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뜻, 유쾌한 혼자 되기

장근영 ㅡ 심리학자
비로소 홀로 서기

선뜻, 

유쾌한 혼자 되기

심리학자 장근영

그의 이름은 장근영. 일명 ‘싸이코짱가’라는 별명으로 다양한 심리학 저서를 발간하고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눈다. 먼발치에서 그의 글을 보면서, 그는 A에게 설명서를 붙여주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다. 주변 인물이 A를 이해할 수 있게, A가 자신을 이해할 수 있게. 마음을 공부하고 들여다보는 것은 어쩐지 ‘이해’와 밀접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A는 우리다. 혼자가 되고 싶은 우리에게 붙여진 설명서를 선뜻 읽을 차례다.

Interview
심리학자 장근영

“유명한 심리학자들의 실험을 보면 주어진 한계 내에서 자신이 알고자 하는 바를 발견하는 최적의 방안을 만들어내요. 엄청나게 창의적인 작업이거든요.”

반갑습니다. 근래에는 어떻게 지내고 계신가요?

국제연구기관에서 정책 연구를 하는데, 매년 보고서를 써요. 연말이 보고서 마감이라서 며칠 밤을 샜고요. 오늘은 토론회가 잡혀 있어요.

 

제가 꼭 뵙고 싶어서 장문의 메일을 보냈었죠.

그런 편지는 처음 받아 봤어요. 

 

맨 처음에 심리학을 공부하기로 마음먹은 계기가 있었나요? 당시에 심리학이 지금만큼 보편적인 학문은 아니었을 텐데요.

제가 남동생이 하나 있는데, 걔랑 맨날 싸웠어요. ‘쟤는 대체 왜 저런 생각을 하지?’ 궁금하더라고요. 정확히는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생각이 궁금했던 거죠. 제가 아는 세상과 남들이 아는 세상이 다르다는 것을 예전부터 느꼈거든요. 제 석사학위 논문 주제가 ‘청소년기 자아중심성’이었어요. 요즘 말하는 ‘중2병’의 심리적 원인인데, 서로의 생각이 다르다는 것은 자기가 세상의 중심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거든요. 이런 개인적인 관심으로 시작한 거죠. 

 

심리학자라면 어디에나 있지만 어디에도 없는 존재 같아요. 관련 콘텐츠가 많아지면서 친근해졌지만, 여전히 잘 모르겠거든요.

심리학 교과서에도 나와 있는 내용인데, 사실 심리학은 누구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분야예요. 그걸 심리학에서도 ‘민간심리학’이라고 해서 ‘포크 싸이컬러지Folk Psychology’라고 해요. 세 살 즈음 되면 내 마음이 남의 마음과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거든요. 그때부터 거짓말을 할 수 있게 돼요. 내가 아는 것을 남이 모를 수 있다, 라는 것을 인지하는 거죠. 거짓말은 인지적 능력에서 최고의 기술이에요. 들키면 안 되니까요. 똑똑해야 거짓말을 하거든요. 그 거짓말을 하려면 상대방의 마음을 예측해야 하잖아요. 그때부터 심리학 수련이 시작되는 거죠. 처음에 상대방 마음에 대한 모형을 세워요. 이건 네 살짜리도 갖고 있어요. 우리 엄마 마음이 어떻게 구성돼 있는지, 내 동생의 마음은 어떻게 구성돼 있는지 아는 거죠. 그리고 그 모형을 가설검증을 통해서 발전시켜 나가요. 그래서 자기가 타인의 마음과 반응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해요.

 

미국 드라마를 보면 대중들과 심리학자의 심리적 거리감이 굉장히 가까워 보여요. 아이가 테디 베어 눈알만 빼버려도 심리 상담을 받아보고, 부부 사이가 멀어져도 상담자를 찾는 장면이 나오더라고요.

사실 옛날에 우리나라 심리학 수요의 대부분은 점집이었어요. 점집에서 하는 일이 주로 상담이거든요. 점쟁이가 상담가가 해줘야 할 많은 것을 해줘요. 거기다가 비밀 보장까지 해주죠. 미래 자체를 알려주지는 않지만 지금 무엇을 해야 할지를 알려줘요. 미래를 핑계로 말이죠. 현재 행동이 바뀌면 실제로 미래가 바뀌니까요. 상당히 목적지향적이잖아요.

결이 비슷하군요.

원래 심리치료는 주술자가 했어요. 일명 ‘시킴굿’이나 ‘빙의’를 하잖아요. 빙의하는 기법이 심리학 드라마에서, 이미 죽은 사람이 산 사람에게 못 했던 말을 하게 해주는 거거든요. 사람들의 미결 과제를 해결해주는 거다 보니까, 심리 치료의 기능도 하는 거죠. 그리고 이 부분이 근대화되면서 과학의 영역으로 들어온 거예요.


심리학이라고 하면 연구와 상담으로 나눠지는 것 같아요.

서로 다른 분야예요. 저는 상담이나 심리 치료 분야는 아니고, 발달심리학을 연구하고 있어요. 카테고리가 다르고 요구되는 기술도 다르거든요. 상담을 하려면 자격증도 있어야 하고 수련도 받아야 해요. 아무나 할 수 있는 건 아니에요. 사람을 대하는 거니까요. 하지만 서로 무관하지는 않아요.


제가 짱가 선생님을 처음 알게 된 것은 KBS <신드롬맨>이라는 TV 프로그램을 통해서였어요. <신드롬맨>은 출연진들의 독특한 개성과 성향을 보고 하나의 신드롬을 찾아내는 거였죠. 설날 파일럿 프로그램으로 끝이 났는데, 이 프로그램이 흥미로웠던 건 누군가의 특이한 점에 오명을 씌우지 않고, 이해할 수 있는 틈을 주었다는 거예요.

그 프로그램의 기획 취지가 그랬어요. 사실 처음에 의뢰가 왔을 때 “이건 제 전문 분야가 아니에요.”라고 거절했어요. 그런데 제작진이 상담 분야 전문가를 찾아갔을 때, 그분들이 자꾸 진단명을 내어 놓더래요. 알고 보면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가 뚜렷하진 않아요.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죠. 누구나 비정상의 요소는 갖고 있거든요. 그게 개성이 되는 거고요. 제작진도 프로그램을 통해서 병명을 나누려는 것도, 출연진을 환자로 만들려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이런 것을 이야기해줄 사람을 찾았다고 하더라고요. 취지를 이해하고 우리 모두에게 숨겨져 있는 특이한 요소를 찾아보려고 한 거죠. 출연자였던 최민수 씨가 <신드롬맨> 취지에 가장 잘 맞았다고 생각해요. 우리나라에 실제 신드롬을 만든 사람이기도 하고요. 저희 세대 한국 남자 마음속에는 최민수 씨가 다 있었거든요. 제 친구들 중에도 자기가 최민수인 것처럼 행동하는 애들도 있었어요. 최민수 씨한테 이 얘기를 했어야 했는데(웃음).


예능 출연은 어땠어요?

예능 녹화는 처음이었어요. 그 동안 교양 프로그램을 많이 나갔거든요. 예능은 확실히 힘들더라고요. 끝나니 새벽 한 시였어요. 쉽지 않더라고요.

정규 편성이 안 돼서 아쉬웠어요. 출연진의 신드롬을 보면서 제 주변 인물을 연결시켜 떠올리게 되거든요. 제 모습도 투영하게 되고요. 그러면 그들이 그때 왜 그랬는지, 제 일상에서 이해하게 돼요.

자기도 이해하고, 자기 주변도 이해하는 게 목적이었을 거예요. 그 프로그램을 기획한 작가님이 <나혼자산다>와 <비정상회담>을 기획한 작가였어요. 타인을 이해하는 방식의 다른 버전을 생각했던 모양이에요. 프로그램이 잘되길 바랐지만 잘돼도 제가 계속 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어요. 촬영이 너무 오래 걸리더라고요. 이 기회로 그 작가님을 만나게 된 게 가장 좋았어요. 아주 전문가거든요. 그리고 그 팀이 엄청 대단해요.


어땠는데요?

다들 자신감이 있거든요. 이런 팀이 있으니까 이런 게 잘 되는구나 싶었어요. 제가 대학원 실험실에서 팀으로 일했었는데, 잘되는 팀의 특성은 구성원 전부 기가 안 죽어 있어요. 그 팀도 하고 싶은 대로 하면 잘 될 거라는 생각을 하는 거죠. 그런데 실제로 결과물도 괜찮은 거예요. 다들 공유하는 에너지가 있고, 각자의 개성을 잘 발휘한 거죠. 


자신을 ‘은둔형’이라고 진단 내리셨어요.

네, 저는 내향적이에요. 큰일이 없으면 굳이 사람을 만나려 하지 않거든요. 그래서 예전부터 “또 보자.”고 하는 걸 피할 때, 핑계로 ‘은둔형’이라는 말을 써왔죠. 오래전부터 그래 왔고요.


사실 ‘은둔형’이라는 말에서 나오는 이미지가 별로 좋지는 않잖아요.

맞아요. 제가 게임 연구를 했었거든요. ‘동경대학교’와 공동 연구를 했는데, 당시 ‘리니지’ 게임 등장의 초창기였어요. 리니지로 인한 사회 문제가 커지고, 대부분 게임 중독자가 은둔형 외톨이라고 알려지면서 부정적인 이미지가 생겼죠. 사실 게임 중독은 그 전부터 있었어요. 인터넷 중독이 먼저였으니까요. 다만 게임 중독자가 대량으로 늘어나기 시작한 게 리니지 열풍 즈음일 거예요. 인터넷 중독이나 게임 중독의 경우 사람들이 잘 이해를 못 해요. ‘왜 게임을 그렇게 많이 하지?’라고 생각하니까요. 그런데 이런 중독은 우울증의 하위 증상으로 진단하고, 또 가장 잘 듣는 치료가 항우울제기도 해요. 왜냐하면 우울증의 주요 증상이 은둔이거든요. ‘사회적인 철회’라고 표현하죠. 남들을 만나는 걸 기피하는 거예요. 사람을 만나는 게 굉장히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거든요. 옷도 잘 입어야 하고, 표정 관리도 해야 하고 할 게 무척 많죠. 하지만 우울증 환자에게는 그럴 힘이 없어요. 그러니 자연스럽게 기피하게 되는 거죠.


하나의 증상으로 나타나는 거네요.

누구나 사람을 만나기 싫을 때가 있으니까요. 우울증을 보통 ‘심리적인 감기’라고 많이 표현하잖아요. 그게 누구나 걸릴 수 있기 때문이거든요. 완벽한 치료도 없고, 살다 보면 누구나 걸려요. 은둔자들이 타인과의 면대면 만남은 힘들지만, 만남 자체는 원하거든요. 그런 충족이 가장 쉬운 게 인터넷이죠. 은둔형 외톨이가 게임 때문에 은둔하는 게 아니고, 은둔을 하고 싶은데 은둔을 하면서도 연결이 되고 싶으니까 인터넷이나 MMORPG(Massive Multiplayer Online Role Playing Game) 게임을 하는 거예요.

은둔형이더라도 결국 사람은 사람이 필요한 거네요?

그럼요. 우울증 환자들이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다고 하는 게, 진짜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은 건 아니에요. 자기가 원하는 방식으로 만나고 싶을 뿐이죠. 그게 어떤 형식인지 스스로 잘 모를 수는 있어요. 하지만 사람들은 정말 외면받을까, 외톨이가 될까 두려워하죠. 생존 본능이에요. 어쨌든 진짜 외톨이가 되면 그건 죽음이나 마찬가지거든요. 저도 은둔형이라고 이야기한 건, ‘굳이 나서지는 않는다’ 정도일 뿐이에요.

 

‘은둔형’과 ‘집순이, 집돌이’라는 단어의 이미지나 분위기, 어감이 많이 달라요. 어떤 증상에 관해 명명도 중요한 것 같아요.

‘은둔’은 기피고, ‘집순이’는 선호처럼 들리죠. 그건 낙인이론에서 많이 하는 이야기예요. 이름을 붙이는 거예요. 그럼 그 이름이 큰 효과를 발휘하죠. 가장 큰 사례가 범죄자예요. 범죄자로 낙인 찍히면 실제 범죄를 저지르게 돼요. 그것밖에 할 게 없거든요. 정신병자도 마찬가지고요. 실제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 중에 조건이나 환경이 어떻든 간에, 범죄를 저지를 사람들이 있을 수 있어요. 보통 ‘사회병질자’라고 불리는 사람들이요. 하지만 이런 경우는 그렇게 많지는 않아요. 다른 범죄자들은 어떤 상황에서 다른 선택의 여지가 있었지만 나쁜 선택을 하게 된 사람들이에요. 또 그중에 절반은 그 상황이었으면 나라도 범죄를 저질렀을 것 같은 사람들이 있는 거죠. 그런데 그 모든 사람들이 다 똑같은 범죄자가 되는 거예요. 낙인효과의 또 다른 대표적인 예가 ‘피그말리온 효과’예요. ‘얘는 머리가 정말 좋은 애예요.’라고 하면 정말 똑똑해지고, ‘부족한 애들이에요.’ 하면 그렇게 되고요. 선생님이 공정하게 대하려고 하더라도 그런 영향을 받는데, 범죄자 같은 경우에는 공정하게 대우하려고 하질 않잖아요. 그러니 그 영향이 더욱 심하겠죠. 

 

주변에서 심리적인 질병이나 현상을 바라보는 관점이나 태도도 중요하겠네요.

그게 의미를 부여해주는 것이면서 사회적인 역할을 정해주는 것이기도 하니까요. 

 

문득 ‘싸이코짱가’의 뜻이 궁금해요.

지금은 후회하고 있는데(웃음), 단순해요. 제 이름이 ‘장근영’이라서 별명이 ‘짱가’가 된 거고요. 또 심리학을 의미하는 ‘싸이코’를 넣은 거죠. 장 씨는 대부분 짱가라는 별명이 있었어요. 

 

혼자 활동하는 것에 대해 긍정적인 이름이 많이 붙었어요. 혼밥, 혼술, 혼여 등등. 혼자 하는 일의 진입이 쉬워지면서 혼자가 되는 것의 부정적인 시선이 거두어졌죠. 그런데 누군가가 이 현상에 반론을 제기했어요. ‘오히려 여러 명이 한꺼번에 먹는 떼밥이 더 이상한 거지, 혼밥은 너무 자연스러운 거 아닌가요? 그냥 밥을 먹을 뿐이잖아요.’라고요.

좋은 이야기예요. 보통 이상한 것에 이름을 붙여요. 당연한 건 너무 당연해서 특이점을 인식하지 못할 정도죠. 제가 예전에 학교 다닐 때 사람들은 혼밥을 많이 했어요. 아무도 그걸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거든요. 대신 수업 시간에 모자를 쓰고 오면 이상하게 여겼죠. “대학생이 야구 모자를 쓰고 학교를 와?”, “강의실에 모자를 쓴다고?” 큰일 났죠. 그런 분위기였어요. 결함이나 문제가 된다고 생각하지 않았거든요. 혼자 하는 일에 새롭게 긍정성을 부여하는 건, 혼자 먹는데 누가 뭐라고 할까 봐 신경을 썼던 걸 보여주는 거예요.

일본에서는 화장실에서 도시락을 먹는 게 화제가 되기도 했죠.

우리나라도 그래요. 비정상적인 부분이기는 하죠.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는 부분이에요. 


내향성과 외향성은 그저 성향의 차이일 뿐이지 거기에 긍정성과 부정성을 주입하면 위험한 것 같다는 생각도 들어요. 그런데 사교성이 좋고 적극적인 것에는 좋은 이미지를 부여하고, 혼자 머뭇거리고 관계 맺음에 서툰 것에는 문제 있는 것 같은 이미지를 씌우잖아요.

그건 실제로 뭐가 부족한 거예요.


앗, 사람들과 꼭 좋은 관계를 맺어야 하나요?

좋은 관계를 맺을 필요가 있죠. 말씀하신 것 중에 쭈뼛거리고 머뭇대고 해야 할 말을 하지 못한다면 그건 부족한 거예요. 스스로도 부족하다고 생각할 것이고, 그 상황에서 어려움을 느낄 테니까요. 진짜 은둔형 사람들은 해야 할 때는 말을 해요. 자기가 선택해서 그 사람을 만날 필요가 없으면 안 만나는 거지, 만나게 되면 거기서 자기 역할은 다 해야 하는 건 마찬가지거든요. 누구에게나 있으면 좋은 게 자신감, 자신효능감, 자존감이에요. 그게 부족한 사람들이 있어요. 그런 사람들은 도움이 필요하다고 할 수 있죠. 은둔형의 경우 자신감이 부족한 건 아니에요. 내가 사람들과 어울리는 방식이 이게 아니고 다른 형식일 뿐인 거죠. 내가 이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구나 깨닫게 된 계기들을 보면 실패 경험들이 있긴 해요. 대신 다른 부분에서 자기 자아를 찾아요. 본인이 은둔형이 되고 싶지 않은데 밀려나는 경우는, 여기에도 저기에도 속하지 못한 채 자기 정체성이 뚜렷하지 못한, 힘든 상황에 있는 경우예요.


지구가 멸망해서 나만 살아남은 상상을 하곤 해요. 인간이 혼자 살 수 있을까요?

저도 그런 상상 많이 해요. 아뇨, 혼자 살 수는 없어요. 영화 <나는 전설이다>와 <오메가 맨>을 보면 그런 이야기가 담겨 있죠. <캐스트 어웨이>도 비슷해요. 결국 ‘윌슨’이라는 친구를 만들잖아요. 사람의 생각이라는 게 대화의 내면화 과정이에요. 생각을 하려면 상대가 있어야 해요. 내가 ‘나’라는 인식을 하기 위해서도 남이 필요하고요. 인간이 가지고 있는 인간적인 속성들 중에 사회적인 요소를 빼놓고 생각할 수 있는 건 거의 없어요. 그걸 다 빼놓고 나면 인간은 정말 동물과 차이가 없거든요. 살 수는 있겠지만 인간으로 사는 건 아닌 거죠. 그런데 현대 사회에서는 혼자 살아도 다 연결돼 있어요. 시장이라는 시스템을 통해서 모두가 닿아 있으니까요. 시장에 살 물건이 있고, 그 사람으로부터 물건을 사는 건 그 순간 연결이 되는 거죠. 도시에서 직접적인 대인관계를 피한 채 혼자 사는 건 혼자 사는 게 아니에요. 어떻게 지내도 혼자가 아닌 거죠.

그럼 도심에서 진정한 고립을 만드는 건 어려운 일인 거군요.

인류가 성공했다는 증거기도 하죠. 어떻게 살아도 살 수 있게 된 거잖아요.

 

저는 사람들과 부대끼면, 그 시간만큼 혼자인 시간도 필요해요.

미국에서 교수를 하다가 한국에 온 친구를 보면 한국에 오니까 너무 바빠서 일을 못 하겠다는 거예요. 그땐 아무도 나를 건드리지 않고 연구도 하고 일할 수 있는 시간이 많았는데 한국은 연구 이외에 할 일이 너무 많은 거죠. 어떤 면에서 이런 게 사람들이 혼자 되기를 바라는 이유일 수도 있어요. 정말 해야 할 일을 못 하는 경우가 생기잖아요. 

 

퇴근 버스에서 창밖을 보면서 노래를 들으면 살짝 우울해지곤 해요. 근데 이게 또 나름 나쁘지가 않거든요. 저는 이걸 ‘가벼운 우울감’이라고 불러요.

센치해지는 게 있죠. 만족스러운 우울감 같은 건데요, 저도 가끔 그걸 느끼거든요. 한강 다리를 건너는데 햇볕이 쏟아지고 멋진 장관을 보면 약간 우울해져요. 그런 우울감을 느끼면 ‘내가 특별한 게 아닐까.’, ‘다른 사람은 이런 감정을 모르겠지.’로 종종 이어지는데 그 만족감의 원인일 거라고 생각해요. 자기만의 고유성을 느끼는 경험인 거죠.

 

어떤 이야기를 해도 ‘자아’가 빠지질 않네요.

그래서 자아중심성을 연구한 거예요(웃음).

 

대중들의 심리학 진입이 문화적으로 낮아진 것 같아요. 관련 도서, 강연, 이벤트 등이 많아졌으니까요. 그런 작업을 통해서 자신의 청소년기를 돌아보며 ‘그때 엄마가 그럼 안 됐었는데, 그때 아빠가 내게 잘못한 거네.’ 자각하게 되고 뒤늦게 가족에 대한 미움을 갖게 되는 경우도 있다고 해요.

네 살 이전까지 어떤 사람하고 안정적인 관계를 맺는 것 꼭 필요해요. 그 뒤에 공감능력이든 뭐든 생기거든요. 인간의 마음에는 가소성Flexibility이 있어요. 웬만한 경험들은 다 거기에 맞춰 적응하고 넘어갈 수 있는 거죠. 그런데 어떤 것을 넘어갈 수 없다고 생각하면, 넘어가지 못하는 거예요. 마음에는 스스로 정한 한계가 각자 있거든요. 과거 경험을 돌이켜 볼 때, ‘그때 이렇게 되받아 칠 걸.’ 생각하는 미결감에 빠지는 경우가 있어요. 받은 만큼 주고, 준 만큼 받아야 하는데 그게 끊기면 미결된 거니까요. 그래서 더 많이 남기는 해요. 그게 머릿속에 자꾸 떠오르죠. 그렇다고 해서 어릴 때 겪은 게 오늘 내가 겪은 것, 1년 전에 겪은 것보다 더 많은 영향을 미친 다고 말할 수는 없어요. 영향력의 강도를 따지자면 네 살 이후는 거의 비슷해요. 특정한 이벤트가 중요한 건 아니고, 그보다 더 영향을 주는 건 일상에서 매일같이 일어나는 일들이에요.

오히려요?

어머니의 생활습관 중에 분명 나에게 남은 게 있겠죠. 몇 시에 일어나고, 밥은 뭐부터 먹는다, 어떤 것은 피한다. 이런 것은 반복이 만들어낸 것이거든요. 이벤트성으로 일어난 건 지속되지 못해요. 그건 행복도 똑같아요. 아주 큰, 대박 터진 행복이 있으면 그 뒤에 불행이 따르거든요. 마음은 정상으로 돌아가는 성향이 있어서 올라간 만큼 떨어져요. 기분이 엄청 좋으면 그 뒤로 좋았던 만큼 기분이 안 좋아지는 거예요. 그리고 다시 원래대로 돌아오고요. 기분 좋은 일이 크면 클수록 돌아오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기도 해요. 실제 행복연구가들이 발견한 거죠. 그것보다는 소소하게 꾸준히 일어나는 좋은 일들이 행복 향상에 좋아요. 베이스라인이 높아지니까요. 작은 일들이 중요해요. 나도 기억을 못 하는데 나에게 남아있어요. 소소하지만 축적되는 거예요. 결국 평소에 인식하지 못했지만 생활을 채워주는 것들에서 작은 행복을 느끼는 게 중요하다는 말이기도 하죠. 지속적으로 꾸준히.

 

베이스라인이 올라가는 게 정신적인 안정감을 말하는 걸까요?

보통 정신적인 안정감을 이야기할 때는 자신감과 연결하는 편이에요. ‘무슨 일이 일어나도 나는 괜찮을 거야.’라는 믿음과 연결되는 거죠. 그 자신감이 경험을 통해서 절반 정도 형성되는데 타고난 사람도 있어요. 성격 요소 중에 ‘빅파이브Big Five’라는 게 있어요. 개방성, 성실성, 외향성, 친화성, 신경증을 말해요. 다른 건 환경에 따라 바뀌는데 이건 환경이 바뀌거나 시간이 흘러도 바뀌지 않아요. 그중 하나가 정서적인 안정감이에요. 내향적인 사람은 어디에 갖다 놔도 내향적인 거예요. 그냥 운명이에요. 정서적인 안정감도 변함이 없어요. 아무리 최악의 상황이 와도 덜 불안해하는 친구가 있는 거죠. 불안감을 잘 느끼지 못하고요. 타고 났다는 말이 거기에 쓰이는 거예요. 

 

드라마 <괜찮아, 사랑이야>에서 정신의학 관련된 인물들이 이런 이야기를 해요. “정신의학이 난 참 좋아. 사람에게 선입견을 안 만들잖아.”

사실 그건 사람마다 달라요. 선입견은 보통 사례 수가 적을 때 만들어져요. 그 분야에서 사례 수가 많으면 많을수록 고정관념이 생길 가능성이 적거든요.

 

요새 우울한 사람이 무척 많다고 하잖아요.

정말 우울한 사람이 많은가요? 제 세대와 요즘 세대가 다른 게 많다고 느끼거든요. 이게 그런 부분 중 하나예요. 

 

그런 시기가 있는 것 같아요. 뭔가를 새로 준비하고 적응해야 하는 시기에 두드러지게 나타나더라고요. 취업 준비, 이직 준비, 결혼 준비, 출산 준비 같은 거요.

좌절을 많이 겪으면 많이 우울해져요. 우울해지는 사람이 있고 화를 내는 사람이 있는데 요즘 사람들은 화를 내는 사람은 적고, 자기 분노를 자기에게 돌리는 경우가 잦아졌죠. 예전보다 사람들이 착해졌어요. 

 

우리나라 특유의 정서 불안이 있을 것 같아요. 나름의 환경이 다르게 작용할 테니까요.

통계적으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보여지는 게 불안신경증이에요. 불안한 거죠. 공황장애도 불안장애의 일부예요. 범불안장애는 늘 어디에 있어도 불안한데 그게 갑자기 미칠듯이 불안하게 느껴지는 거예요.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도 불안한 거죠. ‘언제 내가 더 떨어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90년대까지는 알코올 중독이 최고였어요. 하지만 IMF 이후 불안장애가 1위로 올라섰어요. 우리가 계속 불안하죠. 경제는 늘 최악이라고 하고요.

한국전쟁 직후, 군사정권 등 시대적인 배경이 대중의 심리에 영향을 많이 끼치죠. 가장 최근은 세월호 사태가 아니었을까 싶고요.

세월호 사건은 어떻게 처리하느냐에 따라 사람들의 반응이 전혀 다를 수 있었어요. 그게 잘못되었다는 게 확인이 된 게 다음 해의 메르스 사태였죠. 세월호 사건 때, ‘이렇게 진행하면 안 되는데, 이렇게 가도 괜찮은가?’ 싶다가 메르스를 겪으면서 ‘아, 이게 완전히 잘못된 거구나,’를 알게 된 거죠. 확실히 확인을 한 거예요. 그때 아마 대부분의 국민이 박근혜 정부에 정과 손을 떼었을 거예요.

 

마음챙김Mindfulness이 요즘 다시 떠오르고 있어요.

제 아내가 《Mindfulness》 책을 2000년대 초반에 번역했어요. 마음챙김은 ‘생각하며 살자.’예요. 커피를 어디서 사 마실까, 이 옷을 살까 저 옷을 살까, 살까 말까 고민하는 거죠. 우리가 자동화된 삶을 살아요. 생각을 안 하고 살고, 습관대로 살죠. 그러면 완전히 외부로부터 영향을 받게 되거든요. 이끌어가는 대로 끌려 가는 거죠. 마음챙김이라면 ‘왜 내가 이걸 사야 되는 걸까?’, ‘이걸 사면 내가 얻는 게 뭘까?’, ‘내가 지불해야 할 대가는 뭘까?’ 생각하는 거죠. 그러니 <김생민의 영수증>도 한 맥락이이에요. 어떻게 소비를 할 것인가 계속해서 궁리하는 거잖아요. 현명한 소비, 현명해지자는 거니까요. 이것을 처음 주창한 사람의 요지는 그거예요. ‘우리가 생각하지 않으면 금세 늙어버린다.’ 실제로 양로원에서 실험을 했는데, 한 집단은 양로원 프로그램 대로 살게 하고, 다른 집단은 모든 게 똑같은데 화분 하나를 제공하죠. 그 화분을 굽어 살피기 위해서 그 사람은 생각을 해야 해요. 결과는 그 화분 하나를 통해서, 지능 저하가 늦어지고 신체 상태가 좋아졌어요. 내가 돌봐야 하고 생각해야 하는 대상이 생긴 거거든요. 사람들이 ‘정신줄 놓는다.’는 말을 자주 쓰잖아요. 그 순간 정신적인 수준이 낮아져요. 정신줄을 놓치지 말자는 것이 마음챙김인 거죠.

 

《피로사회》에 현대인은 너무 피로하다, 우리는 멍 때릴 시간이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나오잖아요. 그럼 상반되는 이야기일까요?

《피로사회》에서는 사람들이 생각이 많아서 피로한 게 아니라 할 일이 너무 많아서 피곤한 것으로 나와요. 신경 쓸 일이 많은 거지, 깊이 생각할 수 있는 건 아니거든요. 마음챙김의 관점에서는 생각을 안 하고 그때그때 응대하면 할 일이 늘어난다고 봐요. 대신 하나를 깊게 고민하면 그 일은 완전히 처리가 되죠. 그러면 장기적으로 부담이 줄거든요. 그런 면에서 《피로사회》에서 제시된 해결책도, 멍 때리자는 게 생각을 안 하자는 게 아니라 지금 당장 처리해야 할 일에서 벗어나서 깊이 생각할 거리를 찾아서 안으로 들어가자는 거예요. ‘이거 내가 왜 하지?’부터 시작해서, ‘내가 왜 이렇게 바쁘지?’ 생각을 하자는 거죠. 그럼 점점 나아질 테니까요. 

 

아내분께서 이 책을 번역하셨다면 같은 분야의 일을 맡고 계신 가봐요.

제 아내도 저와 같이 연세대학교 심리학과를 졸업했어요.

 

그럼 캠퍼스 커플이었나요?

CC였죠. 제가 87학번, 아내가 89학번이에요.

 

심리학도의 연애는 어때요? 간파를 정말 잘하나요(웃음)?

냄새 기억 실험 때문에 자주 만나면서 아내와 가까워졌어요. 실험이 핑계였죠. 그런데 더 가까워지게 된 건 논문 쓸 때 타이핑 쳐주고 그런 일을 도와주면서였어요. 전공과 별로 상관없는 부분이죠.

역시 심리를 간파하는 것보다는 헌신과 노력이군요.

그럼요. 하기 나름이에요. 연애는 어려운 거죠(웃음).


심리학 관련해서 일반인이 봐도 흥미로운 실험이 많더라고요.

제가 제일 많이 응용하는 실험은 짐바르도Philip George Zimbardo의 실험이에요. 가상 감옥 실험인데요, 낙인효과에 대한 실험이거든요. 성격론에 관한 내용이죠. 그가 질문했던 건 죄수에 관해 ‘그들이 원래 그런 사람들이냐 혹은 감옥에 들어갔기 때문에 그렇게 된 거냐’였어요. 자기가 죄수라고 생각해서 그런 건지, 아니면 죄수라는 의식이 없어도 원래 그런 건지 실험하는 거죠. 그런데 ‘너는 죄수야.’라고 이름표를 붙이고 역할을 주면 죄수가 되고, ‘너는 간수야.’라고 역할을 부여하면 간수가 되는 거예요. 그 실험은 성격심리학자들에게 큰 파장을 일으켰죠. 그들의 경우 모든 행동의 원인은 그 사람의 성격이라고 보거든요. 그런데 이 실험에 의하면 사람들 행동의 원인이 그 사람에게 주어진 역할, 상황이 중요하다고 말해요. 그중에서 가장 잔인한 간수가 있었는데, 가상 감옥 바깥에서는 엄청나게 젠틀한 남성이었던 거예요. 이런 것을 보면 성격하고 그 사람의 행동하고 관계가 없다는 것도 알 수 있죠. 그 실험을 많이 인용해요. 제가 군대를 가서도 느낀 게 그런 부분이기도 했고요.

존경하는 심리학자도 있겠네요.

심리학자들의 실험을 보면 주어진 한계 내에서 자신이 알고자 하는 바를 발견하는 최적의 방안을 만들어내요. 엄청나게 창의적인 작업이거든요. ‘스키너Burrhus F Skinner’도 무척 존경하죠. 스키너 아저씨는 워낙 독한 사람이에요. ‘나는 3년 안에 박사를 딸 거야.’ 하고 실제로 3년 안에 박사과정을 수료했어요. 모든 파티를 안 나가고(웃음). 그런데 쥐 실험을 해야 하는데 쥐들이 배 부르면 데이터가 안 나오니까 적당히 배고프게 하면서 데이터가 나오는 ‘강화계획’이라는 것을 찾게 되었어요. 원래는 지렛대를 누를 때마다 먹이를 줘야 하거든요. 그런데 그렇게 하면 쥐들이 금방 배 불러서 잘 안 눌러요. 그래서 드문드문 먹이를 줘야겠다고 생각한 거죠. 드문드문 주려고 하니까 계획에 따라서 어떻게 드문드문 줄 것인지 달라지는 거죠. 몇 회당 줄지, 시간당 줄지, 아예 랜덤으로 줄지. 그런데 그 계획에 따라서 지렛대를 누르는 속도가 달라지는 거예요. 그 자체가 아주 중요한 발견이었죠. 스키너는 자동화에 관심이 많았던 사람이에요. 쥐 실험을 할 때, 쥐가 지렛대를 누르는 시간을 조교가 일일이 기록해야 했어요. 그러면 한 마리밖에 관찰을 못 하잖아요. 스키너는 그걸 자동화된 스키너 박스를 만들어서 기계가 기록하도록 만든 거죠. ‘스키너의 상자’가 바로 이거예요. 그래서 그 사람의 데이터가 금방 쌓였죠.


역시 사람은 머리를 써야 하는군요.

그렇죠. 역시 ‘Mindfulness’!


마음챙김처럼 건강한 혼자를 위해서 무엇을 하는 게 좋을까요? 마음을 다스릴 줄 알아야 할 것 같기도 하고요.

심리학자 중에 ‘장 피아제Jean Piaget’라는 사람이 있어요. 스위스 사람인데 열네살 때 논문을 썼어요. 엄청난 천재죠. 그 사람이 자기 딸을 키우면서 쓴 글이 논문이 됐어요. 저명한 책이 되었는데 그 사람은 그야말로 ‘건강한 혼자’를 추구했어요. 평소에는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방학에는 책을 싸들고 혼자 산장에 갔어요. 가족들도 없이요. 방학을 보내고 내려올 때면 책 한 권이 만들어지는 거죠. 그렇게 지냈어요. 자기가 혼자 있어야 할 때를 정확히 알고 선택을 하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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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이자연

포토그래퍼 Hae R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