주던 우리 엄마도 그런 어른 중 하나였다. 행여나 놀다 깨 먹을까 유리 대신 플라스틱 그릇을 챙겨 나오던 엄마. 딸과 여자아이들에게 먹이고 싶어 하던 상냥한 어른의 마음이 어린 나를 정답게 살찌웠다.
그 동네에서 보낸 숱한 날 중 지금껏 잊히지 않는 한 장면 역시 여름이었고, 동네였고, 어른들이 만들어준 것이었다. 혼자 아파트 단지를 거닐던 어느 낮, ‘사마귀알’이라 부르는 하얀 것이 덕지덕지 붙은 가지 앞에서 솔솔 부는 바람을 맞고 있는 여자 어른들이 보였다. “안녕하세요!” 인사하고 지나가는 나에게 맞인사를 해주던, 계단에 나란히 앉아 있던 어른들. 얼굴만 봐도 우리 아파트 사람인지 아닌지, 몇 동 사는 누구인지, 이름은 뭔지 아는 것이 당연했는데 그 어른들은 모두 어디에 사는지, 우리 아파트 사람이 맞는지 잘 모르겠는 얼굴들이었다. 그러나 정다운 말투만은 내 동네의 그것을 닮아 있었다. 이 어른들은 누구일까 생각하며 걸을 때 유난히 귀에 꽂히는 목소리가 있었다. 그다지 큰 목소리는 아니었는데, 바람을 타고 귓가로 날아와 크게 들렸던 걸까. “저 애는 항상 저렇게 발목을 다 덮는 양말을 신어. 한여름에도 양말 벗은 걸 본 적이 없어.”
그 순간 내 어떤 부분이 완성되었던 것 같다. ‘한여름에도 발목까지 오는 양말을 신는 여자아이.’ 어린 마음에도 나는 그 이미지가 좋았다. 원체 맨발로 다니는 걸 좋아하지 않지만, 그 이야기를 들은 후론 항상 ‘발목을 다 덮는 양말’만을 고집했다. 발목을 다 드러내는 캐릭터 발목 양말이 유행하던 중학생 시절에도 나는 발목을 넘어 종아리까지 닿는 양말만 골라 신었다. 안 신은 듯 발가락만 보호하는 덧신이 유행할 때도 발목 위로 올라오는 양말을 신고 구두를 신었다. 친구들은 하얀 양말과 검은 구두를 보고 ‘검정 고무신’이냐며 놀렸고, 멋 내보고자 산 샌들에 목이 긴 양말을 겹쳐 신으면 “그 패션 뭐냐.”며 웃었다. 그럼 나도 같이 웃었다. 나에게 발목 위로 올라오는 양말은 패션이 아니라 어린 날의 정다움이어서 웃지 않을 재간이 없었다. 운이 좋아 다정한 어른들과 지내온 덕에 만들어진 한여름의 이미지. 가끔 양말 신은 발을 내려다보면서 생각한다. 한여름 벤치에 앉아 홀짝홀짝 받아먹던 냉커피 맛을, 실컷 뛰어놀고 계단에 앉아 주섬주섬 까먹던 포슬포슬한 감자 맛을. 양말에서 맛을 떠올리는 건 좀 우스운가 하면서 오늘도 나는 목 높은 양말을 쫙 끌어 올려 신는다.
밥을 먹고 나면 마법 같은 일이 벌어진다. 내 주변, 내 옷엔 꼭 멋진 그림이 한 폭 그려져 있다. 수십 년간 겪어오며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내 곁엔 어쩌면 음식으로 그림을 그리는 아티스트 귀신이 있는지도 모른다는 걸. 앞접시를 받치고 각별히 조심하며 먹어도, 앞치마를 두르고 신경 쓰며 먹어도, 홈웨어를 입고 널브러져 재빨리 먹어도 이 아티스트는 용케 그림을 그린다. 김치찌개를 먹은 날엔 붉은 노을을, 튀김을 먹은 날엔 노오란 별을, 물만 마신 날엔 얼룩덜룩 지도를….
언제, 어디서, 누구와 뭘 먹어도 신기할 정도로 여기저기 뭔가 묻고, 쏟고, 엎어 작품이 생긴다. 기묘한 일이다. 나와 밥을 자주 먹는 사람들은 여러 가설을 내놓는다. 혹자는 내가 젓가락질을 이상하게 해서 그런 거라고 했다. 젓가락질이 잘못돼서 뚝뚝 떨어뜨리는 거라고. 말한 대로 내 젓가락질이 정석은 아니다. 교과서에서 가르치는 정석이 셋째 손가락 끝으로 젓가락을 지지하는 모양이라면 나는 셋째 손가락 중간으로 젓가락을 받친다. 한눈에 보면 이상한지 모르는데 유심히 보면 묘하게 다른 그런 모양새다. 그렇지만 나는 이 젓가락질로 미끄러운 콩도 잡고, 좁쌀도, 잣도 잘 잡는다. 쌀알 옮기기를 할 땐 1등도 했다. 그렇게까지 허술하지 않고 오히려 세밀한 편에 속한다. 결정적으로 이 논리의 맹점은 포크나 숟가락으로 밥을 먹어도 떨어뜨린다는 데 있다. 포크질은, 숟가락질은 잘못하려야 할 수가 없는데. 포크로 먹을 땐 음식물이 살짝 찍혀 옷에 흔적을 남기며 바닥으로 굴러떨어진다. 콱 찍혔다 해도 한 입 베어 물면 남은 면적이 작은 탓인지 제대로 꽂히지 않아 흔적을 남기고 바닥으로 떨어진다. 파스타를 먹어도 돌돌 말다 소스가 옷깃에 다 튄다. 숟가락은… 국물을 오목한 부분에 담아 입으로 가져가는 게 다인데 턱으로 흐르고 옷에 묻고 다리에 떨어진다. 종종 양말과 신발도 엉망이 된다. 아….
어려서부터 그랬다. 자주, 아니 매번 뭘 흘리고 먹으니까 엄마는 “턱에 구멍이 나서” 그렇다고 했다. 젓가락질이 잘못되었다는 가설보다 훨씬 타당하다. 하지만… 턱에 구멍이 났기 때문이라면 손으로, 다리로, 어깨로 물컵과 텀블러를 넘어뜨려 기어이 문제를 만들고 마는 게 설명이 잘 안 된다. 팔꿈치에 대롱대롱 매달린, 다 말라버린 열무김치는 또 어찌 설명하랴. 음식으로 그림을 그리고 싶어 하는 아티스트 귀신이 붙어 다닌다는 편이 훨씬 설득력 있다.
음식을 묻히는 건 일상이어서 그다지 불편하진 않다. 원래 그렇게 살았고 지금도 그렇고 아마 앞으로도 그럴 테니까. 어느 순간 그러려니 하는 마음이 생겼다. 그래도 양심은 있어서 특별히 단정해야 하는 날엔 식사하지 않으려고 하는데, 어쩔 수 없는 날도 물론 있다. 한번은 아티스트가 아주 신이 난 날이 있었다. 미식의 도시, 부산에서였다. 설레는 마음으로 준비한 인터뷰를 제법 점잖게 마치고, 느긋하게 식사를 해보겠다고 기차 시간을 늦추고 노포에 들렀다. 수육과 국수만 파는 곳이었다. 맑은 음식이니 이 정도라면 조금 튀거나 묻어도 괜찮겠다 싶었다. 인터뷰도 마쳤겠다, 편안한 마음으로 수육을 한 점 집어 입에 넣는데 팔꿈치로 건드려 숟가락이 포물선을 그리며 떨어졌다. 별거 아니었다. 숟가락이 뒹굴며 점점이 뿌린 국물은 시간이 지나면 날아갈 터였다. 뭘 떨어뜨렸냐고, 다시 가져다주겠다는 식당 어머니께 “숟가락이요!” 외치며 식기를 주워 올려놓으려다가 뒤통수로 식탁을 세게 박았다. 어?…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파악할 새도 없이 김치 두 접시가 머리 위로 엎어졌다. 살짝 흔들린 게 아니라, 만화처럼 그릇째로 머리 위에 쏟아졌다. 시뻘건 배춧잎이 눈앞에서 흔들리는 것을 보면서 오늘 아티스트 귀신이 작정하고 신이 났네 싶었다. 돌아오는 KTX에서 세 시간가량 빨갛게 물든 작품을 어찌나 골똘히 감상했는지….
“시간 다 됐다! 5분 남았어!” 영화 상영 시각이 코앞이었다. 친구와의 만남이나 인터뷰 시각, 회의 일시는 딱딱 잘 지키는 편인데 이상하게 영화는 늘 지나치게 일찍 도착하거나 급박하게 상영관으로 이동하게 된다. 그날 우리가 찾은 영화관은 백화점 꼭대기 층에 있는 곳이었다. 하필 관이 나뉜 백화점이어서 본관에서 별관으로 이동해야 했고, 우리가 있는 곳에선 상영관까지 올라갈 수 있는 엘리베이터가 없었다. 영화관은 7층인데 엘리베이터는 5층까지밖에 없었고, 10층까지 가는 엘리베이터를 찾아도 영화관과 연결되어 있지 않아 바쁜 와중에 헤매야 했다. 여긴가? 저긴가? 에스컬레이터를 서너 개쯤 바꿔 타면서 마음만 자꾸 조급해졌다. 이번에 타려던 에스컬레이터도 우리를 목적지로 데려다줄 수 없는 것이어서 또 다른 에스컬레이터를 찾아 두리번거렸지만 애석하게도 나는 방향치였다. 이 에스컬레이터가 아까 탄 에스컬레이터인지, 저 엘리베이터가 실패한 엘리베이터인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왜 이렇게 다 비슷하게 생긴 거야? 백화점 조명도 한몫했다. 이렇게까지 새하얗고 밝은 조명이라면 어디를 봐도 어지럽고 어디를 봐도 지나치게 반짝거려서 시야를 혼란스럽게 했다.
없는 정신을 꽉 붙들고 두리번거리던 그때, 한 여성의 옆모습이 눈에 띄었다. 금세 시야에서 사라졌지만 마음에 남은 모습. 단정하게 자리 잡은 똑 자른 단발과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차림새가 잔상처럼 남았다. 그 바쁜 와중에도 다시 한번 보고 싶어서 바삐 고개를 돌렸지만 그 여자는 사라지고 없었다. 왠지 모르게 한 번 더 보고 싶은 모습이었다. 전생에 잃어버린 쌍둥이 같은 기분. 아주 잠깐의 강렬한 느낌도 시간에 쫓기며 바삐 움직이는 바람에 금세 잊게 되었다. 나는 친구와 손을 잡고 영화관으로 달렸다.
겨우 시각을 맞추어 자리에 앉았다. 어두운 상영관을 더듬거리며 관객들 사이를 헤집고 들어가 앉는 짓만은 하고 싶지 않았기에 (가방이 무겁고 부피가 커서 좁은 통로를 지나 앉는 게 고역일뿐더러 “죄송합니다.” 속삭이는 목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릴 걸 알기에 정말이지 싫었다.) 필사적으로 뛰어 자리에 앉은 건 안도할 만한 일이었다. 퍽 만족스러운 영화 전개와 결말에 기분 좋게 상영관을 나서면서 계속 영화에 관해 생각했다. 친구가 “영화 어땠어?” 묻기에 장면을 되감기하다가 문득, 아까 본 그 여자의 모습이 떠올랐다. 내가 좋아하는 단발머리, 칼같이 반듯하게 잘린 단발머리. 나 또한 늘 그것을 원해 긴 시간 머리 모양을 바꾸지 않고 그렇게 살아왔다.
그 여자의 옆모습이 또 이상할 만큼 머릿속에 꽉 찼다. 새카만 머리카락에 갓 뽑은 종이처럼 매끄럽게 펼쳐진 짧은 단발머리. 약간 좁은가… 싶은 어깨에 크게 아름답지도, 크게 못나지도 않은 그 가장 평범한 뒷모습이 영화 내용보다 먼저 떠오르는 덴 여러 이유가 있을 텐데 당최 모르겠다. 얼굴을 제대로 본 것도 아니고, 영화처럼 운명의 상대에게 첫눈에 반한 것도 아니고, 사실 1초도 채 안 되는 시간 동안 옆모습이 잠깐 스쳐 지나간 게 다인데 어떤 옷을 입었고, 어떤 가방을 들었는지까지 그려지는 사람이었다. 착각이겠지, 보지 않은 걸 보았다고 생각하는 거겠지, 사람 심리는 이상하지, 생각하면서 친구와 출구를 찾아 되돌아 걸었다.
영화관으로 향하는 엘리베이터가 어디에 있는지, 에스컬레이터는 어디에 있는지 헤매던 그 장소로 돌아왔을 때, 나는 다시 한번 그 여자를 만났다. 아까 보았을 때와 마찬가지로 거울에 잠깐 나타났다가 사라지려 하는 그 옆모습. 찰나의 시간에도 나는 저 여자가 아까 그 여자임을 알았다. 이번에야말로 제대로 보고야 말겠다며 고개를 돌렸을 때 나는 거울 속에 비친 여자의 모습을 보고 실소를 금치 못했다. ‘뭐야… 나잖아?’ 그 여자가 내가 좋아하는 머리 모양을 하고 있던 건 당연했다. 그 여자의 옷차림이 눈을 감고도 선연하게 그려지는 것도 당연했다. 그 여자의 푸짐한 백팩이 그대로 그려진 것도 당연했다. 그러니까, 내가 나를 그릴 수 있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글 이주연(산책방)
일러스트 휘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