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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90년대 생이다. mp3가 없어서 워크맨을 썼고, 스마트폰이 없어서 mp3를 썼다. 가족이 이동할 땐 차에 내장된 시디플레이어에 음반을 넣어 앨범 하나를 통으로 듣거나 여름 메들리를 들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부모님과 듣는 노래가 크게 차이 나지 않았다. 드라마도 마찬가지였다. 다들 거실 텔레비전 앞에서 공중파의 8시, 10시 드라마를 기다렸다. 드라마 시청률은 30퍼센트를 손쉽게 넘겼다. 드라마에서 나오는 OST가 흔히 휴대폰 벨소리나 통화연결음이 됐다.
어디선가 익숙한 멜로디가 흘러나온다. 입술이 저도 모르게 들썩여 가사를 읊조린다. 하지만 모르는 노래다. 단순한 멜로디에 담긴 담백한 사랑 노래 가사는 이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의 입술에서도 흘러나온다. 어쩌다 마주친 노래가 궁금할 땐 스마트폰을 꺼내 검색 애플리케이션으로 찾아 캡처한다. 질투, 유승범, 1992년. 내가 태어난 해에, 심지어 아직 태어나기 전에 방영한 드라마 OST. 어떻게 따라 부르고 있는 걸까. 돌이켜 그때를 상상하면, 다들 라디오나 방송을 통해 음악을 접했고, 마음에 드는 노래가 나오면 음반을 사서 간직했다. 앨범 한 장이 귀하고, 노래를 손쉽게 들을 수 없던 그때엔 한 곡 한 곡이 천천히 퍼지고 그 생명의 주기가 길었을 것이다. 나의 부모님은 신청곡을 틀어주는 음악 다방 같은 곳에서 노래를 듣곤 했을 테고, 한 사람의 세계에 담긴 플레이 리스트가 그렇게 길진 않았을 것이다. 한 곡 한 곡이 조금 더 소중했을 수밖에 없어서, 그래서 내 입가에마저 남겨져 있나. 그나저나 사랑 이야기는 30년이 지나도 오늘과 다르지 않다.
그래, 이때까지만 해도 부모님과 내가 보는 드라마가 정확히 일치했다. 중학생이던 나와 부모님은 같은 예능을 봤고, 같은 드라마를 봤으며, 여전히 음악 감상에 교집합이 있었다. 우리는 비슷한 것을 소비하며 비슷한 세계에 살았고, 그 상식이 크게 다르지 않았다. 2000년대 초, <파리의 연인>은 신드롬이었다. 배우 박신양은 ‘흥행 보증 수표’(그래, 그때는 이런 말을 썼다.)였고, <파리의 연인>의 인기에 힘입어 제작사는 ‘연인’ 시리즈를 만들어냈지만 흥행은 실패했다. <파리의 연인> 성공 원인은 야무진 유행어이기도 했다. “애기야, 가자.”나 “내 안에 너 있다.”, “왜 말을 못 해. 저 남자가 내 남자다. 저 사람이 내 사람이다, 왜 말을 못 하냐고!” 같은. 예능에서 명대사 퀴즈가 나오면 단골 메뉴였는데, 요즘에는 너무 많은 드라마가 각자 소비자를 유치하기 위해 애쓰는 모양이기 때문에 더 이상 그런 게임에서 공통의 관심사가 될 대사를 찾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지금처럼 OTT와 케이블의 각축전이 벌어지기 전이었으므로, 공중파 드라마의 힘이 무척 강했고 흥행하는 드라마 OST는 곧 벨소리나 통화연결음으로 지겹도록 들을 수 있었다. 스마트폰도 SNS도 없었으므로 자신의 음악 취향을 드러내거나 트렌드를 빠르게 따라가는 가장 좋은 방법은 휴대폰으로 700원 정도 하는 15초짜리 음악을 사는 것이었다. 당시 세대를 가리지 않고 사랑받던 조성모가 메인 테마 ‘너의 곁으로’와 서브 남주 테마 ‘너 하나만’을 불렀는데, 2001년 개인 앨범 이후로 큰 주목을 받지 못하던 조성모의 목소리가 <파리의 연인> 흥행과 함께 그 저력을 입증했다.
“나 때는 말이야.”라는 말은 재밌다. 내가 눈치 없이 옛날이야기를 일반화하기 좋아하는 사람이기 때문인 걸까. 모르긴 몰라도 내가 10대일 때는 온 가족이 같은 드라마를 봤다. 드라마는 거실에 있는 텔레비전으로 보는 것이었다. 그것은 앞집도 아랫집도, 같은 반 친구네 집도, 담임 선생님네 집도 다 똑같았다. 휴대폰으로는 문자랑 전화만 할 수 있었고, 개인 노트북을 가진 사람은 흔하지 않았으며 있다고 해도 그걸로 드라마를 볼 수는 없었다. 그러니까 우리는 같은 드라마를 보고 같은 대사에 감명받고 같은 노래를 들었다. 지금은 케이블, OTT 가리지 않고 오리지널 드라마를 방영해 일상에서 소화할 수 없을 만큼 그 수가 많아 모두가 여러 선택지 중 취향껏 드라마를 소비한다. 친구가, 부모님이, 직장 동료가 보는 드라마가 다 다르다. 노래도 마찬가지다. 손에 꼽던 아이돌은 어느새 두 손 두 발 다 써도 셀 수 없을 정도로 늘어났고, 친구들과 나는 한국 음악에 한하더라도 더 이상 같은 노래를 듣지 않는다. 몇 년 전 여전히 ‘라떼’ 타령하던 내 주변을 은근하게 맴돌기 시작한 노래가 한 곡 있었다. 노래 한 곡으로 ‘벚꽃 연금’을 받는다는 장범준이 부른 드라마 테마곡. 드라마는 흥행하지 못했는데 노래만 남았다. 다들 제목은 기억 못 해도, 드라마를 안 봤어도 이 노래를 안다. 이상한 일이지만 드라마 OST에는 그런 힘이 있는 게 아닐까. 세대를 엮고 시대를 종으로 횡으로 연결하는. 우리는 각자의 삶에 배경음악을 까는 음악 감독이다. 적재적소에 어울리는 노래를 깔고, 삶이 더 극적이고 아름답기를 바란다. 그래서 이야기를 입은 노래를 오래 기억하는 게 아닐까. #흔들리는꽃들속에서네샴푸향이느껴진거야
글 송재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