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모든 해변에서

김신지
바다를 곁 하고

여행을 가기 전날 밤엔 책장 앞에 선다. 긴 비행 중에나 잠 안 오는 밤, 혹은 문득 모국어가 그리워지는 순간에 펼쳐 들 책. 그런 책을 고르는 일은 늘 신중함이 필요하다. 가본 적 없는 풍경, 아직 오지 않은 시간에 대해 상상하며 그곳, 그 시간에 어울리는 책이 무엇일지 곰곰이 책등을 훑게 된다. 이번 여행은 오롯이 쉬기 위해 떠나는 일주일간의 짧은 여행이었다. 잠깐씩 읽고 먼바다를 바라볼 수 있는 책, 그래서 시시각각 바뀌는 바다의 표정을 놓치지 않을 수 있는 책, 동시에 그런 식으로 한 줄 한 줄을 오래 음미할 수 있는 책. 그런 책이 필요했다. 이번 여행에 나는 두 권의 시집을 챙겼다.

뜨거운 그늘 아래서

미지근한 맥주를 마시는 섬

작은 섬에는 낮 동안 전기가 들어오지 않았다. 마을에 하나 있는 발전기로 전기를 돌리긴 하는데, 그마저도 부족해 저녁 7시부터 아침 6시까지만 전기가 들어온다 했다. 숙소로 묵는 오두막 안에 작은 선풍기가 달려 있긴 했지만, 가장 더운 한낮에도 선풍기를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다. 모든 방은 삐걱삐걱 나무 계단을 밟고 올라야 하는 2층에 위치해 있었다. 주위로 키 큰 나무들이 둘러서 있어 얼핏 보면 꼭 나무 위에 얹어둔 집 같았다. 방 바로 아래 공간에는 그물로 짠 해먹이 걸려 있었다. 얼기설기 붙인 판자 틈새로 바닥이며 바깥이 내다보이는 나무집이었지만 바람이 잘 통하진 않아서, 낮 시간엔 대부분의 여행자들이 해먹에 열매처럼 걸려 있곤 했다. 방 안에서 누군가 걸으면 집 전체가 흔들리는 게 재미있어서, 나는 K가 해먹에 누워 있을 때면 괜히 쿵쾅거리며 머리 위를 지나다니곤 했다. 그물로 짠 해먹은 등에 땀이 차지 않아 천으로 만든 해먹보다 시원했지만, 맨몸으로 누웠다 일어나면 격자무늬가 고스란히 남아 우습기도 했다.

가기 전에 생각으로는 더우면 바다에 몸을 담그면 되지, 싶었지만 한낮의 섬은 몹시 뜨거웠다. 해가 머리 꼭대기까지 오면 도무지 그늘 한 점 없는 바다로 나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작은 섬에 묵는 사람들은 점차 더위를 견디는 저마다의 방법을 찾아가고 있었다. 해먹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낮잠을 자거나 해변에 놓인 평상에 누워 책을 읽거나 미지근한 맥주를 마셨다. 부족한 전기 탓에 해변에 누워 시원한 맥주를 마셔야지, 했던 계획도 조금 무너졌다. 맥주나 생수 등은 그날 아침에 들어오는 투어 보트에 실어오곤 했는데, 냉장고가 있다 한들 낮엔 전기가 없으니 음료들을 모두 아이스박스에 넣어두곤 했다. 아이스박스 속 얼음이 녹아갈수록 맥주도 미지근해졌다. 아침 맥주가 가장 시원했고 낮의 맥주는 미지근, 저녁의 맥주는 따뜻할 지경이었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섬에 있는 동안엔 그런 불편들이 싫지가 않았다. 잠시인 걸 알아서 그랬을까. 더위 때문에 느릿느릿 걷게 되는 이 섬에서, 시원한 에어컨 바람이나 살얼음 낀 맥주 같은 건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도 들었다. 우리가 있는 곳은 만따나니 아일랜드Mantanan Island. 말레이시아 코타키나발루에서 차로 2시간을 달린 다음, 배로 갈아타고 1시간 더 들어와야 하는 섬. 여기 오기 전까진 한 번도 발음해 본 적 없는 이름의 섬이었다.

그러므로 나는 견딜 수 있을 만큼

조금씩 살아간다

눈을 뜨면 파도 소리와 새소리뿐인 조용한 아침이 문밖에 도착해 있었다. 잠 많은 K를 두고서 혼자 맨발로 해변에 나와 보면, 숙소 직원인 청년이 빈 모래사장을 비질하고 있었다. 어제 하루 동안 모래 위로 어지럽게 찍혔던 발자국들이 하나둘씩 지워져 갔다. 청년은 꼭 연인의 머리를 빗겨주는 사람처럼 매일 아침 열심이었다. 해변을 비질하는 모습을 바라보다 보면 K가 일어나고, 함께 느릿느릿 아침을 먹은 뒤엔 바닷가 평상에 누워 시집을 펼치곤 했다. 

섬의 하루는 뜨겁고 나른했으므로, 해가 뜨고 지기까지 하루 종일 그늘에서 책과 함께 있는 것이 일과의 전부였다. 떠나기 전 상상해왔던 그대로, 나는 아무 데나 펼쳐 시 한두 편을 읽다가 먼 바다를 보곤 했다. 그런 식의 독서를 하기엔 시집만큼 좋은 여행 친구가 없다. 이곳까지 함께 온 시집은 하재연 시인의 《세계의 모든 해변처럼》이었다. 별다른 목적도 없이 그저 조용하고 낯선 해변을 찾아가는 여행에 어울린다 생각했다. 표지에는 붓끝으로 뭉개듯 그린 시인의 얼굴이 그려져 있었다. 시인을 처음 알 게 된 건 오래전 ‘라디오 데이즈’라는 시를 통해서였다. 어설픈 문청들이 그러하듯, 나는 그 시에 나의 한 시절을 겹쳐보고는 속절없이 시인을 좋아하게 되어버렸다. 《세계의 모든 해변처럼》은 몇 해 전에 나온 시인의 두 번째 시집이며, 아껴 읽은 시집이기도 하다. 이미 읽은 시가 다시 읽어도 또 좋을 때, 나는 그것이 처음 하는 산책 같아 좋다. 말수 적은 시인의 곁을 따라 걸으며, 드물게 꺼내놓는 말 중에 기억하고 싶은 것이 생길 때마다 마음의 귀퉁이를 작게 접어둔다.

꿈속에서 나는 아주 여러 번 살아왔다.
내가 나였을 것이라고 생각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 《픽션보다》 중에서

 

우리는 우리의 리듬을 이해하는 사람을 만나기 위해

전 생애를 낭비한다.
– 《4월 이야기》 중에서

 

그러므로 나는 견딜 수 있을 만큼

조금씩 살아간다
– 《로맨티스트》 중에서

오후엔 나무 아래서 책을 읽고 있는데 소나기가 퍼부었다. 책을 덮고 자리를 뜨려는데 주위에 있는 누구도 서두르는 기색이 없었다. 고개를 젖히고서야 이유를 알았다. 나뭇잎이 워낙 빽빽해 빗방울 소리만 요란할 뿐 막상 나무 아래로는 비가 들이치지 않았다. 커다란 나무들이 우산을 씌워주니 드문드문 흩어져 앉아 있는 사람들 모두 안심한 표정이다. 소나기가 지나가는 동안 빗방울은 겨우 커피 잔 위로 몇 방울 떨어졌을 뿐이었다. 그래도 비에 젖은 페이지는 조금 울어버려서, 책을 덮으면 덜 닫힌 채로 표시가 났다. 낮잠에서 깨어나도 하루가 남아 있던 긴 오후, 소나기가 접어두고 간 페이지 같았다.

걸어도 걸어도

바다뿐인

작은 섬을 둘러싼 바다는 깊이가 얕았다. 맹렬한 더위가 조금 수그러드는 늦은 오후면 우리는 입고 있던 옷을 벗고, 읽던 책도 한쪽에 치워두고 바다에 뛰어들곤 했다. 바다는 몹시도 맑아서 산호나 암초가 있는 곳은 물빛이 다른 데보다 짙어지며 표시가 났다. 그런 곳만 찾아서 들여다보면 다른 데보다 더 많은 물고기들이 숨어있었다. “여기 좀 와 봐. 여기도!” 그렇게 소리치며 물속을 흘러 다니다 보면, 어느새 섬에서 멀어져 있기 일쑤였다. 너무 멀리 온 게 아닐까 싶어 조금 겁먹은 채로 발끝을 세우면 여전히 모래 위에 발이 닿았다. 겁먹고 안도하기를 반복하며 나는 점점 더 먼 바다로 나가곤 했다. 썰물이 드는 해 질 녘에는 아주 먼바다까지 나가서도 바닥에 발을 딛고 설 수 있었다. 

그날도 이제 그만 돌아가야지, 싶어 고개를 든 참이었다. 바닷속에서 막 꺼낸 젖은 얼굴 위로 바람이 불어 눈을 감았다 뜨는데, 머리 위로, 온 하늘에, 진득한 노을이 내리고 있었다.

배를 타고 나왔다고 해도 될 만큼 멀리까지 나와 있어서, 보이는 곳은 온통 바다였다. 사방을 둘러보아도 바다뿐인 곳에서, 짙어가는 노을이 시시각각 하늘과 바다의 빛을 바꾸어 놓고 있었다. 

한참을 바라만 보고 있었다. 그 어떤 선명한 풍경도 돌아서면 희미해진다는 걸 알아서였을까. 그만 가야지, 하면서도 좀처럼 발을 뗄 수가 없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섬에 불빛이 들어온 걸 보니 7시를 넘긴 시간이라는 게 짐작될 뿐, 돌아가야 할 거리는 좀체 가늠되지 않았다. 신발을 신고 있던 K는 맨발인 내가 산호에 찔릴까봐 걱정되었는지 선뜻 등을 내밀었다. 허리께까지 물에 잠겨 업힌 채로, 나는 해변을 가리켰다. 저기로 가주세요. 나를 업은 K는 택시인 듯 로켓인 듯 이상한 소리를 내며 해변에 이를 때까지 물속을 쌩쌩 달려주었다. 발바닥에 바닷물이 찰랑이며 와 닿아서 눈을 감으면 바다 위를 달리는 기분이었다. 떨어질까 봐 등에 꼭 매달려 웃는 동안, 나는 이 저녁이 오래도록 기억되리라 예감했다. 너른 등에 업힌 채로 바라본 하늘은 어느새 보랏빛으로 어두워지고 있었다.

아픈 우리가 나란히 누워

내리는 비를 바라볼 때

섬을 빠져나온 이튿날엔 하루 종일 비가 왔다. 전날 야시장에서 주워 먹은(?) 새우 탓에 탈이 난 우리는 아침도 거르고 침대에 누워 있었다. 공항이 바로 근처였다. 좁고 낡은 호텔 방에 누워 있으면 커튼 너머로 이륙하는 비행기들이 간간이 보이곤 했다. 침대맡에 놓아둔 두 번째 시집의 제목을 K가 가만히 읽었다.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 외롭고 쓸쓸한 시집. 짧은 여행에도 어쩔 수 없이 찾아오는 외로움의 순간에, 그 외로움을 한 땀 한 땀 깁듯 이 익숙한 시들을 읽고 싶었다. 시인은 미인의 곁에 누워서 자주 아팠고, 나는 아픈 배를 쓸어내리며 K에게 시를 읽어 달라 졸랐다. 시를 읽는 취미가 없다는 걸 아는데, 시인의 시가 마음에 들었는지 별다른 말없이 다음 시로, 다음 시로 책장이 넘어갔다. 김치를 자르던 가위를 씻어 시인의 귀를 덮은 머리카락을 잘라주는 미인, 밀가루 풀을 천천히 끓여 자투리 벽지를 붙이는 시인, 연락도 없이 찾아가면 목울대를 씰룩여가며 막걸리를 마시고 있던 얼굴이 붉은 아버지…. 모르는 나라의 비 오는 하늘 아래서 듣기에, 그 시들은 너무 낯익고 처연했다. 까무룩 잠이 들려고 할 때마다 나는 홑청이라든가, 찬거리라든가, 구들이라든가, 그런 시어들을 되뇌어 봤다. 누군가 곁에 없을 때 그 사람을 생각하는 일처럼, 멀어지고 난 뒤 멀리 있는 것을 생각하는 일이 나는 늘 좋았다. 시인이 그려내는 그리운 풍경에 자꾸 멈춰 서던 우리는, 노트를 찢어와 침대 위에 엎드려 누운 채로 어려서 서로가 살았던 집의 마당을 그리기 시작했다.

“여기가 안방이었고, 여긴 마루, 오래된 한옥이어서 한가운데 마당이 있었어.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면 옥상도 아니고 지붕도 아닌 곳에서 자라는 방울토마토 같은 걸 따오곤 했어.” 시를 읽을 때보다 들뜬 K의 목소리가 좋아서, 나는 배가 아픈 것도 잊고 종이 위의 작은 마당을 들여다봤다. 어느 여름날, 수영장에 가고 싶다고 조르는 두 아들을 위해 아버지는 마당의 수채구멍을 모두 막고 커다란 비닐을 두른 다음, 온 마당에 물을 채웠단다. 공사 일을 나가던 아버지에게 그런 일은 일도 아니었다지만, 나는 갑자기 호수를 이루었을 너희 집 마당이 신기하기만 했다. 빈 마당에 물이 차오르는 것을 보며 너는 형의 손을 꼭 잡고 마루에 서서 발을 굴렀을까. 물방울 같은 웃음을 터뜨리며 풍덩 뛰어드는 어린 아들을 보며 너의 아버지는 땀을 닦고 함께 웃었을까. 

내가 없었던, 내가 본 적 없는 그 풍경을 나는 오래오래 기억해두기로 했다. 굳이 기억하려 하지 않아도 오래 기억될 것 같은 예감을 주는 풍경이 있고, 잊게 될까 봐 애써 오래 기억하고 싶은 풍경이 있으며, 기억하고 있는 줄도 몰랐는데 나중에야 아프게 하는 풍경도 있다. 어쩌면 우리가 읽은 모든 시들이, 우리가 떠난 모든 여행이 그 어디쯤에 있을 것이었다. 마당이 그려진 종이를 두 번 접어 시집 사이에 끼우는 나를 보며 K가 더 읽어줄까? 물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시집을 건넸다. 호우주의보, 이틀 내내 비가 왔다. 거기까지 읽은 K와 눈을 마주친 채로 나는 웃었다. 여행의 마지막 날이었다. 창밖에는 오랜 비가 내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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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김건태

글·사진 김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