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없는 마을

예쁜 옷을 입고 싶은 날

좋아하는 옷을 입는다는 건
설렘을 입는다는 거야.

가을이 오면

달콤한 바바리

“아빠, 나 오늘은 노란 옷 입을래.”
“바바리? 아직 안 돼. 그건 가을에 입는 거야.”
“가을이 언젠데?”
“네 생일.”

나는 그날 아빠에게 세 가지를 배웠다. 내가 좋아하는 노란 옷을 바바리라고 부른다는 것, 내 생일은 가을이라는 것, 바바리는 가을에 입는다는 것. 그때부터 나는 생일을 손꼽아 기다렸다. 생일엔 맛있는 것도 먹고, 선물도 받고, 친구도 친척도 잔뜩 만난다. 게다가 바바리도 입을 수 있다. 좋아하는 옷을 입으면 기분이 좋아진다는 걸 일찌감치 알았던 나는 매해 가을을 기다렸고 가을이 오면 생일을 손꼽았다. 내가 유독 좋아한 바바리는 안감은 분홍, 겉감은 노랑인 옷으로, 소매가 길어서 크게 접어야만 손이 보이는 옷이었다. 분홍색 안감이 겉으로 보일 수 있도록 일부러 그렇게 만들어진 것 같았다. 바바리엔 연두색, 분홍색, 빨간색, 보라색의 큼직한 동그라미가 묽은 색으로 그려져 있었다. 그건 빵집이나 유원지 같은 데서 볼 수 있는 알맹이가 큰 막대사탕이었는데, 그래서인지 바바리를 입을 때마다 기분이 달콤해졌다. 지금도 앨범을 들춰볼 때면 바바리를 입은 사진에 시선이 오래 머문다. “이 옷 다시 입고 싶어.” 되뇌면서 내가 그 옷을 얼마나 좋아했는지, 가을을 얼마나 기다렸는지 생각해 내고야 만다.

지금 내 나이 때 엄마는 속상한 일이 생길 때마다 지갑을 들고 밖으로 나갔다. 비딱해진 마음을 다스리고자 평소엔 살 법하지 않은 비싼 옷을 샀다. 엄마가 산 건 언제나 아이 옷이었다. 내가 앨범을 들춰보면서 “이 옷 예뻐.” 하는 옷의 8할은 그런 식으로 나에게 온 옷들이었다. 엄마는 쑥쑥 자라는 내게 늘 두어 치수 더 큰 옷을 사 입혔지만, 그런 날엔 딱 맞는 옷이어도 개의치 않고 골랐다. 조금 비싸다 싶어도 이 옷, 저 옷 비교해 가며 가장 멋진 걸로 골라 딸에게 입혔다. 그렇게 입게 된 옷들을 나는 유독 좋아했다.

지금 나는 그 시절 엄마와 비슷한 나이가 되었지만 여전히 엄마가 사 오는 옷들을 입는다. 우리는 옷 하나를 같이 입기도 하고 약속이라도 한 듯 같은 옷을 사 오는 일도 있다. 둘 다 가격이나 브랜드보다는 한눈에 들어오는 독특한 옷들을 좋아해서 빈티지 숍에 자주 간다. 남들과 같은 옷을 입느니 세상에 하나뿐인 디자인을 입자고 약속한다. 이왕이면 같이 입을 수 있는 옷을 고르고, 옷을 사기 전에 서로에게 꼭 한 번씩 묻는다. “이 옷 어때?” 그렇게 지금 내 옷장은 놀이동산처럼 재미있는 곳이 됐다. 체형을 따라 툭 떨어지는 옷보다는 퍼프소매거나 어깨 패드가 단단하게 있는 옷들, 목 부분이 훅 파진 옷보다는 단추로 꼭 잠글 수 있는 단정하고 각이 잡힌 옷들로 가득하다. 검정이나 감색처럼 조용한 옷보다는 꽃무늬나 물방울무늬처럼 소란스럽고, 한 번 보면 잊히지 않을 색깔로 흠뻑 물들어 있는 옷들. 그런 옷들이 빼곡한 옷장에서 좋아하는 옷을 꺼내 입을 때마다 어린 시절 바바리를 입던 날처럼 기분이 좋아진다. 좋아하는 옷을 입고는 신발장에서 “이 신발이 어울려, 저 신발이 어울려?” 하고 양발을 번갈아 내미는 순간은 어찌나 신이 나는지.

수묵화 틈새로

수채화 원피스

“부탁이 하나 있어요.”
“응, 뭔데요?”
“늘 입던 대로 입고 와줘요. 정장 같은 거 말고.”

아직 겨울 냄새가 남아 있는 계절이었다. 좋아하는 사람의 부름으로 우린 한자리에 모였다. 맛있는 음식을 배가 터지도록 먹었고 노곤해진 몸을 널브러뜨린 채 쉼을 즐겼다. 쉬는 게 좀 지루해질 무렵, 그녀는 우리 이름을 차례로 부르며 새하얀 봉투를 내밀었다. 그녀는 곧 신부가 될 예정이었다. 청첩장을 받는 일도, 하객이 되는 일도 좀처럼 없던 시절이라 나는 조금 설렜고 기분이 좋았다. 식에 앞서 주인공이 식사를 대접하고 청첩장을 건네는 게 통과의례라는 것도 전혀 모르던 시절이었다. 나는 청첩장을 받으며 몇 번이나 “우와!” 하고 감탄했다. 청첩장에 새겨진 글자들을 한 자 한 자 읽어가며 모든 글자가 멋스럽다고 생각했다. ‘신랑’과 ‘신부’라는 단어도, ‘남산’이란 명칭도 난생처음 보는 것처럼 생경하고 근사해 보였다. 그녀는 남산에서 야외 결혼식을 한다고 했다. 결혼식에 몇 번 가본 적도 없지만 야외 결혼식이라는 건 분명 다른 결혼식보다 근사할 것 같았다. 모임이 파한 그날 밤에도 진한 여운이 남아, 나는 침대 속에서 혼자 손뼉을 치며 기뻐했다.

그녀에겐 ‘둥그렇다’는 말이 잘 어울린다. 품이 넓고, 마음 씀씀이가 너그럽고, 천천한 사람. 둥근 선을 그리며 웃는 게 매력적인 사람. 모든 행동이 둥그렇게 보이는 그녀였지만 ‘부탁이 있다’는 말을 꺼낼 때만큼은 둥근 곡선이 곧아지는 게 보였다. 그만큼 다부지고 씩씩한 부탁이었다. 그녀의 부탁은 별거 없었다. 그저 ‘입던 대로만 입고 와달라’는 것뿐. 지금도 결혼식장에 간 경험은 얼마 없지만 그땐 더했기 때문에 ‘그게 무슨 부탁씩이나….’ 싶은 마음이 들었다. 

드디어 결혼식 날. 아침부터 마음이 달떠 옷장 앞에서 콧노래를 불렀다. 늦지 않으려고 일찌감치 일어나 좋아하는 원피스를 꺼내 입었다. 아주 오래전 일본에서 누군가 입었을 빈티지 원피스였고, 허리에 잠기는 금장 벨트가 멋진 옷이었다. 허리와 어깨는 개나리색이고 밑단으로 내려갈수록 옅어지는 노랑이 한 폭의 수채화 같은 원피스였다. 옷 전체에 작은 꽃이 수놓아진 게 마음에 꼭 드는 원피스. 정성스럽게 지퍼를 올리고 벨트를 잠근 뒤 초록색 가방과 꽃이 촘촘히 달린 머리띠까지 하고는 남산으로 향했다. 야외 결혼식장은 생각만큼 멋졌고 분위기도 근사했다. 하지만… 그곳에 나 같은 사람은 없었다. 함께 부탁을 받은 친구들도 무채색 재킷에 H라인 스커트, 하얀 블라우스 차림이었다. ‘무슨 옷을 입을까’ 고민한 사람은 오직 나뿐인 것 같았다. 나는 그저 그녀의 부탁을 마음 다해 들어주었을 뿐인데. 

그날의 둥그런 그녀는 내가 본 그녀 중 가장 아름다웠다. 하얀 드레스를 입은 그녀도 그랬지만, 식을 마치고 한복을 입은 그녀는 더욱 그랬다. 한 손으로 치마를 살짝 걷고는 버선발로 총총 뛰어오던 그녀. 활짝 웃으며 우리를 차례로 포옹하곤 이렇게 말하던 그녀. “내 부탁을 들어준 사람은 주연이밖에 없잖아?”

겹겹의 시간과

푸짐한 니트

“그 옷 좀 갖다 버려라.”

‘그 언니’는 항상 이런 식이었다. 내 머리, 옷, 신발, 심지어 눈썹 모양까지 무엇 하나 마음에 들어 하는 게 없었다. 나는 그 언니가 그렇게 말할 때마다 풀이 죽었다. 마음 한쪽에 ‘내가 좋아하는 옷인데….’ 같은 말을 쌓아두곤 했다. 그날 내가 입은 옷은 ‘루즈핏’이라기엔 지나치게 헐렁한, XXL 사이즈의 커다란 스웨터였다. 몸집이 큰 사람에겐 상의였겠지만 나에겐 종아리까지 내려와 큼직한 원피스가 되는 옷. 나는 그 스웨터를 좋아했다. 아주 무거운 만큼 아주 따뜻했고, 큼직했기 때문에 안쪽에 잔뜩 껴입어도 둔해 보이지 않았다. 작은 몸에 큰 옷이 아이러니하게 잘 어울린다고 생각해서 아껴 입던 옷이었다.

그 언니는 항상 고가의 옷만 입었다. 티셔츠 한 장에도 ‘0’이 몇 개씩이나 붙은 그런 옷이었다. 백화점 VVIP만 출입할 수 있는 라운지를 그 언니는 동네 빵집 가듯 드나들었고 일주일에 한 번쯤은 명품 매장에 가서 신상품을 예약하곤 했다. 그 언니로 인해 나는 있는지도 몰랐던 세상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그런 세상이 부럽지는 않았다. 나에게 옷이란 ‘내가 좋아하는 것’이어야 했기에 가격이나 브랜드 같은 건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한 철만 입고 버려야 할 정도로 잘못 만들어진 옷이어도 나에게 좋으면 그걸로 만족했다. 하지만 그 언닌 달랐다. 내 물건에 언제나 관심이 많았다. 내가 입고 온 옷이나 신발, 가방의 상표를 알고 싶어 했다. 그리고 언제나 내 옷들은 그 언니를 실망시켰다. 나는 그 언니가 내 옷을 바라볼 때마다 부담스러웠다. 비싼 옷을 입지 않아서가 아니라, 내가 아름답다고 생각한 옷들을 엄지와 검지로 간신히 들어서 “이게 뭐냐.”며 멀찍이 내려놓았기 때문이다. 그 언니가 내 커다란 스웨터를 “갖다 버리”라고 한 뒤로 나는 그 옷을 입지 못했다. 그 언니를 만나지 않게 된 이후에도 쉽게 입을 수가 없었다. 그 스웨터는 세상에 있어 본 적 없는 옷처럼, 옷장에 처박혀 시간을 먹어갈 뿐이었다.

내 옷장은 여전히 놀이동산 같다. 백설공주 드레스처럼 어깨가 봉긋한 원피스로 가득하고 슈퍼마리오 옷처럼 큼직한 멜빵바지도 신나게 걸려 있다. 일이 많거나 스트레스받을 게 분명한 날이면 나는 옷을 고르는 데 특히 시간을 들인다. 좋아하는 옷을 입을 때의 설렘이 힘듦을 상쇄해 줄 거란 믿음에서다. 나는 좋아하는 옷을 꺼내 입는 순간에 대해서라면, 그 완벽에 가까운 기쁨이라면 밤을 새워 이야기할 수도 있다. 좋아하는 옷이 주는 설렘을 진하게 깨달은 어떤 날, 나는 커다란 스웨터를 이제 그만 꺼내주기로 했다. 여전히 나에겐 지나치게 크고 안에 스웨터를 두 개는 더 껴입을 수 있을 정도로 푸짐한 옷이지만 나는 이 옷이 좋다. 선택받지 못한 물건은 밉살스럽게 닳는다. 제아무리 아끼는 옷일지라도 옷장에 틀어박혀 있으면 퀴퀴한 냄새로 잠식된 짐짝일 뿐이다. 나는 오늘도 좋아하는 옷을 입는다. 좋아하는 옷들은 나에게 선택받을 권리가 있고, 나는 언제든 좋아하는 옷을 입을 준비가 되어 있다.

기사 제목은 동명의 곡인 몬구의 ‘예쁜 옷을 입고 싶은 날’에서 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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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주연

일러스트 휘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