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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이 좋아서 음악을 그린다. 이 단순한 문장에서 출발해 72색 빛깔로 펼쳐지는 일러스트레이터 캐쓰의 그림 속으로 당신을 초대한다.
처음 캐쓰라는 이름을 알게 된 건 작년 2월 한국대중음악상 후보들을 그린 그림에서였다. 일러스트 속 얼굴들은 실제보다 조금 더 다정하고 천진했지만, 그래서 더욱 그 얼굴을 향한 애정이 보였다. 그림을 들여다보다가 색연필을 잡은 이가 궁금해졌다. 대체 얼마나 오래 이 음악들을 사랑해왔을까.
캐쓰는 스스로를 ‘음악을 그리는 작가’라고 소개하는 일러스트레이터다. 프리즈마 색연필을 사용한 풍부한 색감의 일러스트와 만화로 잘 알려진 그는 우리가 아는 여러 얼굴을 그려왔다. 최근 김창완밴드의 첫 번째 공식 티셔츠 속 그림부터 ‘배철수의 음악캠프’ MD, 사브리나 카펜터 6집 발매를 기념한 협업 일러스트까지. 다른 무엇도 아닌 음악을 캔버스 위에 담기 시작한 데는 학창시절부터 줄기차게 이어온 그의 ‘덕력’이 한몫했다.
시작은 라디오 한 대였다. 중·고등학교 친구들에게 캐쓰는 늘 6시 땡 치면 집에 가버리는 아이였다. 그 시간이면 라디오 앞에 앉아야 했기 때문이다. ‘배철수의 음악캠프’. 1990년 3월 19일부터 뮤지션 배철수가 진행을 맡아 시작된 이 프로그램은 MBC FM4U에서 매일 오후 6시에 송출된다. 올해로 36년째, 한국에서 진행자가 바뀌지 않는 최장수 라디오 프로그램이라는 기록적인 행보를 걷고 있다. 그 시절 캐쓰에게는 좋아하는 것에 마음껏 빠져 헤엄칠 수 있는 어리고 넉넉한 마음이 있었다. 그리고 그 학생은 자라서 또 다른 것을 사랑하게 되는데, 바로 그림이다. 몇 년의 지난한 시간 끝에 캐쓰는 둘을 엮어낸다. 좋아하는 음악을 그리는 일을 업으로 삼게 된 거다.
“그때도 지금도, 하나에 푹 빠져서 깊게 좋아할 수 있는 마음을 가질 수 있다는 게 행운인 것 같아요.” 캐쓰는 그저 좋아서 매일 보고 들었을 뿐이다. “좋아하는 마음 하나로 시작해 제 안에서 여러 갈래의 가지가 뻗어나간 느낌이에요.”
지난해 봄, 캐쓰의 그림은 배철수의 음반 [Fly Again](2025)의 커버가 되었다. 뿐만 아니라 ‘배철수의 음악캠프’ 35주년을 맞아 제작한 티셔츠 로고도 그의 손을 거쳤다. 라디오 너머 목소리를 오래 짝사랑하던 팬이, 어느새 그와 나란히 이름을 올린다. 캐쓰에게 협업의 시간은 내내 꿈을 꾸는 것 같았다. 처음 작업을 제안받던 순간, 갑자기 함께 식사를 하자고 걸려온 전화, 배철수의 방송 녹음을 구경하던 일··· 그 시간은 고스란히 캐쓰의 인스타그램에 만화로 기록되어 있다.
거의 20년을 라디오로 들어온 목소리는 캐쓰에게 꼭 가족 같다. 처음 방송을 접하는 사람들은 무심하게 툭툭 던지는 듯한 말투를 낯설어하지만, 캐쓰는 그 안에 담긴 다정함을 누구보다 잘 안다. 오랫동안 빛이 되어준 어른과 나란히 작업대에 앉는 시간은 설렘과 동시에 부담이었다. 밤낮없이 몰두했던 그 시기를 캐쓰는 앞만 보고 달리는 경주마 같았다고 회상한다. 부담을 이겨낸 힘은 다름 아닌 신뢰였다. 어떤 결과물에도 고개를 끄덕여주실 거라는 믿음. 인물을 그릴 때 캐쓰가 가장 오래 머무는 자리는 바로 두 눈이다. “사람의 눈빛에 정말 많은 삶이 숨어 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그 눈에 닿기 전, 그는 반드시 같은 절차를 거친다. 그 뮤지션의 앨범 전체를 처음부터 끝까지 듣는 것. 그러다 보면 뮤지션이 진짜 하고 싶었던 이야기의 결이 서서히 드러난다. 이 지점에서 음악과 그림은 크게 다르지 않다. 보이지 않고 잡히지 않는 무언가를 시각화하는 일이니까 말이다. 캐쓰에게 중요한 건 겉모습을 똑같이 그리는 것보다 감정을 투명하게 담는 것이다. 음악을 들으며 느낀 감정을 오래 곱씹은 뒤에야 작업을 시작한다.
캐쓰는 지난해 ‘내일 지구가 멸망한다면 챙길 음반 30장’이라는 재기발랄한 상상으로 책 《턴! 턴! 턴!》을 펴냈다. 턴테이블과 레코드에 관한 기초 지식은 물론이고 부부의 추억이 얽힌 음반들을 하나하나 에피소드로 풀어냈다. 책을 집필하게 된 계기는 그가 평소 좋아하던 일본 작가 모토 히데야스의 만화 《레코스케》였다. 쉽사리 볼 수 없는 ‘음악 에세이 만화’라는 캐쓰만의 장르를 만들어야겠다고 마음먹은 거다. “저만의 음악 이야기를 가장 자신 있고 잘할 수 있는 매체로 풀어내고 싶었거든요.” 팬심을 일로 끌어오는 캐쓰의 용기는 여기서 또 한 번 발현된다. 그는 모토 히데야스에게 직접 인터뷰를 청했고, 그렇게 맺어진 인연이 올해 초 실제 만남으로까지 이어졌다. 《턴! 턴! 턴!》은 캐쓰 자신을 둘러싼 어마어마한 양의 음반을 제대로 마주할 수 있는 기회였다. 동시에 이 책은 앞날에 대한 기대감도 심어주었다. 부부의 일상에는 앞으로도 음악이 촘촘히 쌓일 것이다. 또 얼마나 쌓여야 두 번째 책이 나올지는 미지수이지만.
캐쓰의 그림은 정답을 그리지 않는 대신 상상력을 건드린다. 그가 그림을 그릴 때 가장 바라는 점은 하나로 모인다. 보는 이가 무궁무진한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 하는 것이다. 최근에는 뮤지션들의 인물 그림 외에도 캐쓰가 여행하며 목격한 장면들을 캔버스 위에 옮기고 있다. 대상만 달라졌을 뿐 그 중심은 여전하다. 무엇을 느꼈는지 오래 곱씹고, 피사체의 두 눈을 투명하게 그리는 것. 그림 안에서 각자의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것. 그건 누군가를 순수하게 좋아하고 따랐던 어린 시절의 감각을 보는 이에게 고스란히 되돌려주는 일이기도 하다.
요즘 캐쓰는 곧 열릴 일본에서의 전시를 준비하고 있다. 아마 그는 더 바빠질 것이고, 더 즐거워질 것이다. 이렇게 활동 반경이 하루가 다르게 넓어지는 와중에도 다음 목표를 묻는 질문에 캐쓰는 아주 소박한 문장 하나를 꺼낸다. “그리고 싶은 거 그리면서 밥 맛있게 먹고 건강하게 살다가 ‘그림 그리는 할머니’가 되는 게 꿈이에요. 그냥 지금처럼 이렇게요.” 여섯 시가 되면 라디오 앞으로 달려가던 소녀는 여전히 그때와 같은 마음으로 색연필을 든다.
저의 인생 아이돌입니다. 〈어쩌다 마주친 그대〉, 모르는 사람 없잖아요! 80년대 나이트클럽으로 돌아가서 송골매의 디스코 사운드를 직접 느껴보고 싶어요. 유튜브에 남아 있는 몇 영상만으로도 감사할 따름이지만, 그 시절의 열기를 한 번쯤 경험해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누가 타임머신 좀 개발해주면 좋겠어요.
산울림의 노래와 가사를 원어로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 한국인이라서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멋진 사이키델릭 형제들이 시대를 넘어 지금의 청년들에게 전해준 귀한 선물이죠. 단순히 노래라는 틀을 넘어서, 모든 세대가 함께 공감하고 나눌 수 있는 특별한 이야기이자 유산이라고 생각합니다.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의 전주는 듣고 또 들어도 전율이 돋아요.
창작가로서 ‘나만의 스타일’과 ‘파격’에 대해서 고민하게 해준 훌륭한 교보재 같은 작품입니다. 남들이 하던 방식이 아닌 거칠고 가공되지 않은 목소리와 창법은 당대 대중에게 거대한 문화적 충격이었다고 해요. 저도 마찬가지였고요. 심지어 당시 많은 포크 싱어의 앨범 이름이 ‘고운노래 모음집’이었는데, 한대수의 이 앨범은 그와 정반대편에 서있는 ‘파격의 모음집’이었죠. 이 한 장의 레코드가 한국 대중문화의 지평을 크게 바꾸어놓았다고 생각합니다.
레코드를 모으며 더 깊게 빠진 아티스트입니다. 당대 최고의 프로듀서이자 연주자였던 신중현은 밴드 더 맨The Men과 함께 어디서도 들을 수 없었던 몽환적이고 실험적인 소리를 완성했어요. 여기에 더해진 김정미의 나른하면서도 깊은 울림을 주는 목소리는 음반 전체에 독특한 숨결을 불어넣습니다. 〈햇님〉과 〈봄〉을 들으면 그 신비로운 힘이 유독 선명하게 느껴져요.
에디터 정지윤
일러스트 캐쓰