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없는 마을]

마을 운동회

일기의 시작

마을 운동회가 열렸다. 화창한 날이 지속되고, 마을에 자그마한 좋은 일이 자꾸 생기던 때였다. 운동회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는 마을 이야기를 먼저 해보아야겠다. 옆집 이 씨네 아이 이야기로 시작해 보는 게 좋겠다. 이 씨네 아이는 말이 느렸다. 배우는 속도가 느렸다기보다는 문장 하나를 발화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또래 아이가 “안녕하세요?”를 1초 남짓 들여 너끈히 발음하는 반면, 이 씨네 아이는 ‘아’와 ‘ㄴ’ 사이를 혀로 슬슬 만져보며 발음하는 애였고, ‘안’의 ‘ㄴ’과 ‘녕’의 ‘ㄴ’을 다르게 발음하기 위해 안녕의 의미를 곱씹어 보던 애였다. 그렇게 다섯 음절을 발음하는 데 무려 33초나 걸렸다. 아이는 결코 인지 능력이나 발달이 더딘 것은 아니었다. 소리 내서 읽지만 않으면 책 한 권을 읽는 속도가 웬만한 어른만큼 빠르고, 어려운 말도 곧잘 알아들었다. 유독 발음할 때만 속도가 더딘 것인데 그 누구도 영문을 몰랐다. 이 씨 아이가 다니는 유치원에서는 종종 전화가 왔다. 그때마다 이씨는 “빨리빨리 말할 수 있도록 속도에 신경 써주세요.”라는 말을 들어야 했다. 이 씨는 유치원에서 전화가 오는 게 버거웠다. 이 씨 또한 빠른 흐름을 좋아하는 사람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원장 선생님이 “이 속도로는 이 유치원을 다닐 수 없다.”고 못 박은 어느 날, 이 씨는 결심했다. 시간이 천천히 흐르는 동네로 이사 가야겠다고.

언제인가 기차 여행을 하다가 ‘양이’라는 도시를 본 적이 있다. 쉽게 들어갈 수 없는, 간이역의 흔적만 남은 그런 곳인데, 그곳은 시간이 유독 천천히 흐른다고 한다. 누구에게나 똑같이 주어진 시간이 그곳에서만 느리게 가는 것은 아닐 테지만 이 씨는 그 문구가 마음에 들었다. 언젠가는 여행을 가보자 생각하던 곳인데 별안간 그곳으로 이사를 하게 됐다. 이 마을이라면 아이가 안전하게 말할 수 있는 동네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는 양이로 이사 오고 나서도 똑같았다. 여전히 느리게 말했고, 음절과 음절 사이에서 한참을 골몰했다. 제 이름을 말할 때도 성과 이름 사이에 있는 공간을 충분히 살폈고, 이름 뜻을 헤아리면서 성실히 그 의미를 전하려고 했다. 예컨대, ‘주연’이라는 이름을 말한다면, ‘두루두루’의 뜻을 지닌 ‘주’를 발음할 땐 혀로 충분히 입 안을 훑고, 혀와 입천장과 혀 아래와 볼이 어떻게 굽어드는지, 어떤 모양으로 모이고 흩어지는지 탐색하면서 발음하는 식이었다. ‘예쁘다’는 의미의 ‘연’을 말할 땐 지금 가장 아름다운 모양은 무엇인지 돌아보고 가장 어여쁜 음성으로 발화하기 위해 목구멍을 훑었다. 그렇게 ‘주연’을 발음하는 시간은 때로는 12초 남짓, 때로는 52초까지도 걸렸다. 주변이 아름다울 때는 ‘예쁘다’는 의미의 ‘연’을 말하는 시간이 아주 조금 빨라졌고, 그렇지 않을 때는 한참을 망설였다. 우리 마을 사람들은 아이 이야기가 궁금했다. 저토록 느리게 발음하여 완성될 이야기가, 아이가 이토록 시간을 들여 하고 싶은 말이. 사람들은 아이의 말을 듣는 걸 즐겼다. 평범하게 들리던 자기 이름이 아이가 말할 땐 특별하게 들렸고, 그저 그렇던 풍경이 아이의 시선에선 사소한 것이 아니게 됐다.

아이와 말하기를 특히 즐긴 건 앞집 영감이었다. 늘 잘 다려진 낡은 티를 입고 근사한 색의 양말을 신는 노인이었다. 같은 면티를 입고 다닌 걸 10년도 넘게 본 것 같다. 영감은 새로 물건을 들이기보다는 가지고 있는 걸 오래 아끼는 편을 택했다. 구멍이 나면 생뚱맞은 색상의 실로 우스꽝스럽게 꿰맸는데, 그걸 잘 다려 입으면 마치 영감만을 위해 만들어진 옷처럼 멋있었다. 영감은 이 씨 아이의 이야기를 오래 들어주고 길게 웃어주는 사람이었다. 영감을 비롯한 우리 마을 사람들은 아이의 말이 끝나기 전까지는 다른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아이의 말을 끊고 싶지 않은 까닭이다. 아이는 말하는 걸 조금 더 좋아하게 된 것처럼 보였다. 양이로 이사 오고 난 뒤 아이의 가장 큰 변화는 작아서 잘 들리지 않던 목소리가 조금씩 커지고, 발음이 단단하고 정확해졌다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 마을에 생긴 작지만 좋은 일 중 하나다.

일기의 중간

영감은 매일 아침 면티를 다리고, 구멍 난 곳이 없는지 살핀다고 한다. 어떤 티셔츠는 젊었을 적 자신이 만든 거라고 하는데, 그렇다면 50년도 더 된 티셔츠를 입고 다니는 셈이다. 영감은 양치를 하면서 스트레칭을 하고, 호두에 기름칠을 해서 두 알을 쥐어 한 손으로 굴리면서 산책을 나온다. 영감은 이 씨가 이사 온 이후, 그 아이 이야기 듣는 것이 가장 즐겁다고 한다. 영감이 가장 좋아하는 일은 마을 호수를 빙글빙글 산책하는 것인데, 그는 매일 네 시간 이상 걷기를 이어가면서 숨을 고르는 게 즐겁다고 했다. 처음 우리 마을로 왔을 땐 한 바퀴만 돌아도 가쁘던 숨이었는데 리듬을 새겨 산책을 하니 숨이 고르게 잦아들고 걸음도 편해졌다고 한다. 영감은 어느 날부터인가, 아이와 함께 마을을 산책하기 시작했다. 아이는 네 시간 동안 동네를 돌면서 끊임없이 말을 했지만 그 ʻ말’이라고 하는 것은 한 문장이거나 때로는 한 문장이 채 되지 않을 때도 있었다. 요즘은 영감과 아이 뒤를 점박이와 까만 고양이가 따라 걷는다. 우리 마을에 생긴 또 다른 좋은 일이다.

점박이는 양이에 오랫동안 살던 개다. 언제부터 여기 살았는지 잘 모르겠다. 까만 고양이는 어느 날, 이 씨네 가족처럼 갑자기 이 마을에 찾아왔다. 점박이는 이 마을만큼 까만 고양이가 좋았던 모양이다. 영감과 뒷집 양 씨는 고양이 밥그릇을 챙겨주곤 했는데, 그 밥그릇을 가장 먼저 빙빙 도는 건 늘 점박이였다. 점박이는 까만 고양이를 온종일 기다렸다. 그러다 담벼락 뒤로 고양이가 보이면 혀로 제 엉덩이와 턱을 침으로 함빡 닦았다. 꼬리를 360도 돌리면서, 누가 봐도 반가운 기세로 고양이한테 한달음에 달려갔다. 고양이 밥그릇을 살짝 밀어 까만 고양이가 밥을 편하게 먹도록 돕기도 했고, 때로는 입에 사료를 한 알 물고는 이것을 먹으라며 엉큼하게 굴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까만 고양이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것처럼, 점박이가 있는 곳엔 눈길조차 주지 않은 채 제 할 일만 했다. 마을 사람들은 까만 고양이가 혹시 정말로 눈이 안 보이는 건 아닐까 걱정했으나, 밥그릇을 들고 나타나는 양 씨를 향해 정확한 방향으로 걸어가는 걸 보면 시력에 문제는 없는 듯하다. 그러던 그 둘이 어째서 영감과 아이 뒤를 함께 걷게 되었는지는… 순전히 내 추측인데, 아마 점박이가 아이의 신발을 좋아했기 때문이지 싶다.

아이는 항상 새파란 운동화를 신고 다녔다. 우리 마을은 대체로 나뭇잎의 푸른색이나 꽃의 빨강, 주황, 분홍, 노란색이 즐비했고 호수 색도 에메랄드에 가까웠기에 새파란 색을 볼 일이 잘 없다. 물론 어떤 집엔 새파란 색 바가지가 있기도 했지만 점박이가 살림살이 색깔까지 꿰기는 어려운 노릇이었다. 점박이가 여느 때처럼 까만 고양이에게 어떻게 하면 눈길을 받을까 하며 배배 꼬인 스텝을 밟고 있을 때 아이가 우리 마을에 왔다. 점박이는 새까만 고양이 뒤로 겹쳐진 새파란 신발에 한눈에 반했다. ‘까망’에 겹친 ‘새파랑’이라니, 눈길이 가지 않을 재간이 없었겠지. 점박이는 매일, 까만 고양이에게로 갈 것인가 새파란 운동화를 쫓아갈 것인가 고민했다. 항상 까만 고양이가 나타나는 길목에만 어물쩍대던 점박이는 아이가 온 날부터는 반나절은 까만 고양이를 쫓아, 나머지 반나절은 아이를 쫓아 걸었다. 아이는 영감과 친해지면서 자연스럽게 산책을 많이 하게 됐고, 아이의 새파란 운동화를 쫓아 걷던 점박이도 자연스럽게 그렇게 됐다. 움직임이라곤 까만 고양이를 쫓아다니는 것밖에, 그마저도 몇 걸음 걷다 힘들어서 헉헉대던 녀석이 마을을 한 바퀴, 두 바퀴, 세 바퀴… 끝도 없이 걷게 된 것이다. 이 씩씩한 행진이 우리 마을에 생긴 작고 귀여운 좋은 일 중 하나다.

일기의 끝

영감과 아이와 점박이가 나란히 산책을 하면서부터 점박이에게 재미있는 일들이 생겼다. 먼저, 녀석의 털의 윤기가 달라졌다. 칙칙하고 푸석하던 털이 밤하늘 은하수처럼 반짝이고 그 작은 몸에 잔근육이라는 게 붙어 딴딴해진 것이다. 작년 여름엔가, 나는 감기 비슷한 것에 걸려 며칠째 마당조차도 나가지 못한 적이 있었다. 따듯한 호박죽을 다섯 그릇쯤 먹었을 때야 겨우 회복하고 마당에 나가게 됐는데, 그때 산책하는 영감과 이 씨 아이와 점박이를 만났다. 처음엔 점박이를 알아보지 못했다. 다른 강아지인 줄 알았다. 저 점박이가 내가 알던 굼뜬 강아지가 맞나, 까만 고양이 말곤 아무것에도 관심이 없던 우리 동네 개가 맞나 싶었다. 점박이는 고작 며칠 만에 훨씬 더 아름다운 개가 됐다. 꼬리를 곡선으로 굴리며 200도 정도 둥글게 돌릴 줄 아는, 절제된 움직임과 정확한 걸음을 유지하는, 눈을 감고, 또 뜨고 걸을 줄 아는, 몇 시간이고 같은 속도로 발맞추어 걸으며 이 씨네 아이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기까지 하는(실제로 귀가 그쪽을 향해 움직였다.) 그런 강아지가 되어 있었다. 그때부터 까만 고양이 눈에도 점박이가 보이기 시작한 것 같다.

어느 아침, 무른 감을 따러 마당에 나간 날이었다. 여느 때처럼 산책하는 영감이 보였다. 그의 면티에 생긴 작은 구멍이 눈에 띄어 그걸 메울 실을 선물해야겠다고 생각하는데 그 뒤를 따라 걷는 이 씨네 아이 목소리가 들렸다. 우리 집 담장을 넘어 들릴 정도로 목소리가 커져 있었다. 아이가 눈동자를 저 위에 두고 입 모양을 천천히 만들어 가는 것이 보였다. 그것은 한참 말씨를 공글리는 아이의 모습이었다. 아이 뒤에는 당연한 듯 점박이가 따르고 있었다. 한층 더 늠름해진 것 같다. 그리고 그 뒤엔 유독 눈이 반짝거리는 듯한 까만 고양이가, 꽤 우아한 자세로 꼬리를 바짝 세우고 한들한들 흔들며 뒤따르고 있었다.

우리 동네 사람들은 이 귀여운 산책을 지켜보는 걸 좋아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하교하던 아이들 몇이 재미 삼아 그 뒤를 따라붙었다. 그 뒤를 아이들의 보호자가 따랐고, (산책길에 함께하려고 온 것인지 확실하진 않지만) 새들도 몇 마리 나란히 걸었다. 어린 시절에 읽은 《커다란 순무》 이야기 속 한 장면 같았다. 커다란 무가 뽑히지 않아 할아버지가, 그 뒤를 할머니가, 그 뒤를 손녀가, 그 뒤를 멍멍이가, 그 뒤를 야옹이가, 그 뒤를 찍찍이가 끌어안고 당기는 내용 말이다. 나는 마당에 나와 그 모습을 보면서 문득 깨달았다. 아, 이제 마을 운동회를 열어도 되겠구나. 마침 시행착오를 겪던 사탕수수 빨대도 꽤 괜찮게 완성된 참이다.

나는 운동회를 하는 동안 서른여섯 종의 과일을 으깨 백 잔 넘는 주스를 만들었다. 시험 삼아 사탕수수 빨대도 꽂아서 건넸다. 마을 사람들 목구멍을 타고 지나가는 과즙의 소리를 들으며 이 시간이 내게 찾아온 작고 귀엽고 좋은 일임을 알았다. 운동회는 기분 좋게 끝이 났고 우리는 2회를 약속했다. 오늘 아침엔 이 씨네 아이가 우리 집에 찾아왔다. “홍시 주스 두 개 주세요. 할아버지랑 산책할 때 마실 거예요.” 아이가 문장을 이어가는 데는 4분 36초의 시간이 걸렸다. 음절과 음절 사이로 잘 익은 미소를 빙긋빙긋 담느라 좀더 찬찬한 듯했고 덩달아 나까지 기분이 좋아졌다. 나는 마당에서 주워놓은 감 바구니로 걸음을 옮긴다. 아이에게는 연두색 땡땡이 빨대를, 영감에겐 푸른색 빨대를 꽂아줄 것이다. 아, 우리 마을 운동회를 기록하려고 시작한 일기인데 작고 귀엽고 좋은 일들을 적고 나니 금세 일기장이 꽉 찼다. 게다가 나이가 들어서인지 눈이 자꾸 침침해진다. 글자가 잘 보이지 않는다. 운동회 이야기는 내일 이어서 쓰는 것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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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주연

일러스트 휘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