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탕을 넣은 차

멀리 달아나며 늘 함께

오래 기억하고 싶은 낯선 산책 이야기.

2018년 가을에 D와 나는 베를린의 한 공동묘지에서 산책을 한 적 있다. D는 그곳의 유학생, 나는 다니던 가구 회사에 늦은 여름휴가를 내고 베를린을 여행하는 중이었다. 묘지 산책을 제안한 건 D였는데, 아마 혼자서도 종종 찾아가는 모양이었다. 산책하기에 낯선 장소가 아닌가 하는 생각과 한편으로는 그만한 산책로도 없겠다는 생각을 동시에 하며 약속 장소로 나갔다.

가을이 깊어 발밑에는 낙엽이 푹신했다. 묘비의 숫자들을 흘깃거리며 우리는 살아 있음을 약간 미안해하며 걸었다. 30분쯤 말없이 걷고 공동묘지 입구 옆에 있는 작은 카페로 들어갔다. 카페에서 카드를 받지 않아서 둘이 가진 동전을 모두 합쳐 차 두 잔을 마셨다. 설탕을 한 스푼 넣었더니 가볍지만 몸을 깨우는 맛이 났다. 우리가 앉는 걸 봤는지 새들이 주변으로 날아왔다. 무얼 떨어트리면 더 가까이 올 텐데 우리한테는 아무것도 없었다. D의 뒤쪽 벽에는 그곳에 찾아오는 새들이 하나하나 그려진 그림이 붙어 있었다.

공원에서 나와 D가 다니고 있는 자유대 학생식당에 가서 빵과 샐러드, 고기를 넣지 않은 굴라쉬를 먹었다. 작은 크림브륄레까지 담았는데 4유로가 조금 넘었다. 아직 학생카드에 돈이 남았다며, D는 밥을 다 먹고 나서 커피까지 마실 수 있다고 말했다. 함께 서점에 잠시 갔다가, 거기서 찾던 책이 없어서 D는 다음 날 받을 수 있게 주문해 놓은 것 같았다. 우리는 다시 거리로 나왔다.

20분만 더 같이 걸으면 어떠냐고 D가 물었다. “그럼요. 물론이죠.” 내가 대답했다. 그런데 아침부터 걸음이 쌓였는지 우리는 금세 피곤해졌다. “저기 앉아요.” 때마침 어느 정원에 비어 있는 하얀 테이블을 찾은 D가 말했다. 좁은 입구여서 허리를 숙이고 통과해야 했다.

하얀 플라스틱 테이블 위에는 종이 다른 벌 두 마리가 엉켜 있었다. 한 마리는 이미 죽었고, 다른 한 마리는 아직 살아 있는데 힘이 없었다. 서로 끝날 때까지 싸워야 했던 걸까. 우리를 보고, 내 손가락이 가까이 오는 걸 보고 살아 있는 벌은 날아가려 했지만 몸이 떨리고 점점 더 움직이기 힘들어질 뿐이었다.

“설탕물 먹으면 살 텐데.” 스스로 말을 내뱉자마자 D는 어딘가로 뛰어갔고 나는 몇 초간 머리가 하얬다. 곧장 일어나서 주변을 돌아다녔다. 잠시 동안은 뭘 찾아야 하는지 알지도 못했던 것 같다. 그러다가 쓰레기통을 열어보고 꽃이 핀 게 있나 한 바퀴 돌아보고 그다음 할 일은 도저히 떠오르지 않아서 나뭇잎을 주워 와 벌의 등을 조심조심 쓸어내렸다.

D가 하얀 휴지에 설탕을 조금 담아서 나타났다. “텀블러에 물 있죠?” D가 물었다. 나뭇잎에 설탕을 올려두고 물을 조금 부어서 녹길 기다렸다가 벌 근처에 뒀다. 벌의 혀라고 해야 하나 머리쪽 더듬이만큼 긴 대롱이 입에서 두 가닥 나와 설탕물을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배가 커졌다가 작아졌다가 하는 광경을 보고 우리는 그제야 등받이에 등을 기댔다.

“이제 가요.” 20분이 금세 지나 D의 수업 시간이 다 됐다.
“진우 씨. 오늘 제 생일인 거 알아요?”
“네. 그래서 제가 밥 산다고 한 건데 학생식당 오는 바람에 얻어먹었어요.”
“묘지에 갔던 거 좋았어요. 생일에.”

D는 작게 웃으며, 벌을 살린 일 또한 이상하다고 말했다. 더 무슨 말을 해보려고 했던 것 같은데 아마 무언지 영영 잘 알 수 없는 주제여서 말하길 그만둔 것 같았다. 하지만 표정이 좋아 보였다. 무언가를 알게 됐을 때보다 더 좋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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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 전진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