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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험 전문가 김승진
선장이라고
불리는 사내
모험 전문가 김승진
주위에 두루두루 아는 여행자들이 많다. 잠깐만 생각해도 꾀죄죄한 얼굴과 이름이 쏟아져 나온다. 천성이 게으른 나무늘보과의 사람들. 그런데 모험이라면? 어쩐지 동화책에서나 등장할 법한 이 단어에 가장 잘 어울리는 한 사람을 찾았다. 우연히 본 영상 속의 그는 잘 나가던 다큐멘터리 감독 일을 정리하고 요트를 하나 샀다. 그리고 209일간 41,900킬로미터의 바닷길을 가로질러 세계를 여행했다. 동반자도 없이, 위기가 와도 단 한 번 기항도 하지 않은, 그야말로 살아있는 모험이었다. 나이 오십을 넘긴 콧수염의 사내. 사람들은 그를 선장이라고 불렀다.
앞니가 튀어나온 아이는
매일 모험을 떠나고
선장님이라고 부르는 게 맞을까요? 어쩐지 대항해시대가 생각나네요.
네, 선장님도 좋고 해양모험가도 괜찮아요. 흔히들 대항해시대라고 하면 꿈이 있던 시대를 말하곤 하죠. 저 역시 꿈이 있는 인생, 꿈이 있는 행동을 좋아해요.
항해에 대해 소개해주세요.
단독으로 떠난 무기한, 무원조 세계 일주예요. 무동력이라고 알려져 있기도 하지만 생명을 구할 필요가 있을 때, 그러니까 다른 사람을 구하거나 자신의 생명을 구할 필요가 있을 때는 동력을 쓰기도 해요. 모험 항해와 여행 항해는 다르다는 점을 명확하게 하고 싶어요. 모험은 위험을 무릅쓰고 하는 행동이어서 자칫 생명을 잃을 수도 있어요. 실제로 행방불명 된 분들의 뉴스를 여럿 보기도 했고요. 그런 걸 생각하면 저는 참 행운이었다는 생각이 드네요.
편함과 불편함의 문제를 생각하는 것이 여행이라고 한다면 모험은 그야말로 사느냐 죽느냐의 영역인 거네요.
모험 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이 극복의 대상이에요. 태풍이 불어도 항해를 해야 하고, 무풍지대에서는 바람을 어떻게 잡을 것인지 고민해야 하죠. 귀찮다고 치워둘 수 없는 일이에요. 여행이라면 항구로 들어가 다음 정착지를 계획할 수 있겠지만 모험에는 선택권이 없어요. 세계 일주라는 말만 듣고 낭만적으로 생각하는 분들도 여럿 계세요. 하지만 모험에서의 낭만이란 일반적인 낭만과는 세기가 다르죠.
전 세계적으로 성공한 사람이 여섯 명 정도 된다고 들었어요.
아, 그건 잘못 알려진 거고요. 저도 정확하게는 잘 모르겠지만 실제로는 더 많을 거예요. 우리나라에서는 제가 최초의 성공이라고 알고 있어요.
처음 이 모험을 계획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한 권의 책이 저를 불렀어요. 1998년도에 이 항해를 성공한 일본 사람의 항해기였는데, 우연히 서점에서 이 책을 접하고 난 후 ‘어, 이거 나도 할 수 있겠는데?’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평소에도 그런 충동적인 모험과 여행을 좋아하나요?
무척 좋아하죠(웃음).
젊은 사람들에 비해 책임져야 할 일들이 많을 것도 같은데, 어떤가요?
저, 아직 젊잖아요. 다른 사람들은 그렇지 않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저는 여전히 젊다고 생각하거든요. 제가 아직 사회생활을 23년밖에 안 했어요. 앞으로 30년 넘게 남았으니까 반도 안 한 거예요. 굉장히 젊은 시절이죠. 말씀하신 의도는 알겠어요. 가족이나 직장의 문제들이 발목을 잡을 수도 있겠죠. 하지만 저는 저를 둘러싼 세상이 갑자기 변한다 하더라도 두려워하지 않는 편이에요. 모험은 제 인생의 변화가 아니고 제가 사는 방법의 연장선이니까요. 학창시절이나 PD로서 모험을 할 때, 혹은 해양모험가로서 모험을 할 때 역시 모두 같은 맥락이라고 생각해요. 내 안의 나는 똑같고 다만 남들이 보는 직업과 위치만 달라지는 거겠죠.
어떤 선택을 할 때 주변의 시선은 크게 중요한지 않다는 뜻인가요?
누군가가 제 인생을 대신 살아줄 것이 아니기 때문이에요. 그 사람의 영역 안에서 내보이는 생각들은 조언이 되기 어려워요. 모든 판단과 행동은 제 스스로에게 달린 거죠.
저 역시 늘 떠나고 싶은 마음을 갖고 있지만 여행을 다녀오면 새 직장을 구해야 하고,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걱정이 앞서거든요.
직장을 그만 두고 긴 여행을 다녀오면 원점으로 돌아간다고 흔히들 생각하죠. 만약 그게 정말이라면 다시 처음부터 시작하면 되지 않을까요? 어차피 자신의 인생인 거잖아요. 우리는 어디서든 생존하게 되어있어요. 돌아온 다음에도 우리는 살아있을 테고, 오히려 떠나기 전보다 더 성숙해져 있을 게 분명해요. 아이디어라든지 지혜라든지 아는 것이 많아지면 스스로 할 수 있는 것도 더 많아지잖아요. 무엇보다 자신감이 생겨요. 많은 것을 경험한 사람들은 정신적 여유가 있죠. 스스로에게 물어봅시다. 돌아온 다음 다른 직업을 못 찾을 거 같은가요?
사실 영상을 보면서 참 멋지고 부럽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관성적으로 책임감에 대해 묻고 있네요. 질문이 무의미했던 것 같아요.
어떤 사람이 저에게 그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어요. 저도 선장님처럼 떠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아요. 그런데 저는 당장 먹여 살려야 할 처자식이 있습니다. 현실적으로 당장 떠나기가 힘드네요. 그래서 제가 말했죠. “당신만 있습니까?” 스스로 무엇에 붙들려 있는지 물어볼 필요가 있는 것 같아요.
그런 마음을 갖기까지는 주변 사람들의 응원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거겠죠?
당연하죠. 저희 가족들은 잔소리를 안 해요. 어머니께서 경제활동이나 하지 왜 그런 짓을 하려 하느냐 정도는 말씀하시는데, 또 어딘가 가나 보다 하고 마시는 거죠(웃음).
돈이나 명예, 승진, 안정된 생활같이 누구나 인생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들이 있을 텐데, 선장님은 무엇을 우선으로 생각하나요?
제가 행복할 수 있는 모든 것이요. 저는 제 인생을 살고 싶거든요. 남들이 권장하거나 한 번쯤 가봤던 길이 꼭 제가 따라야 할 길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너 지금 행복해?’ 질문하는 거죠. 마흔이 다 돼서야 제가 누군지, 무얼 좋아하는지 알게 됐어요.
그 답을 찾게 된 계기가 있다면요?
뉴질랜드에 장기간 체류한 적이 있었어요. 과일이 달린 정원과 마당, 아이를 위한 놀이 정원까지 그야말로 꿈에 그리던 집에 살게 되었는데, 그곳에서 생활한 지 6개월 정도가 지난 시점에 의문이 생기기 시작하더라고요. 너 정말 행복해? 스스로에게 질문하는 저를 발견했죠. 질문을 던진다는 건 곧 행복하지 않다는 이야기거든요.
그 길로 주섬주섬 배낭을 챙겨 떠났어요. 북한과 중국의 국경 지역에서 꽃제비라 불리는 난민들을 취재하며 지냈어요. 그때 느낀 것이 육체적인 위험이나 긴장감은 저에게 불행보다는 행복에 가깝다는 거였어요. 힘들고 위험한 와중에 살아있다는 존재감이 강하게 들더라고요. 사람은 저마다 각자의 소질과 성향이 다르잖아요. 그걸 인정하고 받아들이면서 제가 행복할 수 있는 길을 찾게 된 거죠.
편안한 전원생활을 마다하고 일부러 험한 곳으로 들어갔다는 게 선뜻 이해가 되지 않아요.
어떤 어려움을 극복해나가고 새로운 것을 찾아 나가는 행위 자체를 좋아해요. 저는 호기심이 굉장히 충만한 사람이거든요. 낯선 곳에 가면 늘 설레요. 어떤 풍경, 어떤 사람들이 있을까? 공항에 내리는 순간 습하거나 차갑거나, 공기가 가진 특유의 냄새가 있어요. 몹시 설레고 흥분되는 일이죠. 현지인들과 빨리 친구가 되고 이웃이 되는 것이 좋아요. 문화는 다를지 몰라도 동시대를 살아간다는 공감대가 있으니까요.
처음 요트를 타던 때를 기억하나요?
5년 전, 처음 유럽에서 요트를 타고 한국까지 건너왔어요. 7개월간의 항해였는데 당시에 온몸에서 아드레날린이 흘러나오는 게 느껴질 정도였어요. 나라마다 기항하며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는 삶이 정말 행복했죠. 그 뒤 로 요트에 푹 빠져 살았어요. 요트가 주는 자유로움과 행복감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죠.
바다가 좋았던 건가요. 아니면 혼자라는 자유로움이 좋았던 건가요?
바다는 단지 장소의 문제인 것 같고요. 만약 산에 갔더라도 비슷한 감정을 느꼈을 거예요. 저 스스로가 원하는 것, 제가 행복할 수 있는 행동을 한다는 것 자체가 행복이었던 거죠.
모험의 장소가 정글과 산으로 바뀔 수도 있었던 건가요?
사실 육지에서 하는 모험들은 많이 해봤어요. 다큐멘터리 PD 시절, 강 탐사를 비롯해 탕글라 산이라는 중국의 6000미터가 넘는 산에 갔었는데, 그냥 보이길래 올라갔던 적도 있었어요. 모험이라는 게 결국 지구를 느끼는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죠. 앞으로는 그것이 우주로 뻗어나갈 수도 있을 거고요. 사람은 누구나 모험본능을 가지고 있어요. 다만 크기나 모양, 방법이 다른 것뿐이에요.
모험의 마음이 가득하다는 걸 언제 처음 알았나요?
중학교 때 보이스카우트 활동을 하면서 캠핑을 많이 다녔어요. 학교 행사가 아니어도 저 혼자서 배낭을 메고 모험을 떠났죠. 영하의 날씨에서 잠을 자고 얼음 깨서 밥 해먹고, 앙상한 가지 사이로 커다란 달을 구경하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해요. 시골에서 태어나 더 그랬는지는 몰라도 저에게 모험은 꾸준했던 거 같아요.
좋아하는 것이 뭔지 아는 것도 행복 같아요.
사실 그때는 그게 행복인지도 몰랐어요. 그냥 밖에서 자는 게 좋고, 모험이 좋고, 돌아다니는 게 좋았던 것 같아요. 전 늘 제 자신이 조금 모자란 아이라고 생각했거든요. 운동도 공부도 제대로 할 줄 아는 게 없었으니까요. 아, 할 줄 아는 게 하나 있긴 했어요. 어렸을 때 여자아이 하나가 튀어나온 저의 앞니를 놀렸던 적이 있었어요. 거울을 놓고 들여다보니 정말 이상한 거예요. 그때부터 몇 달 동안 앞니를 손으로 누르고 다녔어요. 그랬더니 정말 자연스럽게 교정이 됐죠.
엉뚱한 아이였네요(웃음).
저는 어렸을 때 장마가 와서 물이 넘치면 학교에 안 갔어요. 땡땡이였죠. 나중에 다른 학생들이 하교하는 모습을 보고 집으로 돌아가는 거예요. 거짓말을 하거나 나쁜 짓을 하려고 안 간 건 아니고 단지 가고 싶지 않았을 뿐이었죠. 그러면 학교에서 전화가 와요. “승진이 집입니까?”, “선생님, 저예요.”, “너 학교 왜 안 왔니? 어디 아프니?”, “아뇨, 안 아픈데 그냥 가기 싫어서 안 갔어요.”, “내일은 올 거지?”, “내일은 갈게요.” 그런 식이었어요.
‘뭐가 이렇게 당당하지?’ 하면서 당황하셨던 건 아니었을까요?
오히려 되게 좋아하셨어요.
수염을 기른 남자는
바다 위에 서있다
다시 바다에서 모험이야기를 해볼까 해요. 배 위에서 하루 일과가 어떻게 되나요?
바다 상황이 어떻게 변할지 모르기 때문에 가능하면 수시로 잠을 자요. 자동항해장치가 있어서 가능한 일이죠. 일단 아침에 일어나면 커피를 한잔 마시는데, 블랙이나 분유를 탄 라떼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어요. 속이 더부룩한지 출출한지 그 날의 상황에 따라 선택하는 거예요. 저는 어렸을 때부터 몸이 신호하는 대로 먹는 걸 좋아했어요. 식사시간에 한 숟가락 정도를 남기면 어머니께서 야단을 치시곤 했는데, 저는 이미 배가 부른 상태고 필요하지 않은데 왜 먹어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고집을 부렸죠. 거스르지 않는 것. 그것이 자연스러운 흐름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자연스럽게 모닝커피를 즐기고, 그다음은요?
배를 둘러보죠. 유심히 관찰하지 않아도 나사가 풀어진 것이나 부속이 고장 난 것들이 무엇인지 느껴져요. 감각으로 진단하는 거예요. 제가 원래 한번 잠을 자면 전쟁이 나도 모르는 사람이거든요? 그런데 배 위에서는 아주 작은 변화에도 민감하게 알아차릴 수 있었어요. 감각이 발달하는 거죠. 그렇게 배를 수리한 다음에는 끼니를 생각해요. 하루에 두 끼 식사를 하는데, 재료가 한정돼 있으니까 새로운 조합을 생각해보는 거예요. 그날의 바다 상황에 대비하고 항해를 계산하는 일, 영상을 촬영하거나 일기를 쓰는 것도 중요한 일과 중 하나예요. 가능하면 해가 남아있을 때 모든 걸 끝내야 해요. 밤은 위험하거든요.
배에서의 생활이란 결국 공간을 지키는 일이네요?
그게 결국 제 자신을 지키는 일이니까요.
해가 뜨면 눈 뜨고 해가 지면 잠을 자고, 말 그대로 자연과 하나처럼 보여요.
시시각각 변하는 날씨와 풍경에 따라서 컨디션이 달라져요. 하지만 한 번도 날씨가 좋지 않다고 불평한 적은 없었어요. 언젠가는 태풍 속을 항해하는데 즐거운 기분이 들더라니까요. ‘드디어 내가 태풍 속을 항해하고 있구나. 엄청난 노하우를 습득하고 있는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죠. 무언가를 헤쳐나가는 능력이 생긴다는 게 마냥 신났어요.
두렵지는 않았나요?
두려움은 문득문득 느껴요. 배가 휙 뒤집히거나 작은 얼음에 부딪히면 섬뜩한 기분이 들곤 하죠. 저를 띄우는 배의 밑바닥은 1센티미터가 채 안 되거든요. 1센티미터 밖은 지옥이고 그 안은 천국인 거예요. 저게 깨지면 가라앉을 텐데 그런 생각을 하곤 했죠.
1센티미터 내외가 천국과 지옥인 것처럼 설렘과 두려움의 간격도 딱 1센티미터처럼 보여요. 그 말을 들으니 감정이라는 것을 결코 따로 떼어내어 설 명할 수 없겠다는 생각도 들고요.
많은 분들이 언제 가장 행복했고 언제 힘들었는지 물어보시는데 사실 다 행복했고 다 힘들었어요. 가령 남극해는 늘 짙은 회색 구름으로 가득해요. 별빛도 달빛도 저녁노을도 없죠. 처음에는 그 풍경이 그렇게 우울할 수가 없었어요. 그러다 어느 순간엔가 ‘아, 이곳이 남극해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아름다운 바다를 상상했지만 사실은 강한 바람이 부는 잿빛의 바다가 남극해였던 거예요. 그걸 인식하자 남극해가 다시 멋있어 보이기 시작했어요. 많은 모험가들이 열망했던 남극해가 바로 이것이었구나.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는 순간에 기쁨이 찾아온 거죠.
풍경은 그대로인데 마음이 변한 거네요.
맞아요. 그리고 선물처럼 가끔씩 해가 뜨기도 해요. 구름 사이로 아주 잠깐, 밤에 갑자기 구름이 싹 사라지면 별이 쏟아지기 시작하는 거죠.
같은 공간과 시간 속에 있어도 그걸 즐기는 건 결국 개개인의 몫이겠네요.
즐기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그곳에 갈 엄두를 못 내겠죠.
예전에 저도 인천에서 중국으로 가는 배를 탄 적이 있어요. 아주 큰 배였고 움직임이 거의 없어서 별 기분을 못 느꼈는데, 밤이 되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자 갑자기 두려워지더라고요. 밤 속에 갇힌 기분? 선장님의 밤은 어땠나요?
그 두려움이 뭔지 알 것 같아요. 누구나 그런 감정을 느낄 수 있죠. 하지만 저는 낮과 밤의 개념을 편안하게 생각했던 것 같아요. 상황은 똑같은데 단지 지구가 돌아가서 빛이 있거나 없었던 거죠. 남극해에서 절대 암흑과 비슷한 풍경과 마주한 적이 있었어요. 그때 처음 든 생각이 ‘아무것도 안 보이는구나. 이런 밤도 있네?’였어요. 그러다가도 ‘아, 나는 이런 바다도 항해할 수 있는 사람이구나. 참 대단하구나.’ 스스로에게 느끼는 대견함으로 두려움을 이기는 거죠. 만약에 그런 것들이 공포의 대상이었다면 저는 살아서 돌아오지 못했을 거예요.
다큐멘터리에서 선장님이 태풍 속에서도 배가 뒤집히는 경험을 언제 해보겠느냐고 말하는 걸 보면서 ‘저런 모험쯤이야 나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보기도 했어요. 하지만 막상 생각이 진지한 단계로 접어들면 부정적인 단어들이 먼저 떠오르더라고요. 해적, 고래, 유빙, 태풍 등 신경 써야 할 단어들 말이에요.
그 신경 써야 할 단어들이라는 것은 결국 내가 해결해야 할 것들이잖아요. 어찌 됐건 그것들은 그냥 제 삶의 동반자들인 거예요. 늘 존재하고 있는 것들. 신호등을 건널 때 옆에 지나가는 차들은 고래나 마찬가지예요. 언제 나를 해칠지도 몰라요. 익숙해서 잘 알아차리지는 못하지만 우리 삶에는 늘 그런 문제들이 존재해요. 사람들은 그런 것들을 극복하면서 살아가요. 삶의 일부분인 거죠. 그게 모험이라고 생각하다 보니 두려움이 더 커 보이는 건 아닐까 생각해요.
모험 중 만났던 가장 큰 위험은 무엇인가요?
수영을 하고 싶어서 물속에 들어갔다가 상어를 만났던 적이 있었어요. 그때는 정말 죽는 줄 알았어요. 셀카봉으로 밀어내 겨우 살 수 있었는데 괜히 들어갔다고 처음으로 후회했었죠. 한번은 얼음 덩어리가 레이더에 포착이 안 되고 옆으로 휙 지나가는 거예요. 아차 싶더라고요. 눈으로 열심히 관찰해봤지만 한밤중이어서 발견하기가 힘들었어요. 어떻게 하겠어요. 그건 제 능력으로 어쩔 수 없는 거잖아요. 즐겨야죠(웃음). 못 마시는 위스키 한 잔 하면서 그 자체를 즐기는 거예요. 운이 좋았죠. 태풍 역시 무시할 수 없어요. 물보라가 이는데 바람이 파도 끝을 다 깎아버릴 정도로 심해요. 거대한 파도 산을 바람이 줄을 그어 나누어 버리는 풍경은 정말이지 엄청났어요.
그런 위험이 모두 죽음과 연관된다고 생각한다면 마냥 웃으면서 듣기가 쉽지는 않아요.
죽음을 생각하지 않는다면 이런 모험을 할 수 없어요. 반면에 그런 위험이 있기 때문에 모험이 가치를 갖기도 하고요. 죽음이 수반되지 않고 또 그런 위험이 없다면 굳이 제가 해야 할 가치가 없는 거죠.
명언이네요.
모험가로서의 말이죠.
많은 위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 번쯤 그 모험을 따라서 도전하고 싶은 사람도 많을 거 같아요. 조언을 부탁드려요.
실제 항해 기간보다 준비 기간이 더 길었어요. 에베레스트를 등반한 허영호 대장님과 만났을 때 조언을 구했는데, 우선 음식은 건조해서 준비해서 무게를 줄이고 썩지 않도록 하는 게 중요해요. 물이나 기타 다양한 식료품들을 넉넉하게 챙기는 것이 좋죠. 전투식량이라든지 과일 통조림이 특히 많이 유용하더라고요. 예상치 못한 변수들에 대비하는 것도 중요해요. 극지방으로 갈수록 바다가 거칠어진다는 것을 명심해야 하죠. 비상탈출을 위한 준비도 늘 해야 해요. 물속에서 가능한 한 오래 버틸 수 있는 방한 잠수복과 신호를 보낼 수 있는 장비, 그간에 모았던 사진이나 영상들을 따로 챙기는 것도 저에게는 매우 중요한 일이었어요. 정도에 따라 다르겠지만 사고를 당하면 95퍼센트의 확률로 죽을 거예요. 예상할 수 있어요. 그럴 경우 후에 사람들이 알 수 있도록 기록을 남겨야 하는 거죠.
외롭지는 않았나요?
어떤 분들이 제게 얘기를 많이 하세요. 영화 <캐스트 어웨이>에서 주인공이 공에 그림을 그려 친구를 만들었다고. 저는 만약에 당신이 윌슨이 필요한 사람이라면 모험하지 말라고 전해주고 싶어요. 윌슨이 필요 없을 정도의 정신력이 돼야 모험을 시작할 수 있어요. 물론 일상에서는 외로움을 느낄 수 있어요. 외로움은 소통의 부재에서 오는 거거든요. 길거리 수많은 사람들 중에 저와 소통할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다는 걸 느낄 때 굉장히 외로움을 느낍니다. 하지만 바다에 나갔을 때는 달라요. 자연과 대화할 수 있잖아요. 소통은 정신적으로 하는 것이지 입으로 하는 게 아니에요. 저를 기다려주는 가족들. 저를 응원해주는 사람들. 멀리 떨어져 있지만 다 저와 소통하는 거죠.
하긴 망망대해 속에서도 친구가 생긴 걸 봤어요. ‘이리와’라고 이름 붙인 갈매기였죠? 며칠 동안 배에 붙어 따라다니는 모습이 참 신기하게 느껴졌어요.
그 녀석들은 저에게 참 고마운 추억 중에 하나예요. 요즘 다음 항해를 준비하면서 이런저런 영상을 찾아보고 있거든요. 그런데 유튜브에 ‘이리와’가 나오더라고요. 한번 보고도 그 아이를 알아볼 수 있어요. 사람을 참 좋아하는 애들이었구나, 하고 생각했죠.
저는 배낭여행을 할 때 한국에 돌아가면 ‘이것만큼은 꼭 먹어야 해!’ 하면서 메모했던 것들이 몇 개 있었거든요. 육지를 밟으면 가장 하고 싶었던 것이 무엇이었나요?
목욕탕에 가서 때를 밀고 싶었어요. 그런 다음 삼겹살을 먹고 싶었죠. 바다에서는 생고기를 먹을 수가 없으니까 무언가 씹는 느낌이 그리웠어요. 빵과 우유도 간절했어요. 육상 지원팀에서 도착하면 뭐 먹고 싶어요? 하고 물어보기에 “빵하고 우유 사와!” 하고 말했어요(웃음).
육지에서 보급은 빵과 우유로 하셨고, 그럼 다음 해양 계획에 대해 이야기해주세요.
2020년쯤에 ‘벙데 글로브Vendée Globe’라는 무보급, 무기항 세계일주에 참가할 예정이에요. 프랑스에서 출발하는 레이스인데, 가장 빠르게 결승선을 통과하는 사람이 승리하는 대회예요. 기간이 거의 절반으로 줄어드니까 위험 역시 반으로 줄죠. 바람을 받는 돛도 훨씬 커져서 제가 일주한 속도보다 2.5배 정도 더 빠르게 항해할 수 있어요. 아직 경험이 부족하지만 한국 사람이잖아요. 손끝의 감각을 믿어봐야죠.
너무나 뻔해서 부끄럽지만 그럼에도 꼭 물어보고 싶었던 질문이 하나 있었어요. 긴 항해를 끝낸 지금 선장님에게도 꿈이 있나요?
꿈이라…. 저에게 꿈은 모험하는 것 그 자체예요. 끝이 없어요. 꿈이 끝나면 할 게 없잖아요. 흔히 생각하는 목표와 꿈은 별개로 생각해야 할 것 같아요. 우리에게는 늘 무언가를 갈구하는 마음이 있죠. 저에게 꿈은 그런 거예요.
선장을 따라 며칠을 함께 여행한 새들이 있었다. 영상 속 새들을 보다가 문득 날개 가진 것들은 어디에서 잠을 자려나 생각하게 됐다. 잘은 모르겠지만 그들은 흔들리는 물 위에 앉아 몸을 둥글게 말고 제 품속에 부리를 안은 채 밤을 견뎠을 것이다. 그런 모습을 상상하자 땅이라는 것이 꼭 단단할 필요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렁한 것, 고정되지 않고 흔들리는 것, 틈이 많아 언제든 안으로 고개를 박을 수 있도록 허락하는 것, 잠들 수 있는 곳 어디든 땅이라고 부를 수 있지는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자 바다에 대한 두려움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에디터 김건태
포토그래퍼 혜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