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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차의 설렘
어린 시절, 가끔 아빠가 “이따가 보자!” 하고 약속하며 출근하는 날이 있었다. 그런 날이면 한낮을 지날 즈음 집으로 전화가 온다. “15분 뒤에, 지나간다!” 나는 항상 전철역 주변에 살았다. 언제나 1호선 역이었고, 그것은 아빠 출퇴근을 위한 주거 조건이었다. 아빠는 40년 넘게 한 직장에 다녔다. 1호선 전동차 기관사, 그것이 아빠의 직업이었다. 나는 아빠가 곧 지나간다고 전화를 해오면 부랴부랴 옷을 입고 역으로 달렸다. 나는 대체로 엄마랑 떨어지지 않으려 하는, 엄마가 집 앞 슈퍼마켓에도 쉽게 갈 수 없게 하는 응석쟁이 딸이었는데, 아빠가 지나간다고 연락해 오는 때만은 달랐다. 전화를 끊자마자 신발장으로 달려가 조그마한 신발을 꿰어 신고 힘차게 외친다. “다녀오겠습니다!” 엄마는 어딘가 뿌듯한 얼굴로 나를 보며 손을 흔든다. 발바닥에서 뜨끈한 기운이 차오르는 기분이다.
어릴 때부터 달리기엔 자신이 있었다. 신발 끈만 발등이 터지도록 꽉 묶으면 1등은 떼놓은 당상이라 믿었다. 아빠에게 전화가 오는 날이면 나는 신발 끈을 촘촘하게 묶고 역으로 달렸다. 에스컬레이터도 없는 역 계단을 짧은 다리로 야무지게 올랐다. 단숨에 다 올라도 힘들다거나 숨이 차지 않았다. 어린애만이 가질 수 있는 씩씩함이라는 기개였다. 아빠를 만나러 달려가던 그 시절엔 교통카드라든지 태그 같은 개념이 없었다. 모든 게 사람의 일이었다. 매표소에 앉아 있는 역무원에게 “어린이 표 한 장이요!” 하고 외치면서 돈을 내밀면, 역무원은 자그마한 매표소 구멍으로 마그네틱이 있는 전철표 한 장을 거스름돈과 함께 건넸다. 가끔 이런 말을 듣기도 했다. “꼬마 아가씨는 ‘어린이 표’라고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 전철역에 있는 역무원들이 모두 친구 같았다. 어린애가 혼자 전철표를 끊고 플랫폼으로 내려가는 게 심상해 보이지 않았으리라. 나는 플랫폼에 도착하면 탑승구 가장 첫머리로 바지런히 달렸다. 잠깐 전철표를 사는 시간이 아니면 쉬지 않고 달렸던 것 같다. 전철역에 에스컬레이터도 없던 시절이니 스크린도어나 몇 역 전에 전철이 있는지 표시해 주는 전광판 같은 건 당연히 없었다. 나는 시계를 보며 전철을 기다렸다. 약속한 ‘15분 후’가 되면 익숙한 안내 방송이 들려오고 쿠궁, 쿠궁, 전동차가 움직이는 소리가 들린다. 전철은 정확하게 탑승구에 딱 맞추어 서고 (알고 있는가, 타는 곳과 40센티미터만 떨어져도 문은 열리지 않는다는 걸. 세상 모든 기관사의 섬세함을.) 나는 가장 첫 번째 문으로 들어간다. 그러면 아빠는 떠나기까지 단 2분 정도 걸리는 시간 내에 마법의 문을 열고 나를 기관사실에 들여보내 주었다. 나는 아빠 옆에서 얌전히 전철 바깥을 바라보곤 했다. 승객들이 보는 양옆 창이 아닌, 기관사실 정면 창으로 지나는 풍경을 보는 경험은 놀이 기구를 타는 것처럼 매번 신났다.
어른이 되면서 차차 그런 기억은 옅어져 갔다. 나도 이젠 한낮에 일을 하는 어른이 됐고, 아빠도 집 앞 역을 지나간다고 딸을 무작정 부를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러나 아빠와 나는 계속 1호선에서 만났다. 귀여움을 빙자해 기관사석에 덥석 오를 수 있는 자격을 이제는 상실했지만 운전석에 있는 아빠와 인사하는 건 자격 없이도 가능한 일이었다. 부녀의 만남은 의도적일 때도 있고 우연일 때도 있었다. 여전히 출근 시간 즈음 아빠에게 “혹시 지금 역?” 하고 연락이 온다. 딸의 출퇴근 시간대를 대강 알고 있는 아빠의 부름이 정말 플랫폼에 있는 딸에게 닿을 때가 있다. 그런 날은 운이 좋은 날이다. 빠른 속도로 달려오는 1호선을 지그시 바라보며 아빠 얼굴을 확인하고 손을 흔드는 건 아주 기쁜 일이니까. 한번은 ‘지옥철’이라는 단어가 걸맞은 출근 인파로 가득한 아빠 열차에 오른 적이 있다. 환승역에 정차하는 시간 단 2분. 내리자마자 운전석으로 가겠다는 말에 2분 안에 맨 앞까지 달려올 순 없다고 아빠가 만류한다. 사람도 많고, 미리 열차 내에서 움직일 수도 없으니 불가능하다고 했다. 하지만 아빠 딸은 달리기가 빨랐다. 어른이 되어서도 빠를 것이라고 근거 없이 확신했다. 문이 열린 순간, 나는 인파 사이를 요리조리 피해 출구가 아닌 열차 머리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수십 초 만에 도착한 그곳에서 나는 숨을 몰아쉬며 아빠를 본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유니폼, 가지런히 명찰을 달고 손 흔드는 남자를. 어느새 꽉 찬 지옥철 안의 사람들은 전철에 오를 생각도 않고 손 흔드는 여자의 모습을 멀거니 바라본다. 여자 얼굴은 기뻐 보인다. 무언가 해냈다는 표정이다.
일본 여행을 마음먹으면 가장 먼저 레일패스를 끊는다. 고속열차와 보통열차, 어느 쪽이든 구간 내에서 일정 기간 동안 무제한으로 탈 수 있는 여행자만의 특권이다. 일본 전철은 국철이었던 것이 민영화되면서 무척 복잡해졌다. 한국은 한국철도공사Korail가 고속열차, 간선열차, 광역전철 등을 모두 관할하지만, 일본은 한국철도공사와 같은 일본국유철도가 민영화되면서 ‘JR그룹’이라는 명칭이 생겼다. 민영화로 분할된 회사들을 합쳐 부르는 명칭인데, 노선마다 담당하는 회사가 다르기 때문에 노선도나 예매, 탑승 등이 한국에 비해 복잡해 보인다. 그래서 재미있는 점도 있다. JR의 승차권 용지를 잘 들여다보면 각기 다른 문자가 적혀 있다. 발행하는 회사마다 다른 글자를 담기 때문인데, JR 홋카이도는 北, JR 동일본은 E, JR 서일본은 W, JR 규슈는 K, JR 도카이는 C, JR 시코쿠는 S와 같은 식이다. 열차 모양과 색깔이 다양하고, 기관사복이 다른 점도 쏠쏠한 재미다. 작은 역에서는 아직도 직접 승차권을 확인하고, 탑승한 역에서 역무원이 도장을 찍어주고 펀치로 탑승을 확인한다. 다채로운 JR의 면면이 영향을 미치는지까지는 알 수 없으나 일본에는 ‘철덕’이라 불리는 철도 마니아들이 있다. 그네들 발끝에도 미치지 못하지만 아빠의 영향을 받아 나도 전철에 관심이 많다. 한번은 일본에서 살고 있는 친구가 갑자기 이런 메시지를 보내왔다. “이 드라마, 언니가 좋아할 것 같아요!”
〈철도 오타쿠 미치코, 2만 킬로鉄オタ道子、2万キロ>. 친구 메시지에 홀린 듯 1화부터 재생하기 시작했다. 주인공인 ‘미치코’는 10년 경력의 철도 오타쿠다. 주변에는 정체를 숨기고 휴무를 내고는 철도를 타고 일본 전국 지방 역을 여행한다. (극중에서 파트너를 만나기도 하지만) 혼자 여행하는 것을 좋아하며 시골 역을 돌아다니는 모습을 보며 나의 여행을 떠올린다. 물론 그녀만큼 열차에 해박한 것도 아니고, 노선과 열차의 과거부터 미래까지 꿰고 있는 것도 아니다. 나는 그저 열차를 좋아할 뿐 절대 오타쿠 범주에 들어갈 순 없을 거라고 드라마를 보며 몇 번이고 생각한다.
이 드라마는 매 화 하나의 역과 하나의 에피소드로 꾸려진다. 일본에서 유일하게 숙박할 수 있는 역이나 국철 시대부터 달리는 희소한 차량을 타는 일이나 추위에 혹독한 홋카이도 열차만이 가진 설비 같은 것을 볼 수 있다. 드라마를 보는 내내 기차를 타고 일본 지방을 누비던 시간이 문득문득 떠올랐다. 그리고 잠시 잊었던 장면을 기억해 내고 기뻐졌다. 머릿속에 떠오른 장면은 이런 것이었다. 2인 좌석이 마주 보는 지방의 전철. 사람이 많지 않은 전철이었는데, 할머니 한 분과 대각선으로 마주 보고 앉게 되었다. 돋보기를 쓴 작은 할머니. 앉자마자 배낭을 무릎에 올리고는 손바닥만 한 책을 꺼내던 할머니. 세로 쓰기로 엮여 있는 책을 펼쳐 중간 자리부터 차근차근 손으로 짚어가며 읽으시던 할머니. 그날 나는 보통열차에 올라 여행하는 일이 얼마나 마음에 드는 일인지 다시 한번 실감했다. 빠르게 이 지역과 저 지역을 누비는 고속열차도 좋지만, 주변에 펼쳐진 들판이나 강물 같은 걸 보면서 작고 단정한, 책 읽는 할머니를 만나는 기쁨을 언제고 또 누리자고 생각했다.
2018년 9월, 오사카 간사이 공항이 폐쇄되었다. 태풍의 영향이었다. 매번 지방을 고집했기에 모처럼 돌아오는 길엔 오사카에서 하루 정도 시간을 보내볼까 큰맘을 먹은 여행이었다. 공항 안에는 사람들이 갇혔고 항공편도 모조리 취소되었다. 나는 일정대로 집에 돌아올 수 없었다. 그즈음 간사이 공항을 이용하기로 되어 있던 승객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주변 공항으로 흩어졌고 그 덕에 일본 전역 공항에 항공편이 없는 사태가 벌어졌다. 항공사와는 연락이 제대로 닿지 않았고, 2-3일 이후 겨우 닿은 연락에서 돌아온 건 지친 상담사의 한숨과 기계적인 음성이었다. “한국으로 가장 빠르게 돌아올 수 있는 항공편은 사흘 뒤 구마모토에서 출발하는 항공편입니다.” 구마모토? 내가 머물고 있던 다카마쓰에서 600킬로나 떨어진 곳이었다. 이동할 수 있는 방편은 고속열차, 신칸센뿐이었다. 그 당시 구입한 JR 패스로는 이동할 수 없는 구간인지라 직접 역으로 가 현장 발매를 할 수밖에 없었다. 비행기 티켓만큼 비용이 든 것도, 갑자기 여행이 사흘 늘어난 것도, 전혀 계획에 없던 구마모토로 향하는 것도 즐겁게 받아들일 수 있었지만, 문제는 생활이었다. 나보다 앞뒤로 오래 일본에 체류하기로 되어 있던 친구와 헤어지고 나서 벌어질 문제들이었다. 와이파이를 함께 사용하고자 기기를 한 대만 빌린 것, 일본 콘센트 규격에 맞는 멀티탭을 함께 이용하고 있던 것…. 나는 부랴부랴 로밍을 신청했고, 할인 잡화점을 찾아가 ‘돼지코(220볼트를 110볼트에 끼울 수 있게 도와주는 도구)’를 찾았다. 그 돼지코가 구마모토 호텔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새벽 5시에 문 연 할인 잡화점을 비 맞으며 찾아 헤맸다는 이야기도 짧게 요약해 둔다.
다사다난했지만 나는 무사히 구마모토로 가는 신칸센에 올랐다. 기차역에서 조마조마한 표정으로 나를 배웅하던 친구 얼굴이 지금도 생각난다. 우리가 헤어진 곳은 오카야마역. 구마모토역까지는 제아무리 고속열차라지만 2시간 30분의 시간이 필요했다. 친구는 지금이 기회라는 듯 에키벤을 사 가라고 권했다. 에키벤이라 함은 역에서 파는 도시락을 말하는데, 일본은 지역 특산물을 이용해 만드는 한정판 도시락이 꽤 화려하고, 일반 도시락도 당연하다는 듯 기차역마다 진열돼 있다. 판매 중인 에키벤이 무려 700여 종이 넘는다. 10년 전 집계이니 지금은 몇 개의 에키벤이 일본 전역을 여행하고 있을지…. 700종류라 함은 매일매일 하나씩 먹어도 1년 동안 전부를 먹어볼 수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철도 오타쿠 미치코, 2만 킬로>에서도 매 화 에키벤이 등장한다. 닛코, 기리후리코겐 돼지의 밀푀유 돈가스, 토치기 명물 박고지를 섞은 토치후쿠 에키벤, 후지산의 눈이 녹아 흐른 물을 재료로 사용한 오오이강 철도 맥주, 케이오백화점에서 매년 개최하는 에키벤 대회에서 50회 연속 1위를 차지한 에키벤, 미나미큐슈에서만 살 수 있는 새우밥…. 심상치 않은 에키벤의 면면을 볼 때마다 태풍으로 간사이 공항이 폐쇄되었던 그 여행에서 예기치 않게 먹게 된 복숭아 에키벤이 떠오른다. 내가 에키벤을 산 오카야마역은 ‘모모타로’ 설화와 굉장히 가까운 도시다. 강에서 빨래하던 할머니가 물줄기를 타고 내려오는 커다란 복숭아를 건졌고, 그 복숭아 안에서 아기가 나와 모모타로라는 이름이 되었다는 일본 설화. 나는 기차 시간을 20여 분 앞두고 에키벤을 고르는 데 골몰했다.
구성에 충실하고 맛있어 보이는 특선 에키벤을 고를 것이냐, 적당히 허기를 지울 간단한 주먹밥을 고를 것이냐, 도시 특색을 살린 복숭아 에키벤을 고를 것이냐 한참 고민한 그 여행에서 내가 고른 건 복숭아 쪽이었다. 한 시간쯤 기차를 타고 이동하다가 살그머니 열어본 분홍색 복숭아 케이스 안에는 고슬고슬한 밥과 노란 지단 고명, 바지락과 문어 초절임, 새우와 전갱이, 장어 한 토막, 도미구이 같은 것이 한데 올라가 있었다. 젓가락으로 한 입, 두 입, 먹으며 나는 이 여행이 오래 기억될 것임을 알았다. 기차에서만 누릴 수 있는 이런 기억이 나를 또 살게 하리란 걸 어쩐지 예감할 수 있었다. 살면서 몇 개의 에키벤을 먹어보게 될까 하고 생각하다 보면… 자꾸 건강하고 긴 삶을 꿈꾸게 된다.
글 이주연
일러스트 휘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