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없는 마을]

반려 존재

21센티 고양이 인형

조예은 작가가 <채널예스>에 쓴 귀여움에 관한 이야기를 읽다가 허벅지를 ‘탁!’ 때린 적이 있다. “귀여움에도 디테일한 취향이 있다. 인형을 좋아하지만 레이스와 리본은 싫을 수 있다.” 그렇다, 너무나 그렇다. 내 책상에 알록달록한 엽서와 피겨가 있고, 자그마한 인형을 여기저기 두고, 온 서랍을 스티커로 채워놓았다고 해서 모든 캐릭터를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니까 누군가 사은품으로 받은 캐릭터 부채를 무심코 나한테 건넨다고 해서 무조건 “귀여워!” 하는 것은 아니라는 의미다. “쟤는 귀여운 거 좋아하니까. 알록달록한 거 좋아하니까.”라는 섣부른 일반화로 나한테 온 물건이 엄청나게 많다. 귀엽지 않은 건 아니지만, 내 취향은 아닌 것들.

같은 맥락에서 나는 인형을 좋아하지만 모든 인형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인형은 모두 무해하고 귀엽다. 분명히 그렇다. 그러나 내 취향인 인형은 따로 있다. 매일 데리고 다니는 인형이라는 것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백여 개의 인형이 있어도 내 가방에 들어와 나랑 일거수일투족을 함께하는 인형, ‘반려 인형’은 아무 인형이어서는 안 된다. 반려 인형이라고 하는 것은 24시간 함께 다닌다는 데서 가족이나 친구보다 오래 같이 있는 존재이고, 그 누구보다 내 생활에 가깝다는 의미다. 가방에 달려 있는 인형은 때때로 다른 가방을 선택하면 나오지 못하는 처지가 되지만 반려 인형은 내가 직접 ‘데리고’ 나오기 때문에 선택받지 못할 걱정은 없다. 가방에 매다는 인형은 기분에 따라 바꿔 달 수 있지만 반려 인형은 그럴 수 없다. 가방에 매다는 인형은 언제든 바깥 구경을 하지만, 반려 인형은 대체로 가방 속이나 내 시야에 있다.

인형은 어린아이의 소유물이라는 인식이 있다. 왜? 어른도 인형을 좋아할 수 있다. 최근에야 키링이니 모루인형이니 하면서 뭔가를 대롱대롱 달고 다니는 어른도 많아졌지만, 불과 1-2년 전까지만 해도 인형을 가지고 다니면 ‘유치하다’는 의견이 많았다. “다 큰 애가….”라는 소리도 적지 않게 들었고, 친구들은 대부분 어떻게 반응해 줘야 할지 모르겠다는 얼굴로 말을 돌리곤 했다. 어린이마저 인형 가지고 다니는 어른을 이상하게 생각했다. 그러다 키덜트라는 말도 생기고, 14세 미만에게 팔지 않는 장난감도 생기면서 반려 인형이 있다는 사실을 조금 떳떳하게 말할 수 있게 됐다.

나에게는 오래전부터 반려 인형이 있었다. 여행은 물론이고 화장실까지 같이 다니는 그런 인형. 네 번쯤 바뀌었는데, 지금 내 반려 인형의 이름은 ‘노양이’다. 만화가이자 아동 작가인 바바 노보루의 명작 《11마리 고양이》 시리즈에 나오는 고양이 캐릭터로, 키는 21센티미터, 하늘색, 웃는 얼굴의 고양이 인형이다. 바바 ‘노’보루의 고양이 캐릭터여서 ‘노’양이라 이름 붙였다(고 하지만 사실 이 친구 이름이 노양이인 이유는 따로 있다). 기다란 곡선을 그리며 구부러진 눈, 그보다 더 완곡하게 구부러진 입. 눈도 둥글, 입도 둥글. 노양이는 항상 웃는다. 인형의 좋은 점은 그런 것이다. 내 기분이 기쁨의 회로를 누빌 때는 귀여운 표정으로 함께 웃어주고, 내 생각과 기분이 단조의 음울한 선율이어도 한결같이 웃어준다. 표정도, 색깔도, 크기도, 모양도 변하지 않은 채 그대로. 가끔 절대적으로 변함없는 것에게서 나는 위로 받는다. 인간 세계는 도무지 변하지 않는 게 없는 까닭에.

같은 글에 조예은 작가는 이렇게 썼다. “우리는 모두 귀여운 걸 좋아한다. 많은 이들이 일상을 견디게 하는 건 아주 사소한 즐거움이라고 말한다. (…) 귀여움은 강하다. 뒤늦게 당당해진 내 취향을 좀 더 끈질기게 이야기하고 싶다.” 이전에는 반려 인형을 드러내고 이야기하는 게 부끄러웠다. 다 큰 어른이 귀여운 척한다고 오해받는 것도 싫었고, 내가 부끄러워하는 것이 반려 인형에게 실례라고 생각되어 더 싫었다. 그런데 이제 나도 끈질기게 이야기하고 싶다. 반려 인형은 내게 있어 최고의 귀여움이고, 둘도 없는 가족이라고. 요즘은 가까운 이들이 나를 만나면 “노양이는?” 하고 먼저 묻는데, 그게 적잖이 좋다.

모자母子 고양이와 영감 고양이

“동물은 잘 모르지만 동물 좋아하는 친구들 보는 건 좋아.” 무지한 이야기를 순수하게 하며 살던 시절이 있었다. 동물을 조금도 이해하지 못한 채, 동물이란 생명체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채 무구한 표정으로 내뱉던 말들. 이제는 반려동물이 반려 인간보다 가까울 수 있다는 것을, 동물이 인간보다 나은 점이 많다는 것을 제법 알게 되었다. 나에게 그걸 알려준 건 2019년 1월부터 2023년 9월까지, 일터에서 매일같이 보아온 모자母子 고양이와 영감 고양이였다. 모자 고양이는 엄마와 아들답게 생김새가 제법 닮았다. 첫눈엔 그 둘이 몹시 헷갈렸지만 금세 기억하게 됐다. 조금 더 털색이 희끗하고 뽀얀 게 엄마, 털색이 갈색이고 눈이 동그란 쪽이 아들. 생김새보다도 하는 짓을 보면 금세 구분할 수 있었다. 엄마 고양이는 아름다운 만큼 시니컬했고, 아들 고양이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애교가 많았다. 모자 고양이와 영감 고양이를 처음 본 날, 어찌할 줄 모르던 나한테 아들 고양이는 쉴 새 없이 말을 걸어왔다. 갈 곳 잃은 내 손 사이로 제 머리를 들이밀며 존재를 알려왔다. 

나는 아들 고양이를 만져보기 전까지 동물과 접촉해 본 적이 없었다. 동물 털 알레르기가 있어 쉴 새 없이 기침하고 눈이 빨개지고 온몸이 간지러워지는 게 이유였지만, 어쩌면 인간이 아닌 존재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라 어색했던 이유가 훨씬 컸는지도 모른다. 엄마 고양이는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게 일상인 아들을 보는 둥 마는 둥 하면서 제 할 일을 했다. 사뿐사뿐 걸어 다닌다거나, 우아하게 잠을 잔다거나… 그저 자신의 삶에 충실했다. 이 모자 고양이 옆에는 항상 영감 고양이가 있었다. 딱 봐도 모자 고양이와 다른 종류로 보이는 영감은 털이 길고 귀가 뾰족했다. 아들 고양이처럼 흘러넘치는 애교가 있는 건 아닌데 사람을 감동하게 하는 성격이었다. 화장실에 가면 화장실 문 앞에 오도카니 서서 볼일 볼 때까지 기다려 주었고, 싱크대 앞에 서 있으면 다리를 긁으며 자기를 봐달라고 은근히 응석을 부렸다. (영감 덕에 스타킹과 바지가 다 뜯겨나갔다.)

모자 고양이와 영감 고양이는 가족처럼 보였다. 서로 대단히 살가운 사이는 아닌데 함께 있는 걸 보면 가족이구나, 싶었다. 매일 살을 부딪고 사는 세 마리 고양이를 보면서 꼭 혈연만이 가족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 같다. 인간 세계에선 부모보다 먼저 가는 자식은 불효자라 부르는데 동물의 세계에선 어떨까. 난 자리는 몰라도 빈자리는 안다고 들어, 아들 고양이가 먼저 생을 마감했단 소식을 듣고 동료들에게 엄마와 영감 고양이에게 아들 고양이 부재에 관해 잘 말해 달라고 신신당부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럴 필요가 없었을지도 모른다. 아주 일찍부터 서로의 상태와 문제에 관해, 생에 관해 알고 있었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든다. 내가 모르는 동물들의 소통법이란 게 분명히 있을 테고, 그 세계에서 나는 무지한 이방인일 따름이니까.

나는 세상에 뿌려진 숱한 사랑을, 그 모습과 종류를 제법 잘 아는 사람이라 생각했는데 어떤 사랑은 분명히 아들 고양이한테서 배웠다. 내 손바닥에 제 머리를 비비며 “이렇게 만져주면 돼.” 하고 알려준 작은 고양이. 나에게 처음 사랑을 가르쳐 준 사람이 부모님이라면, 나에게 처음 동물의 사랑법을 가르쳐 준 것은 아들 고양이였다. 나는 아들 고양이가 가르쳐 준 사랑 덕에 조금 더 많은 동물을 세심히 바라보게 됐다. 지나가는 동물에게 인사할 수 있게 된 것도 아들 고양이 덕이다. 아들 고양이 이름은 ‘아리’, 아리와 언제나 함께 지낸 엄마 고양이는 ‘하이’, 영감 고양이는 ‘빵이’. 가족이라는 글감을 핑계 삼아, 어떤 사랑을 세심하게 알려준 고양이 가족 이름을 불러보고 싶었다.

알록달록 하늘고추

지지난해 가을, 추석을 맞아 온 가족이 모여 우리 조상이 모두 묻혀 있는 납골묘에 갔다. 몇 해 전 세상을 뜬 할아버지와 그보다 일찍 하늘나라 동태를 살피러 간 작은아빠에게 인사를 올리고 안부를 물었다. 아빠가 쓴 한자를 띄엄띄엄 읽으면서 이런 건 위패에 왜 꽂는지 궁금해했다. 할아버지가 생전 좋아하던 술도 뿌려 드리고, 나보다 먼저 어른이 된 사촌 동생들과 작은아빠에게 조용히 속삭이듯 인사를 했다. “작은아빠, 나 왔는데!” (라고 하면서도 반말을 썼던가, 존댓말을 썼던가 약간 헷갈렸다.) 피크닉에 온 것처럼 잔디밭에 앉아 편한 마음으로 좋은 날씨 양껏 누리며 제사 음식을 먹었다. 

마침 근처에서 해바라기 축제가 열린다기에 ‘연천 호로고루’로 나들이를 갔다. 호로고루, 이름이 외국의 것처럼 낯설었다. 모처럼 할머니랑 하는 외출이었다. 할머니는 아흔 가까운 나이가 되었는데도 여전히 일주일에 한 번씩 프라이드치킨을 양손으로 들고 뜯고, 식사 때마다 맥주도 곧잘 드신다. 청력이 약해져 한 번에 말을 못 알아듣는 일이 많지만, 그 정도야 별거 아니다. 매일 건강하게 웃고, 잘 드시고, 드라이브 좋아하시는 모습을 보면 신경의 노화쯤은 괜찮지 않나 싶어진다. 그렇지만 너른 성곽과 공원을 걷는 데는 체력에 한계가 있었으므로 우리는 휠체어를 빌렸다. 할머니를 앉히고 밀어주다가, 할머니는 스스로 걷기도 했고, 아빠한테 업히기도 했다. 그 시간이 생각보다 무척 밝고 재미있었다. ‘온 가족’의 시간은 가끔 만들어지기에 이렇게나 단란하다.

그날 우리가 ‘고추’를 만난 건 늦은 점심을 해결한 식당 마당에서였다. 식사를 끝내고 커피 한 잔씩 들고 식당 앞마당에 섰는데 함빡 핀 색색의 열매가 눈에 띈다. ‘이게 뭐지?’ 엄마랑 하염없이 존재 알기에 몰두하는데 식당 사장님이 나오셔서 고추란다. 세상에 노랑, 분홍, 주황, 보라 고추가 어디 있담? 알록달록한 그것이 열댓 개 넘는 화분 속에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귀여워! 귀여워!” 감탄하는 소리를 듣고 식당 사장님 몇 개를 똑 떼어 건네주신다. “잘 말려서 씨앗을 심으면 열매를 볼 수 있을 거요.”

겨우내 잘 말려 씨를 얻었다. 열매 속에 자손이 될 씨앗을 품고 있다는 게 몹시 신기했다. 새해를 맞아 우리는 각자의 집에 고추씨를 고이 심었다. 연천에서 받아 온 귀여운 고추의 자손이 우리네 화분에도 피어날 터였다. 오종종한 생김새와 귀여운 색깔, 그것들이 베란다에 가득할 걸 생각하니 봄을 기다리는 마음이 자꾸 부풀었다. 시간이 지나자 거짓말처럼 싹이 텄다. 조금이지만 줄기가 자랐다. 열매는? 열매는 언제 자라지? 소식이 없다. 고모는 처음부터 자신이 없다고 할머니에게 씨앗을 맡겼고, 할머니는 텃밭에 심었지만 감감무소식이란다. 아이를 낳고 기르는 일이 쉽지 않은 만큼 아이를 만드는 일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고추 역시 마찬가지. 볕이 잘 드는 고층 아파트에서도, 자연에 가까운 할머니네 텃밭에서도 고추 보기에 실패했다. 그 이유를 아무도 알지 못했다. 아이가 생기지 않는 이유를 당사자는 대체로 알 수 없듯이. 새삼 가족이 되는 것에 관해 생각한다. 

나는 어떻게 엄마와 아빠의 자식이 되었을까, 고모는 어떻게 아빠의 동생이 되었을까, 할머니는 어떻게 아빠랑 고모랑 삼촌들을 낳았을까. 어쩌면 간절함의 문제였는지도 모른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오늘에야 알록달록 고추의 이름이 궁금해 검색한 끝에 ‘하늘고추’임을 알게 됐으니. 내 식구 소중한 만큼 고추의 식구를 귀히 다루어주지 않아서였을까, 이름도 제대로 모르면서 빨리 자라나라 소망한 것이 괘씸하다 싶었던 걸까. 올해 다시 한번 하늘고추 씨앗을 구할 수 있다면 마치 태교처럼 성심껏 이름을 불러주고 음악도 들려줘 볼 심산이다. 정성에 감복해 ‘옜다!’ 하고 열매를 맺어준다면 다시 한번 새하얀 할머니 머리에 알록달록한 하늘고추를 꽂아줘야지, 생각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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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주연(산책방)

일러스트 휘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