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ROUND
CLUB ONLY
SERIES
MEET AROUND
SUBSCRIBE
SHOP
Look Around the Island
어느 날 불쑥, 세 남자가 굴업도로 백패킹을 떠난 이유는 아름다운 바다와 개머리언덕에서의 하룻밤 때문이었다. 대한민국에 이처럼 아름다운 자연 속에 텐트를 치고 캠핑을 할 수 있는 곳이 몇 군데나 될까? 아름다운 초원 위 섬의 끝자락에 꽃사슴들과 함께 텐트를 치고, 솜사탕 같은 해무가 가득한 바닷가에서 수영을 하고, 게다가 초보낚시꾼들에게 저절로 걸려주는 물고기들의 친절함까지. 이 모든 호사를 누려본 이들은 굴업도 자연의 소중함도 알게 될 것이다.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지만, 이 말만큼은 비켜 갔으면 하는 굴업도를 기억하며 ‘세 남자의 굴업도 백패킹’을 시작한다.
대기업의 안내 팻말을 지나 능선을 타고 오르다 보면 아름다운 초원 지대가 나온다. 탁 트인 시야에는 온통 풀과 나무, 그 너머로 보이는 바다가 전부이다. 한때 이 아름다운 섬에는 핵폐기 시설물이 들어서려 했다가 무산되었고, 그 뒤 대기업이 골프장 건설을 위해 섬을 매입했지만 환경단체들의 반발로 현재는 잠정적 중단 상태다. 이 아름다운 초원에 골프공이 뒹굴고 사람을 태운 카트가 돌아다니는 모습이라니, 사람의 이기심은 참 끝이 없는 것 같다. 이런 저런 생각으로 걷다가 땀이 등에 스밀 때쯤, 어느새 개머리능선에 다다른다. 세 남자는 역할을 분담해서 텐트를 치기 시작한다. 숙영지인 개머리언덕은 드넓은 초원 지대를 가로지르고 작은 숲을 지나야지만 보이는 보물 같은 곳이다. 보물섬처럼 주변에는 종종 예쁜 사슴도 등장한다. 아름다움의 실상 뒤편에는 약간의 위험도 따른다. 바람이 많은 곳이라 텐트를 단단히 동여매야 했고, 서리가 내릴까 봐 짐들은 모두 텐트 안으로 옮겼다. 섬에서는 할 게 많지 않다. 섬 구경을 하거나 쉬거나 잠을 청하는 것 말고는 특별할 게 없다. 게다가 개머리언덕은 손전화기도 터지지 않아 더욱 한가한 낙원이었다. 세 남자는 부지런히 저녁 식사를 준비한다. 지금 현재 이곳에서 만들 수 있는 가장 창조적인 세 남자만의 요리가 시작된다. 비록 모기떼가 몰려와 세 남자의 다리에 들러붙어 맛있는 저녁 만찬을 먼저 시작했더라도 말이다. 해가 지기만을, 사람이 오기만을 기다렸다는 듯이 모기떼들은 사정없이 달라붙어 피를 훔쳐갔다. 세 남자는 가져온 모든 재료를 넣어 끓인 ‘꽁치김치부대찌개’를 앞에 두고 오손도손 사는 이야기를 나눈다. 밤은 더 깊어간다. 도시의 불빛이 없으니 더 없이 기나긴 섬의 밤이다. 어둠 속에서 끈끈한 유대감을 느낄 수 있는 순간이다. 이런 감정이 눈에 띄지 않듯, 섬도 그렇다. 눈으로 확인해야만 느낄 수 있는 공간이 아니다.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연결된 세 남자는 서로에게 감사하며 소소한 즐거움을 누린다. 차가운 이슬과 바닷바람은 텐트 안을 초겨울 체감온도로 만든다. 서로의 온기만으로는 추위를 견디기가 어렵다. 무엇보다 서로의 살을 비비며 잠들기가 못내 아쉬워 잠깐 텐트 밖으로 나온다. 하늘은 온통 별들의 세상이다. 세 남자의 텐트뿐인 개머리언덕 위에서 그들은 랜턴으로 별들의 세상에 신호를 보낸다. 그 빛과 바람, 파도소리가 너무도 신비로워서 마치 외계인과 교신하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별 헤는 밤, 굴업도의 여름밤은 성스러움으로 가득하다. 개머리언덕에 자리 잡은 작은 텐트는 굴업도의 모든 빛을 빨아들인 채 홀로 빛나고 있었다. 그렇게 길고 차가운 밤은 지나간다.
다음 날 아침, 마을과 가까이 있는 바닷가로 내려온다. 해안을 가로지르는 전봇대가 듬성듬성 눈에 띈다. 전날 점심을 먹었던 민박집 장할머니의 말에 따르면 민어가 많이 잡히던 시기, 굴업도에는 많은 사람이 살았다고 한다. 그만큼 많은 집과 전기가 필요해서 해안가에 전봇대를 세웠다고. 지금도 섬의 곳곳에서 많은 사람이 살던 과거 흔적이 발견된다. 더불어 해안가 곳곳에서는 해안사구를 볼 수 있다. 미끄럼 타기를 할 만큼 큰 해안 사구는 굴업도에서 볼 수 있는 상당히 이색적인 풍경이다. 한두 번 미끄럼을 타곤 곧 마을로 향한다. 마을 근처 선착장에서 낚시를 시작한다. 낚시 초보인 세 남자는 ‘과연 입질이 올까?’ 의구심이 들었지만, 잠시 뒤 낚싯대를 하늘로 들어 올렸을 때 작은 물고기가 매달려있다.
그렇게 시작된 입질은 뭍에서 사간 지렁이를 다 쓸 때쯤에서야 끝이 났다. 이름 모를 물고기 열세 마리가 낚시 바구니 안에서 헤엄치고 있었다. 칼도, 양념도, 열을 가해 조리할 버너도 없던 세 남자는 기념사진 한 장을 남기고 물고기를 다시 바다의 품으로 돌려보낸다. 마을을 걷다 다시 만난 장할머니에게 자랑 삼아 사진을 보여주었다가, 조금 전에 놓아준 것이 우럭이라는 이름을 가진 맛있는 물고기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마을에서 바다를 바라보면 조그만 섬이 보인다. 장할머니는 ‘목섬’이라고 불렀지만, 여행객들 사이에선 ‘토끼섬’이라고 불리는 이 부속 섬은 물때에 따라 외형이 달라진다. 섬에서 물때는 중요한 요소이다. 섬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육지가 되었다가 곧 바다로 변해버리기 때문에 마냥 아름답다고 넋 놓고 있다가는 큰 위험에 빠진다. 세 남자는 물이 빠진 틈을 타 서로에게 의지해 목섬에 오른다. 중턱에 다다르자 멀리 나래호가 새로운 설렘을 가득 싣고 섬으로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목섬에서 내려와 해안선을 따라가다 보면 지금껏 쉽게 보지 못했던 아름다운 해변과 바위틈에 다다른다. 백사장과 섬 그리고 해무는 외계인과 교신하던 지난 밤 못지않게 신비로웠다. 세 남자는 너나 할 것 없이 바다에 뛰어든다. 젊음은 아름다운 게 맞다. 이토록 눈부신 풍경 속에서 노닐 수 있는 세 남자는 아름답다. 해무에 가려진 바다를 달리고 달린다. 그러다 넘어지기도 하고 다시 일어나 서로에게 물장구도 친다. 세 남자는 이내 뽀얀 솜사탕 같은 해무 속을 헤엄치는 어린아이가 된다.
장할머니 민박
주소. 인천광역시 옹진군 덕적면 굴업로 137
전화. 032 831 7833
인천여객터미널에서 출발한 덕적도행 대부고속훼리 5호를 타고 덕적도에 내려 굴업도행 나래호로 갈아타면 된다. 배편이 많지 않아 덕적도에서 들어가는 시간을 잘 살펴야 한다. 캠핑 시 발생한 쓰레기는 모두 가지고 나와야 하는 것도 잊지 말자. 굴업도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싶다면 캠핑도 좋지만 해변과 가장 가까이에 있는 장할머니 민박을 추천한다. 무엇보다 따뜻한 밥 한 그릇이 여독을 풀어준다.
글 사진 박경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