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이 아닌 곳의 섬마을 사람들

사진작가 엄상빈

섬이 아닌 곳의 섬마을 사람들

사진작가 엄상빈

다큐멘터리라는 말을 가만히 생각해보면 두 개의 단어가 연달아 떠오른다. 시간, 그리고 주름. 누군가의 주름을 30년의 시간 동안 바라본 사람이 있다. 섬은 아니지만 섬인 듯, 외따로 떨어진 속초 아바이마을의 역사를 담은 시선이 있다.

Interview
사진작가 엄상빈

“600년 된 느티나무가 백 살을 더 먹는다고 우리는 크게 달라진 걸 느끼지 못해요. 하지만 사람은 다르죠. 사람을 기록한다는 건 시간에 대한 추적이에요.”

《아바이마을 사람들》은 어떤 프로젝트인가요?
‘아바이’는 함경도 사투리로 남자 어른을 통칭하는 말이에요. 속초 청호동에 함경도 피난민이 많이 살다 보니 행정상 명칭보다는 아바이마을로 더 유명해졌죠. 20년간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다가 1983년도에 속초고등학교로 발령이 나면서 자연스럽게 아바이마을을 찍기 시작했어요. 프로젝트를 시작한 지 30년만인 2012년에 책으로 묶어서 발간하게 됐죠.

교단에 계시다가 사진작가가 된 과정이 궁금해요.
사진을 취미생활로 시작한 건 아니고, 처음부터 흑백 인화 작업을 직접 했어요. 철원에서 장교로 군 생활을 마치고 전역할 때 24만원 정도의 목돈을 받았거든요. 그걸로 카메라를 사서 본격적으로 시작한 거죠. 당시에는 흑백 사진에 필요한 확대기를 가진 사람이 많지 않아서 그룹 전시를 한다고 하면 모두 저에게 사진 인화를 부탁했어요. 그렇게 경험이 쌓이기 시작한 거죠.

책의 부제를 보면 아바이마을을 ‘실향민의 섬’이라고 하셨어요. 그 마을의 역사적 배경을 이야기해주세요.
한국전쟁 당시 중공군이 남하하면서 북쪽에 거주하던 사람들이 대거 피난하는 일이 생겼어요. 거제도나 포항, 부산 등까지 피난 갔던 사람들이 전쟁의 기미가 수그러들자 이곳 청호동에 잠시 짐을 풀었다가 길이 막혀버린 거죠. 땅이 없으니 모래사장에 임시로 집을 짓고 속초에 주둔하던 미군 부대가 버린 박스나 목선 조각으로 임시 거처를 만들어 살던 게 지금 아바이마을이에요. 어떤 할아버지는 세 살배기 딸을 놔두고 내려오면서 일주일 뒤에 예쁜 고무신 사 가지고 오마 했는데, 그게 70년이 됐어요.

비유적인 표현이긴 하지만 모래 위에 집을 짓는다는 게 불안 그 자체잖아요.
마냥 비유만은 아닌 게 그때만 해도 판잣집이 많았고, 콜타르 다진 걸 그대로 지붕이나 벽에 덧대는 그야말로 열악한 환경이었죠.

실향민의 섬이라는 표현에 왠지 모를 설움이 느껴져요. 작가님의 작업을 봐도 누추하다 싶을 정도로 현실적인 모습이 보여요.
이곳은 사실 섬이 아니죠. 방파제도 있고, 속초의 다른 마을과 붙어 있긴 하지만 물 건너 외진 동네이기도 하고, 습관이나 말씨가 다르니 섬처럼 보인다고 그렇게 부른 거예요. 예전에 반공 이데올로기가 심할 때는 이곳에 이층집을 못 짓게 했어요. 높은 곳에서 간첩선에 신호를 보낼지도 모른다는 이유 때문이었죠. 하지만 이곳 사람들이야말로 국경일이 되면 태극기를 엄청 열심히 달아요. 동화되려고 애를 많이 쓴 거죠. 이 동네에 사는 게 일종의 핸디캡처럼 따라다니는 거예요.

처음 아바이마을을 보았을 당시 풍경은 어땠나요?
그때의 청호동은 한마디로 흑백 사진의 살아있는 스튜디오나 다름없었어요. 담장이나 지붕, 여타의 풍경이 모두 회색빛이었거든요. 거기서 찍은 사진을 현상, 인화를 해보면 실제 본 것과 똑같았어요. 흑백의 마을이었죠.

마을을 사진으로 담고자 했던 계기가 있다면요?
처음에는 내가 살 곳을 살펴본다는 생각으로 돌면서 사진을 찍었는데, 후에는 고향에 가지 못하는 분들을 대신해 앨범을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에 작업을 하게 됐어요. 사진집에 그분들의 이름과 원래 고향이 어디인지 밝힌 것도 나중에 그 근거를 삼기 위해서였고요.

일종의 기록물이었네요.
실제 이 프로젝트로 찍은 사진들은 대한민국 역사박물관에 들어가 있어요. 심사위원들이 책을 보면서 역사적 자료라고 하더라고요. 그 말을 듣고 그동안 내가 해온 일이 헛되지 않았구나 생각하게 됐죠. 지금까지 모두 11권의 사진집을 냈는데 그중에서도 《아바이마을 사람들》은 제 작업의 가장 중심에 있는 책이에요. 내가 죽으면 화장해서 아바이마을 바닷가에 뿌려달라고 했을 정도로요.

30년이라는 시간 동안 바뀐 것도 많을 텐데 그게 하나의 책으로 묶인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요?
30년의 작업을 묶어서 낸다고 하니 어떤 작가가 초창기 사진은 제외하고 나오느냐고 묻더라고요. 아무래도 초기보다는 나중 사진이 더 좋다는 의미일 텐데, 특별히 옛날 사진을 제외하진 않았어요. 오랜 시간을 하나로 묶는다는 건 한 컷, 한 컷이 화석 또는 역사적 기록일 테니까요.

작업을 하며 사람을 담는 일이 힘들었다고요.
지금까지 해온 일이 주로 약자에 대한 작업이고, 변수가 많은 필드에서 촬영하다 보니 쉽지 않았어요. 당시 35밀리 렌즈를 주로 사용했기 때문에 멀리서 몰래 찍을 수도 없는 거잖아요. 일일이 대면하고 허락 맡고 그들의 말을 받아 적기도 하고요. 특히나 뱃사람들이 많이 거칠었어요. 배에서 내리면 힘드니까 술을 먹고 낮에 만나면 거의 취해 있을 때도 많았고요.

열악한 상황에서 인물에 다가가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나요?
먼저 자기를 낮춰야 해요. 그 사람들이 가지지 않은 고가의 카메라를 들이대는 게 부담스러울 수도 있잖아요. 그래서 저는 아바이마을에 갈 때는 옷부터 조심히 입었어요. 최대한 소박하게 보이도록 했죠.

인물 사진의 경우 가장 공통적으로 도드라지는 건 얼굴의 주름이었어요. 그 깊은 골을 통해 무엇을 말하고 싶었나요?
있는 그대로예요. 그 사람들은 바닷가에서 일을 많이 하고, 또 살면서 고생을 많이 해서 그런 자연스러운 모습이 나온 거예요. 사진을 찍을 당시 이분의(위 사진의 왼쪽) 나이가 몇이나 됐을 것 같아요?

글쎄요. 적게 잡아도 60~70대는 돼 보이는데요.
47세였어요. 세월이 담긴 얼굴이죠.

누군가의 진짜 얼굴을 본 기분이에요.
600년 된 느티나무가 백 살을 더 먹는다고 우리는 크게 달라진 걸 느끼지 못해요. 하지만 사람은 다르죠. 사람을 기록한다는 건 시간에 대한 추적이에요. 그 사람이 살아온 시간, 그 변화를 같이 느끼는 거죠. 다큐멘터리는결국은 시간의 축적이에요.

수많은 풍경 중 특별히 기억나는 장면이 있나요?
이 사진의(위 사진의 오른쪽) 경우 인물은 아니지만 출판사에 꼭 실어달라고 당부한 사진이에요. 제일 왼쪽의 허름한 구두가 보이나요? 고단한 아버지의 존재를 은유하는 거예요. 판잣집 골목 어귀에 신발을 벗어 놓고 들어가 술에 취해 잠든 아버지의 존재를 이 구두를 통해 알게 되는 거죠. 말하지 않음으로써 말하는 거예요.

엄상빈 작가의 시선들

아바이마을 사람들 | 눈빛
강원도 속초 청호동의 실향민들을 30년 동안 찍은 다큐멘터리 사진집이다. 시간과 바람의 풍광이 깊은 주름의 형태로 담겨 있다.

또 하나의 경계 | 눈빛
한반도 현대사의 큰 아픔인 분단을 동해안 철조망을 통해 그렸다. 날카로운 철조망과 그곳에 빨래를 널어두는 아이러니한 풍경이 함께 놓여진다

들풀 같은 사람들 | 눈빛
영월에 사는 마흔다섯 가족을 직접 인터뷰해서 만든 책으로, 사진만으로는 알기 힘든 더 깊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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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김건태

포토그래퍼 안가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